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러므로'와 '그럼으로'
"개정된 한글 맞춤법이 소리나는 대로 바뀌었다는데, 그러면 '있음'이 아니고 '있슴'이 맞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글쓴이가 이가 이미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경우에는 '있음'이 맞습니다.
우리 한글 맞춤법의 큰 원칙이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한글 맞춤법 제1항)는 것인데,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은 바로 이 '어법에 맞도록' 써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규칙적인 끝바꿈(활용)에서는 풀이씨(용언)의 줄기(어간)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곧 '있다'의 끝바꿈꼴(활용형)인 '있고, 있어(서), 있으니, 있음, …' 들은 줄기 '있-'은 변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씨끝(어미) '-고, -어(서), -으니, -음' 들이 붙은 것입니다.
우리말에 '-슴'이란 씨끝은 없습니다. 따라서 '있음'을 '있슴'으로 적는 것은 어법에 어긋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있슴'이 소리나는 대로 적힌 것도 아닙니다.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면 '이씀'이라고 적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개정된 한글 맞춤법이 '소리나는 대로' 적는 것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그러므로'와 '그럼으로'의 혼동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므로'와 '그럼으로'는 적기에 있어서만 구별될 뿐 말하기․듣기에서는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이 밖에도 하므로/함으로, 알리므로/알림으로, 일어나므로/일어남으로, … 들도 모두 같은 경우입니다.) 억지로 끊어서 읽기 전에는 발음의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적기에 있어서도 자주 혼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형태적으로나 의미적으로 분명하게 서로 다른 말이므로 잘 구별해서 적어야 합니다.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떨쳐 버리는 것이 무었보다 중요합니다.
먼저, '그러므로'는 '그렇다' 또는 '그러다(←그렇게 하다)'의 줄기 '그러(큁)-'에 까닭을 나타내는 씨끝 '-므로'가 결합한 형태입니다. 이 말은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러하기 때문에, 그리 하기 때문에' 등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다음의 예문들에서는 '그러므로'로 적어야 합니다.
⑴ 그녀는 이제 혼자이다. 그러므로 외롭다. (그러니까)
⑵ 그는 지독한 구두쇠이다. 그러므로 돈을 많이 모았다. (그렇기 때문에)
⑶ 법이 그러므로,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러하기 때문에)
⑷ 그녀가 만날 때마다 그러므로, 거절하기가 어렵다. (그리 하기 때문에)
반면에 '그럼으로'는 '그러다'의 이름씨꼴(명사형) '그럼'에 토씨(조사) '-으로'가 결합한 형태입니다. 이 말은 '그렇게 하는 것으로써'라는 수단이나 방법의 의미를 가집니다. 또한, '그럼으로' 다음에는 '그러므로'와는 달리 '-써'가 결합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 예문들에서는 '그럼으로' 또는 '그럼으로써'를 써야 합니다.
⑸ 그녀는 무턱대고 먹어댔다. 그럼으로(써) 울분을 삭였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써)
한편, 위의 ⑴, ⑵나 ⑸에서 두 문장이 하나로 합쳐질 때에도 '그러므로, 그럼으로(써)'에 준하여 '~므로, ~(으)ᄆ으로(써)'의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⑴' 그녀는 이제 혼자이므로 외롭다.
⑵' 그는 지독한 구두쇠이므로 돈을 많이 모았다.
⑸' 그녀는 무턱대고 먹어댐으로(써) 울분을 삭였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지나쳐 버릴 수 없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곧 '그러므로써'나 '그러므로서', '그럼으로서' 들과 같은 표기는 어느 경우에나 맞춤법에 어긋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하여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
다 알고 있다시피, 씨끝은 줄기와 결합하며, 토씨는 몸씨(체언)에 붙습니다. '-므로'는 씨끝이므로 풀이씨의 줄기와 결합할 수는 있지만 몸씨에는 붙을 수 없습니다. 또한, '-(으)로써'나 '-(으)로서'는 토씨이므로 몸씨에만 붙을 수 있을 뿐 풀이씨의 줄기에는 붙지 않습니다. 곧 '혼자이므로'를 '혼자임므로'로 쓸 수 없듯이 '먹어댐으로써'를 '먹어대므로써'나 '먹어대므로서'로 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의 예문들은 모두 비문입니다.
⑹ *그녀는 책을 읽으므로써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읽음으로써)
⑺ *그러므로써 모든 일은 끝났다. (→그럼으로써)
⑻ *그렇게 하므로서 나의 책임은 다했다. (→함으로써)
⑼ *얼굴이 크므로서 긴머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크므로)
다시 말해서, 우리말에는 '-므로써'나 '-므로서'와 같은 씨끝이 없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는 한글 맞춤법에 대한 오해가 사라지면 이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아직도 토씨 '-로써'와 '-로서'의 구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흔히 '-로써'는 수단이나 방법을 뜻하고, '-로서'는 신분이나 자격을 뜻한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의미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문장에 익숙하지 못한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구별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⑽ 그는 영웅으로서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다.
⑾ 그는 대패로써 나무를 깎았다.
위의 예문 ⑽에서 '-(으)로서'는 '(영웅의) 자격'을, ⑾에서 '-로써'는 '(대패를) 가지고'라는 수단을 나타내는 토씨로 쓰였습니다. 이들 문장은 비교적 짧기 때문에 한 번 읽어 보면 쉬이 그 뜻이 파악되지만, 문장이 길어질수록 내용을 이해해서 뜻을 알아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 때에는 이런 방법을 쓰면 됩니다. 곧 '~로서'나 '~로써' 앞의 구절을 'A는 B이다'식으로 만들어 보아서, 문맥상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로서'를 쓰고, 말이 되지 않으면 '-로써'를 씁니다. 이 같은 방법으로 하면 위의 예문들에서 밑줄 친 부분은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습니다.
⑽' 그는 영웅이다.
⑾' *그는 대패이다.
⑽'은 문맥상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⑾'은 전혀 맞지 않는 비문이 됩니다. 따라서 위 ⑽에서는 '-로서'를, ⑾에서는 '-로써'를 써야 함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0: 뒷가지 '-이/-히' 이야기
글을 쓰거나 남의 글을 교정하다 보면 부사화 접미사 '-이'와 '-히'가 잘 구별되지 않을 때가 간혹 있습니다. 가령 "틈틈히"인지 "틈틈이"인지, "꼼꼼히"인지 "꼼꼼이"인지 언뜻 판단이 서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한글 맞춤법〉제51항에서는 "부사의 끝음절이 분명히 '이'로만 나는 것은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이'나 '히'로 나는 것은 '-히'로 적는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틈틈이"와 "꼼꼼히"가 각각 바른 표기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홀소리와 홀소리 사이 또는 울림소리(유음, 비음)와 홀소리 사이에서는 'ᄒ'이 약화되므로, 실제로〔이〕와〔히〕의 발음을 구별하기는 그다지 쉽지 않습니다. 발음에만 의존하여 구별하려 한다면 "틈틈이, 꼼꼼히, 고이, 헛되이, 나른히" 들을 "틈틈히, 꼼꼼이, 고히, 헛되히, 나른이" 들로 잘못 적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따라서 부사화 접미사 '-이'와 '-히'의 구별을 위해서는 일정한 기준이 필요하게 됩니다. 앞에서 제시한〈한글 맞춤법〉규정만으로는 불충분하므로 다음에서 부사화 접미사를 '-이'로 적어야 하는 것들의 문법적인 기준을 몇 가지로 정리하여 보이겠습니다.
⑴ '-하다'가 붙는 뿌리(어근)의 끝소리가 'ᄉ'인 경우
가붓이, 기웃이, 깨끗이, 나긋나긋이, 나붓이, 남짓이, 느긋이, 둥긋이, 따뜻이, 뜨뜻이, 반듯이, 버젓이, 번듯이, 빠듯이, 산뜻이, 의젓이, 지긋이 등.
어찌씨에서, 뿌리의 끝소리가 'ᄉ'일 때에는 '-하다'가 붙을 수 있느냐 없느냐와는 관계없이 모두 '이'로 적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하다'가 붙는]이라는 조건을 단 것은, 일반적으로 ['-하다'가 붙을 수 있으면 '히'로 적는다]는 등식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하다'가 붙더라도 '이'로 적어야 하는 예외성을 밝히고자 한 것입니다. 물론 이 때(뿌리의 끝소리가 걁인 어찌씨인 경우)는 그 발음에도 유의하여야 합니다. 간혹〔깨끄치〕,〔따뜨치〕들로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깨끄시〕,〔따뜨시〕들로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⑵ 'ᄇ' 벗어난 풀이씨(불규칙 용언)의 줄기 뒤
가까이, 가벼이, 고이, 괴로이, 기꺼이, 날카로이, 너그러이, 대수로이, 번거로이, 부드러이, 새로이, 쉬이, 외로이, 즐거이 등.
'ᄇ' 벗어난 끝바꿈을 하는 풀이씨의 경우, 그 풀이씨 줄기에 뒤붙이 '-이'나 '-히'가 붙어 어찌꼴(부사형)을 만들 때에는 발음에 상관 없이 모두 '-이'를 취합니다. 이러한 용법은 줄기의 끝소리 'ᄇ'이 끝바꿈을 할 때에 일률적으로 홀소리 'ㅜ'로 바뀌는 현상(한글 맞춤법 제19항)과 연관지워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곧 다음과 같이 체계화할 수 있습니다.
가까-?다 → 가까-이(?→이) : 가까-?-어 → 가까-워
괴로-?다 → 괴로-이(?→이) : 괴로-?-어 → 괴로-워
새로-?다 → 새로-이(?→이) : 새로-?-어 → 새로-워
즐거-?다 → 즐거-이(?→이) : 즐거-?-어 → 즐거-워
⑶ '-하다'가 붙지 않는 풀이씨 줄기 뒤
같이, 굳이, 길이, 깊이, 높이, 많이, 실없이, 적이, 헛되이 등.
뒷가지 '-하다'가 올 수 없는 풀이씨 줄기(어간)에 '이'나 '히'가 붙어 어찌씨를 만들 때에는 '이'를 붙인다고 하니까, 어떤 이들은 "도저히, 가만히, 무단히, 열심히" 들은 '-하다'가 오기 어려운데도 '히'를 붙이지 않느냐고 되묻습니다. 그러나 '도저(到底), 무단(無斷), 열심(熱心)' 들은 풀이씨(용언)의 줄기가 아니라 몸씨(체언)이며, '가만'은 그 가운데서도 어찌씨입니다. 게다가―일상 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지만―이들 낱말에는 '-하다'가 붙어 쓰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한편, "도저하다"는 '생각, 지식, 기술, 인품 따위의 정도가 매우 깊다'는 뜻으로서 그윽하고도 긍정적인 말이지만, 이의 어찌씨꼴 "도저히"는 주로 '없다'나 '못하다' 앞에 놓여서 '어찌해도 끝내'라는 부정적인 뜻을 나타내어 다소 이채로운 말입니다.
⑷ 첩어 또는 준첩어인 이름씨 뒤
간간이, 겹겹이, 골골샅샅이, 곳곳이, 길길이, 나날이, 다달이, 땀땀이, 몫몫이, 번번이, 샅샅이, 알알이, 앞앞이, 일일이, 줄줄이, 집집이, 짬짬이, 철철이, 틈틈이 등.
'첩어'란 같은 음이나 비슷한 의미를 가진 낱말들이 반복적으로 결합한 말입니다: 간(間)+간(間)+이, 겹+겹+이, 골+골+샅+샅+이, 달+달+이(→다달이), …. 곧, 낱말 대 낱말의 합성어의 성격을 가집니다. 글쓴이가 어느 학원에서 위 ⑷와 같은 기준을 제시하자, 한 학생이 "섭섭하다"의 어찌씨꼴을 "섭섭이"로 해야 하는가 하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섭섭하다"는 독립된 하나의 낱말이지 첩어가 아닙니다('섭'을 따로 떼어서 쓰는 용례는 없다). 따라서 이 경우의 어찌씨꼴은 "섭섭히"가 맞습니다.
⑸ 어찌씨 뒤
곰곰이, 더욱이, 삐죽이, 생긋이, 오뚝이, 일찍이, 해죽이 등.
뿌리 "곰곰, 더욱, 삐죽, 생긋, 오뚝, 일찍, 해죽" 들은 모두 본디 어찌씨입니다. 위 ⑸의 용례는 어찌씨에 '이'가 붙어서 역시 어찌씨가 된 경우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찌씨 뒤에 '히'가 붙어 다시 어찌씨로 되는 경우는 없다는 것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이와는 다른 문제이지만 다소 연관성이 있는 규정을〈한글 맞춤법〉제25항 '붙임' 2에 두고 있는데, "부사에 '-이'가 붙어서 역시 부사가 되는 경우에는 그 부사의 원형을 밝혀 적는다."라고 명시하여 놓았습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일찍이"를 "*일찌기"로, "더욱이"를 "*더우기"로 쓰는 것은 어법에 어긋나는 것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