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푸레나무 교탁 위의
파란 분필가루
- 박귀주 선생님
“시대의 어둠에 결코 굴하지 않고
입시교육 속에서 시들어만 가는 저희들에게
‘참교육’이란 사랑의 가르침으로 전교조를 세워 활동하신
여러 선생님들께 저희 역시 서로 얼싸안고
참교육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드리며
이 작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참교육 원년 11월 28일
순천효천고등학교 총학생회가 결행한
제자들의 감사패 소식이군요.
전교조순천지회 교육운동 백서는
‘전교조 결성과 사수 과정에서 교육의 주체로 우뚝 선
교사와 학생의 연대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행사였다‘ 로
그 날의 소회를 남겼습니다.
다 잘 싸웠지만 더 잘 싸워준
효천고 선생님들.
교무실과 현관을 성책 삼아 힘들게 싸울 때
설상가설이라더니 느닷없이
박 선생에게 쓰나미로 밀려온 온갖 시련들.
부모로서나 자식으로서 차마 감당할 수 없었던 현실.
한사코 큰 뜻을 따르겠다는 이 사람을
동지의 이름으로 뜨겁게 불러내
당신의 발길을 교문 안으로 되돌려주었다는
아주 오래된 소문, 아주 빛나는 전언.
그날 보다 더 먹어버린 나이, 35년 전 일입니다.
항꾼에 해직을 못 본 囹圄의 쓴 잔들을
오늘에 저는 다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승리도 패배도 없고 영광도 치욕도 없는
시간의 빛깔,
마음의 본래면목을 사랑할 뿐이었습니다.
이 사람
저 순천Y교협 태동에서 총무 소임이었던 진국,
참 교사 박귀주 선생입니다.
여덟 딸에서 한 아들이 너무도 귀하여
귀동이라 했다지만
우리 원년 동지들의 막내로서도 귀동이는 맞습니다.
오늘 선생님의 공덕을 다 내려놓고
남은 한살이의 보시를 나선다 하니
그러면 또 우리 선지식 선승들께서 마땅히 큰 박수로 웃으면서
노인당 엉덩이 하나 뜨뜻이 열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낙엽 다 지고 세상 온통 하얗게 변하여
갖은 세간의 색들 고요히 눈을 감고 있지만
그 시린 계절의 것들 다 이기고 돌아와
울트라마린블루 빛으로 맑디맑게 돌아와
회한의 눈물을 훔치는
아직도 젊고 아직도 씩씩한 박귀주 선생님.
이 사람은 그리하여
조선 산하 토종의 물푸레나무 같습니다.
물푸레나무 살 껍질을 오려내어 맑은 물에 담그면
물이 서서히 파래진답니다
‘물빛이 푸른 나무’.
한자로도 수청목水靑木 인데
재목이 강하면서 탄력이 있어
이 나무로 옛적에 창 자루를 만들었대요.
잎은 하나의 잎자루에서 좌우로 대여섯 장 달리니
어쩐지 새의 꽁지깃 형상. 그리하여
물푸레나무는 우리 찬란한 새 토템 조이족의
용기와 슬기도 배어있음직 한
우리 뫼의 기특한 우리 나무입니다.
꿈인가 하면 꿈 아니요
꿈 아닌가 하면 꿈 아닌 것 또한 아니니
어이할고 중생이여
꿈을 꾼즉 깨어나기 괴롭고
깨어난즉 꿈을 꾸기 괴롭고여“
김성동의 장편 ‘꿈’의 안표지에서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꿈을 꾸었습니다.
열에 열 색 잠이 아니고 백의 한 빛 꿈이었습니다.
신이하고 달큼하고 아리고 아까웠습니다.
아직도 그 꿈에서 온전히 깨어났다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꿈을 꾼즉 행복하고 꿈을 벗은 즉 괴롭다면
죽는 날까지 나는 꿈을 꾸고 싶습니다.
생의 꿈은 꼭 우리들처럼 꾸는 게 맞습니다.
인생 자체가 일장춘몽이라
박귀주선생님이 오늘은
허적하고 또 벅차서 생각이 참 많을 테니
형님들의 지난 공부와 귀한 경험을 안주로
곡차 한 잔 머리 위에 드높여주시길 앙망하나이다.
물푸레나무 창 자루 끝에 꽃을 꽂아
참 교사 박귀주선생님께 바칩니다.
이 참교육운동 선수에게 완주의 갈채
승리의 박수를 힘차게 보내주십시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단군기원
2568년 2월 23일
김진수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