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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와 비빔밥
1. 두 번 맞은 6월 5일, 그리고 Boise!
비빔밥으로 무장된 25명의 영재교육담당교사 연수단이 샌드위치문화를 접하러 아이다호주로 향했다. 2008년 6월 5일 18시 30분, 대한항공 KE025편에 몸을 싣고 인천공항을 출발한 25명의 연수단은 우리시각 6월6일 새벽 04시 09분(시애틀 시각 6월5일 오후 12시 12분)에 시애틀 공항에 도착했다. 그나마 편서풍이 도와준 탓에 빨리 날아온 것이 꼬박 열 시간. 날짜 변경선을 넘어온 우리들은 다시 한 낮을 맞이해야 했고, 부스스한 모습이었지만 당찬 모습들로 여행사에서 제공한 안내문을 따라 보이스 공항까지의 경로를 오차 없이 추적해갔다. 환승한 아틀란타 항공을 이용하여 위싱턴주의 시애틀에서 아이다호주의 서쪽에 위치한 보이스 공항까지는 다시 1시간. 드문드문 구름이 걸린 보이스 공항의 하늘은 눈부시도록 파랬으며 광주공항만한 작은 공항에는 파란 눈의 백인들이 작은 비행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담는 동양인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시애틀공항에서의 복잡한 입국수속절차와는 달리 간단하게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왔을 때는 인천공항을 출발한 시각과 같은 6월 5일 18:30분(한국시각, 6월6일 오전 10:30분) 을 가리키고 있었다. 공항출구에는 전북대학교 교육학부의 이희철 교수와 보이스주립대학의 메기(Maggie Chase)교수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2. 역시 한국인은 빠르다.
경제학과 경영학을 집중 육성한다는 보이스주립대학은 보이스 공항에서 20여 분 거리에 있었다. 대학 입구부터가 음식점 상가등이 즐비한 우리 대학 풍경과는 사뭇 달랐으며, 큰 도로 옆 커다란 입간판 하나로 대신한 입구를 지나 500여 미터 거리에 있는 기숙사에 내렸을 때의 시각은 오후 7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기숙사 사무실에서 방배정이 이루어지는 동안 Maggie교수는 커다란 장바구니와 연수기간동안 사용하게 될 포트폴리오 폴더를 어색한 발음으로 일행을 일일이 호명하며 배부해주었다. 폴더 안은 벌써 강의 일정표와 포켓메모지가 끼워져 있었고, 보이스시의 지도까지 챙겨주는 배려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현지일정에 포함되지 않은 저녁식사는 일사분란한 움직임으로 준비한 컵라면과 햇반으로 자체 해결해야했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가 빛을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국 땅에서 먹는 컵라면과 김치맛은 정말이지 끝내주는 식사였다. 랩으로 칭칭 야무지게 감아 포장해 공수해 오신 백현미 선생님의 정성이 가득했기 때문이었을까. C동 2층 216호실. 이국 땅 대학기숙사에서 첫날 배정받은 우리 방! 방학기간이면 깨끗하게 비운다는 그들의 기숙사는 정말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 오븐, 전열기구까지.......
3. Wyoming 주의 초입에서 만난 서부카우보이들
현지시각 6월6일 07:40분. 계란과 감자튀김, 빵과 과일로 시작하는 아침식사는 왠지 어색하였지만 그렇게 보이스대학에서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현지적응훈련!(적어도 필자 생각엔) 메기교수와 현지 유학생인 박봉석씨 그리고 이희철교수가 직접 운전하여 진행된 와이오밍주의 잭슨(Jackson)시까지의 이동은 꼬박 9시간이 소요되었다. 포틀랜트 야외공원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먹은 끔찍한(?) 점심 도시락(Picnic Lunch Box)과는 달리, 저녁은 Teton Village로 가는 길가, Jacksonwagon House에서 숯불바베큐와 함께 제공되었으며, 멋진 서부 카우보이의 통기타 음악이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풀어주었다. 식사는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예약이 시작된 5시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진행되었는데 쇼를 진행하는 배우들이 직접 예약을 받는 풍경이나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그들의 문화는 모든 일을 빨리빨리 해치우는 우리의 문화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Maggie교수도 이색적인 미국 서부 문화체험기회에 만족해하는 우리 한국인 일행의 표정에서 만족감을 읽는 듯 했다. 그들 표현으로 “Perfect!” 한 저녁이었다.
4. Jckson Hole과 Yellowstone, 그리고 6월의 폭설
6월 7일과 8일 Antler Inn 모텔에서의 이틀 숙박과 Yellowstone 공원의 지질탐사 일정은 자연의 신비로움에 넋을 놓아야했다. 남쪽 문이 폐쇄되어 Teton Pass(Boise시에서 Jackon시로 오던 첫날 넘어왔던 흰눈이 덮인 고갯길)를 다시 되짚어 돌아가 Yellowstone 서문으로 진입을 시도한 Maggie교수의 배짱이나, 그리로 향하는 20번 도로에서 난생 처음 6월 폭설을 만나면서 어렵게 진행된 일정 때문만이 아니다. 말로만 듣던 빙하의 이동흔적인 U자곡과 준평원의 거대한 하안단구가 그랬고, 멀리 해발 3000여 미터의 뾰족한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보이는 거대한 Grand Teton 국립공원의 만년설이 그랬다. 아직도 지구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Yellowstone국립공원 내 Old faithful(60-90분 간격으로 뜨거운 물이 20여 미터 이르게 분출되는 Geyser)의 장관과 크고 작은 또 다른 간헐천(Geyser)의 분출, Mudpots, Paintpots, Fumeroles, 콸콸콸 눈이 녹아 흐르는 계곡과 강물, 공원을 가로지르면서 만난 야생 곰과 버팔로,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사슴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지만 노랗고 하얀 들꽃들 그들 모두는 이번 일정의 가장 큰 선물이었으며 그 광대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적어도 자연의 풍요로움을 정신없이 만끽하고 사는 듯 보였다. 가도 가도 펼쳐지는 지평선이 꼬리를 무는 푸른 초원은 그들의 거만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북위 45도에 걸린 와이오밍주 잭슨시의 초승달은 밤 10시가 넘어서도 검푸른 하늘에 매달려 숙소 앞 민둥산을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후 3시 30분, 다시 잭슨시에서 출발 22번-26번-30번도로를 경유, Pocatello에서 저녁식사시간을 포함, 총 8시간 가량을 되짚어 보이스시로 돌아온 시각은 6월 8일 오후 11시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부른 여러 선생님들의 노래를 Maggie교수는 신기한 듯 귀기울였다. 전자키로 문을 열고 3일 만에 다시 돌아온 기숙사 숙소는 우습게도 고향집 안방같이 푸근했다, 우리는 부랴부랴 짐을 풀고, 11시 30분, 218호실 작은 거실에 다닥다닥 모인 Jackson Hole( 가운데 Snake강을 끼고 Teton 산과 Gros Ventre 산으로 둘러 쌓인 분지형태의 잭슨시 일대를 호칭) 탐사 일정 중에 느낀 소감과 함께, 다음날부터 시작될 영재교육 강의준비 및 일정에 관한 토론을 자정이 넘어서까지 진행하였다.
5. Boise 주립대학생이 된 듯한 기분으로 시작한 첫 강의
6월 9일 월요일, 새벽 5시 30분, 어느새 시차에 적응을 했는지, 이 시각이면 어김없이 깨는 한국에서의 습관이 그대로 나타났다. 부스스한 눈으로 그 동안의 사진과 동영상자료를 정리한 후 TRC(Table Rock Cafe,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하자마자 영재교육 첫 강의에 참석하였다. 프리젠테이션자료를 앞에 두고 "ㄷ“자 형태로 모인 연수단이 처음 만난 Boise대학의 Larry Rogien 교수는 ”영재학생과 영재교육“이라는 제목의 첫 화면을 켜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Jackson시에서 합류한 Stan Steiner교수는 강의 도입부에서 Larry교수를 소개하고 김석태 단장님이 전하는 한국의 전통 장구 모형을 선물로 받았다. 그들은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선물을 열어보며 가슴에서 우러나는 듯한 ”감사“의 표현을 잊지 않았다. 영재아의 행동특성,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의 연구내용 등을 열거하는 중에 그는 미국의 영재아들은 「IQ, 학업성취도, 리더쉽, 특정영재성」에 따라 4단계[Profoundly, highly, regularly, motherly]로 분류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영재지도 교사들은 영재아들의 의견을 귀담아 경청하고, 그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대화법과 유모어를 갖추는 등 꾸준한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13:30분, 점심식사 후 일행은 대학에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Eliza Hart] Spalding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Jhonson 교장은 이 학교가 수학과 과학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소개를 하였고, 각 교실과 특별실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참고로 학부모를 대상으로 미국의 유치원-고등학교(K-12)교육과정 및 학교안내 및 비교를 해주는 홈페이지에 의하면 이 학교는 우리나라 학업성취도평가와 유사한 일제고사(초등 3학년부터 시행되는 ISAT)에서 읽기, 언어능력, 수학 성취도가 주 평균점수보다 앞서는 비교적 우수한 학교에 속하였다. 학교의 내부는 정갈하였으며 게시판과 교실, 복도의 벽 과 바닥, 심지어는 출입문까지 아이들과 선생님의 작품들이 게시된 생생한 포트폴리오였다. 아이들은 신기할 정도로 침착하고 조용하였으며, 쉬는 시간을 이용하는 그들의 태도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끝 종소리와 함께 한 줄로 서서 화장실과 운동장을 향하는 그들의 질서의식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또한 운동장과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담소하며 그들의 안전을 지켜보는 교사들의 모습도 그러했다. 다시 시작종이 울렸을 때 줄을 지어 조용히 교실로 돌아오는 모습도 그들만이 연출할 수 있는 문화일까? 쉬는 시간 복도에서 딩굴고 고함치며 화장실 물로 범벅을 만드는 우리의 초중고등학교 실내 풍경은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방종의 극치는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학급마다 수준에 미달된 학생을 동료학생과 연결시켜 복도에 배치된 책상에 앉게 하여 진지하게 동료학습(peer to peer)을 진행시키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적어도 관리자외에는 우리의 방문을 모르는 듯 했으며 갑작스런 방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기꺼이 학생들과 같이 참여할 것을 권하기도 하였다. 1990년도 중반, 우리나라에 광풍이 불게 한 열린교육의 ”원조“를 늦게나마 확인해 보면서, 시설과 탁상행정으로 왜곡되어 시끄럽고 자유분방한 학습환경으로 전락시켜버린 한국형 열린교육이 얼마나 졸렬했는지를 판단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6:30, Spalding 초등학교를 나온 우리는 관할 교육청(Joint School District)을 방문, 간단한 만찬과 함께 교육청 관계자들의 관내학교와 교육청의 영재교육 현황에 대한 내용을 소개받았다. 교육청로비에서의 간단한 인사와, 로비에 마련된 간단한 음료, 다과와 함께 서서 담소하며 진행된 관계자들과의 만남, 이 또한 형식을 갖추어야 대접을 받았음을 기억하는 우리 풍경과 많이 달랐다. 청내 로비에는 이곳저곳 관내 학생들이 제작한 듯한 기발한 착상의 미술작품들이 전시되어 눈길을 끌었다. 잠시 관내학교와 학교장현황, 교육청 홍보자료로 빼곡한 우리 교육청 벽이 떠올랐다. 그들은 수를 놓은 한국의 핸드폰고리 하나에서도 고마움을 표했다.
18:40분, 저녁식사를 마친 후 한 시간 가량의 토론회를 갖은 뒤 일행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으며, 나는 앞으로 쓰게 될 동영상을 담을 DVD ROM이 모자라 박봉석씨의 도움으로 전자제품 상가를 찾아가 10장 1통을 구입해왔지만 상표에는 <Made in Taiwan>으로 되어있어 씁쓸했다. 가랑비가 내린 오후 11시,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숙소부근의 잔디밭에는 낮 동안 숨어있던 스프링쿨러가 잔디밭에 흠뻑 물을 더해 주고 있었다. 이젠 적응했을 거라 생각했던 시차가 오락가락 하는지 잠을 못 이루고, 거실에 혼자 앉아 계시는, 이렇게 오랜 기간 가족과 떨어져 본 적이 없어 가족이 무척 그립다던 조선생님과 함께 비가 그친 뒤의 새벽바람을 맞았다. 새벽 1시 반에.
6. 우리는 자신감을, 미국은 열정을 원한다?
6월10일, 강의 둘째 날, 오전에는 전날 강의에 이어 Larry Rogien 교수의 강의가 작은 강의실로 옮겨져 진행되었다. 그는 영재아 육성(Parenting GT)이라는 제목의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제시하며, 영재아들의 욕구불만과 함께 그들을 지도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유의사항을 다양한 만화 자료와 함께 열거해주었다. 그는 아이들을 조건 없이 사랑하고, 많이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결코 부담을 주지 말며, 정당하지 않은 느낌을 떨치도록 도와주라고 조언하였다.
오전 강의가 끝나자마자 Maggie와 Stan교수는 Boise 주립대학 로고가 새겨진 셔츠를 하나씩 선물로 전해주었다. 단원들은 훗날 이번 모임을 상징하는 로고로 쓰자며 주황색, 파랑색, 검정색, 회색옷을 하나씩 입어 보았다.
오후, 현장에서 영재교육을 담당하는 Diane Williams 선생님이 강사로 소개되었다. Stan교수의 소개를 받는 교수는 한국의 영재교육 지도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소개하였다. 흥미롭게도 한국의 교사들은 자신감(Confidence)을 처음으로 꼽았으나, 미국의 교사들은 열정(Passion)을 맨 앞에 서술하였다. 하지만 사랑과 협동, 친근함, 발표 잘하기 등, 미국이나 한국의 교사들 모두는 아이들에게 바라는 바가 거의 같았다. Diane교사가 제시한 방법 중 「공해가 심각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사진 두장을 제시하며 느낀 점을 적고 두 사람이 짝이 되어 그를 소재로 한 간단한 시를 써볼 것」과 「수업시간 중 아이들과 교사의 활동비율을 50:50 으로 해보라」고 권유한 사항, 그리고 「표와 그래프를 보고 학생스스로 직접 문제 만들어 보기」등의 내용은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그는 강의 내내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모두 질문의 예술이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교실문화정착을 역설하였다.
18:00시, 토론시간까지 남은 한 시간의 공백을 세탁시간으로 메웠다. 바리바리 준비해 온여름 옷이 가득한 짐이 무색하게도 기숙사에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여행하기 전 사전정보 파악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출발전 사전회의자료에 명시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토론은 Diane 교사의 강의를 중심으로 우리 영재교육 현장에서의 적용방안등을 제시하며 두 시간이나 진행되었다.
7. 짧은 역사도 깊게 만드는 나라, 미국
영어로 듣는 강의 셋째 날, 첫날에 비해 부담이 덜하였지만 교육학 전문용어 등 언어의 장벽은 너무 높았다. 3년 동안 출퇴근길에 틈틈이 들었던 영어방송이 도움이 되어 그나마 듣기는 조금 할 수 있겠는데 말하기는 여전히 불편하였다. 특히 그들의 만화 표현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요구된 것은 내 고정관념까지 다하여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6월 11일, Linda Stokes여사는 보이스시교육청 영재교육 교사의 영재컨설팅에 관한 강의를 준비해주셨다. 그들의 활동사진과 함께 여러 가지 실습자료를 제시하며 보통의 학생과 영재학생의 교육 및 그들의 교육과정 차이점을 비교하였다.
6월 11일 오후 13:15분, Pioneer Elementary Fine Art School을 방문했을 때의 아이들 분위기는 Spalding 학교와 별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벽면에 붙은 수준 높은 미술 작품과 포트폴리오들은 그들의 예술 영재성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도 강당과 식당을 함께 사용하고 있었으며(평소 식탁이 접이식(붙박이식겸용)으로 벽면에 세워져 점심시간에는 탁자와 의자로 이용됨), 아이들은 진지하고 질서와 정숙을 잃지 않았다. 학부모도우미와 함께 진행하는 수업에 아이들은 집중하여 참여하였고, 각자의 수준에 맞게 작품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표현할줄 아는 듯 했다. 게다가 그들은 이방인의 방문에도 선생님의 발문을 놓치지 않았다. 그야말로 놀라운 집중력이었다.
오후 15:00, 연수단원은 다시 차에 올라 Centennial High School을 방문하였다. 학교는 유감스럽게도 방학 중 이었고, 여교장선생님께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직업교실에서 간단한 학교소개를 들은 뒤 특별실과 일반교실로 안내되었다. 도서실, 과학실, 가사실, 미술실, 일반교실. 학교 주차장에 막 들어서면서 Maggie 교수는 “고등학교는 마치 교도소 같다.”라며 던진 한 마디에 웃으며 차에서 내렸는데, 우리와 별다를 게 없는(하지만 주차장이 무척 넓은) 외관과는 달리 학교 안은 무척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정갈한 아이들의 철제사물함, 책걸상, 고스란히 수합한 아이들의 교과서, 낙서 하나 없는 화장실과 교실, 신발 발자국투성이와 낙서투성이인 우리네 학교 벽과는 너무 다른 교실 풍경, 아직도 OHP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모습, 현관입구에 명함크기만 하게 빼곡히 박힌 명패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1988년 개교한 학교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학교의 역사와 기록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모습, 첫 졸업생들의 단정한 사진 하나하나를 현관 진열장에 빼곡히 진열하고, 그동안 수석 졸업한 학생들의 사진을 벽면에 액자로 전시하는 모습, 각 기수별 전체졸업생이 만든 기념사진을 현관에 걸어두는 모습,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것들은 우리 교육환경과 많이 비교하게 해주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폭력이 난무하고 질서없는 학교로 비추어지는 모습과는 달리 그들은 너무도 정갈하게 보관하고 기록하는 듯 보였다. 오천 년 역사의 민족의 후손이 보는 232년(미국의 독립선언일인 1776년을 기준으로 우리들이 그렇게 부르는) 짧은 역사의 미국, 그들의 역사는 과연 232년 뿐일까? 파란하늘이 유난히 눈부신 오후, 한국교육의 미래가 저렇게 맑고 파랬으면 하는 희망을 품어보았다.
저녁식사 뒤 보이스시 거주 한인협회 회원들과의 리셉션(Farnsworth 룸)이 제공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영어조기교육으로 일찍 길들여진 자녀의 한국어 교육을 걱정하거나, 물 좋은 어학코스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아이다호 한인협회 회장님이 전해준 “한인회회보”는 한글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 같았다. 리셉션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협회장님의 제안으로 우연히 오른 Boise 시를 둘러싼 "Table Rock"에서 바라본 낙조와 시내전경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8. 이어지는 영어강의, 그 언어장벽
연초 나라를 들썩였던 영어몰입교육이 화두가 되기 전,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한국인이다. 어찌 해도 미국인처럼 유창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미국인으로 살지 않는 한. 그러므로 미국인 앞에서 결코 기죽지 말라. 저들도 우리의 언어가 따로 있음을 알고 있다.” 능숙하지 못한 영어실력을 합리화하는 명언 중 명언이었다. 하지만 이번 연수를 계기로 하면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얻게 되었다. 말해줄 수 있는 친구와 들어줄 수 있는 친구를(미국인이 아닐지라도)만들어, 많이 듣고 많이 말하는 길만이 그 방법이다.
6월12일, 느끼한 양식에 익숙하지 못한 몇몇, 아니 대부분은 총무님이 준비한 미역국과 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식당에서 과일과 커피로 마무리를 한 후 강의실로 향했다.
영재교육 강의는 계속되었다. Stan 교수의 부인인 Joy Steiner 교수의 창의성과 “Storytellin Workshop"강의는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아이들과 함께 소리와 몸짓으로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해주었기 때문이다. 20여 가지가 넘은 많은 악기(그녀가 여행 중에 수집한)를 수집하여 그들이 만드는 소리로 이야기를 표현하는 창의적인 발상은 향후 수업에 적용해볼 생각이다.
오후 강의에서 Roger Stewart 교수는 영재학생들의 선택적평가방법론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영재교육과 비교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영재교육의 현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우리나라의 영재판별시험 및 평가가 이미 시행되고 있음에 의아해하는 듯 했다. 우리는 그 모습이 더욱 의아했다. 왜냐하면 Maggie교수는 그를 영재교육의 석학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오후 강의가 90분으로 종료된 후 Boise시 예술박물관 견학이 있었다. 15분 도보코스지만 차를 타고 갈 것으로 기대했던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Maggie 교수는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산책길인데요~?“하며 Walking이 당연하다는 듯 앞장서 걸었다. 그리고 교육과정표에도 분명히 「Walk to Museum」이라 명시되어 있었다.
6월13일, 갑자기 Maggie교수가 식당에서 누군가에게 바쁘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일이 생겼음을 시사하며 정확한 통역을 위해 황급히 “나리”양을 찾았다. 오전 강사로 위촉된 Ball 주립대학의 Tracy Cross교수가 어제 악천후로 비행기가 결항되어 출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시간여의 대책회의 끝에 조별 연수 보고서 준비 워크숍으로 대치되고, 오후 일정을 기다려야만 했다.
13일, 오후 13:30분, 연수단원들은 마치 Boise 주립대학생이라도 된 것처럼 용하게도 강의실을 잘 찾아왔다. Maggie교수는 이틀 전 그녀가 운전하던 차를 탄 단원들이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때, 편리하고 좋아 보여 하나 구하고 싶다고 무심히 건냈던 말을 잊지 않고, 같은 종류의 간이 스프링쿨러 한 개를 구해다 준 것이다.
180분에 걸쳐 Tracy교수는 영재교육과정, 영재교육기법과 기숙형 영재학교에 관한 내용을 화상으로 압축 강의했다. 비록 현장감은 떨어졌지만, 화상강의에 즉석 통역이 합쳐진 강의는 신선했으며, 우리의 교육현장에서도 충분히 실행될 수 있는 여건이므로 적극 활용해볼 것을 다짐하였다.
13일 오후 16:10-23:00시까지는 아이다호 셰익스피어 퍼포먼스 “The Crucible"관람이 있었다. 통역 없이 보는 연극은 차라리 볼륨이 고장난 티브이를 보는 것 같았다. 6월 반달이 약간 더 도톰해진 달이 뜬 맑은 날 여름 밤, 습도가 낮아 밤 추위가 대단하다는 말을 이해 못한 우리들은, 밤이 깊어갈수록 더해지는 ”여름추위“에 덜덜덜 떨면서도 공연장의 진지함에 감히 자리를 뜨질 못했다. 셰익스피어 야외공연장 관객의 집중은 대단했으며 공연이 끝나고 대부분이 기립박수를 할 정도로 연극은 대단했지만 우리는 웃어야할 시기와 감동할 시점도 찾지 못한 채 그들의 액션만을 감상하고 나와야 했다.
6월 14일, Boise 주립대학의 마지막 일정을 시작하였다. “Discovery Science"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발명품과 탐구코너는 발명연구학교진행에 많은 도움자료가 되었으며, ”Black History"박물관, “Historical"박물관 의 전시물은 Boise의 과거를 보는 즐거움을 선물해주었다. 3시간에 걸쳐 견학을 마친 뒤, Julia Davis Park에서 이동식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 일정은 Boise시 현장체험행사가 이어졌다. 지도와 길을 보고 그룹별 쇼핑과 체험하기는 그야말로 생생한 미국체험이었다. 안내와 통역 없이 진행된 일정이어서 더 없이 좋은 문화체험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일행은 발명품완구류 상가를 목표삼아 길을 찾았고, 또 다른 일행은 백화점과 종합상가를 택하기도 하였다.
오후 18:00시, 조그만 개울이 흐르고, 제법 이름 모를 나무가 정겹게 서있는 한인회 장옥희님댁에서 진행된 만찬은 그야말로 김치와 고추장을 그리워하던 우리들에게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한인협회 회장의 진행으로 진행된 한국적인 조촐한 오락시간, Stan과 Joy, Maggie와 그의 남편, 그리고 이번행사를 기획한 또 다른 여러 스텝들은 기꺼이 우리 문화를 즐겼고, 우리 또한 그들의 문화가 묻은 미국식 한국파티를 행복해했다. 그리고 Maggie와 Stan 교수는 친절하게도 Boise 주립대학에서 발행한 영재교육과정 연수 수료증을 발급해주는 것을 잊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 서투른 한국어를 발음하며 JOY가 저술한 동화책 사이에 수료증을 끼워주었다. Boise를 떠나는 마지막 밤을 그렇게 길고도 아쉬움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14일 11:00, 숙소에 돌아온 단원들은 각자의 숙소에서 분주히 짐을 꾸리고 샌프란시스코로의 이동을 준비한다. 새벽 1시 30분(우리시각, 6월 15일 오후 5시 30분)이 되어서야 나도 흩어져있던 짐들을 모두 꾸리고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이제 귀국이 며칠 남지 않아서인지 샌프란시스코에 대한 기대보다는 한국에 산적한 일들을 어찌 처리할까가 더 걱정이 되었다.
10. 아~! 샌프란시스코.
6월15일 6:30분, 연수단원들은 분주히 자기 짐을 차에 싣고 차량 세 대에 나누어 타고 보이스공항으로 향했다. 틈틈이 사둔 선물보따리 덕분에 짐이 눈에 띄게 많이 늘어났다. 8시 40분, 공항에 나온 Maggie교수 일행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는 모습은 마치 오랜 시간 정을 나눈 가족의 송별 장면 같기도 하였다. 수속을 마친 일행이 공항대합실 의자에서 부족한 잠을 채우고 있는 동안, 공항 매점에서 작은 가방을 하나 추가하였다. 부피를 줄인 선물을 산다고 했는데도, 사전준비가 부족하여 처음부터 가득 채웠던 짐꾸러미를 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8시 50분 이륙한 비행기는 현지시각 9시 32분(한국시각, 6월16일 새벽 12:32분)에 산호새 공항에 도착, 시계를 다시 한 시간 앞당겨야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안내자가 동행하였다. 11시 57분, 분주한 아침 일정 때문에 엉성하게 채웠던 아침식사 대신 한식당에서 뿌듯한 한식 점심메뉴로 채우고, 가이드는 익숙한 솜씨로 샌프란시스코 길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안개와 언덕, 그리고 동성애자가 많다는 샌프란시스코, 8만의 동성애자들에게 결혼증명서까지 발급해주며, 파란색 깃발을 내걸어 동성애자임을 자랑하고 깃발의 모양으로 동성을 유혹하는 도시. 차이나타운, 이탤리타운, 일본인타운이 조성되어 관광객이 일년 내내 북적대는 도시. 트윈픽스에 오르면 안개 때문에 시내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가이드의 예상과는 달리 안개가 갑자기 걷혀 어렴풋 시내를 조망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오후 3:45분, 일행 대부분이 과학이 전공이라서 exploratorium(과학, 예술, 인간감각의 박물관)안에서 과학 체험과 자료수집에 시간을 투자하느라 정작 바깥에 조성된 멋진 호수 공원을 허겁지겁 둘러봐야만 했다. 거기서 30여 분 거리에 떨어진 금문교는, 어쩌면 우리나라 남해대교를 흉내 냈는지(? 그랬으면 좋겠다는 필자의 생각), 많은 사람들이 92.4cm굵기의 케이블과 2.3킬로미터가 넘는 다리에 넋을 잃고 사진을 담았다. 총연장 7.3킬로의 서해대교의 아름다움은 이에 못 미치는 것일까? 혹은 우리의 관광산업이 적극적이 못한 것은 아닐까?
오후 5:21분 "Red & White Fleet"호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앞바다를 돌며 모두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금문교 밑을 돌아 선착장까지 돌아오는데 1시간, 관광상품에 한국인이 많이 참여하는지 한국어 전용 안내방송이 준비되어 있었다. 한 시간의 자유시간으로 부두상가 구경하기 체험을 허겁지겁 마친 일행이 길을 잃은 세 분 선생님과 상봉한 뒤 식사를 마치고, 남동쪽으로 3시간을 이동하여 Milpitas 시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여 여장을 푼 시각이 9시 30분이었다.
11. 캘리포니아의 금강산, 요세미티
6월 16일, 08:07분 Beverage Heritage Hotel에서 출발, 가이드와 함께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숙박지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실리콘 밸리의 중심인 CISCO와 SANDISK 그리고 YAHOO도 보였다. 현지 기상은 현재가 건기라 했다. 그래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는 뒷마당은 푸르렀지만 야생에 있는 잡풀들은 모두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들판 잡풀로 물을 주면 다시 파래진다고 했다. 237번 도로와 680번 도로를 거치는 동안 길가 아몬드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대추나 밤과 비슷하게 건강과 다산, 행복과 평화를 상징하는 나무로 신혼부부에게 인기라 했다. 238번 도로를 경유, 580번 도로를 타면서 가이드는 캘리포니아의 포도와 석유를 이야기하며 축복받은 땅으로 서 만일 캘리포니아주 하나가 독립한다 해도 세계5위의 경제 대국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을 하였다.
요세미티는 본디 “욕심 많은 곰”이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고 한다. 10:21분, 휴게소에서 잠시 쉰 뒤 다시 출발하면서 가이드는 미국인의 비만과 요세미티 공원에 사는 곰들의 비만을 이야기하였다. Old faithful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국립공원내에서 관광객들이 주는 과자를 야생동물들이 받아 먹으면서 미만이 늘어나고 자생력이 떨어지고 있어 야생동물에게 음식물 주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2:08분, 요세미티를 한 시간 앞두고 근처에 식당이 없어 피자로 점심식사를 대신하고, 식사 후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아가면서 부터는 그야말로 장관이 펼쳐졌다. 왼쪽 숲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쓰러진 채 딩굴고 있었으며, 오른쪽 숲은 깊은 낭떠러지 계곡이 장관을 이루고 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발견되었다. 다름 아닌 소나무 줄기의 그을음 이었다. 혹시 산불이 났었냐는 질문에 대해 공원관리자들이 산불이 날 것에 대비, 쓰러진 소나무 잔가지가 산불을 번지게 하는 주범이라 생각하고 일부러 잔가지를 안전하게 태워 없애는 전략(Management Fire)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2시26분, 독수리바위와 장군바위, 그리고 하프돔이 한꺼번에 보이는 고개 마루에 올라 사진을 담은 뒤, 면사포바위와 폭포를 지나 만난 총 연장 739미터의 요세미티 폭포 앞에 섰을 때는 많은 관광객들이 탄성을 연발했다. 하지만 큰 나무와 폭포만큼이나 빈 공간이 너무 많은 폭포의 모습에 실망감이 있었다. 많은 관목과 작은 야생화 그리고 올망졸망한 폭포가 있는 우리 야산에 어지 비할 수 있으랴~. 미국땅이 지평선과 수평선으로 그 규모를 자랑한다면, 우리의 들과 산 그리고 바다는 숨어있는 신비로움과 비경이 그에 비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물며 한반도의 명산중의 명산 금강산에 어찌 비할 수 있을까. 하산하는 길 관광객들과 노는 다람쥐가 더 신비로웠다.
6월 17일, 인천으로 돌아오던 날, 일정에 없던 스탠포드 대학 방문계획은 요술램프 만큼이나 신비로운 경외의 대상이었다. 9시에 숙소에서 출발하여 스탠포드 대학에 도착한 시각이 9시 40분, 가이드는 10시 30분까지 버스에 탑승할 것을 권유하였지만, 장엄하고 멋진 캠퍼스의 경관에 매료된 일행은 11시가 되어서야 공항으로 향할 수 있었다. 입구에 펼쳐진 야자수 풍경이나 푸른 잔디와 어우러진 고풍스런 양식 하나에도 세계 최고의 명문을 자랑하는 자존심이 숨어있었다. 전 교과에서 최고를 자랑하여 부유층 부모들이 자녀의 진학희망 일순위로 꼽는다는 대학이기에 그 분위기에 압도되었는지도 모른다. 3층 높이의 시계탑은 숨죽이고 지켜보는 우리들을 더욱 놀라게 하려는지 종을 열 번이나 울렸다.
수속을 마치고 12:50분에 탑승, 13:20분(한국시각 18일 새벽 04:20분)에 이륙한 대한항공 KE-024 기는 한국시각 6월18일, 오후 17:13분에 도착, 13시간의 비행을 끝으로 12박 14일의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미국 보이스 주립대학에서 영재교육담당교원 국외연수를 받는 동안, 머릿속은 온통 “왜 저들이 좀 더 창의적이라 말하는 것일까”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재료를 친절히 넣어주고, 김치찌개와 같이 완제품으로 제공되는 “어머니의 창의성”에 길들여져 왔던 우리문화와, 자기 스스로 선택적으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재료들을 골라 제조해 먹는 샌드위치 문화의 차이가 아닐까라는 우스운 생각까지 들었다. 비록 많은 국민이 비만에 힘겨워 할지라도.
방금 끓인 물이 든 냄비에 김치를 넣고 콩나물과 멸치도 넣고, 그 안에 두부를 적당히 썰어 넣어 휘휘 저어 대쳐 먹는다면?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우리네 먹거리 문화는 자갈자갈 끓여서 그 속에서 우러나는 깊은 맛을 즐기는 문화이기 때문이리라. 발효된 양념과 온갖 재료들을 섞어서 깊이 우려낸 전통적인 맛을 즐기는! 하지만 이 모두가 단지 어머니의 창의성일 뿐이며, 그 어머니의 맛깔스런 손맛이 느껴지는 음식을 그저 맛있게 즐기면 그만인 것이 또한 우리네 음식 문화가 아닐까? 지리산 어느 음식점에 갔을 때 양푼에 자기만의 재료(다양한 산나물들의 집합)를 넣고 자신의 비빕밥을 만들어 맛있게 먹었던 생각이 난다. 역으로 단순한 재료 몇 가지를 선택하여 만들어먹는 샌드위치문화에 비하면, 십 여 가지의 더욱 풍부한 재료의 조합이니 얼마나 다양한 창조적인 비빔밥이 만들어졌을까? 그런 면에서 비빔밥도 샌드위치처럼 자신이 재료를 선택해서 만들어 먹게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의 창의성은 비빔밥에 들어간 뛰어난 어머니의 창의성을 뛰어넘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에서 보고 들은 많은 것들은 내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설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티톤공원과 옐로우스톤, 요세미티의 장관은 뒤로 하고라도 끝도 없는 것처럼 펼쳐진 광활한 그들의 영토는 무한한 가능성의 보고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한 환경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들의 영재교육 수업은 직접 보지 않았지만 그 넓고 빈틈이 많은 환경을 채워 가는데서 그들의 창의성이 길러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큰 나무숲과 폭포가 자아내는 풍경에 채워야 할 빈 공간이 많은 것처럼, 작고 빽빽하지만 그 안에서 찾아낼 수 있는 비경이 많이 숨어있는 “우리의 멋진 숲”과 같은 우리 아이들의 잠재성에서 영재교육의 꿈과 희망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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