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도집경_지계_38. 태자묘백경(太子墓魄經), 벙어리가 된 묘백 태자의 전생 이야기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이때 부처님께서 모든 사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전에 바라내(波羅柰)라는 나라가 있었고, 왕에게 태자가 있었으니, 이름은 묘백이었다.
나면서부터 무궁한 지혜가 있어서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여러 일에 그 지혜가 걸림이 없었다. 단정하고 빛나는 것이 마치 별 속의 달과 같았다.
왕에게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고 보니, 온 나라가 사랑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런데 나이 열세 살이 되자 입을 닫고 말을 않으니, 벙어리와 같았다.
왕과 왕후가 이를 근심하고 바라문들을 불러서 그 까닭을 물으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이는 상서롭지 않은 일입니다. 단정하여도 말을 않으니 대왕께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후궁에게도 아들이 없으니 어찌 저것이 해가 아닙니까?
법으로 마땅히 산 채로 묻어야 하오리니, 그렇게 하시면 반드시 귀한 아들을 두오리다.”
왕이 곧 난처해서 들어가 왕후와 더불어 의논하니, 왕후와 궁인들이 애통해 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모두 탄식하여 말하였다.
“어찌하여 태자는 복이 엷어서 나면서 이런 재앙을 얻은 것인가.”
슬퍼하는 자들이 길을 막으니, 마치 대상(大喪)이 있는 것과 같았다.
보배 옷을 갖추어 가져다가 상두꾼[喪夫]에게 주니, 상두꾼이 그 옷을 받아서 함께 묻기로 하였다.
묘백이 생각하였다.
‘임금님과 나라 사람들이 나를 참벙어리로 믿는구나.’
곧 가만히 옷을 거두고 물에 들어가서 깨끗이 목욕하고 향을 몸에 바르고 보배 옷을 갖추어 입고, 구덩이를 파는 데에 가서 말하였다.
“너희들은 무엇을 하는가?”
대답하였다.
“태자가 벙어리고 귀머거리인데, 나라에 후사가 없기 때문에 임금의 명령으로 생매장을 하고 좋은 후사를 낳기 바라는 것이오.”
“내가 바로 묘백이다.”
상두꾼들이 태자를 싣고 온 수레를 보매 텅 비어 있었고, 그의 형용을 보니 환한 광명이 있어, 들이 온통 해가 비추는 것처럼 밝았다. 성령의 큰 힘이 신(神)과 영기(靈祇)를 움직인 것이었다.
상두꾼들이 모두 놀라서 서로 보매 얼굴 모습이 누렇고 푸르렀다.
태자의 말이 문장을 이루니 두렵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늘을 우러르며 말하였다.
“태자의 신령한 덕이 이럴 수도 있습니까.”
곧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원컨대 돌아가서 임금님을 편안하게 해 드리고 무리들로 하여금 슬퍼하지 않게 하소서.”
태자가 말하였다.
“네가 빨리 가서 임금님께 태자가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여쭈어라.”
사람이 곧 달려가서 아뢰니, 왕과 왕후와 백성들이 그렇게 된 까닭을 심히 괴이하게 여기면서 마음으로 기뻐하며 좋다고 하고,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수레가 달리고 사람이 뛰고 길이 막히고 혼잡을 이루었다.
묘백이 생각하였다.
‘내가 사문이 되어서 비고 고요한 수행을 하면 또한 좋지 않으랴.’
뜻이 비로소 이와 같았다.
제석이 화하여 동산과 못과 수목을 만드니,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곧 여러 보배 옷도 없어지고 화하여 가사가 되었다.
왕이 도착하매 태자가 오체를 땅에 던져 예(禮)대로 절하였다.
왕이 곧 자리에 나아가 그 언성을 들었으며, 빛나는 모습의 위엄과 신령함은 하늘 땅을 움직였다.
왕이 기뻐하면서 타일렀다.
“내가 너를 둔 이래로 온 나라가 공경하고 사랑하였다.
마땅히 왕위를 이어서 백성의 부모가 되어야 하리라.”
태자가 대답하였다.
“오직 원컨대 대왕께옵서 제 작은 말씀을 들으시옵소서.
제가 예전에 일찍이 이 나라의 왕이 되어 이름을 수념(須念)이라 하였습니다.
나라에 처하여 백성에 임하기 25년 동안에 몸으로 10선을 받들고 백성을 사랑으로써 길러서 채찍과 몽둥이를 없앴고,
병역을 모두 그만두어서 행하지 않았사오며, 감옥에는 죄수가 없었고, 거리에는 원망과 한탄의 소리가 없었으며, 은혜로 널리 베푸니 윤택이 두루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만 나아가 노니는데 옹호하여 따르는 무리가 매우 많았고, 인도하는 신하가 달려 경비하매 백성들이 두려워하였으므로,
마침내 태산지옥에 들어가서 태워지고 지져지고 베이고 찢기기를 6만 년을 쌓는 동안 죽음을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울부짖어도 구원이 없었습니다.
저 때에 안으로 구친이 있었고 밖으로 신민이 있었으며, 재산이 억대이고 여러 가지 즐거움이 다함이 없었는데, 어찌 제가 태산지옥에 들어가서 태워지고 지져지고 하는 여러 가지 더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을 줄 알았겠습니까?
살아 있는 동안에 영화롭던 처자와 신민이 누가 능히 이 고통을 나누어 갈 것입니까?
생각해 보면 저 모든 독이 한량이 없는데, 매양 한 번씩 생각할 적마다 마음이 괴롭고 뼈가 아프며, 몸에서 식은땀이 나고 모발이 곤두섭니다.
말을 하면 화가 와서 죽음이 그림자처럼 찾아오니,
비록 말을 하고자 하나 다시 죄를 얻을까 무섭고, 태산지옥의 고난을 두 번 다시 하기 어려워서,
혀를 오그리고 도무지 말이 없이 하고자 하다가,
13년 만에 비로소 요망한 도사가 왕으로 하여금 저를 생매장하게 하오매,
대왕께옵서 태산지옥의 죄를 얻을까 무서워서 힘을 회복하여서 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사문이 되어서 욕심 없는 수행을 해 나가고,
여러 화근의 문을 막고 다시 왕이 되지 않고자 하니,
원컨대 괴이하게 생각하지 마시옵소서.”
왕이 말하였다.
“네가 훌륭한 임금이 되어서 수행이 높고 덕이 높아 백성을 도(道)로써 거느렸으며,
허물은 실낱이나 터럭과 같아서 사람들이 염두(念頭)에도 두지 않았거늘,
이 때문에 죄를 얻어서 혹독한 형벌이 그와 같았다는 말이냐.
나는 이제 사람의 임금이 되어서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서 하고 바른 법을 받들지 안았으니, 마침내 어디로 갈 것이냐?”
곧 도 배울 것을 허락하였다.
왕이 돌아와서 나라를 다스리되 바름으로써 하고 삿되지 않게 하니, 드디어 나라는 풍요롭고 백성을 즐겁게 되었다.
묘백은 곧 스스로 마음을 단속하고 욕심을 끊어 참된 길로 나아가서 드디어 부처가 되었으며, 널리 밝은 법을 설하여서 중생을 건져서 멸도하기에 이르렀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묘백은 나였고, 부왕은 지금 백정왕이었으며, 어머니는 지금 나의 어머니 사묘였느니라.
대체로 영화와 여색과 사악함과 즐거움은 몸을 불사르는 화로이며,
청정과 담백은 근심 없는 집이니,
만약 난을 면하고 죄를 여의고자 할진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잃음이 없어야 하느니라.
도를 닦는 것이 비록 괴롭다 하나 오히려 3악도에 처하는 것보다 나으며,
사람이 되어도 곧 빈천을 멀리하고 8난에 처하지 않느니라.
도를 배우는 자의 뜻은 마땅히 부처님의 수행과 같아야 하나니, 연일각(緣一覺)ㆍ응진(應眞)ㆍ멸도(滅度)를 얻고자 하면 얻을 수 있으리라.”
부처님께서 경을 설하여 마치시니, 모든 사문이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머리를 조아려서 절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