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이 저무는 날
효녀 딸 내외와 함께 전주로 향했다.
내가 전주여고 뺏지를 달고 학교다니던 곳,
우리 딸을 낳기도 한 곳
언젠가 한 번쯤 돌아가 옛날을 회상하고 싶던 곳인데
뭐가 바쁜지 잃어버리고 산 곳,
내 딸은 어떻게 내 속 마음을 읽는지 먼저 권하고 실행에 옮기곤 한다.
아,
나는 낯선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한 곳 내 추억을 끄집어낼 곳은 보이지 않았다.
가장 가보고 싶던 모교, 전주여고,
그러나 예전에, (74년엔가?) 도시확장플랜으로 사라진지 오래되었다니....
벗꽃 만발한 나무 아래 모서리가 둥글게 지어진 서양식 음악실에서 피아노소리가 울려퍼지던 교정,
교문에 들어서면 저마다 독특한 모양의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던 정원하며...
전북의 여성의 요람으로 긍지도 대단했던 우리 학교는 중앙동으로 이사한지 오래 되었단다.
그 자리에 별 다섯의 르윈호텔이 들어서 있고 넓은 길이 앞에 뚫려서 수많은 차들이오고가는 번화가로 탈바꿈되어 있다.
이럴 수가.
교문 자리에 아래와 같은 흔적이 남아있을 뿐이다.
하긴
1960년도 31회 졸업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럼 강산이 다섯 번도 더 바뀌었으니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정다웠던 사람은 커녕 완전히 바뀐 거리며 우리가 오르내리던 오목대 작은 동산도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학교 터에서 한옥마을로 가는 길
자만 벽화마을이 있어 둘러보다가 아래의 그림과 같은 굴을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또 탄식이 세어나온다.
우리 학교 뒤쪽으로 철로가 놓여 있고 전라선 기차가 다녔었다.
기차가 지나갈 때면 귀청이 먹먹했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던 그 기찻길이 사라져버리고 아주 작고 어설프게 그을린 시꺼먼 굴만 산자락에 옹색하게 붙어 남아 있다.
기차는 이 굴을 지나갔는데 그 옆에 한벽당이란 정자가 서있고 그 아래 전주천이 흘러 내가 아는 한 전주에서 가장 빼어난 풍경이었던 곳이다.
갈 곳이 그리 많지 않은 그 옛날 철길은 많은 젊은이들의 데이트코스이기도 했는데...
그한벽당을 돌아나온 물이 흐르던 전주천은 옛날 세탁기 없던 시절 빨래터가 장관이기도 했던 곳....
없다. 사라졌다. 변해버렸다.
저 한옥마을 어디쯤,
내가 자취하면서 지내던 그 백씨네 부자집이 있을 것인데......
그 때 교동에서 몇째 안가는 큰집이었는데....
혼자
다시 한번 꼭 가리라.
그리고 천천히 옛날 내가 다니던 길을 찾아 더투어 보리라
위 엽서를 그린 화가는 <흔적만 남은 전주철길>이라 하고
아래에 이렇게 설명을 붙여놓았다.
(전주시가 도시확장 되면서 중앙을 관통하던 철길을 1981년도에 전주 간선도로로 옮기고 우아동 전주역은 1981년 5월 25일에 신축되었다. 현재 일부만 남은 구 철길은 옛이야기로 남은 채 시민들의 산책로가 되었다)고
어렵게 찾은 눈에 익은 풍경!
호남 제일문이라는 이 남문이다.
옆에 남문시장이 있고 그 유명한 콩나물국밥집 골목이 있던... 옛날엔 참 벅적벅적거렸었는데.....
아,
전동성당. 그 뒤로 성심여고 건물이 조금 보인다.
그 옆 골목에 친구 옥진이의 집이 있었고....
자취하던 내가 맛있는 집밥을 얻어먹었던 기억도 새로운데....
성당은 예전 그 모습으로 반갑지만 친구네로 가는 골목도 사라져버렸다.
옥진이는 알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