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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 29세 ; 경명왕(景明王 ?∼ 924. 재위 917∼924)
신라 제54대 왕으로 성(姓)은 박씨, 휘(諱)는 승영(昇英), 시호(諡號)가 경명(景明)이다. 신라 시조왕(始祖王) 29세손으로 아달라왕(阿達羅王) 25세손이다. 고조(高祖)는 수포대군(水浦大君) 휘(諱) 지곤(之坤)이고, 증조(曾祖)는 동산대군(東山大君) 휘(諱) 성순(成順)이며, 조부(祖父)는 신령대군(神靈大君) 대아찬(大阿飡) 휘(諱) 예겸(乂兼). 추존(追尊) 선성왕(宣聖王)으로, 신덕왕(神德王)의 태자(太子)이며 의성왕후(義成王后)의 아드님이다. 비(妃)는 석씨(昔氏)이다. 서기 917년(丁丑)에 부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서남에서 후백제가 일어나고 서북에서는 태봉국이 일어나 나라 형편이 극도로 미약하던 중 경명왕 2년(서기 918)에 왕건(王建)이 궁예(弓裔)를 누르고 고려국(高麗國)을 세우자 경명왕 4년(서기 920) 왕건과 손을 잡고 고려의 원군으로 후백제 견훤(甄萱)의 대야성(大耶城) 공격을 물리쳐 무사하였다. 그러나 신라(新羅)의 국운(國運)이 날로 쇠약해지자 변방의 장수들이 왕건에게 투항하는 자가 많아 후당(後唐)에 조공을 바쳐가며 힘을 얻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재위(在位) 8년 차 되던 해인 서기 924년(甲申) 8월에 승하하시니 경명(景明)이라 시호(諡號)하고, 경주 황룡사 북쪽의 배일산(拜日山) 삼능원(三陵園)에 능침(陵寢)을 모시었다. 왕비(王妃) 석씨(昔氏)의 능소(陵所)는 서태산(西太山) 자좌(子坐)이다. 세보고(世譜考)에 이르기를 “弟景哀王立阿達羅王神德王景明王陵俱在拜日山同原故謂之三陵。아우 경애왕이 계승하였으며, 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 능이 배일산 동원에 있으므로 삼능(三陵)이라 한다.” 라고 전해진다. 슬하에는 8대군(大君)이니 이분들이 곧 우리 박씨(朴氏)의 관시조(貫始祖ㆍ성씨의 본관)가 되시는 선조님들이다. 국상공(國相公) 한 분이 더 계신데, 이론(異論)이 있다. 팔공자(八公子)에게 분봉(分封)하였는데, 장자(長子) 언침(彦忱)은 밀성대군(密城大君)이니 관(貫)을 밀성(密城, 즉 密陽)이라하고, 둘째 언성(彦成)은 고양대군(高陽大君)으로 관(貫)을 고령(高靈)이라하며, 셋째 언신(彦信)은 속함대군(速咸大君)으로 관(貫)을 함양(咸陽)이라하며, 넷째 언립(彦立)은 죽성대군(竹城大君)으로 관(貫)을 죽산(竹山)이라하고, 다섯째 언창(彦昌)은 사벌대군(沙伐大君)으로 관(貫)을 상산(商山, 즉 尙州)이라하며, 여섯째 언화(彦華)는 완산대군(完山大君)으로 관(貫)을 전주(全州)라하고, 일곱째 언지(彦智)는 강남대군(江南大君)으로 관(貫)을 순천順天)이라하며, 여덟째 언의(彦儀)는 월성대군(月城大君)으로 관(貫)을 월성(月城, 즉 경주)이라 했다. 다음에 교순(交舜) 국상공(國相公)이니 관(貫)을 울산(蔚山)이라 칭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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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記 第 十二卷 新羅本紀 第十二 景明王 條
○景明王立諱昇英神德王之太子母義成王后。○元年 八月拜王弟伊飡魏膺爲上大等大阿飡裕廉爲侍中。○二年 春二月一吉飡玄昇叛伏誅 夏六月弓裔麾下人心忽變推戴 太祖弓裔出奔爲下所殺 太祖即位稱元 秋七月尙州賊帥阿玆盖遣使降於 太祖。○三年 四天王寺塑像所執弓弦自絶壁畵狗子有聲若吠者以上大等金成爲角飡侍中彦邕爲沙飡 我 太祖移都松岳郡。○四年 春正月王與 太祖交聘修好 二月康州將軍閏雄降於 太祖 冬十月後百濟主甄萱率步騎一萬攻陷大耶城進軍於進禮 王遣阿飡金律求援於 太祖 太祖命將出師救之萱聞乃去。○五年 春正月金律告王曰 臣往年奉使高麗麗王問臣曰 聞新羅有三寶所謂丈六尊像九層塔幷聖帶也 像塔猶存不知聖帶今猶在耶臣不能荅 王聞之問羣臣曰 聖帶是何寶物耶無能知者 時有皇龍寺僧年過九十者曰 予嘗聞之寶帶是眞平大王所服也歷代傳之藏在南庫王遂令開庫不能得見乃以別日齋祭然後見之其帶粧以金玉甚長非常人所可束也。 ○論曰 古者坐明堂執傳國璽列九鼎其若帝王之盛事者也 而韓公論之曰 歸天人之心興太平之基决非三器之所能也竪三器而爲重者其誇者之詞耶况此新羅所謂三寶亦出於人爲之侈而已爲國家何須此耶 孟子曰 諸侯之寶三土地人民政事 楚書曰 楚國無以爲寶惟善以爲寶若此者行之於內足以善一國推之於外足以澤四海又何外物之足云哉 太祖聞羅人之說而問之耳非以爲可尙者也 。 ○二月 靺鞨別部達姑衆來寇北邉時 太祖將堅權鎭朔州率騎擊大破之匹馬不還 王喜遣使移書謝於 太祖 夏四月京都大風拔樹 秋八月蝗旱。○六年 春正月下枝城將軍元逢溟州將軍順式降於 太祖 太祖念其歸順以元逢本城爲順州賜順式姓曰王 是月 眞寶城將軍洪述降於 太祖。○七年 秋七月命旨城將軍城達京山府將軍良文等降於太祖 王遣倉部侍郞金樂錄事叅軍金幼卿朝後唐貢方物莊宗賜物有差。○八年 春正月遣使入後唐朝貢泉州節度使王逢規亦遣使貢方物 夏六月遣朝散大夫倉部侍郞金岳入後唐朝貢莊宗授朝議大夫試衛尉卿 秋八月王薨 諡曰 景明 葬于黃福寺北 太祖遣使弔祭。 < 원본 인용 ;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奎貴 3614-v.1-10, 奎 4354-v.1-10) 판본 >
< 국역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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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遺事 王曆篇 第一 景明王
<원문> 第五十四 景明王[朴氏 名昇英 父神德 母資成 妃長沙宅 大尊角干追封聖僖大王之子 大尊即水宗伊干之子 丁丑立 理七年 火葬皇福寺 散骨于省等仍山西] < 원문인용 : 규장각 古貴951.03-119s-v, 1-2. 목판본(正德版 ) > <국역문> 제54(대) 경명왕 [박씨이며 이름은 승영이다. 아버지는 신덕왕이고, 어머니는 자성왕후이다. 왕비 장사택은 대존각간으로 추봉된 성희대왕의 자식이다. 대존은 곧 수종 이간의 아들이다. 정축년에 즉위하여 7년간 다스렸다. 황복사에서 화장하여 성등잉산 서쪽에 산골(散骨)하였다.]
三國遺事 卷第二 景明王
<원문> 第五十四景明王代貞明五年戊寅四天王寺壁畫狗鳴說經三日讓之大半日又鳴. 七年庚辰二月皇龍寺塔影倒立於今毛舍知家庭中一朔 又十月四天王寺五方神弓絃皆絶壁畫狗出走庭中還入壁中. < 원문인용 : 규장각 古貴951.03-119s-v, 1-2. 목판본(正德版 ) >
<국역문> 제54대 경명왕(景明王) 때인 정명(貞明) 5년 무인(戊寅, 서기 918년)에 사천왕사(四天王寺) 벽화(壁畵) 속의 개가 울었다. 이 때문에 3일 동안 불경을 외어 이를 물리쳤으나 반일(半日)이 지나자 그 개가 또 울었다. 7년 경진(庚辰, 서기 920년) 2월에는 황룡사탑(皇龍寺塔) 그림자가 금모사지(今毛舍知)의 집 뜰 안에 한 달 동안이나 거꾸로 서서 비쳐 보였다. 또 10월에 사천왕사(四天王寺) 오방신(五方神)의 활줄이 모두 끊어졌으며, 벽화 속의 개가 뜰로 달려 나왔다가 다시 벽의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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