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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양성교론 제10권
현양성교론_2. 섭정의품_7. 거룩한 행과 최상의 교법 등(4)
7.5. 외도 이론[異論]의 종류(2)
6) 전생에 지은 원인이라는 이론
모두 전에 지은 원인이라고 하는 논리란, 어떤 사문과 바라문만이 그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그와 같은 논리를 세움이니, 널리 말한 것은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무릇 세상에서 사람들이 받는 바란, 현재에 받는 괴로움을 말미암요,
모두 전에 지음으로 말미암아 원인이 됨이란, 전의 악으로 말미암아 원인이 된 것을 말함이요,
부지런한 정진으로 말미암아 옛날의 업을 버리기 때문이라 함은, 현재법에서 스스로 몹시 고행(苦行)함으로 말미암는 것을 말함이요, 현재의 새 업은 짓지 않는 업으로 말함이요,
그와 같이 후에는 다시 번뇌가 없으리라고 함은, 한결같이 착한 성질이기 때문에 후에 번뇌가 없으리라고 말함이다.
그리고 번뇌가 없음으로 말마암아 업이 다함이라 함은, 모든 나쁜 업을 말함이요,
업이 다함으로 말미암아 괴로움도 없어진다 함은, 전생의 원인으로 얻어진 바와 현재 법의 방편으로 불러 들여진 고뇌를 말함이요,
괴로움이 다하기 때문에 괴로움의 맨 끝을 증득하게 된다 함은, 남은 생(生)에까지 계속되는 괴로움이 없어짐을 말함이니,
이를테면 무계외도(無繫外道)들이 그와 같은 계교를 하고 있다.
【문】 무슨 인연으로 저 외도들이 그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그와 같은 논리를 세우는가?
【답】 교리와 이치로 말미암기 때문이니 교리에 관해서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치에 관해서 말하자면, 어떤 이는 성품 됨이 찾아 생각하고 성품 됨이 관찰하는데, 널리 말하면 앞에서 말한 것과 같나니, 현재 법에서 짓는 바 공용(功用)이 결정되지 않음을 보므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에서 비록 바른 방편을 갖추었더라도 괴로움을 받게 됨과, 비롯 삿된 방편을 갖추었더라도 낙을 얻게 됨을 보고, 그들은 이와 같이 생각한다.」
즉 「만일 현재 법에서 짓는 바 공용으로 말미암아 저 원인이 된다고 한다면 저는 응당 뒤바꿈이다. 저 소견이라야 뒤바꿈이 아니라고 하나니,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전에 지은 것으로써 원인이 된다」고 한다.
그 이치로 말미암아 그들이 그와 같은 소견을 세우고 그와 같은 논리를 세운 것이다.
지금, 그대들에게 묻겠다.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재 법의 방편으로 얻어지는 괴로움은 전에 지은 것으로써 원인이 된 것인가?
현재 법의 방편으로써 원인이 된 것인가?
만일 전에 지은 것으로써 원인이 된 것이라면, 그대들이 먼저 말했던, 「부지런한 정진으로 말미암아 옛날의 업을 버리기 때문이며, 현재의 새 업을 짓지 않는 원인으로 해치는 바가 되기 때문이며, 그와 같이 후에는 다시 번뇌가 없을 것이다」고 널리 말한 것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현재 법의 방편으로써 원인이 된 것이라면, 그대들이 먼저 말했던 「무릇 세상에서 사람들이 받는 바는 모두가 전에 지은 것으로 말미암아 원인이 된다」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와 같아서 「현재 법의 방편으로 얻어지는 괴로움은 전에 지은 것으로써 원인이 되기 때문이라」함과, 「현재법의 공용(功用)으로 그 원인이 되기 때문이라」함이 모두 도리에 맞지 않나니 그러므로 그런 논리는 이치에 합하는 말이 아니다.
또 다음으로 나는 지금 실다운 원인의 모양을 말하리라.
혹 어떤 괴로움들은 오직 전에 지은 것으로서 원인이 되나니 이를테면, 어떤 이들은 자기 업이 증가된 힘으로 말미암아 온갖 나쁜 갈래에 나기도 하며, 혹 빈천한 집에 태어나기도 한다.
혹 어떤 괴로움들은 새 원인으로 생김이 있나니, 이를 테면, 어떤 이는 잘못된 짓으로 왕을 섬기다가 낙의 과보를 얻지 못하고 도리어 괴로움만을 당하게 된다.
왕을 섬김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처럼,
온갖 말함과 장사 따위의 직업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기도 하며,
또는 농사일과 도적질하는 상습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기도 하며,
혹은 딴 중생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로 말미암아 되기도 하는데,
만일 복이 있는 이는 부와 낙을 얻게 되고, 만일 복이 없는 이는 비록 공력을 들이더라도 소용이 없기도 한다.
혹은 또, 어떤 법은 순전히 지금 공력을 들이는 원인으로 해서 얻어지게 되는데,
이는 새로 지은 것으로 다른 업을 이끌어 들임과 같기도 하며,
혹은 바른 법을 듣고서 법을 깨달기도 하며,
혹은 또, 위의업로(威儀業路=威儀無記인 업)을 발기시키기도 하며,
혹은 또 공교업처(工巧業處=工巧無記인 업)를 닦아 배우기도 하나니,
그와 같은 따위의 종류는 오직 현재의 방편과 공력으로 인한 것이다.
7) 자재 등 조물주라는 이론
자재(自在) 따위가 만든 것이라는 논리란,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이 이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이와 같은 논리를 세우되,
「무릇 온갖 세상의 사람들이 수용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모두가 혹은 자재(自在=自在天)의 변화로써 원인이 되며,
혹 그 밖의 장부(丈夫)의 변화로 원인이 된 것이라고 하여, 그와 같은 온갖 것들을 자재 따위라고 말하나니, 평등 아닌 원인[不平等因」이라고 논하는 이들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문】 무슨 인연으로 저 외도들이 그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그와 같은 논리를 세우는가?
【답】 교리와 이치로 말미암아서이니 교리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고, 이치에 관해서 말하자면, 어떤 이의 성품 됨은 찾아 생각하며, 성품 됨이 관찰함인데, 널리 말하자면,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들은 인과(因果) 중에서 세상의 중생들이 뜻대로 전변(轉變)되지 않음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그런 계교를 하게 된다.
왜냐 하면, 현재 보건대 세상의 중생들이 저 원인인 그 때[因時]에 청정한 업을 닦고자 하였으나 본래 먹은 마음을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다시 나쁜 짓만 하게 되며,
저 결과인 그 때[果時]에 좋은 갈래에 나기를 원하나 본래 먹은 마음을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나쁜 갈래에 떨어지며,
뜻에는 낙을 누리었으면 하나 그 하고자 함을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온갖 괴로움만 받는다.
그와 같은 것을 보므로 말미암아 그들은 이러한 생각을 하되,
「세상의 모든 물건에게는 반드시 짓는 이ㆍ낳은 이ㆍ변화하는 이가 따로 있어서 저 물건의 아버지가 된다」고 하여 자재천(自在天)이라고도 하며, 혹은 다시 그 밖의 딴 것이라고도 한다.
[온타남으로 으로 물음]
지금 그들에게 다음의 온타남으로 묻겠다.
공능(功能)이라 함도 체성(體性) 없고
해당됨과 해당 않됨도 위반 되며
수용(需用)있음과 그리고 수용 없음과
원인이 된다 함이 허물을 이루네.
논하건대,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자재천(大自在天)의 변화하는 공능(功能)은 업의 방편을 써서 원인이 되는가,
원인 없음이 되는가?
만일 업의 방편을 써서 원인이 된다면, 오직 그 공능은 업의 방편을 써서 원인이 되고, 그 외의 세간(世間)이 아니니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대자재천이 세간에 떨어짐에 해당 되는가, 해당되지 않는가?
만일 해당된다고 말한다면, 이 대자재는 곧 세상 법과 같거니 능히 세계를 두루 내었다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해당 않됨이라고 한다면, 바로 해탈이니 능히 세계를 내었다고 말함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용(需用)을 위하여 세계를 변화로 낸 것인가,
수용을 위한 것이 아닌가?
만일 수용을 위한 것이라면, 이는 저 수용에 대하여 자재로움이 없음이니 「세상에서 자재로움이 있다」함이니,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수용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수용할 필요도 없으면서 「세계를 낸다」함이니,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출생된 것들은 오직 대자재만으로 원인이 된 것인가,
또한 그 밖의 원인을 취하여 된 것인가?
만일 대자재만이 원인이 된 때라면, 이는 곧 출생함이 있음이며, 만약 출생한 때가 있다면, 이때는 곧 대자재함이 있을 것이니, 「출생된 것들이 대자재를 써서 원인이 된다」고 말함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한 만일 그 밖의 원인을 취하여 된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오직 낙욕(樂欲)만을 취하여 원인이 된 것인가, 낙욕을 제외하고 딴 원인을 취한 것인가?
만일에 오직 낙욕만을 취하여 원인이 된 것이라고 한다면, 오직 대자재만을 취하여 원인이 된 것인가, 그 밖의 원인을 취한 것인가?
만일에 오직 대자재만으로 원인이 되었다고 하면, 대자재가 있는 데일 것이며, 그 때에는 곧 낙욕이 있으며,
만일 어느 때에 낙욕이 있으면 그 때에는 곧 대자재가 있어서 문득 당연히 비롯함이 없는 때부터 항상 출생된 것들이 있을 것이니,
이도 역시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또한, 그 밖의 원인을 취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 원인은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 저 낙욕에 자재함이 없는데도 세상 물건에는 자재함이 있다고 말함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와 같이, 공능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며, 해당됨과 해당 않됨이기 때문이며,
수용 있음과 수용 없음이기 때문이며,
원인이 되는 성질이기 때문에 모두 도리에 맞지 않나니,
그러므로 그런 논리는 이치에 합하는 말이 아니다.
8) 해치는 것을 바른 법으로 삼는 이론
해침이 바른 법이 된다고 고집하는 논리란,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이 이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이와 같은 논리를 세우되,
「만일 저 사당 안에서 주술(呪術)로 으뜸삼아 모든 생명을 해치며, 만약 그것으로 능히 제사를 올리면 해친 바와 그를 방조한 저 모두가 다 천상에 나게 된다」고 한다.
【문】 무슨 인연으로 저 외도들이 그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그와 같은 논리를 세웠는가?
【답】 그것은 이치에 위배되는 논리요 아첨과 속임에서 생긴 것이며 관찰한 도리에 의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다툼이 성행하는 악겁(惡劫=나쁜 겁, 즉 나쁜시대)이 시작 될 무렵에 모든 바라문들이 옛적의 바라문 법을 어기고서 고기를 먹고자 하여 괜히 그런 수작을 만들었던 것이다.
또, 응당 그들에게 묻겠다.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주술 자체가 옳은 법의 자체가 되는가?
그른 법의 자체가 되는가?
만일 옳은 법 자체라고 한다면, 저 살생을 떠나서는 능히 자기가 좋아하는 결과를 얻거나, 저 옳지 못한 법을 전환하여 바른 법을 만들지 못할 것이니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그른 법 자체가 된다면, 스스로 좋지 않은 결과의 법이 능히 그 외의 좋지 않는 결과의 법을 전환시킨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와 같이 쳐부수고 나니, 그를 변호하는 이가 있어 다시 말하기를,
「세상의 해독을 주술의 힘으로 푸는 것처럼, 그 주술의 방법도 역시 그와 같은 줄로 알아야 한다」고 한다.
지금, 응당 그들에게 묻겠다.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술의 방법으로 능히 바깥의 독기를 푸는 것처럼, 또한 능히 안의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의 독기를 풀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한다.
만일 능히 풀 수 있다면, 어느 곳ㆍ어느 때ㆍ어느 한 사람도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 따위를 정지시키거나 푸는 일이 있지 않나니, 그러므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만일 능히 그를 정지시키거나 풀지 못한다면, 그대들이 앞에서 말했던바 주술의 방법이 능히 바깥 독기를 풀며, 또한 능히 옳지 못한 법의 업을 풀고 제거한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주술의 방법이 모두에 두루하는가, 두루하지 못하는가?
만일 두루한다고 말한다면, 자기의 친한 이와 사랑한 이에게 먼저 제사 지내지 않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두루하지 못한다면, 그 주술의 공능이 곧 결정됨이 아니니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주술의 공능이 다만 원인만을 전환시키는가, 결과를 전환시키는가?
만일 다만 원인만을 전환시킨다면, 결과에는 공능이 없으니,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또한 결과를 전환한다면, 응당 전변(轉變)함과 같아서, 곧 양 따위로 하여금 사랑스럽고 미묘한 빛깔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양 따위의 몸을 버리고서야 비로소 하늘의 몸을 얻게 되나니,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술을 만든 이가 능력이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있는가?
만일에 있다고 말한다면, 저 목숨 죽이는 것을 떠나서는 능히 그를 데리고서 천상에 태어나게 못할 것이니,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에 없다고(능력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없음) 말한다면, 저가 만든 바 주문이 능히 일을 해낸다는 것이니,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와 같이 원인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며, 비유때문이며, 결정됨이 아니기 때문이며, 결과에 능력이 없기 때문이며, 주술인 것이기 때문에 도리에 맞지 않나니,
그러므로 그런 논리는 이치에 합하는 말이 아니다.
또, 내가 지금 옳지 못한 법이 되는 모양을 말하겠다.
만일 남을 손해하는 일을 하며 현재의 허물을 다스리지 아니하면, 그를 옳지 못한 법이라고 이름한다.
또, 만일 그런 업으로 도를 닦는다면, 모두가 그 업으로는 좋지 못한 결과를 얻게 된다고 알 것이다.
또, 만일 그런 업으로 일체지자(一切智者)라고 한다면, 결정코 착하지 못한 짓이라 말한다.
또, 만일 그런 업이면 자신도 원하지 않는 바이다.
또 만일 그런 업은 더러운 마음에서 생긴 바이다.
또, 만일 그런 업은 삿된 주술을 필요로 하여야 비로소 공력과 효험이 있게 된다.
또, 만일 그런 업이라면 자성(自性)이 무기(無記)이니, 그와 같은 따위는 모두 옳지 못한 법의 모양이다.
9) 한계 있음과 한계 없음이라는 이론
한계가 있고 없다는 논리란,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이 세간(世間)의 모든 선정에 의지하기 때문에 저 세간(世間)에서 한계가 있다는 생각[有邊想]과 한계가 없다는 생각을 말함이니, 널리 말하면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그러므로 그가 그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그와 같은 논리를 세우되,
「세간(世間)은 한계가 있고 세간은 한계가 없고, 세간은 한계가 있기도 하고 한계가 없기도 하고, 세간은 한계가 있음도 한계가 없음도 아니라」고 하나니,
그 중에서 이미 인연과 능히 계교하는 것[能計者]을 말했다고 알아야 한다.
그 중에 만일 한계가 끊긴 곳[斷邊際]에 의하여 세상 끝을 구할 적에,
만일 괴겁(壞劫)을 기억하면 곧 세상에 대하여 그지 있다는 생각을 일으키며, 만일 성겁(成劫)을 기억하면, 곧 세상에 대하여 한계가 없다는 생각을 일으키며,
만일 두루 넓은 지역에 의하여 세상 끝을 찾아 본다면, 아래로 무간(無間=지옥 이름)을 통과하여도 그 이상 더 얻을 바가 없으며, 위로 제 4정려(精慮)를 통과하여도 그 이상 더 얻을 바가 없다.
겉으로 온갖 곳에서도 끝자리를 얻지 못하면, 그 때에는 곧 위와 아래에 대해서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일으키고,
겉으로 온갖 곳에서도 끝 자리를 얻지 못하면, 그 때에는 곧 위와 아래에 대해서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일으키고, 겉의 곳에서는 한계가 없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만일 그런 집착을 다스리기 위하여 글은 다르나 차별이 없는 뜻에 의해서는, 곧 세상에 대하여 한계가 있지 안다는 생각과 한계가 없지 않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지금, 곧 그들에게 묻겠다.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의 괴겁(壞劫)으로부터 오면서 다시 세상이 생김 있는가 생김이 없는가?
만일 생김 있다고 말한다면 그대들이 세상을 한계가 있다고 여기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생김 없다고 말한다면, 그대들이 이 세상에 의하여 머무르면서 세상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와 같이 저로부터 와서 있기 때문이며, 저로부터 와서 없기 때문에 모두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런 논리는 이치에 합하는 말이 아니다.
10) 죽지 않음이라고 속이고 어지럽히는 이론
불사(不死)를 교란(矯亂)하여 말하는 외도를 말함이니, 경에서 널리 말씀하신 것과 같다고 알아야 한다.
그들 외도는,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세상의 도에 의하여 착함과 착함 아님을 묻거나, 출세간(出世間)도에 의하여 괴로움[苦]ㆍ쌓임[集]ㆍ사라짐[火]ㆍ도[道]를 물으면,
그 때에는 문득 자칭하여 말하기를,
「나는 바로 불사를 교란한다.」 처소에 따라 죽지 않는 청정한 하늘[不死淨天]에 의하므로 어지럽게 힐문할 것이 아니다고 하여 곧 저의 묻는 바에 대하여 말로써 교란(矯亂)하며, 혹은 딴일에 의탁하여 방편으로 피하며, 혹은 다만 묻는 이의 말만 따라서 구르기도 한다.
그 중에서,
첫째 불사를 교란하는 것은 깨달음에 대하여 개오(開悟)하지 못함이요,
둘째는 증득할 바의 법에서 뛰어난 체하는 마음을 일으킴이요,
셋째는 깨달음에 대하여 이미 개오하였으나 결정되지 못함이요,
넷째는 못나고 우둔함이다.
또, 다시,
첫째는 허망한 말을 두려워하며, 다른 사람이 그 지혜 없음을 알까 두려워하여, 「나는 아는 바가 없다」고 분명히 대답하여 말하지 않음이요,
둘째는 자기가 증득한 것에 대해서 두려움 없음을 얻지 못하고 다른 이가 힐문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는 증득한 바가 있다」고 분명히 말하지 아니함이요,
셋째는 삿된 소견을 두려워하고 허망한 말을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이 힐문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는 결정 못한다」고 분명히 말하지 못함이니,
그와 같은 세 종류는 딴 일을 빙자하여 마로써 교란함이다.
넷째는 오직 다른 이가 힐문할까 두려워하는데, 세간도(世間道)와 그리고 출세간도(出世間道)에 대해서 모두 통달하지 못하며, 세상의 문자도 역시 잘 알지 못하면서, 『나는 우둔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분명히 말하지 아니하고,
다만 그에게 반문하며, 그의 말을 따라 굴러서 교란함이니, 저것과 이것인 네 가지 논리가 생기게 된 인연과 능히 계교 함과 아울러 저 집착을 쳐 부순 것이 모두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저 외도는 두려워 함이 많기 때문에 이런 소견에 의하여 머무르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힐문하는 일이 있으면 곧 아첨과 외곡으로써 교란만을 행하나니,
그런 소견은 나쁜 소견에 해당한다고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런 논리는 이치에 합하는 말이 아니다.
11) 원인이 없다는 견해의 이론
원인이 없다고 보는 논리란, 정려(靜慮=선정)와 바르지 못한 생각에 의하여 두 가지를 내세움이니 경에서 널리 말씀하신 것과 같다고 알아야 한다.
【문】 무슨 인연 때문에 저 외도들이 바르지 못한 생각에 의하여 그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며, 그와 같은 소 논리를 세우되,
「나와 세상이 원인 없이 생겼다」고 하는가?
【답】 대략 말한다면, 계속되지 않는 것이 첫째가 되기 때문에 온갖 안팎의 일과 한량 없는 차별이 가지 가지로 생기는 것을 보기 때문이며,
혹 다시 어느 때에는 온갖 인연이 공(空)하여 과보가 없는 것을 보고,
「세상에는 인연이 없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여긴다.
혹 어느 때에는 갑자기 큰 바람이 별안간 일어나다가 삽시간에 고요히 그치고 멈추며,
혹 어느 때에는 폭등하는 강물이 넘치다가 일시에 완연히 없어지기도 하며,
혹 어느 때에는 우거진 과일 나무가 피어나고 무성하다가 삽시간에 곧 마르고 시들기도 하나니,
그러함으로 말미암아 원인이 없다는 소견을 일으키고 원인이 없다는 논리를 세운 것이다.
지금에 응당 그대들에게 묻겠으니, 그대들의 숙주념(宿住念)은 생각이 자체가 없는 것인가, 자아(自我)를 생각함인 것인가?
만일 생각이 자체가 없는 것이라면 자체가 없는 법은 일찍이 관습을 거치지 아니했으며, 일찍이 인식에 경험하지도 아니했거늘 능히 생각을 따르는 것이니,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자아(自我)를 생각하는 것이라면, 먼저는 자아가 없었는데 후에 홀연히 생겼다고 여기는 것이니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온갖 세상에 안팎 물건들의 가지 가지로 생기는 것이 혹 홀연히 생기는데, 원인 없음이 되는가, 원인 있음이 되는가?
만일 원인 없음이라면, 가지 가지로 생기는 것이 홀연히 일어났다가 갑자기 다시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원인 있음이라면, 그대가 ‘나’와 세상이 원인이 없이 생겼다고 여기는 것이니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와 같이 생각이 자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자아(自我)를 생각하는 것이기 대문이며,
안팎의 온갖 물건들이 인연으로 말미암지 않고 가지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며,
저 인연으로 말미암아 가지 가지로 다르기 때문에 도리에 맞지 않나니,
그러므로 그런 논리는 이치에 합하는 말이 아니다.
12) 단멸이라는 견해의 이론
없다고 주장하는 논리[斷見論]란,
어떤 사문ㆍ바라문들이 이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이와 같은 논리를 세우되,
「내지 나에게 거치른 물질로 되어 있는 즉 4대(大)로 만들어진 몸이 유지하여 파괴되지 아니했으나, 어느 때에는 병이 있게 되고 종기[癰]가 있게 되고 화살[箭]이 있으므로 만일 내가 죽은 후에는 없어지고 파괴되어 아무 것도 없다.
그 때에 나는 그와 같은 욕심 세계의 묶임과 온갖 하늘의 유형세계의 묶임과 온갖 하늘의 무형 세계의 공처(空處)에 해당되는 것들을 잘 없애게 되며, 나아가서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해당한 것까지 잘 없애게 된다」고 하나니,
널리 말한 것은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말하자면 없다고 주장하는 일곱 가지 논리를 펴는 이들이 그와 같은 생각을 한다.
【문】 무슨 인연 때문에 저 외도들이 그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그와 같은 논리를 세우는가?
【답】 교리와 이치로 말미암아서이니 교리에 관해서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치라 함은, 어떤 이가 성품 됨이 찾아 생각하며 성품 됨이 관찰함이니, 널리 말하자면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는 이와 같이 생각한다,
「만일 내가 죽은 후에 다시 몸이 있다면, 응당 업을 짓지 아니하여도 달리 성숙됨[異熟]이 있을 것이요,
만일 나의 체성이 모두 영원히 없다면, 이는 받는 바 업의 과보도 역시 있지 않은 것이니,
이 두 가지 이치는 모두 불가하다」고 하여,
그 때문에 이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이와 같은 논리를 세운다.
즉 「나의 몸이 죽고나면 없어져서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마치 기와장과 돌이 만일 한번 파괴되면 다시 도로 합할 수 없는 것과 같아서,
그도 역시 그와 같은 것으로 알아야 한다」고 한다.
지금에 응당 그대들에게 묻겠다.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쌓임[蘊]이 없어짐이라고 하는가, ‘나’가 없어짐이라고 하는가?
만일 쌓임 [蘊]이 없어짐이라고 한다면, 쌓임 자체는 무상하여 원인과 결과가 이리저리 생겨 끊어지지 아니하거늘, 없어짐이라고 말함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나’가 없어짐이라고 한다면, 그대들이 앞에서 말한 바 「거치른 물질로 되어 있는 즉 4대(大)로 만들어진 몸에는 병이 있게 되고, 종기[癰]가 있게 되고, 화살[箭]이 있으므로, 욕심세계의 묶임과 온갖 하늘의 유형 세계의 묶임과 온갖 하늘의 무형 세계인 공처(空處)에 해당되며, 나아가서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해당한 것까지 잘 없애게 된다」고 함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와 같이 쌓임이 없어지는 것이나, ‘나’가 없어짐이라고 함이 모두 이치에 맞지 않나니,
그러므로 그런 논리는 이치에 합하는 말이 아니다.
13) 공이라는 견해의 이론
공(空)이라고 보는 논리란,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이 이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이와 같은 논리를 세우되,
「베풀어 줄 것도 없고 사랑하여 기를 것도 없고 제사할 것도 없으며, 널리 말하건대 나아가서는 세상에 참 아라한(阿羅漢)도 없다」고 하며,
또는 이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이와 같은 논리를 세우되,
「온갖 모든 법의 자체와 모양도 없다」고 한다.
【문】 무슨 인연 때문에 저 외도들이 그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그와 같은 논리를 세우는가?
【답】 교리와 이치로 말미암아서이니 교리에 관해서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치라 함은, 어떤 이가 성품 됨이 찾아 생각하고, 성품 됨이 관찰함이니, 널리 말하자면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는 또 세간(世間)의 모든 선정에 의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어느 시주(施主)가 일생동안 항상 끊임없이 보시를 행하다가 그로부터 목숨이 마친 후에 천한 집에 태어나서 빈궁하고 살기가 어려운 것을 보고, 그들은 이러한 생각을 한다.
즉 「베풀어 주거나 사랑하여 기르거나 제사 할 필요가 결코 없다」고 한다.
또는, 「어떤 사람은 일생동안 항상 착한 행위를 행하였으며, 혹 어떤 사람은 나쁜 행위만을 하였는데,
전자의 그 사람은 목숨이 마친 후 나쁜 갈래에 떨어져서 지옥에 나며,
후자의 그 사람은 좋은 갈래에 나서 천상의 즐거운 세계에 태어나는 것」을 보고, 그
들은 이러한 생각을 한다.
즉 「착한 행위와 나쁜 행위가 결코 없으며, 또한 착한 행위와 나쁜 행위인 두 업의 이숙(異熟)도 없다」고 한다.
또는 어느 찰제리[刹帝利] 종족이 목숨을 마친 후에 바라문ㆍ폐사[吠舍]ㆍ수달라[戍達羅]의 종족에 태어나기도 하며,
혹 바라문이 목숨 마친 후에 찰제리ㆍ바이샤ㆍ슈우트라의 종족에 태어나기도 하며,
바이샤ㆍ슈우트라들도 역시 그와 같은 것임을 보고 그들은 이러한 생각을 한다.
즉 「이 세상의 크샤트리야들에 저 세상의 크사트리야종족에서 온 것이 결코 없으며,
또한 저 세상의 크샤트리야들에 이 세상의 크사트리야 종족에서 간 것도 없다」고 한다.
또, 그들은 관찰하여,
「욕심을 떠난 이들이 아래인 경지에 나는 것」을 보며, 또 「어머니가 목숨이 마친 후에 태어나서는 딸이 되고, 딸이 목숨을 마친 후에 도로 그의 어머니가 되며, 아버지가 죽어서 아들이 되고, 아들이 도로 아버지가 되는 것」을 보는데, 그들은 부모가 결정적인 것이 아님을 보고 이와 같은 생각을 한다.
즉 「세상에는 일정한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다」도 한다.
혹 다시 「사람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마치면, 그로 말미암아 혹 무상(無想)에 태어나며, 혹 무색(無色)에 태어나며, 혹은 열반에 들기 때문에 그의 태어난 곳을 찾아 보아도 능히 볼 수가 없게 되는 것을 보고, 그들은 이러한 생각을 한다.」
즉 「결정코 변화하여 태어나는 중생이 없다」고 하나니, 그의 처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은 자신에 대해서 아라한이라 여겨 뛰어난 체하는 마음을 일으키다가 목숨이 마칠 때를 당하여 스스로 태어날 모양을 보고서는, 그들은 이러한 생각을 한다.
즉 「세상에는 일정한 참 아라한이 없다」고 하여 그와 같이 널리 말한다.
【문】 다시 무슨 인연 때문에 혹 이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이와 같은 논리를 세우되, 「온갖 모든 법의 모양이 없다」고 하는가?
【답】 여래께서 말씀하신 매우 깊은 경중에 비슷하면서 매우 깊어 말을 초월한 법이 있는데, 그에 대해서 능히 실다히 바르게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는 내세운 법의 모야에 대해서 도리와 같이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했다는 소견을 일으킴이니, 그리하여 그들은 이러한 생각을 한다. 즉 「결정코 모든 법의 자체와 모양은 없다」고 한다.
지금에 응당 그들에게 물으리라.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태어남에 받는 바 업이 있거나, 그 후에 받는 바 업이 있는가,
모두가 다 태어남에 받는 바가 되는가?
만일 함께 모두 있다면, 그대들이 앞에서 말한 바,
「베풀어 줄 것도 없고 사랑하여 기를 것도 없고 제사할 것도 없으며,
착한 행위도 없고 악한 행위도 없으며,
착한 행위와 악한 행위의 모든 업이 달리 성숙됨도 없으며,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그 후에 받는 바가 없다」고 말한다면, 온갖 깨끗함과 깨끗함이 아닌 가지 가지 행위와 업을 지은 것으로 그가 목숨을 마치면 저 태어날 때에 온갖 깨끗함과 깨끗함 아닌 온갖 업이 달리 성숙되는 것을 일시에 받게 된다고 함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릇 저 태장(胎藏)으로부터 생기거나 저 종자로부터 생기는 그것들을 이에 있어서 부모라고 보는가, 부모 아니라고 보는가?
만일 그것을 부모라고 본다면, 그대들이 말한,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다」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그것을 부모 아니라고 말한다면, 저 태장과 저 종자로부터 생긴 것인데, 「아버지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라」고 말함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어느 때 부모가 되었으면, 그 때에는 자녀가 아니요, 만일 어느 때 자녀가 되었으면, 그 때에는 부모가 아니니, 결정됨이 아니라는 허물이 없다.
또,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곳에서 생을 받아 태어나는 중생(衆生)을 천안(天眼)으로 보지 못하면, 없는 것인가, 있는 것인가?
만약 있다고 말한다면, 그대들이 화생(化生)으로 태어나는 중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 도리에 맞지 않는다.
반대로 없다고 말한다면 상욕(想欲)을 떠난 자, 색욕(色欲)을 떠난 자, 삼계욕(三界欲)을 떠난자가 없다고 하는 것이니,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라한이 있는데 그 성품은 그것에 대하여 뛰어난 체하는 마음을 일으키는가, 있지 않다고 하는가?
만일 있다고 말한다면, 그대들이 「세상에 반드시 참 아라한이 결코 없다는 것이」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없다고 말한다면, 만일 바르지 못한 생각을 일으켜서 뒤바뀌어 「자기가 바로 아라한이라」 하였다면, 이도 역시 「참 아라한이라」고 함이니,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 응당 그들에게 물으리라.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성실성(圓成實性)의 법과 성기타의(性起他依)의 법과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의 법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만일 있다고 말한다면, 그대들이 「온갖 모든 법의 자체와 모양이 없다」고 말함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없다고 말한다면, 응당 뒤바뀌어 집착하는 바가 없을 것이며, 또한 잡염(雜染)도 없고 청정(淸淨)함도 없으리니 그도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와 같이 내어난 후에 받는 바이기 때문이며,
결정 아님이 아니기 때문이며,
태어나는 곳이 있기 때문이며,
뛰어난 체 함이 있기 때문이며,
세 가지 모양 따위가 있기 때문에 도리에 맞지 않나니,
그러므로 그런 논리는 이치에 합하는 말이 아니다.
14) 최승을 망령되게 계탁하는 이론
괜히 가장 수승하다고 여기는 논리란,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이 이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이와 같은 논리를 세운다.
즉 「바라문이 바로 가장 수승한 종족이요, 크사트리야(刹帝利) 따위는 바로 하열(下劣)한 종족이며, 바라문은 바로 백색(白色)의 종족이요, 그 밖의 종족은 바로 흑색(黑色)의 종족이며, 바라문의 종족만이 청정할 수 있고 그 밖의 종족은 그렇지 못하다.
모든 바라문은 바로 범왕(梵王)의 아들로서 그의 배와 입에서 나왔으니 범왕에게서 나온 바요, 범왕에게서 변화한 바요, 범왕의 몸에서 나온 아들이라」고 함이니,
말하자면 투쟁하는 겁(劫)에 모든 바라문들이 그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문】 무슨 인연 때문에 모든 바라문들이 그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그와 같은 논리를 세웠는가?
【답】 교리와 이치로 말미암아서이니 교리에 관해서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치라 함은, 어떤 이가 성품 됨이 찾아 생각하고, 성품 됨이 관찰함이니 널리 말하자면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세상에서 참 바라문은 그 성질이 계율을 갖춘 것임을 보았기 때문이며,
또는 명예와 이익과 존경함을 탐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에 응당 그들에게 묻겠다.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딴 종족만 어머니로부터 탄생하는가, 바라문도 역시 그러하는가?
만일 딴 종족만이 어머니로부터 탄생한다고 말한다면, 지금 세상의 모든 바라문들도 어머니로부터 탄생하는 것을 보고 있는 사실인데, 그대들이 현실의 일을 비방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바라문들도 역시 그러하다면, 그대들이 먼저 말한바 「바라문들이 바로 가장 수승한 종족이요 크샤트리야 따위들은 바로 하열한 종족이라고 함」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어머니로부터 탄생하여 그와 같이 착하지 않은 업을 짓고 착한 업을 지으며,
몸과 말과 뜻의 나쁜 행위를 짓고, 몸과 말과 뜻의 착한 행위를 지어,
현재의 법에서 좋지 못한 과보를 받기도 하고 좋은 과보를 받기도 하며,
저 후생에 나쁜 갈래에 나기도 하고 좋은 갈래에 나기도 하여,
만일 3처(處)가 앞에 나타나면 바로 저것이기도 하고 바로 이것이기도 하며,
저것으로 말미암기도 하고 이것은 말미암기도 하여,
어머니의 태중에 들고 그로부터 탄생한다.
세상의 공교처(工巧處)이기도 하고 작업처(作業處)이기도 하며,
착하기도 하고 착하지 못하기도 하며,
왕이 되기도 하고 신하가 되기도 하며,
민첩하기도 하고 증가하고 전진하여 만족하기도 하며,
왕에게 잘 보이어 시중을 들기도 하고 잘 보이지 않기도 하며,
늙거나 병들거나 죽는 법이기도 하고, 늙거나 병들거나 죽는 법이 아니기도 하며,
범주(梵住)를 닦아서 범천(梵天)에 나기도 하고, 또는 그렇지 못하기도 하며,
보리분법(菩提分法)을 닦기도 하고 닦아 익히지 못하기도 하며,
성문(聲聞)의 보리(菩提)와 독각(獨覺)의 보리와 위없는 보리를 깨닫기도 하고, 또는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또,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승한 종족으로부터 탄생함인 그것을 수승함이라고 이름하는가, 계행과 학식따위로 말미암아 수승하다고 하는가?
만일 수승한 종족으로부터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대들의 학설에서 말하기를,
「제사하는 그중에 있어서, 만일 학식이 수승하거나 계행이 수승하면 그를 취하여 표준을 삼아야 한다」고 한, 그 말은 응당 이치에 맞지 않을 것이다.
만일 계행과 학식 따위로 말미암아서라고 한다면, 그대들이 앞에서 말한 바,
「바라문들이 바로 가장 수승한 종족이요 그 밖의 종족은 바로 하열하다」고 함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와 같이 어머니로부터 탄생하였기 때문이며,
업을 짓는 것이기 때문이며,
받아 태어나기 때문이며,
공교처와 작업처이기 때문이며,
뛰어나기 때문이며,
왕에게 잘 보임이기 때문이며,
범주를 닦음이기 때문이며,
보리분법을 닦기 때문이며,
보리를 증득함이기 때문이며,
계행과 학식이 수승함이기 때문에, 도리에 맞지 않나니,
그러므로 그런 논리는 이치에 합하는 말이 아니다.
15) 청정을 망령되게 계탁하는 이론
괜히 청정하다고 여기는 논리란,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이 이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이와 같은 논리를 세우되,
「만일 내가 해탈하여 마음이 자재로움을 얻게 되고 유가(瑜伽)에 자재롭게 되면 청정이라고 이름한다.
말하자면 모든 하늘 사람들은 미묘한 5욕(欲)에 굳게 집착되고 휘말리어 유희하고 즐기는 것을 맘대로 수용하나니, 그를 현법(現法)에 있어서 열반의 제일 청정함이라 이름한다」고 한다.
또, 「만일에 욕심과 악과 좋지 못한 법을 떠나서 처음 정려[初靜慮=初禪]에 완전히 머무름을 얻으며 나아가서는 제4 정려에 완전히 머무름을 얻게 되면, 그를 또한 현법(現法)에 있어서 열반의 제일 청정함이라 이름한다」고 한다.
다시 어떤 외도는 이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이와 같은 논리를 세우되,
「만일 어느 중생이라고 손타리가(孫陀利迦) 강물에서 몸을 씻고 목욕하면, 있었던 죄와 업장이 모두 없어지는 것이 손타리가 강과 같을 것이며,
그와 같아서 바호타(婆胡陀) 강과 가야(伽耶) 강과 살라살벌저(薩羅薩伐底) 강과 긍가(殑伽) 강에서 몸을 씻고 목욕을 하면 있었던 죄와 업장이 모두 없어짐이 제일 청정함」이라고 한다.
다시 어떤 외도는 구계(狗戒) 지니는 것을 청정으로 여기기도 하고,
혹 우계(牛戒)를 지니며,
혹 유묵계(油墨戒)를 지니며,
혹 노형계(露形戒)를 지니며,
혹 회계(灰戒)를 지니며,
혹 자고계(自苦戒)를 지니며,
혹 분예계(糞穢戒) 지니는 따위로 청정이 된다고 여기며, 현법의 열반이라고 말하며,
그리고 외도들이 물 따위를 청정하다고 말하여 외도들이 그와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다.
【문】 무슨 인연 때문에 그들은 그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그와 같은 논리를 세우는가?
【답】 교리와 이치로 말미암아서이니 교리에 관해서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치라 함은, 어떤 이가 성품 됨이 찾아 생각하고, 성품 됨이 관찰함이니, 자세히 말하자면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들은, 「온갖 방종에 자재하고 욕심이 자재하고 유가에 자재하게 되는 것을 수승한 청정이라 이름한다」고 한다.
그러나 방종과 자재 따위의 모양을 실다히 알지 못한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스스로 몸을 괴롭힘」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스스로 악하게 하는 해탈이며,
혹 허물과 악을 짓기 때문에 허물과 악(惡)인 해탈이다.
지금에 응당 그들에게 물으리니,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온갖 미묘한 5욕(欲)에 유희하고 낙을 누리는 것이 욕심ㆍ탐욕을 떠난 것이라 하는가,
욕심ㆍ탐욕을 떠나지 못한 것이라 하는가?
만일 탐욕을 떠난 것이라면 세사의 5욕에 유희하고 낙을 누리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탐욕을 떠나지 못한 것이라면, 해탈ㆍ청정이라고 여기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처음 정려를 얻으며 나아가서는 제4 정려에 완전히 머무르는 그는 온갖 탐욕을 이미 떠난 것이 되는가, 아직 떠나지 못한 것이 되는가?
만일 온갖 탐욕을 이미 떠난 것이라고 말한다면, 다만 나아가서는 제4 정려에만 완전히 머무름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온갖 탐욕을 아직 떠나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완전한 해탈ㆍ청정이라고 여기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안이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청정이라고 하는가,
바깥이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청정이라고 하는가?
만일 안으로 말미암아서라고 한다면, 강물에서 목욕하면 청정함을 얻게 된다고 여기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바깥으로 말미암아서라고 한다면, 안으로는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 따위의 온갖 더러운 때를 가지고 있는데, 다만 바깥의 때 없애는 것만을 완전한 청정이라고 여기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깨끗한 물건을 지니므로 청정을 얻게 되는가,
청정하지 못한 물건을 지니므로 청정을 얻게 되는가?
만일 깨끗한 물건을 지니므로 말미암아 청정을 얻게 된다면, 세상에서 모두들 개[狗] 따위를 부정하다고 인증하는데,
그대들이 「개 따위의 계(戒)를 지니므로 청정을 얻게 된다」고 여기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지니므로 청정을 얻게 된다면, 그 자체가 깨끗하지 못하면서 능히 딴 것을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또,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 따위의 계를 지니는 것은 몸 따위의 사뙤고 악한 행위를 행하기 때문에 청정을 얻는 것인가,
몸 따위의 바르고 착한 행위를 행하기 때문에 청정을 얻은 것인가?
만일 사뙤고 악한 행위를 행함으로 말미암아서라고 하다면, 사뙤고 악한 행위를 행하면서 청정이라고 여기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바르고 착한 행위를 행함으로 말미암는다고 한다면, 개 따위의 계를 지니는 것은 한갓 부질없는 짓이거늘 그대들이 그것으로 능히 청정을 얻는다고 여기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와 같이 욕심을 떠남과 욕심을 떠나지 못함이기 때문이며,
깨끗한 물건을 지님과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지님 때문이며,
삿된 행위와 바른 행위이기 때문에, 도리에 맞지 않나니,
그러므로 그런 논리는 이치에 합하는 일이 아니다.
16) 길상을 망령되게 계탁하는 이론
괜히 길상(吉祥)이라고 여기는 논리란,
어떤 사문과 바라문들이 이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이와 같은 이론을 세우되,
「만일 세상에 해와 달이 일식 월식을 하거나, 별들이 도수를 잃게 되면, 하고자 하는 일들을 모두 성취하지 못하거니와, 만일 그를 따르고 순종하면 하고자 하는 일들을 모두 성취할 것이다.
그러한 뜻에서 해와 달과 별들에게 부지런히 공양을 올리며,
불[火]에게 제사하고 주문을 외우며 띄풀을 설치하여 두고 독에는 비라과(毘羅果)와 향카(餉佉) 따위를 가득 담아 둘 것」이라고 하나니,
말하자면 역산(曆算)을 하는 이들이 그와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다.
【문】 무슨 인연 때문에 그들이 그와 같은 소견을 일으키고 그와 같은 논리를 세우는가?
【답】 교리와 이치로 말미암아서이니 교리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치라 함은 어떤 이가 성품 됨이 찾아 생각하고 성품됨이 관찰함이니 널리 말하면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들이 세간의 선정(禪定)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서는 그들 모두가 아라한이라고 말하여,
만일 자신의 부귀와 쾌락과 빌어서 성취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곧 와서 묻는다.
그러나 그는 업과(業果)와 상응하여 인연으로 생기는 도리를 실다히 알지 못하고,
다만 세상의 해와 달이 일식ㆍ월식하는 것과 별들의 도수와 운행하는 시기만을 볼 뿐이며,
그 때에 중생들의 깨끗한 업과 깨끗하지 못한 업으로 달리 성숙하여 성취되는 것을 그는 곧 해와 달 따위가 만든 것이라 여기며,
다시, 그런 일을 믿고 좋아하는 이를 위하여 드러내는 학설을 내세운다.
지금에 그들에게 묻겠다.
그대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상에서 흥하고 쇠하는 따위의 일이 해와 달의 일식ㆍ월식과 별들의 도수로 만들어진 것인가,
깨끗한 업과 깨끗하지 못한 업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만일 해 따위가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면, 현재에 볼 수 있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복을 짓거나 복 아닌 업을 지음에 따라 흥함과 쇠함과 괴로움과 즐거움 따위의 과보를 받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만일 깨끗한 업과 깨끗하지 못한 업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면, 그대들이 「해 따위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함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와 같이 해 따위가 만들었다는 때문이며, 깨끗한 업과 깨끗하지 못한 업으로 만들었다는 때문에 도리에 맞지 않나니, 그러므로 그런 논리는 이치에 합하는 말이 아니다.
그와 같은 열 여섯 가지 외도의 논리[異論]는 두 가지 문으로 말미암아 관찰을 일으킨 것이니,
바른 도리로 관찰함과 추리하여 관찰함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저 온갖 종류는 모두 이치에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