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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참수행의 핵심, '37보리분법'에 대하여 –6편-
[일러두기]
1. 스크립트를 문장 단위로 정리한 것입니다.
2. 주제를 고려하여 목차를 붙였습니다.
실참수행의 핵심, '37보리분법'에 대하여 –6편-, 7각지, 희각지ㆍ경안각지ㆍ정각지
[기쁨, 의각지]
어떨 때 여러분들은 기쁩니까?
언제 가장 기뻐요?
보통 일상적으로 예를 들면 누가 나에게 집을 한지 사줬다 그건 많이 기쁘겠죠.
근데 집을 사주면 기쁘기는 한데 그 안에 또 채워 열도 걱정도 해야 됩니다.
그리고 뭐 만약에 그 집이 있으면 나중에 또 자식들한테 재산 상속할 때 또 다툼이 있지 않을지부터 집을 뭐 이렇게 쪼가리를 낼 수도 없고 그런 것도 생길 수 있고 그렇습니다.
근데 뭐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런 재물이나 명예나 이런 것들이 생기면 참 좋아하는 합니다.
근데 출간 스님들은 어떨 때 기쁠까?
도의 경제 올려 버리면 기쁨이 없습니다.
그 전에 기쁨이 수행이 잘 될 때 열심히 사띠가 잘 되고 갈 때 되게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1시간 앉아 있었는데 언제 1시간이 지난지 모르겠어요.
훌쩍 지나버렸는데 그렇다고 내가 사띠를 놓친 것도 아니거든 대상을 놓치지 않았으니까 대상을 안 놓쳤다는 걸 모르고 내가 알아요.
아니면 뭐 다른 대상입니다.
그 대상을 알아차렸는데 그런 사이에 잡생각이라든지 망상 이런 것들이 전혀 없이 깨끗하게 그 대상을 알아차리겠어요?
그럴 때는 되게 기쁩니다.
쉽게 말하면 수행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불러도 내가 모를 정도가 됐다, 그럼 더 없이 기쁘겠죠.
밖에 자극이나 있는데 전 신경이 안 가고 대상이면 몰입해서 그것만 알아차렸으니까 부처님같이 포가 쏟아져도 모를 정도가 되면 더더욱 더 할 나이가 없을 것이고, 그래서 수행에서 대상을 잘 알아차리는 것이 연속해서 계속 이어지면 기쁨은 어느 정도 일어나십니다.
그렇죠.
왜 그렇게 연속해서 1시간을 반 시간 동안 계속할 수 있을까?
1시간 동안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얘기죠.
그리고 1시간 동안 하고 있는데 그 대상을 알아차리는게 그렇게 힘들지 않게 알아차리고 있다는 거거든요.
그리고 그 대상이 오롯하게 한 대상이든 아니면 변하는 대상이든 그걸로 치지 않고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그럴 때 보통 세속적으로 얘기하는 그런 기쁨들이 일어납니다.
쉽게 얘기하면 펌이 일어나는 각지가 되려고 할 것 같으면은 앞에서 얘기했던 세 가지 사띠, 그 다음에 단마비짜야 그 다음에 위리야라고 하는 이 세 가지가 다 일어나지 않으면 기쁨은 안 일어난다는 그 순서를 빼버리고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칠각지 자체가 깨달음은 아니다. 하는 얘기를 했습니다.
진검 다리인 거죠.
징검다리와 같은 근데 이제 이렇게 기쁨의 상태가 되고 나면 그 기쁨으로 인해서 더욱더 수행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수행을 하다 보니까 분명하게 이게 몸무게 현상이고 이게 마음의 현상이고 하는 것들을 구분을 하게끔 그러니까 더욱더 힘이 나서 다시 삭제하는 것들이 끊어짐이 없이 되는 수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각지가 1번부터 3번까지의 연속해서 일어나 가지고네 번째까지 왔다가도 또 다시 3번 2번 2번으로 순차적으로 내려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계속이 기쁨이 일어나는 것들을 경험을 하게끔 해줍니다.
근데 아까 집안치 얘기했죠.
근데 누군가가 집안체가 아니라 근무를 통째로 줬다, 그럼 기쁨이 두 배가 되겠죠.
기쁨도 과연 그럴까이 기쁨 각지가 아니에요.
똑같아요?
다르겠죠.
기쁨 같지도 그래서 종류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보통 경전에는 새 분류로 나누기도 하고 든든 내분류로 나누기도 하고 아니면 각각의 또 분류 중에서도 또 따로 또 분류를 나누기도 합니다.
근데 수행을 했다고 치고 처음에는 수행하다 보면 어떤 기쁨들이 있을까?
대상을 정확하게 잘 알아차리고 있으면 몸이 약간 떨립니다.
대부분 보면 그래서 뭐랄까, 대상을 분명히 알아차리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몸이 이렇게 약간 이렇게 막 움직입니다.
근데 본인은 그 몸이 그렇게 움직이는지를 잘 몰라요 근데 대상을 놓치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대상 놓치지 않고 잘 알아차리고 있는 거야 몸이 약한 움직이는 거예요.
근데 몸이 움직이다가도 그게 이제 강도가 세지면 어떻게 돼요 혹시 수영할 때 그런 것을 한번 봤어요 주체를 못할 정도로 막 움직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 그게 툭 끊어져 버립니다.
갱 안으로 넘어가 버려졌습니다.
참 좋은데 대부분은 이제 기쁨 각지에서 기쁨이 강도만 조금 세지다가 다 끝나버리는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근데 스님이 옛날에 수행할 때를 경험을 해보면 기쁨의 각지가 일어나면 그게 멈추지를 잘 안 씁니다.
솔직히 수행을 하다 보면 그만두고 싶은데 이게 그냥 대상을 끊임없이 알아차리면 좋겠는데 알아차리고 있는데도 기쁨이 멈추질 않아 그래서 이게 경안으로 보통 못 넘어가고 끝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왜 그러면이 기쁨의 각질 정도가 돼 일어날 정도가 되면 스승도 터치를 안 하거든요.
스승한테 체크를 받으면서 어느 정도 상태인가만 자기가 스스로 이제 확 있는 하는 작업은 해야 되겠지만 스승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제는 안 합니다.
그냥 잘하고 있으니까 잘 넘겨 하는 얘기만 이제 듣게 됩니다.
그래서 참 기쁜 각지 부분이 앞에 각지하고는 조금 차이가납니다.
그래서 대부분 칠각지를 나눌 때 기쁨 각질을 주문을 해서 앞에 3개 뒤 3개로 이렇게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쁨 각질을 앞의 세계 억지로 그냥 막 대상을 붙들고 달라도 붙듯이 하는 그 영역에 속하기도 하고 또 뒤에 자동적으로 사띠가 되면서 편안하게 이렇게 넘어가지는 그 후반부에 속하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래서 그이 부분을 참 잘 넘기면 수행에서는 금방 진도가 팍 올라가는 것들을 느끼게 됩니다.
언제 가능할까?
그게 이익을 뛰어넘을 때는 언제 가능할까요?
언제일 것 같아요?
생멸을 분명하게 인식 할 생멸이 없는게 있습니까?
무조건 태어났으면 죽어야 되는 거고 일어났으면 사라져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 거부하려고 그러죠.
안쪽 올라오고 안 뺏기려고 그러고 그게 대부분입니다.
근데 수행하는 사람들은 생멸치에 이르기 위해서 사실 처음에 수행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지, 생멸치 이르렀다 그러니까 생멸치가 어느 정도 능숙해졌다 할 것 같으면 얘는 그 뒤부터는 사띠도 거의 대부분이 보면 자동으로 됩니다.
안 하고 싶어도 삿대가 되지.
그러면 다른 말로 돌릴 것 같으면 기쁨이라고 하는 값이는 일반적으로 앞에 그냥 조그맣게 일어나는 기쁨들은 기쁨의 영역에 속하지 않게끔 됩니다.
쉽게 말하면 아까 얘기했듯이 좋아하고 그러다가 건물란채 주면 더 좋아하고 하는 그거와 마찬가지로 그걸 그래서 보통 그걸 빠 못 자라고 이렇게 삐띠라고 안 하고 다 못자라고 이렇게 명칭을 따로 붙여 놨습니다.
쉽게 말하면 희열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근데 어떤 것이든 생멸을 거듭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겼다고도 사라지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건물을 주던 집을 주든 나는 그 아우는 관계없이 건물 줬으면 그에 맞게끔 더 유용하게 쓰면 되는 거고 집이면 집에 그것에 맞게끔 내가 더 유용하게 잘 사용을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어떤 걸 주더라도 관계없이 나는 그것으로 인해서 항상 만족함을 느끼고 항상 그것을 해서 기쁨이 잔잔하게 가지게 된다고 할 것 같으면 이제는 그것은 앞에 얘기하는 희열 부분이 아니라 이제 만족함으로 인해서는 기쁨의 사실은 더 큽니다. 그리고 더 넓습니다.
그걸 어떻게 비교가 되느냐 하면, 앞에 부분의 기쁨이 왔을 때는 두 가지 부분에서 기쁨이 왔을 때는 몸이 떨리기는 하긴 하는데 이게 몸이 잔잔한 데서 오는 기쁨은 없습니다.
그래서 등 경우에는 그냥 그걸 주체는 못할 상태가 되기도 하고 그렇게 되는데 그래서 기쁘기는 기쁜데 조금 뭐랄까 뭔가 좀 껄끄럽고 조금 속된 말로 세속적인 것처럼 그렇게 느끼지는 기쁨입니다.
수행에서 근데 이제 뒤에 부분에서는 어떤 것이든 생멸의 현상들을 보기 때문에 동일하게 봅니다.
그래서 만약에 집을 열어야 될 것 같으면 집에서 오늘 일이든 내일이든 그 속에서 그런 기쁨들이 항상 존재를 하게 되는 거예요.
어떤 조건이든지간에 많을 때 가지고 누가 차시하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그렇게 불편하고 하는 것들 없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반을 남한테 준 것에 대해서 기쁨을 느끼게 되지, 중고시대에서 아쉬워하다든지 하는 것은 없다는 것, 그래서 조건이 어떤 조건이 바뀌더라도 기쁨은 항상 마음속에서 계속 존재를 점점 더 깊어가는 상태가 한마디로 얘기하면 대상에 대해서 붙잡고 있느냐 붙잡지 않고 그냥 놔 버린 상태에서 대상을 보느냐의 차이입니다.
기쁨을 주차하지 못해서 탁 끝나버릴 경우에는 아직도 대상을 그 기쁘다는 현상에 붙잡혀 있는 상태야 몸이 조용하게 탁 가라앉아 버릴 건데 그걸 못한 상태가 한번 봅시다 가끔씩 그걸 못하기 때문에 스님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수행할 때 대상이 일어나면은 물론 그 대상을 분명하게 사띠를 해야 됩니다.
근데 가끔씩은 대상을 사띠하고 나서 가슴 가슴에서 느껴지는 것도 자꾸 관찰하라라는 얘기들을 합니다.
근데 이게 이 칠각지를 하다 보면이 기쁨의 각지 부분에서는 굉장히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마음이 고유하고 편안하고 가볍고 하지 않으면 뭔가 그 기쁨이 났다고 하더라도 내가 뭔가 집착하고 있는 아주 솜털같이 가볍고 부드러운 상태라든지 할 같으면 그 기쁨이 일어나더라도 그 기쁨은 내가 집착함이 없이 하고 있는 상태 그래서이 가슴을 관찰하는 것이 수행에서는 참 많이 도움을 받습니다.
만약에 가슴을 관찰하는 것들을 익숙해져 왔으면 기쁨이 아주 좋지 못할 때 그때 가슴을 관찰했으면 아마 집착하는 부분을 탁 떨어뜨리고 몸과 마음이 고요한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형태가 될 겁니다.
쉽게 예를 들면 기쁨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그 부분에 있습니다.
두 가지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몸의 기쁨과 마음의 기쁨 몸이 기쁜 것은 뭡니까 대상을 잘 관찰한 그렇게 되지는 않죠. 마음이 관여가 돼야 됩니다.
어떤 마음들이 관여가 될까 그게 대상을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려고 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어야 될 겁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알아차리는 것은 대상의 움직임이든지 대상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든지 이런 것들로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리고 기쁨이 일어났으면 그것들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들 지속적으로 따라가는 것도 틀림없이 있어야 될 겁니다.
몸이 기쁨의 현상을 맞이하는 데는 몸 하나만 존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수상행이라고 하는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해야만이 몸이 기쁨의 현상을 느끼게 됩니다.
근데 심장은 어떨까?
심장도 마찬가지로이 가슴 몸의 종류에는 해당이 됩니다.
근데 의식을 여기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탁 관찰하면은 금방 이게 이 날뛰다가도 탁 가라앉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금방 탁 가난한 느낌도 필요 없고 그것의 마음을 기울이는 의도도 필요 없고 그리고 여기서 어떤 작용들이 일어나는지 그것도 필요 없는 상태 인식만 하면 되는 그래서 마음의 기법은 인식을 분명하게 하는 것들만 연속해 주면 마음의 기쁨들은 이 몸의 기쁨들을 통제를 하게 그래서 몸의 기쁨이 있고 마음의 기쁨이 있는 상태가 되는 어떤게 먼저 일어났을까, 마음 의 기쁨이 일어나지 않으면 몸의 기쁨은 일어나질 않습니다.
이걸 사람들이 자꾸 착각을 하기 때문에 몸이 내 맘대로 움직인다고 이렇게 어떤 경우든지 몸은지 맘대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인식하는 것들이 있지 않으면 몸은 어떤 경우든지 실제로 수행을 해보면 아 이게 마음의 기쁨이구나, 이게 몸의 기쁨이라는 걸 또 구분할 수 있는데, 그게 구분이 가능하면 몸의 기쁨이 일어나지고 나서 마음이 기쁨이 일어나는구나 하는 걸 아는데, 그걸 이래야 보지 못하니까 내가 아무리 하려고 해도 곤출을 안 됩니다.
컨트롤이 안 되는 건 자기가 좋아하기 때문에 그걸 그대로 하고 있는 겁니다.
근데 왜 자꾸 착각을 하느냐는 거야.
기쁨이 깨달음이라고 할 것 같으면 그냥 그렇게 해도 됩니다.
근데 칠각지 자체는 깨달음을 다 조화롭게 일어나시고 능숙해지고 나서 그 다음에 이제 깨달음이 단계로 넘어가지는 것이 기쁨의 단계는 어떤 지혜에서 가능하다고 그랬어요 얘기했는데도 까먹어 버렸나 생멸을 기쁨의 단계는 이미 각지는 이미 개발된 상태가 된다고, 근데 생멸직위가 깨달음입니까 아직 깨달음으로 갈 때는 한참 멀었습니다.
근데 그게 좋아 가지고 거기 못 먹는다 그거 같이 어리석은게 없는 거야.
그래서 수행을 하다가 수행이 잘 될 때는 또 그래서 조심해야 될 것이 이렇게 생긴 거야.
지금 여기 기쁨부터 해가지고.
갱안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도 수행에서는 장애 요소로 작용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쁨이 일어날 때 마음이 먼저인지 몸이 먼저인지 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구분을 할 수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만이이 기쁨의 각지 다음으로 그보다도 더 평안하고 고요한 경안으로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말은 참 쉬운데 잘 안되겠죠.
근데 할 수 있습니다.
기쁨의 각지는 대상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이 없이 영어로 타이 그 대상을 편안하게 그냥 사띠를 하면은 금방 택법부터 해가지고 기쁨까지는 넘어와집니다.
그렇게 어렵지 않게끔 할 수가 있습니다.
단지 여러분들이 문제가 뭐냐면 대상을 자꾸 먼저 대상의 마음을 갖다가 다가가려고 합니다. 수행을 그렇게 하면은 오래 못할뿐 아니라 금방 지쳐버리고 수행하기 싫어져 버립니다.
대상이 나한테 다가오도록 만들어야죠.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그 사람한테 다가가면 그 사람은 도망가버립니다.
난 안 해봤자 그렇죠.
누가 내를 좋다고 할 것 같으면 내가 싫어하지 말할 것 같으면 그냥 오래가지는 거야 내가 싫어하는 마음은 수행에서는 안 일어나십니다.
대상을 알아차리고 있을 때는 그래서 대상이 편안하게 이렇게 다가와 질 때는 뭔지 하고 그냥 알아차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다가와지는 것들은 새롭게 보이고 또 색다른 경험들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금방 그것들을 알아차리려고 합니다.
따라가게 됩니다.
그렇게 해야지 먼저 대상화되다.
그래서 수행할 때 무슨 수행할 거냐?
10년치 할 거냐?
신념 살 거냐 수념 살 거냐 그거 자꾸 따지려고 하지 말라는 거야.
무슨 방법을 배웠던 건 방법은 태권이기 때문에 그냥 그거는 그대로 놔주고 ,먼저 마음이 대상을 알아차릴 수 있는 상태가 되도록 만들게 돼요.
그래서 편안하고 고유한 상태가 자꾸 되도록 호흡을 만약에 내가 대상으로 하겠다, 호흡이 먼저 아주 고요하고 편안한 상태가 돼야 돼.
그러고 나서 마음으로 호흡으로 탁할 것 같으면 호흡을 자연스럽게 내가 탁 알아차려지고
그대로 따라갈 수가 있게 되는 대상을 내가 이미 호흡을 인위적으로 조작을 하게 돼요.
그래서 그건 아주 나쁜 방법이고 오래 못 합니다.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이나 아라한들도 죽음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사띠를 했습니다.
그 길을 따라가려고 하는 불지자들도 당연히 사띠를 해야 됩니다.
그러면 힘들지 않게끔 설치하는 방법들을 터득해야만이 오래도록 할 수가 있는 것이지 처음에 수행을 하면 되게 힘듭니다. 되게 힘듭니다.
조금 전에 기쁨같이 1번 2번까지 일어나게 지금까지는 일어날 때까지는 되게 힘듭니다.
기쁨 1번 2번도 힘듭니다.
고통스럽고 억지로 따라가야 되는 상태가 됩니다.
근데 그걸 닦아 기쁨이 쫙 온몸이 퍼지듯이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로서 이렇게 쫙 기쁨이 일어나지는 상태가 될 것 같으면 사띠는 그리 힘들지 않고 그냥 그냥 사는 거니까 살아있는 동안에는 무조건 해야 되는 것을 인식을 하게끔 의식이 바뀌어 버립니다.
그게 이제 기쁨 각진데 개발하는 방법에 대한 거 뭐 쭉 적어 놨습니다.
한번씩 읽어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그 부처님 공덕을 거듭해서 사띠 하는 거 그 다음에 가르침을 간호사띠 하는 거 상가에 대한 나누사님을 쭉 이렇게 적어 놨습니다.
그것들 한번 읽어 보십시오.
만약에 사띠를 못하고 잘 안 된다 그러면 수보리 존자가 금방 깨달음의 이르렀던게, 어떤 방법인지 아세요 뭐를 가지고 기쁨을 일으켰을까?
여러분들 건강경 수보리 존자가 금방 깨달음의 부처님에 대해서 끊임없이 사유하는 것 끊임없이 삭제하는 아랑 그런다 무슨 시스템에 뭐 있죠?
아랑했다고 아랑이 무슨 뜻이지 한번 생각해 봤어요.
뭐예요?
그거는 부처님에 대한 설명이고 아랑 있고 부처님이 10대명과 다 각각 틀리지 않습니까?
아랑 3마 3부 또 윗자차나 3반로 쑥갓도 롯과 윗도 아노따로 단마 사라띠 사타 그런 식으로 쭉 부침 시스템 메모가 다 따로 있습니다.
열에 응공 정면적 명예국 선수 세간에 못 쭉하는 것처럼 그 나름대로의 메모들의 이름에는 그 내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그걸 부처님을 일컫는 별칭이긴 하지만 그럼요 그럼 그 10가지를 붙일 때는 따로 그것에 맞는 사유를 해야 됩니다.
아랑하거든 얼마나 좋을까?
한번 생각을 해보는 거야 그래서 번뇌가 사라진 상태에서 예를 들면은 내가 화를 안내고 우리 자식론과 얘기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내가 마음이 편할까 자식 인물 하든 뭐 그냥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편안하게 진짜 자유로운 마음으로 말을 할 수 있고 선한 마음을 갖다가 끊임없이 내면서 대화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도 하나의 번뇌 중에 하나입니다.
화를 낸다는 그럼 그게 탁 사라지니까 뭐 좋거든, 그러면 그런 번뇌들이 전부 다 사라져 버렸다
그 나라고 하는 건 내세우지도 않고 막 그냥 사라진 상태 그래서 부침을 생각해도 그것만 해도 야 진짜 위대한 문이 나는 마음이 탁 일어났네 인터넷 뒤집으면 스님이 그 자료를 만들어 놔 가지고 공개해 놓은게 있습니다.
열에 10호 해가지고 그 부분에 대한 자세하게 설명을 해 놓은게 있습니다.
그거 한번 쫙 한번 읽어보면 여러분 전부 다 공개되어 있을 겁니다.
보면 어떤 식으로 간호사띠라 하는지를 갖다가 분명하게 인식하면 마음의 기쁨이 확 일어나십니다.
수보리 좀 나는 그거는 잘 모릅니다.
그게 유튜브에 자료로서 나간게 있고 그것으로 인해서 법문에 동영상으로 나간게 있고 아마 그럴 겁니다.
근데 뭐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공개된지 나는 전혀 나는 어쨌든 그냥 하고 나서 져버리고 나는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는데 사람들은 그것들이 있으니까 그거 가지고 뭐 뭐 책을 만들어서 만들었습니다. 하고 갖다 주기도 하고 하겠죠.
내가 그 사람들한테 자료를 준 것도 아닌데 그렇게 있으니까 그렇게 한번 해보시면 기쁨 각질을 일으키기 가장 좋은게 보따노사띠 부분입니다.
그래서 부타노사띠 부분을 자주자주 해주면 사띠부터 해가지고 정진각제까지 힘들게 하지 않아도 기쁨 각지는 어느 정도는 끌어올릴 수가 있습니다.
그 대신에 그게 어디까지 갈까, 아노사틴이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선정에는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거는 분명하게 인식을 해야 됩니다.
그렇죠. 수관이 아니고 수념입니다.
그래서 그거는 일선 전까지만 그렇지 않으면 근행정이라서 일 선정에 들어가기 직전 단계 뭐 그걸 뭐 그 마지선인 같은 경우에는 찰나 산맥 뭐 이렇게 살라정이라고 이렇게 얘기도 하기도 합니다.
그랬던 간에 어쨌든 선정과 다름없는 상태에 도달을 하게 됩니다.
선정 한번 개발해봐야 안 됩니까 근데 그거 좋아하면 안 됩니다.
근데 실제로는 수행을 해보면 선정의 초입 단계까지만 하더라도 총 필요충분한 조건입니다.
필요충분하죠.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은 일선정이 끝입니다.
일선정 직전까지만 해도 끝입니다.
실제로는 그래서 선정을 개발해서 사선까지 다 개발하고 팔선정하고 뭐 구순재까지 하도 좋겠지만은 나는 하나도 경험 안 했는데 내가 수도원이 됐다, 아니면 아란이 됐다, 그게 더 중요하다는 선정에 들어도 어차피 수다원부터 들어가려고 되려고 할 것 같으면 선장에서 나와야 가능한 겁니다.
그래서 너무 선정에 빠지는 걸 좋아하지는 말고 그렇다고 해야지 그게 뭐 그냥 드부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게 그 힘이 있어야만이 사띠 힘들이 병행되게 됩니다.
그래서 아노사띠들을 자주 할 수 있는 방편들을 자꾸 마련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쁜 부분에 중요한 부분이 있어 가지고 이건 여러분들한테 좀 잘 설명을 해야 될 부분 깔라만하게 아시죠.
깔라마 경에 보면 소문에 좌우되지 말고 그 다음에 전송된 것이라서 좌우되지 말고 하는 것들 쭉 적어 놨습니다.
근데 거기에 이제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성전에서 이제 있다 해가지고 그것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 하고 하는 부분하나 하고 그 다음에 뒤에 존경하는 사문이라고 했는데 3만원에서 그것이 진실하고 생각하지 말아라 하는 부분은 여러분들이 잘못 착각하는 경우 이 깔라마 경을 설 할 때는 그 지역이 깨사 붙다라고 하는 지역인데 그때는 불교가 거기에 전파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단지 불교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어떤 것이 옳은 길이고 어떤 것이 옳지 않은 길인지 하는 것 같다고 부처님한테 뭐 여쭤보고 하실뿐입니다.
쉽게 말하면 부처님의 교단이 성립도 안 내고 부처님 가르침이 거기에 직접 들어가서 초차가 되어 있는 상태도 아닙니다.
어렴풋하게 부처님이 있다는 것만 아는 상태라고 생각을 하시면 그렇게 봤을 때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성전 성전의 근이 부분은 달리 생각을 해봐야 성전에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권위는 어떤 경우든지 존재를 합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뒤에 후대에서도 만약에 3장 전체를 우리는 결집에서 이것은 인정한다 하고 탁 정해지고 나면 누구도 그 거역하면 안 됩니다.
테라와 달라는 나는 이건 아비단만은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니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하고 탁배치한다, 그러면 테라바다에서는 너는 그럼 테라오다 아니야 선언을 해버립니다.
특히 이제 상가 출간 스님일 것 같으면 상가에서 자꾸 나누어진게 그런 이유들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하면 성전의 근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성전이 그냥 하는 것은 바람의 성전을 얘기하는 것이지 불교의 삼장의 권위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걸 오해해 버리면 안 돼요
어떤 경우든지 부처님 가르침 속에 있는 것은 진리고 그것들이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분명한 여러분들은 확고하게 믿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 내가 존경하는 사마나 그래서 그걸 갖다가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그 여기서 말하는 사마나라고 하는 것은 출가한 신흥 종교들의 출가사문들을 얘기하는 것이지 부처님 제자들인 상가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추구하는 스님들은 법을 설할 때도 어떤 경우든지 부처님 가르침에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빼지도 못하게 훈련이 안 되면 법을 설하지 못하게끔 합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나 그냥 말하지마는 어떤 경우들이 세로마다 불교군에서는 못하게 합니다.
상가로 팩 관할의 수행에 이르렀고 3장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해를 해가지고 그걸로 다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나 비교할수 그게 이제 테라바다 전통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스승이라고 하는 출간 스님들은 부처님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일반 스님들 대할 때 부처님이 라서 부처님 보듯이 한게 아니고이 스님이 부처님 가르침을 나한테 다시 또 얘기해 주기 때문에 부처님같이 본다는 거예요.
근데 그걸 안 믿고 하면은 무슨 의미가 여기서 내가 존경하는 스님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 추가자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얘기를 왜 하냐면, 개부터 해가지고 쭉 이렇게 안호사태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 만약에 상가에 대해서 아는 사띠한다 여러분 상가는 어떤 걸 나눠서 어떤 걸 나눠서 할 때 할 거라 교수님 보니까 진짜 부처님과 같이 잘 살고 있는지 봐야 될 거 아니야, 법을 설하는 것이 틀림없이 똑같은지로 또 봐야 될 거 아니야, 실천하는 것도 틀림없이 부처님과 같이 똑같이 하고 있는지를 봐야 될 거 아니야, 그럼 상가 안호사띠라고 하는 것은 상가 전체를 그냥 스님들에 대해서 뭐 이렇게 수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적으로 눈을 보는 상가에 이런 스님들을 대상으로 간호사띠를 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부분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리고 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경우든지 불법성 삼보는삼위일체다 또 카톨릭 교리 같죠. 삼위일체입니다.
동일하게 바짝 끝내고 120페이지 한번 보십시오.
그래서 삐 뒤에는 그 중간 밑에 부분에 보면은 행복 기쁨 만족이라고 하는 특징이 있다 그냥 기쁜 마이너가는 것은 빛이 정확하게 삐지 부분에 해당이 되지 않고 희열 부분에 해당이 그걸 잊어버려서는, 그래서 비트를 하면 몸과 마음이 가볍고 기민해지고 기능들이 가장 중요한 거 5가지 장애가 발현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수행을 하면 기쁨이 일어났으면 감각적인 욕망이 없어 쉽게 얘기하면 밥을 공략을 한다 그러면 사티를 하면서 공략을 할 거 아니라 그럴 것 같으면은 적당한 상태에서 딱 끝냅니다.
그냥 그 목마를 때 그냥 갈증만 살짝 축이 가지고 갈증을 해도 하듯이 배고프다는 느낌만 해소한다는 느낌으로 그것을 알아차리면서 먹으니까 배부른 느낌은 일으키지 않고 밥 먹는 걸 딱 중단한 상태가 감각적인 욕망 부채가 5가지 장애들의 안 일어나는 상태가 되면은 밥을 먹을 때도 내가 기쁨을 느끼면서 밥을 그냥 배부르고 맛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수행하는 사람들이 그 먹으면서도 그런 기쁨들을 누리면서 밥을 먹을 수가 있어야 된다.
쉽게 말하면 기쁨의 각지가 여러분들이 일어나는게 아니냐라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5가지 장애가 없이 내가 뭔가를 하고 있느냐 아니냐는 판별을 하면 거의 맞다고 보시면 됩니다.
[경안각지]
기쁨이 아주 강해진 상태에서 그것들을 잘 넘어갔다 그러면은 그 다음 상태는 경향각지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버리는 상태인데 행복감이나 그런 것들은 그대로 존재를 하는 것들을 얘기합니다.
태국에 있을 때 우리 스승님이 걷는 거 보면은 발이 땅이 안 닿는 것 같이 보여요.
분명히 걸어가는데 서로 그냥 뭐라고 해야 되나 구름 위를 이렇게 닿는데 안 닫고 어떻게 걷겠어 안 닿는 것처럼 이렇게 같이 보여요.
그 경주니까는 선무도 하는데 있죠.
그 혹시 그 어느 정도 잘 수련된 스님들 걷는 거 혹시 본 적이 있어요?
아주 경쾌하게 사뿐사뿐 걷습니다.
경향 같이 이러면 걷는 것도 스무스하게 걸어가집니다.
아주 가볍게 걸어가십니다.
근데 갱안하고 빛이 기쁨하고 차이가 뭘까 만약에 수행을 한다 기쁨의 각자가 일어났으면 눈이 번쩍 떠집니다.
아무리 다 몰라도 눈이 안 닫힙니다.
좋아 죽겠는데 어떻게 눈이 닫힐 거야.
근데 개강각지에서는 지금 부처님 같이 눈이 닫힌 것도 아니고 어떤 것도 아니고 애매모호한 상태가 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내가 닫으려면 닫고 뜨려면 뜨고 그리고 경험 각지에 이르면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 그 경험 가치에서 머물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 깨달음이로구나, 49일간 머물렀다고 그러죠.
7일간씩 7일간식 어떻게 머물렀을까?
만약에서 있는 상태에서지를 한번 몰라 여러분들 가능해요.
차이입니다.
근데 BTS 그냥 머물건가?
그게 아니라 그보다 훨씬 크고 더 유익한 것들이이 바사디뿐 아니라 그 다음에 또까지 해가지고 쭉 다 있습니다.
근데 왜 그걸 다 놓쳐 버리라고 수행에서도 이런데 그냥 여러분들 집에서 조금만 기쁜 거 그거 가지고 너무 애달파하고 뭐 서러워하고 뭐 좋아하고 이러지 마, 그거 별거 아마 없을 거라 지나고 나면 또 변하는 거기 때문에 변하는 걸 가지고 지끄라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니라 수행에서 어느 정도 각지 어느 정도 열려야만이 그거는 지긋이 되는데 자기 것이 되고 다시 수행을 안 하고 있더라도 다시 언젠가는 하면 바로 그 상태로 넘어가질 수가 있는데 그 좋은 것
하나를 하지는 마십시오
경안각지 마사지 부분
그 대신에 고요해집니다.
경화각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경관이 먼저 이루어지고 나서 몸의 경안이 일어났 습니다.
그걸 착각을 하면 안 됩니다.
그거는 그거는 그 삼매 부분에서 빛이 칠각지 부분에서는 이 마사지 부분에는 고양도 있고 행복감도 있고 기쁨도 있고 행복감도 있고 다 있습니다.
근데 그게 대상에 대해서 치우침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쉽게 말하면 오늘 사람들이 다음 주 토요일 되면 우리 선원의 가사 과테나 가사 한다고이 사람들이 몇 사람이 와가지고 이제 플랜카드를 걸었어요.
플래카드를 다 끄는데 그 사람들은 좋아 가지고 이제 걸겠죠.
근데 그냥 걸면 될 건데 플래카드 글씨 많이 가리는 것도 아니던데 글씨에 가린다고 나뭇가지 다 꺼버리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야 그거 왜 그냥 좀 글자 가르지.
못해서 나뭇가지를 왜 꺼 그러니까 보기 싫잖아요.
근데 기쁨의 상태에서는 그게 가능합니다.
근데 파사드에서는 절대 그걸 안 긁습니다.
그게 쉽게 말하면 평정한 마음을 가지고 고요한 마음 상태고 그것으로 인해서 행복감이 있을 것 같으면 그건 무생물이라도 그걸 그렇게 함부로 하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순정에서는 그게 분명히 구분이 됩니다.
빛이 다음에 수커가 나오고 수컷 다음에 다시 사각지로 넘어 가지고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근데 일반적으로 수행의 상태에서는 행복감이라고 하는 것은 갖다 붙이기 바랍니다.
밑에 붙일 수도 있고 마사지하고 자 그래서 그냥 다 읽어 보십시오
[정각지]
그 다음에 청각지, 청각지는 뭡니까?
나를 잃어버린 상태 그냥 푹 몰입해 가지고 삼매에 되는 상태, 136 페이지 보면 선정면 어떻게 하여 만드는 것인가 하는 것, 선정을 전혀 하지 않은 수행만으로 아라한까지 깨달은 사람은 마지막의 상수매를 들어갈 수 있을까요? 있어요, 없어요?
순수익한 사람만 했다 없습니다.
전혀 전혀 그거는 사선정까지 다 가능해야 완벽하게 되고 선정이 자제 5가지 자제가 돼야 가능해야만이 그 다음에 상수멸이 가능합니다.
근데 상수메리 끝은 아니거든 그래서 순수하게 위빠사나만 할 것 같으면 이론적으로 볼 것 같으면 상수물 경험을 안 해보고 수다원부터 아람까지 이르게 됩니다.
근데 과연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순수하게 위빠사나 많은 사람이 대부분은 보면 대부분이 아니고 거의 100%입니다.
하다가 보면은 선정을 경험하게끔 그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왜 사띠임은 선정의 힘과 비례합니다.
나중에는 사띠가 강해지게 됩니다.
선정이 안 들어도 그래서 5가지 장애 없이 사띠가 산 빠져나와 연결돼 가지고 지속적으로 쭉 하게끔 실제는 수행은 사띠와 산빠사나가 결합대가 2개가 다 같이 발현될 때 수행은 완벽하게 호흡이 딱 맞아진 것 그렇게 되다 보면 당연히 선정 삼매에 드는 힘도 강해지고 그 힘이 커지면 다시 사띠임도 강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삼매들을 다들 경험을 하게 끔 실제로 그래서 뭐 사마타 수행이 좋다 유포산의 수행이 좋다 그거는 글자에서는 가능한 거지 실제 수행에서는 그 의미 없는 것입니다.
물론 젊었을 때 출가하는 스님이다 그러면 삼매를 더욱 경험 많이 해보고 아주 자재롭게 될 때가까지 하고 나서 위빠사를 전환하는 것이 정상적으로 맞습니다.
근데 요즘에 뭐 누가 그렇게 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보통 그냥 위빠사선으로 바로 합니다.
그래서 나는 수년차겠다 신념차 하겠다 그것도 별 의미 없는 거죠. 나중에 수행하다 보면 4년째는 다 같이 다 일어나게 돼요.
그리고 하다가 보면은 사마타 수행도 같이 하게끔 됩니다.
특히 자기가 수행해서 속에 있는 집이형들 뭐 심장병이라든지 아니면 쏙 병이라든지 뭐 이런 치유되는 것들을 경험하고 나면 더더욱 사마타 수행의 중요성을 알게끔 그게 빠사디에 힘 때문에 가능합니다.
몸의 안에 속에 있는 질병들이 치료되는 것들은 빠사디가 많이 익으면 빠사디는 고요함을 같이 겸하고 있고 대상에 대해서 안정이 되어 있게 됩니다.
그러면 사마귀 쪽으로 넘어가기가 굉장히 수월해집니다.
여러분들 만약에 수행하다가 피곤하죠.
그럼 어떻게 해요?
잡니다.
사마타 수행을 하는 그런 잠이라는 사마타 수행을 그리고 나면 좀 개운하죠.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대상이 자꾸 변하는 건 보면 어떨 때는 좀 피곤합니다.
그럼 좀 쉬어야 되겠다 정신적으로 할 경우에는 스마트 수행을 합니다.
호흡 들으시고 내쉬고 하는 것만 그냥 관찰합니다.
그러면서 마음의 시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러면은 마음이 또 깨어나지고 몸도 깨어나집니다.
서로 병행을 합니다.
그래서 몸의 치료되는 것도 치료되는 거지마는 수행을 지속적으로 오래오 완료하려고 할 것 같으면 3M 수행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이해를 하고 그걸 하는 방법들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삼매경험도 너무 터부시하지 마시라는 그런 뜻입니다.
근데 간단하게 그것들이 좋은 점만 이해를 할 정도가 돼야지 여러분 나이일 것 같으면 나는 뭐 그냥 사선정까지 다 해보고 80년까지 다 해보고 하겠다 꿈 깨 알겠죠.
그래서 이게 오력이 균형이 맞으면 사마띠 삼보장관은 균형 맞는 거는 우리에게 대한 것은 첫째 시간인가
믿음과 지혜가 발란스를 맞춰야 되고 노력과 삼매가 균형을 맞춰야 되고 그걸 사띠들이 끌어준다는 거 그 균형이 맞으면 균형이 맞는게 딱 분명히 보여야 됩니다.
그냥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그냥 믿음을 내더라도 지혜가 있는 믿음이 되어야 되는 것이지 지혜가 배제된 상태에서 믿음을 빠져 그래서 그 균형을 맞추지는게 사마띠가 큰 역할들을 해줍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하는 것들에 대해서 1번 2번 해 가지고 정진 부분은 계율을 지킨다 뭐 그 다음에 충분함을 안다 육근을 방어한다 뭐 이런 걸 쭉 적어 놨습니다.
그리고 선정에 들어가는 몸의 상태를 만든다, 그 다음 5개로부터 마음을 맑게 한다, 그 다음에 선정에 들어가고 그리고 나서 나오고 나서 깨달음의 단계에 들어 가지고 하는 것들을 쭉 적어놨습니다.
그리고 선정산맥 구성요소에 대한 것도 이걸 다 적을 하다가 도저히 너무 많아 가지고 그냥이 부분은 그냥 약식으로 만들어 놨습니다.
그래서 11가지 한번 참고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는 평정 각지 우빽가 처음에 수행할 때 최종 목표는 어떤 상태에 도달하는 것, 그러니까 누가 나를 욕을 하든 아니면 칭찬을 하든 그거하고 관계없이 마음은 항상 배가 상태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도 어떤 조건에서든 일어나는 것들이 우빽가 상대가 안팎으로 어떤 상황에도 마음이 우백과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수행의 맨 처음 목표들이 대부분이 여기에 도다리가 여기가 무르익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법을 설할 자격을 줍니다.
그 아까 얘기했잖아?
그거는 사마타 수행에서 얘기하는 거고 위파 산업 수행에서는 지금 부분을 설명한 겁니다.
지금 쭉 오다 보면은 경안각지에서 우빽가로 넘어가집니다.
일반적으로 자꾸 우빽하는 삼매를 개발해야만이라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아까도 얘기했잖아요
직전 단계에서만 끝난다고 했잖아요?
거기서도 충분히 칠각지가 개발되어진다는 거 그래서 개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상가루 백간향을 행사지라고 이렇게 얘기하죠.
어떤 조건에서도 우빽가 상태가 되는 지혜가 개발돼야만이 그냥이 세상에서 이제는 편안하게 살게 되고 서로 그 직전에 바로 죽어도 적어도 인간으로는 아까 우리 황 회장님이 얘기했지만 인간 이하로 태어날 가능성은 제로 그 정도는 돼야 안 되겠어요.
그래서 수행 1차적인 목표를 보통 상가로 백간이잖아요.
수행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칠각지를 다 알고 있게 다 개발했는데 겨우 아직은 수다원의 입구에도 아직은 못 들어간 디스카운트도 안 되는 상태예요.
근데 이거 없이 수당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 다는 수행에서도 굉장히 중요하고 도화가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근데 상가로백한 나라에 딱 도달했다, 그리고 바로 그렇다고 해가지고 뭐 종성지 종성의 도달하고 뭐 바로 수다원에 들어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르익어야 됩니다.
쉽게 말하면 우빽가 이거 자체도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그냥 내 좋은 것뿐이구나 하는 것들을 알게 되면 요걸 버려 버리고 칠각지를 두루두루 잡고 닦게 돼요 그런 상태에서 금방 이번에는 평생 죽을 때까지 사지 않으려고 해도 안 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동적으로 되긴 되는데 그게 이제 얼마만큼 나를 도박으로 끌어야 하는 것은 여름 부리는 습성이들이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많이 걸릴 거고 좀 금방 싫증을 낸다든지 아니면 죽음에 대해서 막 이렇게 급박하다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 빨리 좀 도달할 거고 그런 습성들의 따라서 조금 시간에는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어쨌든 우페카 상태를 경험을 했다 지극히 완전히 개발된 상태다 그래서 왔다리 갔다 갔다 하게끔 된다 그러면은 언제가 될지 몰라도, 그래서 도화가 이르면 이 세상에서 두 아이를 쓰면 어쨌든 언젠가는 몇 번의 생을 반복하든지 어쨌든간에 완전하게 깨달음을 다음 생에 또 그래서 상가로 500가 부분은 굉장히 그래서 중요한 부분이니까 이 부분은 천천히 잘 읽어보도록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속에서 항상 청정한 상태가 되어 있으면 부처님은 그 사람은 아담과 다름없다 하고 얘기를 합니다.
그게 이제 칠각지 부분이고 다음 시간에는 팔정도 부분에 대한 걸 간단하게 설명하고 다음 달에 강의는 전부 마치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간이 짧게 냈는데 어쨌든 칠각지는 여기서 끝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