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제석, 아수라왕과의 대화, 인욕의 법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석제환인이 천인들을 거느리고 장차 아수라(阿修羅)와 싸우려고 할 적에 석제환인은 비마질다라(毘摩質多羅) 아수라왕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서로 해칠 필요가 없으니, 다만 서로 토론을 해서 승부를 결정합시다.’
비마질다라가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교시가(憍尸迦)여! 우리가 토론을 해서 승부를 낸다고 한들 누가 그것을 분별하겠습니까?’
석제환인이 말하였다.
‘우리의 대중과 아수라의 대중 속에서도 총명하고 명철하여 그 지혜와 변재가 능히 좋고 나쁨을 보아서 승부를 판가름할 만한 자가 있지 않겠습니까?’
비마질다라가 말하였다.
‘제석이여! 당신이 먼저 말씀하시오.’
제석이 대답하였다.
‘제가 말할 수는 있습니다만, 당신이 바로 선배 천인이니 마땅히 먼저 말씀하셔야 합니다.’
비마질다라는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지금 나는 참음의 허물 보았으니
어리석은 이가 참음의 법을 말한 것일세.
그는 두려움 때문에 참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자기가 뛰어나다고 여기네.
석제환인이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두려움 때문이라는 그 말을 따른다면
자기의 이익이 가장 뛰어나겠지만
재물과 보배와 모든 이익으로는
인욕하는 자를 이길 수 없네.
비마질다라가 또 게송으로 말하였다.
어리석은 이는 지혜가 없으므로
마땅히 그를 억제하고 막아야 하네.
비유컨대 저 뒤에서 오는 소가
언덕에 올라 앞의 소를 오르는 것과 같나니
그러므로 반드시 칼과 몽둥이를 가지고서
어리석은 이를 꺾고 굴복시켜야 하네.
석제환인이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내가 보건대 어리석음을 억제하는 데는
말없이 참는 것이 가장 으뜸이니
설사 아주 크게 화를 냈다 하여도
참을 수만 있다면 화는 저절로 그치리라.
성냄이 없고 해침 없는 자라면
그가 바로 성현이며
또한 성현의 제자이니
항상 그를 친근해야 하리라.
온갖 성을 내는 사람들은
무거운 업장이 산과 같나니
만약 성이 날 적에도
조금만 억제할 수 있다면
이를 선업(善業)이라 칭하는 것이니
마치 고삐로 나쁜 말을 다스리는 것과 같네.
천인들과 아수라의 대중 중에서 지혜 있는 이가 함께 자세히 평가해서 그 승부를 저울질했는데, 아수라는 싸우는 것으로 근본을 삼는다고 말했고, 석제환인은 싸움을 그쳐서 마음에 성냄과 다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으므로, 아수라는 지고 제석이 이겼다고 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석제환인은 천인들 속에 자재하면서도 오랫동안 인욕하고 인욕의 법을 칭찬했다.
그대들 비구도 인욕할 수 있고 인욕을 찬양할 수 있다면 집을 떠난 법[出家法]이라고 말할 만하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마치자,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