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머니카드의 교훈>
박 은 영
어느 날 아들이 내게 하는 말,
"엄마! 아저씨가 그러는데 어른이 쓰는 티머니래. 어린이용으로 바꿔야한데~."
이런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아차 싶은 생각이 순간 지나가며, 아들에게 티머니 샀던 편의점으로 가서 물어보라고 시켰다. 사전에 확인해보고 삿어야 했는데, 치밀하지 못한 내 행동에 대한 책임을 아들에게 전가하고 있었다.
"넌 한 달 동안 어른요금이 나가는 것도 몰랐어?" 하며 아들의 무신경을 탓하고 있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나도록 아침마다 아들에게 편의점에 가서 책임을 물어보았는지를 따져 물었다. 아들이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덮어버리며, 그래도 이정도의 일은 해결할 수 있어야 된다는 이기심에 아들을 싸움터에 밀어내고 있었다. 역시 아들은 차마 말도 못 꺼내고 그냥 집에 돌아오곤 하였다.
금요일 한가로운 오후 약간의 짜증을 내며,
"으그, 내가 간다 내가 가~"하며 전철역에 있는 편의점을 방문하였다. 중년 여자가 물건들을 정리하며 부지런을 떨고 있었다. 나는 티머니 카드를 내밀며 어린이용이 있는데 성인용을 판매하셔서 한 달 동안 손해를 보고 있었다고 볼멘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 순간 편의점 사장의 말, "우리가 판매하는 카드가 아닌데요"라며 외면하였다. 목소리가 떨리며 여기서 팔지 않으셨냐고 따져 묻자 "아, 맞네 뒷면은 본적이 없어서..."하며 계속해서 물건만 정리하였다.
순간 내 안에 욱하는 성질이 올라왔다. 심호흡을 하며 다시 한 번 말을 걸었다. "처음에 주신 카드는 애들이라 갖고 다니기 불편할 것 같다. 목걸이나 열쇠고리로 나온 상품은 없냐고 물었더니 아저씨께서 열쇠고리를 골라보라 하셨어요.“ 카드보다는 열쇠고리 모양 티머니는 3배 비쌌고, 카드결재를 했던 터라 카드취소를 해야 했다. 아저씨는 카드취소가 잘 안된다며 부인을 오라 했다. 그래도 잘 안된다며 현금으로 돌려주었다. 다시 3배의 비용을 카드로 결재했던 상황을 설명하며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그런데 아줌마의 말은 어린이용으로 열쇠고리형은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는 것 이였다.
'이런 아들것만 잘못 산 줄 알았는데... 두 개 다 잘못 샀다니' 갑자기 울컥해지며 지금까지의 차분함이 사라졌다.
"아니 뭐라구여? 그럼 애들보고 성인용을 골라보라 했다는 거예요?" 하며 따져 물었다.
아줌마는 "그럴 리가 없어요. 성인용인지 어린이용인지 확인을 꼭 하느데..."하며 계속 부인하였다.
“기다릴 시간 없으니 티머니 교환해주고 손해액의 반인 만원을 현금으로 주세요”라고 했다. 아저씨가 와서 확인을 해봐야겠다며 나를 세워 놓았다. 아줌마의 행동에 흥분해서 아이들이 통학하느라 쓴 비용을 설명하다보니 1인당 2만원, 총 4만원이였다. 나의 부실한 암산실력에 내 자신한테 실망하면서 순간 당황하였다.
아줌마는 얼른 내가 요구한 것을 선선히 내주었다. 편의점 문을 나서며 무엇인가 대단하게 손해보는 느낌으로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요구한 만큼 받았으니 더 이상 싸울 명목이 없었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딸의 말 “엄마 잔액이 6천원이나 남았어!” 아차 싶은 생각에 편의점으로 돌아갔다. 반납했던 티머니에 잔액이 남아있으니 돌려 달라고 했다. 아줌마는 잔액만 찾고 돌려 달라며 티머니 카드를 주었다. 순간적으로 억울한 생각에 “내가 손해가 얼마인데, 돌려줄 수 없어요”라고 외치며 티머니 카드를 확 빼앗으며 도망치듯 편의점을 빠져 나왔다. 보상받은 느낌에 살짝 뿌듯하긴 했지만 뒤따라 오는 아이들에게 민망한 모습을 보인 듯하여 씁쓸하였다.
나의 뒤를 따르던 아이들의 한마디,
“에이, 아줌마가 우리한테 사기쳤어! 거짓말쟁이야. 그치 엄마!” 하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래 맞어 하지만 일부러 그런것 같진 않어” 애써 내 자신을 위로하며, 아이들에게도 무조건 나쁘게만 말하긴 싫었다. 생활에 시달리다 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그 실수를 덮으려 하는 것은 누구나 본능적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쉽게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향을 띠고 있으므로 싸움은 예상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줌마 깨끗이 인정했으면 엄마도 소리는 안 질렀을텐데...”
내가 누군가와 싸우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싸우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웠을까? 평화롭게 해결하고자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으려고 맘을 다잡고 찾아갔던 내 속마음을 이해받지 못해 더욱 화가 났던 것이다.
30분간의 짧은 해프닝에 심신이 모두 지쳤지만, 깨달은 것이 한가지 있었다. 나의 교육관의 문제였다. 늘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해봐야 한다는 미명아래 아들에게 책임을 지게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아들이 책임지려 시도했다면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을 미처 배려하지 못한 무심한 엄마였던 것이다. 교육이라는 명목이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귀찮음에서 비롯된 책임전가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쉽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당황해하는 내 모습을 본 아들이 어떤 생각을 할 지 뒤통수가 뜨끈해졌다.
‘아들, 미안해.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함께 의논하고 풀어가자!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접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