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인류가 던져왔던 근원적인 의문에 대하여 하나의 뚜렷한 불법적 역사의 궤적을 더듬는 가운데, 세계와 인간을 돌이킬 수 없는 고통과 사망을 몰고온 한 존재 앞에 도달하게 되고야 만다. 성경은 그가 바로 '사탄'임을 계시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는 사탄에 대하여 무수한 양상으로 변이된 흔적들에 대한 정신적 유산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때때로 사탄의 모티브는 프로이드의 정신성 해석의 기초인 "성 모티브"를 돌파한 '칼 융'의 통찰에 있어서 인류의 무의식적 기반이요, 무제한의 잠재력의 기반이며, 인도를 중심으로 한 요가 철학에 있어서 인간 안에 내재된 우주적 힘으로 규정될 때, 인간의 진정한 자아(아트만)이며, 구체화된 기관으로서 "쿤달리니-불타는 뱀(serpent fire)"의 영상 가운데 그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림 : 요가철학에서 쿤달리니는 "육체안에 놓여진 뱀의 형상으로 묘사되며 '신성의 씨'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탄의 정체에 대한 빗나간 인상들은 기원론적 사건들에 대한 신화와 전설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의 주체자로서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인종과 대륙의 경계를 초월하여 인류 역사 초기부터 사탄이 개입했던 정황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때때로 사탄은 중국의 창생설화에서 볼 수 있듯이 "복희와 여와" 기사로부터 명백한 인상을 남기고 있듯이, 그리이스 신화나 힌두교의 신들의 역사에 있어서 다양한 신들의 인상 속에서 뚜렷한 자취를 드러내고 있다. 그는 인간의 양심을 통해서 투영되는 하나님의 인격과 신성의 증거를 따라 진․선․미의 완전한 모범으로 인간이 도달해야 할 초인간적인 우주적 완성의 모범의 중심으로 등장한다. 이 즈음에서 사탄에 대한 인상은 인간의 자연 이성을 통해서 분별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인류를 계몽하는 참다운 스승이요, 빛으로 둔갑되는 것이다.
그리이스 신화론적 기사에 있어서 최고의 신으로 등장하며 "신들과 인간의 아버지"로 불리는 쥬피터(제우스)에서보다 그의 아버지 새턴(Saturn)의 면모 속에서 기원론적인 사탄의 속성을 읽을 수 있는 바, 그의 다른 이름은 사투르누스 혹은 크로노스(Cronos)이다. Saturn이 성경에서 계시된 진리의 대적자 Satan과 어원적 일치성을 띠고 있다는 점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새턴의 시대에 대한 묘사는 "결백과 순결의 황금시대로 혹은 자기의 아들을 마구 잡아 먹는 괴물"로 나타난다. 크로노스라는 그의 또다른 이름이, "역사적 시간성"의 기원을 내포하고 있는데, "실제로 자기가 이 세상에 가져온 것은 무엇이든 멸망하게 하는 자"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은 신화적 언급 속에 내포된 초역사적 사건의 흔적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크로노스의 이와 같은 양면적 평가는 에스겔 28장에서 계시된 것처럼, 루시퍼가 온전하고 아름다웠던 시대에서 "그 마음"에 불의가 드러나 영원한 심판에 처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에 대한 태고의 영상을 암시하고 있다.
창세기 타락의 사건은 중국의 창조 설화인 "복희와 여와"의 이야기를 통해서 초역사적인 사건의 구조가 완연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설화적 언급에 있어서 오누이의 관계로 묘사되는 이들의 결혼으로 인하여 세계와 인종이 시작된다. 또한 이들의 관계를 전해주는 인상적인 그림은 성경으로부터 계시된 인류의 타락 기사가 어떠한 방식으로 와전되어 세계 민족의 다양한 창생설화의 인상으로 결정되어 왔는가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세계 민족의 기원론 속에 자리잡은 신화들은 일반적으로 성경 말씀의 변조 및 와전 혹은 우화적 양상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복희와 여와의 신화 속에서 암시된 인간의 타락 기사 뿐 아니라, 세계의 창조와 기원론에 있어서 표현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성경 속에 드러난 최초의 진실을 깊이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벨론,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북유럽, 심지어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문헌과 구전 속에 전달되는 창조신화에 있어서 최초에 일어난 사건들은 사건의 주체와 의미가 와전되고, 극심하게 우화화되어 버림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한가지의 진실에 대한 흔적을 여러 모양으로 찾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전흥상은 복희와 여와 신화를 전하는 중국의 "삼황오제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하고 있다.
1. 태호 복희씨- 태호(太昊)는 大明을 뜻하니, 즉, 새벽별을 의미하고 마귀를 의미한다. 복희(伏羲)는 "업드려", "기어서"... 강도마귀가 <뱀>구멍으로 에덴동산에 들어온 자니 그 이름이 양의 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절도, 강도 같이 <불법, 위법>으로 침입한 자임이 창세기로 확실히 증거된다.(요10:1-10, 사14:12-15)
2. 여와씨 - 계집여자 '女'로 '하와'를 가르킴이 분명하다. '여와' 때 천하가 대난리가 나서 그만 하늘의 기둥이 부러지고 땅에 그물이 찢어지니 천지가 전복된 것을 여와가 '청황적백흑' 5색의 돌을 이겨서 하늘의 파손된 것을 수선했다는 말은 진실을 거꾸로 한 말이다.(고후 11:3)
[그림 : 낮과 밤을 배경으로 한 복희와 여와의 모습이다.]
둘은 반인반사(半人半巳)로서 하반신은 낮에는 6번, 밤에는 3번의 꽈배기 형태로 결합되어 있다. 이것은 뱀의 교미형태로서, 복희(사탄)의 유혹에 이끌려 간음하는 여와(하와)의 타락 형국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복희와 여와의 창세신화의 인상을 표현하는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사탄의 유혹된 첫 사람 하와의 타락의 모티브는 성적 모티브를 포함한 전인격적인 교합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방신화에 있어서 "금지된 열매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의 타락기사는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며 직접적이다. 그러나 타락론에 있어서 성적 모티브를 교리적으로 주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예외 없이 기독교 이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으로 통일교의 문선명은 사탄과 하와의 간음으로 인한 인류의 타락을 회복하기 위해 피가름의 교리 곧 두번째 참 사람(문선명)에 의한 죄악의 탕감을 주장하는 가운데 교주와의 실제적인 성교를 통한 구원과 회복의 행위를 조장해 왔다. 통일교의 아류인 정명석 역시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힌두교와 라마 불교에서 인간의 해탈을 위해 이른바 "섹스요가(sex yoga)" 역시 이와 같은 모티브를 구체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쿤달리니(남성에너지)와 샥티(여성에너지)는 곧 남성과 여성으로 대표되며, 두 성의 교접을 통한 양극적인 에너지의 통일을 통해 가속되는 해탈의 원리를 표방하는 것이다.
복희와 하와의 교합에 대해서 하나님은 "간음"이라고 말씀한다. 성경에 있어서 간음은 남녀간의 일반적인 성적 범죄의 수준보다 창조와 진리의 참 아버지요, 남편되신 하나님을 떠나 거짓의 아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행위를 말한다.
(약 4:4) 간음하는 남자들과 간음하는 여자들아,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느니라.
간음은 십계명 가운데 제 7계명인데, 하나님은 영적 범죄와 육체적 범죄의 양면에 대해서 이 죄악을 금하고 있다.
성경은 간음이 인간사회 속에서 불법적인 남녀간의 성적 범죄 뿐 아니라, 초기 인류 역사에 개입한 영적 존재(천사)들과 인간 사이에 있었던 성적 범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 6장 이하에서 소개되는 "네피림"의 기사는 천사와 인류 사이에 일어났던 "성적 모티브"의 사건에 대한 의미의 진상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또한 예수의 제자 유다(가롯 유다가 아님)는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에 만연했던 문란한 성적 범죄에 도착된 사회의 모티브는 이미 기원의 세기에서 일어났던 죄악의 전형을 쫓아가고 있었다고 하였다.
(유 1:6-7) 또한 자기의 처음 신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의 거처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 때까지 영존하는 사슬로 묶어 어둠 밑에 예비해 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주변 도시들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음행에 내어 주고 낯선 육체를 추구하다가 영원한 불로 보복을 당하여 본보기가 되었느니라.
성경에서는 간음의 모티브가 하나님을 향한 전인격적인 반역이 내포된 영적 근원과의 연합이기 때문이다. 타락기사는 처음 창조된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누리던 하나님과의 교제와 만남이 왜 본성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사망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인류에게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이다.
타락의 의미는 인간에게 일어난 실재적이고 전인격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타락의 중심에는 "옛 뱀"으로 묘사된 사탄이 첫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복희의 이름에서 알 수 있는 바대로 태고의 사건을 담아내는 창세신화에서조차 "뱀"으로 명명된 사탄의 영상은 "배로 기어 다니는 자"로 전달된다.
(호심경 註 - 복희의 한자 伏羲에서 앞자는 "엎드릴 복"이라는 의미임. 네이버 백과사전의 설명 전반부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음. "복희(伏戯:伏犧)·복희(宓羲)· 포희(庖犧)·복희(虙犧)·포희(炮犧) 등으로 쓰기도 한다. 진(陳)에 도읍을 정하고 150년 동안 제왕의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몸은 뱀과 같고 머리는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어서 해·달과 같은 큰 성덕을 베풀었다 하여 대호(大昊:끝이 없이 넓고 큰 하늘과 같다는 뜻), 또는 대공(大空)이라고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줌으로써 맨 처음 문명을 가르쳐 인류에 유익을 끼치고 대신 제우스에 의해 독수리에게 간이 쪼이는 고통을 받는 '선하고 의로운 존재'로 위장되어 전해지는 사탄의 변형과 비슷한 존재로 설정된 것이다. 복희에 연관된 그림들에는 직각자와 컴파스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프리메이슨과의 밀접한 연관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독교의 중세미술 가운데 중요한 테마였던 시조타락(始祖墮落) 기사와 중국의 창세설화의 중심에 놓여진 복희와 여와의 이야기와 그 그림은 놀라울 만큼 의미있는 정황을 전달해 준다.
중세 기독교 미술은 첫 남편 아담을 배반하여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타락하는 하와의 인상을 전달하고 있다면, 복희 여와도는 아담이 배제된 채 사탄과 하와의 교합으로부터 인류기원론적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즉, 복희와 여와도에 있어서 하나님과 아담의 역할이 완전히 거세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인류기원론은 사탄과 하와의 연합으로부터만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게 하였다. 말씀 속에서 드러나는 부분적 사건을 극명하게 확대시키고, 연관된 의미와 본질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여기에서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부정과 왜곡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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