의생회 간부 출신들 한의사회 부흥 주도 소정시고‧ 동양의약‧ 동방의약, 학문 등 활약상 기록
경북‧ 대구 한의계 열전(5)- 1950년대 회원들
1950년 이전의 한의사들 역사를 알아보는 것은 힘든 작업이며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일들이 많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제주도 최초의 항일운동인 ‘법정사 항일운동’은 일반인에게 생소할지 모르나 스님(한의사)으로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한의사 정구용(의생번호 2005번)은 경북 영일 출신이다. 포항의 보경사에 그와 관련된 기념비가 있으며 제주도에도 관련 자료가 있다.
1950년대 이후 한의사제도가 정식으로 수립된 이후 아래에 열거된 사실 외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많지만 50년대의 한의사 역사를 기술하고 이후 내용은 대구‧경북한의사회에서 작업하는 것이 좋을 듯하여 60년대 이전으로 한정하여 글을 쓰려고 한다.
“丹濟 박재석은 간디스토마 치료제인 肝蟲丸을 전국 유명 약방에 판매한 것으로 보아 그는 제약회사와 한의원, 양방의원 등 3가지를 겸했던 것으로 보인다”
|
|
|
1950년대 대구 경북 한의사회 총회 모습. | 과거 일제시대 의생회 간부 출신으로는 대구‧경북 초대 회장 이호진(의생번호 6439, 한지한의사 276/ 1884년 10월27일~1963년 11월29일/ 대구 영천한의원: 동서의학연구회 회원)과 2대 회장 반형윤(의생번호 5718, 한의면허 214/ 1874년 4월9일생/ 대구 호남한의원: 1915년 의생회 회원)이 있다. 3대 회장 최해종(한의면허 235: 대구 자해한의원), 4대 회장 정현곤(한의면허 624: 대구 영험), 5대 회장 신현덕(한의면허 206번: 대구 신), 6대 회장 여원현(한의면허 305: 대구 대남)은 1950년대 한의사 간부였다.
이외에도 과거 의생회 관련 간부들은 정운하(의생면허: 1396, 한의면허 216: 대구 덕산), 금창수(대구 제생)가 있다. 50년대 부회장은 김수욱(한의면허 239: 대구 낙산), 이공호(한의면허 294: 대구 긍농), 김재성(대구 성남), 정규만(한의면허 307: 대구 활신), 권세형(대구 순흥), 박의식(한의면허 396: 대구 보화)이 있다.
이 시대의 분들을 보는 중요한 자료인 <경상북도 한의사회 창간호>와 <소정시고>, <동양의약>, <동방의약>에 나오는 인물 몇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59년 <경상북도 한의사회 창간호>에 나오는 인물을 보면 의림지 경북 지사장 방한철(한의면허 648: 대구 대창한의원)이 있다.
이와 함께 나오는 인물과 논문들을 보면 김재성(대구 성남)의 ‘傷寒轉變에 대한 管見’, 丹濟 박재석(대구 삼세)의 ‘痲疹 證治論’, 구자도(한의면허 208: 대구 대한)의 ‘보양과 도인법’, 지이홍(한의면허 640: 백구 백송)의 ‘생리학으로 본 영생의 꿈’, 회장 여원현(대구 대남)의 ‘本誌 창간과 소감’, 신현덕(대구 신)의 ‘문명진도와 한방진료’, 김정규(대구 청운당)의 ‘삼초의 생리와 그 변화’, 이희중(한이면허 661: 대구 인화)의 ‘장티푸스 예방과 치료법’, 김상준(경주 제생)의 ‘임상 경험’, 김동후(포항 영생)의 ‘위장병과 치료 소견’, 이창호(대구 행림)의 ‘한의학 발전은 비방 공개로부터’, 이원식(대구)의 ‘상한론 書考’, 구자도(대구 대한)는 2편을 실었는데 ‘명의전- 석곡 이규준’의 글이 있다.
이 학술지에는 석곡 이규준 선생의 제자 이봉학(원세. 면허번호: 786/ 대구 무위당) 선생도 회원으로 있다. 丹濟 박재석(대구 삼세한의원)은 의사 겸 한의사였는데 실제로 대구 남산의원 원장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주소가 ‘대구시 남산동 699번지’인데 바로 옆 ‘대구시 남산동 700번지’는 ‘삼세당 제약소’가 있어 간디스토마의 치료제인 肝蟲丸을 전국 유명 약방에서 판매하는 것을 보아 그는 제약회사와 한의원, 양방의원의 3가지를 겸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혼란기 이후에 잠시 있던 1953년 ‘대구 동양의학 전문학원’의 학원장을 한 경북 대구 6대 회장 여원현이 있다. 그는 불교신자로 활동을 하였는데 ‘동명’으로 불리며 대구 동화사 신도회장과 ‘동명정사’를 짓기도 하였다.
<소정시고>에는 靈巖 정현곤, 誠濟 최홍교(대구성제), 오병도(한의면허 217: 대구동양) 성기갑(한의면허 293), 松隱 이돈중(대구 송은당)이 있다. 당시 대한한의사협회가 소장한 기록에 의하면 의생<한지면허>으로 김종석(경주, 한의 4179번), 현경길(선산, 한의 4176번), 김재훈(의주, 한의 4174번), 김술용(칠곡, 한의 4175번) 등이 의생에서 한지한의사로 1986년 이후에는 한의사 면허를 취득하였고 한지한의사는 김호반(경산, 한지한의사 74번), 이만식(영일, 한지한의사 195번), 이종기(영천, 한지한의사 154번), 정연철(영천, 한지한의사 73번) 등이 74년 이후에도 생존해 계셨다. 기록에는 없지만 ‘대한민국 관보’에 경북‧대구한의사회 초대 회장인 이호진 선생은 한지한의사로 한의사 면허를 취득하지 않고 63년에 돌아가셨다.
경희대와 한의학연구원이 소장한 <동양의약>에는 ‘경북한의학계의 원로- 최해종(대구 자해)’, ‘우리나라 漢醫學의 現代化를 위하여 탁월한 醫治的 硏究와 實力 向上에 노력과 學界의 組織을 發展시키기 노력한 분- 정현곤’, ‘국제醫學化할 때까지 노력하는 鬪志家- 여원현(대구 대남)’, ‘난치병 완치와 싸우는 한의학자- 정규만(대구 활신)’, ‘隱然한 醫功을 세우며 新治療에 體系를 構想하는 분- 이종필(대구 이가)’, ‘慶北 榮州郡胎生으로 漢醫學 工夫- 지우삼(면허번호 631번: 대구 덕제)’, ‘先親의 仁術을 繼承한 臨床의 實力家- 권세형(대구 순흥)’이 있다.
“중국인 한의사 담연성은 통역관으로도 활동했으며 1950년대 대한한의사협회에 많은 공헌을 했고, 그의 아들은 유명한 경영인(오리온그룹 회장 담철곤)이다”
경희대와 한의학연구원이 소장한 <동방의약> 잡지에 박재석의 ‘간디스토마에 대한 나의 고찰’과 ‘상한임상증치의 병리학적 고찰’, 정규만의 ‘백일해의 특례 치험’, <동양의약> 잡지에 김재성의 ‘상한 요령 1. 2. 3. 4’와 ‘상한 육경 요령’이 있다(최해종 관련 학술지 기고문 생략).
이외에도 중국인 한의사 담연성(면허번호 669번: 대구 인덕)은 통역관으로 활동하였으며 50년대 대한한의사협회에 많은 공헌을 하였고, 그의 아들은 유명한 경영인(오리온그룹 회장 담철곤)이다.
또한 50년대 한의사 출신 경북‧대구 회장단으로 7, 8대 대구시 한의사회 부회장 정화식(한의면허 205번: 대구 영남), 경북한의사회 7대 회장 김만호(면허번호: 785/ 대구 상주), 경북한의사회 회장과 대구한의사회 부회장 서문교(대구 문성), 대한한의사협회 회장과 경상북도 한의사회 회장, 대구한의대 설립자이며 대한민국 법령에 의해 최초의 한방병원을 설립한 변정환(청도 대한의원) 총장, 경북한의사회 회장 허일(면허번호 412: 대구 영주), 대구시 한의사회 회장 김수욱(대구 낙산)이 있다.
현재 살아계시는 조경제(대구 흥생)는 대구 푸른방송 이사장, 봉사활동으로 유명한데 1930년대 대구‧경북 한의사 회장과 同名異人이다. 그의 한의원은 ‘성서조약국’으로 불리고 있으며 지금도 생존해 계신다. 국가 기록에는 엉터리가 있는데 ‘한약사’로 표현되어 ‘양창환(梁晶煥)’으로 검색되지만 기록의 잘못으로 보이며 원래 기록을 찾아보면 양정환(梁晶煥)은 양성지의 후손으로 ‘한방만세만병환’을 만든 사람이며 당시 제세한의원으로 양정환, 양진환(한의면허 212: 대구 제세)의 형제 한의사가 있다. 그들은 눌제 梁誠之<의방유취 교정>의 후손이며 족보책에는 梁晶煥, 梁侲煥으로 2명 모두 한의사로 기록되어 있다.
1950년대의 한의사 분들은 지금도 생존해 계시며 한의학 발전에 공헌을 하신 분들이 많다. 변정환, 서문교, 조경제 등은 대구‧경북지역에 생존해 계시며 역사의 증인으로 후학들을 위해 힘써주는 것에 감사드리며 1960년대 이후의 글은 ‘대구광역시 한의사회 50년사’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생략한다. 다음 호에는 대구 경북한의사회 마지막 편으로 석곡 이규준과 관련 학술자료에 관해 언급하려고 한다.
황연규/ 마산 성신한의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