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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장현종론 제17권
4. 변연기품(辯緣起品)⑥
4.6. 공간과 시간의 단위 및 세계의 주기[1]
1) 공간[色]과 시간의 단위
① 공간과 시간과 말의 극소단위
이와 같이 유선나(踰繕那) 등[의 공간적인 길이의 단위]에 근거하여 기세간과 [거기에 머무는] 유정신(身)의 크기의 차별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으며,
해[年] 등[의 시간적 길이의 단위]에 근거하여 그들의 수명의 길이에 대해서도 이미 분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가지 길이의 단위가 동일하지 않음에 대해서는 아직 설하지 않았으니, 이제 마땅히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길이의 단위] 등을 건립함에 있어 명칭에 의거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면 앞의 두 가지(즉 공간적ㆍ시간적 길이)와 명칭 즉 말[名]의 극소단위에 대해 아직 상세하게 밝히지 않았으니,
여기서 마땅히 먼저 이 세 가지의 극소단위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극미(極微)와 자(字)와 찰나(刹那)가
색(色)과 말과 시간의 최소단위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뛰어난 각혜(覺慧)로써 온갖 색을 분석하여 나아가면 하나의 극미에 이른다. 따라서 하나의 극미(極微)는 색의 최소단위가 되니, 더 이상 쪼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말과 시간을 분석하여 나아가면 하나의 글자[字]와 찰나(刹那)에 이르게 되니, 이것은 바로 말과 시간의 최소단위가 된다.13)
여기서 하나의 ‘글자’라고 하는 말은, 예컨대 도(掉,do=da, ‘베다’ ‘자르다’라는 뜻)라는 말을 설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일 찰나의 양은 『순정리론』 제32권에서 설한 바와 같다.14)
② 공간 즉 길이의 단위
이와 같이 세 가지의 극소단위의 양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그런데 앞에서 설한 두 가지 단위(유선나 등의 공간적 단위와 해 등의 시간적 단위)에는 차별이 있으니, 이제 다음으로 마땅히 유선나 등의 단위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단위는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극미(極微)와 미(微)와, 금(金)ㆍ수(水)ㆍ
토(兎)ㆍ양(羊)ㆍ우(牛)ㆍ극유진(隙遊塵)과
기(蟣)와 슬(虱)과 맥(麥)과 지절(指節)이 있어
뒤로 갈수록 그 양은 일곱 배씩 증가한다.
나아가 24지(指)는 1주(肘)이며
4주는 1궁(弓)의 양이 되며
5백 궁은 1구로사(俱盧舍)이니
이것의 여덟 배가 1유선나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극미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의 지절(支節)에 이르기까지 뒤의 것일수록 일곱 배씩 증가함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7극미를 1미(微)라 하고,
‘미’가 일곱 쌓인 것을 1금진(金塵)이라고 하며,
금진이 일곱 쌓인 것을 수진(水塵)이라고 하며,
수진이 일곱 쌓인 것을 1토모진(兎毛塵)이라고 하며,
토모진이 일곱 쌓인 것을 1양모진(羊毛塵)이라고 하며,
양모진이 일곱 쌓인 것을 1우모진(牛毛塵)이라고 하며,
우모진이 일곱 쌓인 것을 극유진(隙遊塵)이라고 한다. 또한
7극유진을 기(蟣)라고 하며,
7기를 1슬(虱)이라고 하며,
7슬을 1광맥(穬麥)이라고 하며,
7광맥을 1지절(指節)이라고 한다.
그리고 3지절을 1지(指)라고 하니,15)
이는 세간의 상식적인 사실로서, 그래서 본송 중에서도 별도로 분별하지 않은 것이다.
나아가 24지가 옆으로 펼쳐져 있는 것을 1주(肘)라고 하며,
4주가 가로로 쌓여있는 것을 1궁(弓)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로 ‘심(尋)’을 말한다.16)
다시 가로로 5백 궁이 쌓여있는 것을 1구로사(俱盧舍)라고 하는데,
비나야(毘奈耶)에서는 말하기를,
“이는 바로 마을로부터 아란야(阿練若)에 이르기까지의 중간정도의 길의 길이(다시 말해 일반적인 길의 길이)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8구로사를 설하여 1유선나라고 한다.17)
극미가 점차 적집(積集)하여 ‘미’가 되고, 내지는 1유선나가 된다는 사실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②-1 극미의 실유 논증
그런데 극미에는 간략히 두 종류가 있다고 인정하니,
첫째는 실제적[實] 극미이며, 두 번째는 가설적[假] 극미이다.
그러한 극미의 상(相)은 어떠한가?
실제적 극미란, 말하자면 색 등의 자상(自相,즉 變礙)을 지극히 잘 성취하는 것으로, 화집(和集)의 상태에서 현량(現量,즉 지각)에 의해 획득된다.
그리고 가설적 극미는 분석에 따른 것으로 비량(比量,즉 추리)에 의해 알려진다. 즉 취색(聚色, 극미가 화집한 구체적인 물질)이 각혜(覺慧)로써(다시 말해 관념적으로) 더욱 분석되어 가장 작은 상태에 이른 것을 말하는 것으로―그런 후에 이에 대해 색(色)ㆍ성(聲) 등의 극미의 차별을 분별하게 된다―, 이렇게 분석되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극소에] 이르게 된 것을 가설적 극미라고 이름하니, 각혜로 하여금 살펴 생각[尋思]하여 지극한 기쁨을 낳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극미는 미세함이 지극하기 때문에 ‘극미’라고 이름하였다. 즉
‘극’이란 색을 분석하여 구경(究竟)에 이르렀다는 말이며,
‘미’란 오로지 지혜의 눈[慧眼]에 의해서만 인식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극미라고 하는 말은 ‘미세함이 지극하다[微極]’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무엇에 근거하여 극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된 것인가?
『아급마(阿笈摩)』와 정리(正理)에 근거하여 알게 되었다.
먼저 『아급마』에 근거하였다고 함은, 이를테면 계경에서
“존재하는 온갖 색으로서 혹은 미세하거나 혹은 거칠거나……”라고 설한 것을 말한다.18)
즉 여기서 ‘미세한 것’이란 극미를 말하니,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밖의 유대색(有對色)을 설하여 ‘거친 것’이라고 이름하였던 것이다.
또한 가타(伽他)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검고 흰 등의 온갖 색에는
모두 미세한 것[細]도 있고, 거친 것[麤]도 있으니
‘미세한 것’이란 가장 작은 색[微]을 말하며
‘거친 것’이란 그 밖의 유대색(有對色)을 말한다.
이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실로 극미는 결정코 존재하는 것임이 입증되는 것이다.
또한 비나야에서도 이와 같이
“일곱 극미가 모인 것을 1미(微) 등이라 한다”고 설하였으니,
이와 같은 논의를 교증(敎證,『아급마』에 의한 논증)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증(理證)은 어떠한가?
이를테면 적집된 유정신(有情身)의 색과 같은 것은 색의 구경(究竟, 즉 육신의 散壞)에 이르게 되면 [미세한 것 중] 양을 갖는 가장 거친 것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사실에 준하여 역시 마땅히 모든 색을 분석하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구경처가 있을 것인데, 이것을 1극미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어떻게 그러함을 알게 된 것인가?
쪼갤 수 있는 법[可析法,즉 연장을 갖는 색법]을 쪼개어 궁극에 이르게 되더라도 그 밖의 어떤 것이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세간에서 바로 관찰하건대, 어떤 취색(聚色)으로써 다른 어떤 취색을 쪼개면 미세한 취색[細聚]이 생겨나고, 그것을 다시 쪼개고 또 쪼개어 궁극에 이르게 되면 여분의 어떤 것이 존재하지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미세한] 취색은 능히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는 더 이상] 쪼갤 수 없을지라도 역시 또한 거친 취색[麤聚]과 마찬가지로 쪼개질 수 있으니, 이를테면 그것은 바로 각혜(覺慧)로써 분석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취색으로써 취색을 분석하여 궁극에 이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혜로써 분석하여 궁극에 이르게 되더라도 마땅히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이 존재하겠지만, 각혜로 관찰할 수 있는 것으로는 더 이상 쪼갤 수 없을 것이니,
이렇게 하여 남아있는 것이 바로 극미이다.19)
그러므로 극미는 그 자체 결정코 존재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취색(聚色, 구체적인 색)도 마땅히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취색은 필시 이것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유선나 등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③ 시간의 단위
이제 마땅히 해[年] 등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의 단위는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백2십 찰나는
1달찰나(怛刹那)의 양이 되며
1납박(臘縛)은 그것의 60배이고
이것의 30배가 1수유(須臾)이다.
수유의 30배가 하루 밤낮이고
30번의 밤낮이 한 달[月]이며
12달을 일 년이라고 하니
그 중의 반은 밤이 짧아지는 달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1찰나(kṣaṇa)의 120배를 1달찰나(怛刹那,tatkṣaṇa)라고 하며,
60달찰나를 1납박(臘縛,lava)이라고 하며,
30납박을 1모호율다(牟呼栗多,muhūrta,須臾)라고 하며,
30모호율다를 하루 밤낮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밤과 낮은 어떤 때에는 길어지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짧아지기도 하며, 또 어떤 때에는 같아지기도 한다.20)
또한 30번의 밤과 낮을 한 달이라고 하며, 12달을 일 년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 년은 세 계절[三際]로 나누어지니, 이를테면 추운 계절[寒際]과 더운 계절[熱際]과 비 오는 계절[雨際]의 각기 4개월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12개월 가운데 6개월은 밤[낮]이 감해지니, 그래서 일 년에 모두 여섯 번의 밤[낮]이 감해진다.21)
이와 같이 찰나로부터 일 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의 단위]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2) 괴(壞)ㆍ성(成)ㆍ중(中)ㆍ대(大)의 4겁(劫)
이제 다음으로 겁(劫)의 단위 역시 동일하지 않음에 대해 마땅히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4겁(劫)이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괴(壞)ㆍ성(成)ㆍ중(中)ㆍ대겁(大劫)이 바로 그것이다.
괴겁은 지옥의 유정이 [다시] 태어나지 않는 때로부터
외적인 기세간이 모두 다할 때까지의 기간이며
성겁은 바람[風]이 일어나는 때로부터
지옥의 유정이 최초로 태어나기까지의 기간이다.
중겁은 수명의 양이 헤아릴 수 없는 때로부터
감소하여 단지 10세에 이르고
다시 증가와 감소가 열여덟 번 있고 나서
최후로 증가하여 8만 세에 이르는 기간으로
이와 같이 이루어져 머무는 주겁(住劫)을
일컬어 중(中)의 20겁이라고 한다.
성겁과 괴겁, 그리고 허물어져 허공이 되는
시간(즉 空劫)의 길이는 모두 주겁과 동일하니
이러한 80중겁을 대겁(大劫)이라고 하는데
대겁이란 3무수(無數)의 겁이다.
① 괴겁(壞劫)
논하여 말하겠다.
괴겁(壞劫)이라고 하는 말은, 이를테면 지옥에 유정이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때로부터 외적인 기세간이 모두 멸진하는 때까지의 기간을 말한다.22)
여기서 ‘괴(壞)’ 즉 허물어지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5취가 허물어지는 것[趣壞]이고,
둘째는 세계가 허물어지는 것[界壞]이다.
혹은 다시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유정이 허물어지는 것[有情壞]이고,
둘째는 외적인 기세간이 허물어지는 것[外器壞]이다.
그런데 허물어지고 이루어지는 것은 전체적으로 네 품류로 나누어지는데,
첫째는 바로 허물어지는 겁(즉 壞劫)이며,
둘째는 허물어지고 나서 허공이 되는 겁(空劫)이며,
셋째는 바로 이루어지는 겁(成劫)이며,
넷째는 이루어지고 나서 지속하는 겁(住劫)이다.
여기서 ‘바로 허물어지는 겁’이라고 하는 말은,
이를테면 이 세간이 20중겁(中劫)의 주겁(住劫)을 지나고 나면, 이에 따라 다시 주(住)의 20중겁과 같은 시간의 괴겁에 이르게 되는 것을 말한다.
괴겁이 장차 일어나려고 할 때, 이 주(洲, 즉 남섬부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명의 양은 8만 세인데,23) 만약 그때 지옥의 유정들이 목숨을 마치고 다시 새로이 태어나는 일이 없으면, 이를 괴겁의 시작이라고 하며, 내지는 그리하여 지옥에 어떠한 유정도 존재하지 않게 되면, 그때를 일컬어 ‘지옥이 이미 허물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온갖 유정으로서 결정코 지옥의 과보를 받아야 할 업이 있는 자라면, 그러한 업력에 인기되어 타방(他方)의 지옥 중에 처하게 될 것이다.24)
방생과 아귀의 경우도 이러한 사실에 준하여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부처의 몸처럼 인간의 몸에도 더 이상 온갖 벌레들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니, 방생이 이미 괴멸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설하기를,
“두 취(趣, 즉 방생과 아귀)로서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은 사람들과 함께 괴멸하지만, 그 밖의 것은 먼저 괴멸한다”고 하였지만,25)
이와 같은 두 가지 설 중에서 앞의 설이 뛰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만약 그때 인취(人趣)로서 이 주(洲)의 어떤 한 사람이 스승도 없이 저절로[法然] 초정려를 획득하고, 정려로부터 일어나 노래하기를
“이러한 이생희락(離生喜樂, 이는 초정려의 특질임)은 참으로 즐겁고 매우 고요하다”고 말하면,
그 밖의 다른 사람들도 이를 듣고 나서 모두 다 정려에 들며, 아울러 목숨을 마치고 난 후에는 범세(梵世, 초정려의 범중ㆍ범보ㆍ대범천) 중에 태어날 수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주(洲)의 유정들이 모두 멸진하게 되면, 이를 일컬어 바로 ‘남섬부주의 사람들이 이미 허물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ㆍ서의 두 주의 경우도 마땅히 이에 준하여 널리 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구로주의 사람들은 목숨을 다하고 나서 욕계천에 태어나게 되니, 그들은 둔근(鈍根)이어서 이욕(離欲)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욕계천에 태어나서야 정려가 현전하여 더욱 뛰어난 소의[勝依]를 획득하게 되니, 이때 비로소 능히 이욕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인취에 어떠한 유정도 존재하지 않게 될 때, 이때를 일컬어 ‘인취가 이미 허물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만약 그때 천취(天趣)로서 욕계 6천 중의 어느 하나가 저절로 초정려를 획득하고, ―[정려로부터 일어나
“이러한 이생희락은 참으로 즐겁고 매우 고요하도다”라고 노래하면,
그 밖의 다른 천들도 이를 듣고 나서 모두 다 정려에 들며, 아울러 목숨을 마치고 난 후에는] 범세 중에 태어날 수 있는데,
이때를 일컬어 바로 ‘욕계천이 이미 허물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욕계에 어떠한 유정도 존재하지 않게 되면, 이를 일컬어 ‘욕계 중의 유정이 이미 허물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그때 범세(梵世) 중의 어떤 한 유정이 스승도 없이 저절로 제2정려를 획득하고, 그러한 정려로부터 일어나 노래하기를,
“이러한 정생희락(定生喜樂, 이는 제2정려의 특질임)은 참으로 즐겁고 매우 고요하도다”라고 말하면,
그 밖의 다른 천들도 이를 듣고 나서 모두 다 그러한 정려에 들며, 아울러 목숨을 마치고 난 후에는 극광정천에서의 생을 획득하는데, [이때를 일컬어 바로 ‘범세의 유정이 이미 허물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하여 범세 중의 유정이 모두 멸진하게 되면, 이와 같은 때를 일컬어 ‘유정세간이 이미 허물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에는 오로지 기세간만이 텅 비어 남아있게 된다.26)
나아가 그 밖의 다른 시방(十方) 세계에 살고 있는 일체 유정과 이러한 삼천세계(三千世界)를 초래하는 업이 다하게 되면, 이러한 삼천세계에는 점차 일곱 개의 해[日輪]가 나타난다.
그러면 온갖 바다(즉 8海)는 말라 없어져 버리고, 여러 산(9山)들은 타오르며, 4대주와 3륜(즉 금륜ㆍ수륜ㆍ풍륜)도 아울러 따라 불타오르게 된다.
그리고 바람은 맹렬히 화염을 일으켜 위의 천궁(즉 욕계 6천의 궁전)을 불태우며, 내지는 범천의 궁전도 모조리 태워버려 재도 남기지 않는다.
물론 자지(自地)의 화염은 자지의 궁전만을 불태울 뿐으로, 다른 지의 화재가 능히 그 밖의 다른 지의 궁전을 괴멸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불길이] 서로를 인기(引起)함으로 말미암아 ‘하지의 화염과 바람이 회오리쳐 상지의 궁전을 불태운다’고 말한 것일 뿐이다.
말하자면 욕계의 맹렬한 화염이 위로 치솟는 것을 연(緣)으로 삼아 색계의 화염이 인기되어 낳아지게 된 것이니, 그 밖의 다른 재앙(즉 水災와 風災)의 경우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지옥이 점차 감소하는 때로부터 시작하여 기세간이 모두 다할 때까지를 총칭하여 ‘괴겁’이라고 한다.
② 성겁(成劫)
앞에서 말한 성겁(成劫, vivarta-kalpa)이란,
이를테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 지옥에 처음으로 유정이 생겨나기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말하자면 이 세간이 재앙에 의해 파괴되고 나서부터 20중겁(中劫) 동안은 오로지 허공만이 존재할 뿐인데(즉 空劫), 이같이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마땅히 다시 주겁(住劫)의 20겁과 동등한 기간의 성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즉 일체 유정의 업의 증상력에 의해 허공 중에는 점차 미세한 바람이 생겨나게 되니, 이것이 바로 기세간이 장차 이루어지려고 하는 조짐이다. 그러다 바람이 점차 증가하여 왕성해져 앞(제16권)에서 설하였던 것처럼 풍륜ㆍ수륜ㆍ금륜 등을 성립시킨다.
그러나 처음에 대범천의 궁전 내지 야마천의 궁전을 성립시키고 그 후에 풍륜 등을 일으키는데,27) 이때를 바로 ‘외적인 기세간이 이루어지는 때’라고 한다.
외적인 기세간이 허물어지고 이루어지게 되는 것은 유정의 힘에 의한 것으로, 만약 유정류가 위의 하늘[上天]에 오래 모여 있게 되면, 이러한 기세간은 필시 마땅히 점차로 일어나게 되니, 복업(福業)이 적은 자는 하계로 흩어져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극광정천에 유정이 오래 모여 있게 되면, 천중(天衆)들이 이미 너무 많아져 거처(居處)가 핍박되므로 복업이 적은 온갖 유정들은 마땅히 하계의 거처로 흩어져야 하는데, 그러한 [하계의] 기세간은 이치상으로 마땅히 먼저 생겨나야 하기 때문이다.
즉 괴겁의 단계에서 유정은 위로 모이게 되지만, 성겁 시에는 유정들이 하계로 흩어진다. 다시 말해 죄ㆍ복의 업이 적거나 죄ㆍ복의 업이 많음에 따라 [상계에] 모이기도 하고 [하계에] 흩어지기도 하여 돌고 도는 것이니, 이치상으로도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는 것이다.
이미 이러한 기세간이 성립되었으면, 처음에 어떤 한 유정이 극광정천(제2정려 제3천)에서 몰하여 대범(大梵)의 처소인 허공의 궁전에 태어나게 되며(다시 말해 대범왕이 되며), 그 후 [그곳의] 온갖 유정들도 역시 그곳으로부터 몰하여 범보천에 태어나기도 하고, 범중천에 태어나기도 하며, 타화자재천의 궁전에 태어나기도 한다.
그리하여 점차 그 아래로 태어나 마침내 인취(人趣)인 북구로주와 서우화주와 동승신주와 남섬부주에 태어나기도 하며, 그 후에 아귀ㆍ방생ㆍ지옥으로도 태어나게 되는 것이니, 뒤에 허물어진 것일수록 반드시 먼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法爾]이다.
[그리하여] 만약 어떤 한 유정이 최초로 무간지옥에 태어나게 될 때, 바야흐로 20중겁에 걸친 ‘성겁’이 이미 완전히 이루어졌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③ 주겁(住劫)
이후 다시 20의 중겁(中劫, antara-kalpa)이 있으니, 이것을 일컬어 ‘이루어지고 나서 지속하는 겁’ 즉 주겁(住劫, sthiti-kalpa)이라고 한다.
이것은 차례차례로 일어난다.28) 이를테면 바람이 불어 기세간을 조작하면서부터 그 후 마침내 유정이 점차로 거기에 머물게 되는 것으로, 처음에 어떤 한 유정으로서 극광정천에서 몰하여 대범의 궁전에 태어나는 이들을 바로 대범왕이라고 한다.
곧 모든 대범왕은 필시 이생(異生)에 포섭되니, 성자는 하계로 환생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상 2계(색ㆍ무색계)에서는 견도(見道)에 드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말미암아 어떠한 유정도 무간에 두 번 태어나 대범왕이 되는 경우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대범왕이 최후로 목숨을 마치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설하였다.
즉 극광정천의 수명은 8대겁(大劫)이지만, 20중겁에 걸친 [범천의] 세계는 다시 이루어지는 것이다.29)
어떻게 대범왕이 극광정천에 태어나 적은 양의 목숨만을 받고, 다시 그곳으로부터 몰하는 것인가?
비록 그는 중간에 요절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광대한 복업으로 인해 바야흐로 그러한 천(극광정천)에 태어났으며, 8대겁의 수명 가운데 처음의 일부인 20중겁을 지날 무렵에 바로 목숨을 마치게 된다.
이 같은 사실로 살펴보건대, 다른 어떤 곳으로부터 와서 이곳에 태어난 이 주(남섬부주)의 사람들 수명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거쳤으며, 주겁이 시작할 때에 이르러 수명은 바야흐로 점차 줄어들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무량(無量)의 수명으로부터 마침내 10세에 이르게 되는 것을 일컬어 첫 번째 주(住)의 중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후 열여덟 번의 중겁에는 모두 증가와 감소가 있다.
이를테면 10세의 수명으로부터 증가하여 8만에 이르고, 다시 8만으로부터 감소하여 10세에 이르게 되니, 이것을 일컬어 두 번째 중겁이라고 하며,
이후 열일곱 번의 중겁도 모두 이와 같다.
그리고 이러한 열여덟 번의 증가와 감소가 있은 후에 10세로부터 증가하여 마침내 8만 세에 이르게 되는 것을 일컬어 스무 번째 중겁이라고 한다.
이러한 일체의 주겁에서 [수명의] 증가는 8만 세를 넘는 일이 없으며, 일체의 주겁에서 [수명의] 감소도 오로지 10세가 그 한도이다.
그리고 열여덟 번의 중겁 중에 한번 증가하고 한번 감소하는 시간은 바야흐로 처음 감소할 때(즉 제1중겁)나 최후로 증가할 때(즉 제20중겁)와 동일하다.
따라서 20중겁이라고 하는 시간의 양은 모두 동일한데, 이 같은 20중겁을 총칭하여 ‘이루어지고 나서 지속하는 겁’ 즉 주겁(住劫)이라고 하는 것이다.
④ 대겁(大劫)과 ‘겁’의 본질
그 밖의 성겁과 괴겁과, 허물어지고 나서 허공이 되는 겁 즉 공겁(空劫)은 비록 스무 번씩 감소하고 증가하는 차별은 없을지라도 시간의 길이는 주겁과 동일하기 때문에, 주겁에 준하여 각기 20중겁을 성취한다.
즉 성겁 가운데 최초의 중겁에 기세간이 일어나며, 그 뒤의 19중겁 중에서는 유정이 점차적으로 생겨나 머물게 된다.
또한 괴겁 가운데 최후의 중겁에서는 기세간을 괴멸하며, 앞의 19중겁 중에서는 유정이 [하지에서부터] 점차 목숨을 버리게 된다.
이상에서 설한 성(成)ㆍ주(住)ㆍ괴(壞)ㆍ공(空)의 각기 20중겁을 합하면 80중겁이 되는데, 이러한 80중겁을 모두 합하면 대겁(大劫,mahā-kalpa)의 양을 성취하게 된다.
나아가 모든 겁(劫)은 오로지 5온을 본질[體]로 하니, 이를 배제한 시간 자체는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30)
그리고 경에서 설하기를,
“3겁(劫)의 아승기야(阿僧企耶, asaṁkhyeya) 동안 정진 수행하여 비로소 불과(佛果)를 획득 성취하였다”고 하였는데,31)
앞에서 설한 네 종류의 겁 가운데 대겁을 [수없이] 쌓아야 3겁의 무수(無數)를 성취할 수 있다.
이를테면 대보리(大菩提)의 종자를 처음 뿌린 때로부터 3대겁의 아승기야를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대보리의 과보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헤아릴 수 없다고 하였으면서 어찌 다시 ‘3’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여 말하였다.
“계산에 능숙한 모든 이들은 산계론(算計論)으로 계산하여 수의 궁극에 이르는데, 처음의 한번으로 능히 알지 못하는 것을 1무수라고 하며, 이와 같은 ‘무수’를 세 번 되풀이한 것이 바로 3무수이다.”
또 다른 이는 다시 [이 같이] 해석하였다.
“60수(數) 중의 별도의 하나의 수의 단위가 있으니, 그것을 ‘무수’라는 명칭으로 설정하였다. 이를테면 어떤 경(經) 중에서는 60수를 설하고 있는데, 여기서 ‘무수’라고 하는 말은 그 중의 한 명칭이다.32)
그리고 이것을 세 번 더한 것을 3무수라고 이름한 것이니, 이는 온갖 산계론으로 능히 헤아려 알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보살은 바로 이러한 3무수겁을 거친 다음 비로소 무상(無上)의 보리를 증득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겁의 양적인 차별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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