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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영락경 제7권
20. 광명품(光明品)
그때 부처님께서 선남자와 선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존부존(尊復尊) 대범천왕(大梵天王)이 물은 글귀 뜻의 불가사의한 법을 받아 지녀서 외면, 문득 마땅히 신상(身相)이 둘이 아닌 법문[不二法門]을 얻어서 안입(眼入)이 청정하여 법계에 자재(自在)함을 얻으리라.
보살마하살이 정의(定意)를 바르게 받으면, 곧 자기 몸의 온갖 털구멍 사이에서 낱낱 털구멍마다 법계자재(法界自在)를 나타내어 중생을 제접하여 제도하길 끝없이 다하여서 법계 청정의 행을 헐지 않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정의(定意)에 든 자는 문득 능히 일체 모든 법을 갖출 수 있고,
또한 모든 법을 허깨비처럼 화하여 나타낼 수 있고,
세계의 모든 법이 나오는 바를 능히 알아서 한 부처님 국토로부터 한 부처님 국토에 이르고 나아가 무수한 억백천 세계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중생의 근원을 분별할 수 있고,
다시 위의와 예절을 능히 사유하여 앉을 데에 앉을 줄 알고 누울 데에 누울 줄 알 수 있고,
다시 저 겁이 무수한 억백천 세계에서 근의 뜻[根義]과 고의 뜻[苦義]과 공의 뜻[空義]과 형상 없음의 뜻[無形象義]을 분별하여 공관(空觀)ㆍ명자 없는 관[無名字觀]ㆍ내관(內觀)ㆍ외관(外觀)ㆍ비중생관(非衆生觀)ㆍ깨끗하면서 깨끗지 않은 관[淨不淨觀]을 설해서 평등하고 둘이 없게 대승행(大乘行)을 익혀 무위불퇴전행(無爲不退轉行)에 나아갈 것이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온갖 와서 모인 이들의 의심을 풀고자, 즉각 앉으신 평상 위에서 문득 몸의 여러 마디 털구멍으로부터 광명을 방출하여 시방 한량없는 세계에 모조리 비추시니, 그 속의 날라 다니거나 꿈틀거리는 미물(微物)들에 이르기 까지 모든 중생들이 이 광명을 보고 숙명(宿命)의 근본법을 스스로 알았다.
다시 광명에서 이 언교(言敎)인 고의 뜻ㆍ공의 뜻ㆍ형상 없는 뜻을 듣자,
즉시 저 겁(劫)에서 백겁의 일을 보고 천겁의 일을 알며, 억겁의 일을 알며, 억백천 겁의 일을 알며, 무한겁의 일을 알며, 아승기겁의 일을 알며, 한량없는 겁의 일을 알며, 가없는[無邊] 겁의 일을 알며, 무수겁(無數劫)의 일을 알며, 무제겁(無際劫)의 일을 알며, 일컬을 수 없는 겁[無稱劫]의 일을 알며, 불가사의 겁의 일을 알며, 평량할 수 없는 겁[不可平量劫]의 일을 알며, 다하고 다함이 없는 겁[無窮盡劫]의 일을 알며,
다시 한정이 없고 한량이 없어서 일컬어 헤아릴 수 없는 여러 부처님의 국토의 중생이 일어났다 다 없어진 겁의 일을 알았다.
다시 보살마하살의 행한 법칙과 위의와 예절을 보아서 한결같은 뜻으로 닦아 익혀 근본 행에 어긋나지 않았다.
그때에 보살이 이 광명을 보고 심의(心意)가 열리고 풀리자, 다시 자기 몸의 온갖 털구멍의 정의(定意)에 스스로 들어가서 다시 시방의 한량없는 중생이 억백천 겁에 닦은 행의 근본을 보았다.
그때에 보살마하살은 다시 저 삼매로부터 일어나 모든 부처님의 광명이 전과 다르지 않은 것을 보았다.
[여래는 어찌하여 이 광명을 항상 놓아서 한량없는 중생의 무리를 제도하지 않으시는가]
그때에 보살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조명(照明)이라고 불렀다.
그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꿇어앉아 합장한 채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조금 전에 여래ㆍ지진ㆍ등정각 몸의 여러 마디의 털구멍에서 방출된 광명을 보았사온데, 시방 한량없는 세계에 모두 비추어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전생의 한량없는 세상일을 스스로 알게 하고, 또한 여러 보살마하살로 하여금 신력이 자재하게 하며,
다시 능히 몸의 여러 마디 털구멍의 정의(定意)에 들어감을 얻게 하며, 또한 시방 중생의 전생 일을 알게 하였나이다. 매우 기이하옵고 매우 특이해서 불가사의하나이다.
원하옵건대 부처님이시여, 감히 여쭐 바가 있사온데 만일 들어주시길 허락하신다면 곧 의문이 드는 바를 여쭙겠나이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그의 뜻을 벌써 아시고 문득 조명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묻는 바는 모두 여래의 경계이니, 살펴 듣고 살펴 들어서 잘 생각하고 생각하여라. 그대가 묻는 바를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대답하였다.
“그러하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여래의 온갖 법장을 원하옵건대 충분히 연설하시어서 의심을 영영 없애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족성자여, 그대가 아까 질문하려던 내용은 ‘여래(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천인사(天人師)ㆍ불중우(佛衆祐)ㆍ세존(世尊)이라고 호칭하신 분께서 오늘 몸의 여러 마디에서 광명을 놓아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비추어, 모두 중생들로 하여금 숙명(宿命)의 본래 근본을 스스로 알게 하였고, 한 광명의 덕으로 제도하는 바가 한량이 없어서 범부의 학지(學地)로부터 위로 무학(無學)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광명을 입어서 제도를 받았느니라.
여래는 어찌하여 이 광명을 항상 놓아서 한량없는 중생의 무리를 제도하지 않으시는가?’ 하는 것이다.
어떠한가, 조명보살아. 그대가 물으려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대답하였다.
“그러하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매우 기이하고 매우 훌륭하나이다.
방금 묻고자 한 내용과 같습니다.”
“어떠하냐, 족성자여. 여래는 마땅히 이 의문에 대해 대답해 줄 것이나, 광명을 보여 나타낸 온갖 정(定)의 법문은 말로써 가르칠 수 없느니라. 교화할 바가 있으니 그대는 다시 마땅히 나에게 답하라.”
“어떠하나이까, 부처님이시여. 이제 이 해와 달이 4천하를 비추어 빛을 받지 않음이 없사온데,
때로 해와 달의 광명은 어느 때 이익이 있고 어떤 때에 손해가 있사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에 대답하기를 ‘없느니라, 족성자여’라고 할 것이니,
그대의 묻는 바는 이러한 것이 아닌가?”
대답하였다.
“그러하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이때 그대는 다시 마땅히 이런 물음을 하라,
‘해와 달의 광명은 널리 비추면서도 항상 이지러지거나 손상됨이 없지만, 여래께서 오늘 놓으신 큰 광명은 때에 따라 손상이 있고 때에 따라 손상이 없습니까?’라고 하면,
나는 다시 마땅히 이 물음에 대해 그대에게 답하길,
‘어떠한가, 족성자여. 해와 달의 비춤은 능히 낮을 밤으로 만들고 밤을 낮으로 만들 수 있는가?’ 할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마땅히 나에게 이렇게 답하길
‘아니옵니다. 부처님이시여, 해와 달의 광명은 능히 낮을 밤으로 만들거나 밤을 낮으로 만들지 못하나이다’라고 해야 하니,
이에 나는 답하길
‘족성자여, 이러하니라. 부처님의 광명은 능히 낮을 밤으로 만들거나 밤을 낮으로 만드시니, 이것을 각각 차별된다고 이르느니라’라고 할 것이니라.
족성자여, 그대는 다시 마땅히 이 뜻으로 나에게 묻길
‘어떠하나이까, 부처님이시여. 가령 티끌 안개의 다섯 가지 가림이 해나 달의 빛을 가리면 비추는 바가 없으니, 지금 여래의 광명도 또한 티끌의 가림[塵翳]이 있나이까?’라고 하면,
나는 대답하길
‘아니니라. 족성자여, 왜냐하면 여래의 광명은 안팎이 통하고 사무쳐서 티끌 안개로는 막아서 끊지 못하나니, 삼계를 초과해서 무상존(無上尊)이 되느니라’라고 할 것이니라.
어떻게 비추어 밝히는가?
그대는 다시 마땅히 이렇게 물어야 하느니라.
‘여래의 광명엔 장애하는 바가 없다고 하지만, 중생의 3독(毒)이 티끌 가림이 되지 않나이까?
만일 이것이 티끌 가림이라고 하오면, 해나 달의 다섯 가지 가림과 다시 무엇이 다르나이까?’
그때에 나는 답하여 말하노라.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족성자여. 그 말이 참으로 명쾌하구나. 나는 이제 그대와 더불어 낱낱이 분별하리라.’
여래의 광명은 불가사의여서 삼계를 초과하여 견줄 것이 없느니라.
[법의 광명이란 열 가지 갈무리 행]
법의 광명이란 열 가지 갈무리 행[藏行]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용맹한 도량으로서 온갖 법을 헐지 않으며,
둘째는 온갖 법이 다함이 없어서 4무외(無畏)를 얻고,
셋째는 변재가 통하고 예리하여서 세간의 여덟 가지 법을 여의고,
넷째는 여섯 신통을 사무쳐 통달해서 걸리는 바가 없고,
다섯째는 묘한 법을 연설하여 창달하되 겁내거나 약한 마음을 품지 않고,
여섯째는 제멋대로 방일하지 아니하여 5온(蘊)을 영영 여의고,
일곱째는 사랑[慈]ㆍ불쌍히 여김[悲]ㆍ기쁨[喜]ㆍ감싸주는 마음[護]으로 온갖 것을 널리 어여삐 여기며,
여덟째는 여러 부처님 나라에 노닐면서 일체를 교화하고 인도하며,
아홉째는 근문(根門)이 갖추어져서 하열(下劣)함을 즐겨하지 않으며,
열째는 위없는 도를 닦아서 법의 뜻[法意]을 버리지 않는 것이니라.
족성자여, 이것을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 열 가지 법을 닦아서 곧 여래의 열 가지 광명의 지혜에 응한다고 이르느니라.
마치 족성자여, 마니주 광명의 신령한 덕이 한량없는 것과 같으니,
그 광명은 한 천하를 비추고, 두 천하를 비추고, 세 천하를 비추고, 네 천하를 비추며, 그 광명은 천세계와 2천세계 그리고 3천세계를 비추고, 소천세계와 중천세계를 비추며 다시 삼천대천세계를 비추느니라.
다시 마니의 신령한 구슬[摩尼神珠]을 얻으면, 한 부처님세계ㆍ두 부처님세계ㆍ세 부처님세계 나아가 수없는 삼천대천세계를 비추어서 그 광명의 덕을 일컬어 헤아릴 수 없느니라.
정(情)이 없는 광명의 그 덕도 이러하거든, 하물며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큰 광명을 놓아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널리 비추어서 그 속에 있는 형상 있는 종류의 중생으로서 광명을 본 자는 세 가지 더러움을 없앤 청정함으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모두 발하는 것이야 더할 나위 있겠는가?
[여래의 지혜를 믿어 큰 광명을 얻는 열 가지 일의 행]
조명 보살마하살이여, 다시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독실하게 받들어 받아서 여래의 지혜를 믿어 큰 광명을 얻는 열 가지 일의 행[事行]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일찍이 없던 법을 여래가 모두 아시는 것이니,
이것을 첫 번째의 일이라 이르느니라.
일찍이 굴리지 않았던 훌륭한 방편으로 불ㆍ법ㆍ승의 각지(覺知)하는 바를 나타내는 것이니,
이것을 두 번째의 일이라 이르느니라.
여러 가지 바깥 법에 대해 자재함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저마다 의심을 일으켜 옳다 그르다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 말하고, 얽매지 않은 것을 얽매었다 말하고, 알지 못한 것을 안다고 말하고, 갖지 못한 것을 가졌다 말하고,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었다 말하느니라.
그러나 온갖 법 가운데 모두 자재함을 얻으면 실답고 이러하여서 실로 허망함이 없고, 여러 부처님으로 하여금 온갖 법에서 자재를 얻어 모든 법계에서 걸리는 바 없게 함이니,
이것을 세 번째의 일이라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일념 사이에 온갖 마음의 때를 깨끗이 하여 활연히 크게 깨닫듯이,
다시 겁수(劫數)의 기간을 거치지 않고 한 부처님 나라로부터 한 부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중생을 교화해도 걸림이 없고, 모두 3유(有)를 초월함을 어렵게 여기지 않으니,
이것을 넷째의 일이라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조명 보살마하살이여, 혹은 겁의 태움[劫燒]을 만나서 그 사이가 비고 끊어져서, 앞의 부처님은 지나가셨고 뒤의 부처님은 나오지 않으셨지만 법의 성품은 항상 머물면서 변하거나 바뀌지 않았으니,
큰 서원이 있는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문득 능히 맑고 신성하고 고요하고 정(定)하고 비고 공하시지만, 무여(無餘) 열반에서 멸도를 취하지 않으셨다. 그 까닭은 그 본래의 요긴하고 큰 서원이 무겁기 때문이니,
이것을 다섯째의 일이라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조명 보살마하살아,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여, 교화를 받을 수 있는 이와 교화를 받지 않을 이를 모조리 실답게 아시어서 헛되지 않느니라.
여래는 이 욕계로부터 유상무상천(有想無想天)에 이르기까지 심식(心識)이 생각하는 선(善)이나 더러움, 혹은 괴로움, 혹은 즐거움을 다 아시어서 문득 그 가운데서 교화함으로써 제도를 얻게 할 수 있으니,
이것을 여섯째의 일이라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조명 보살마하살아, 여래의 화신(化身)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 나라에 노니시면서 선의 해탈 아홉 가지 차제법[禪解脫九次第法]을 행하시니, 이
것을 일곱째의 일이라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조명 보살마하살아,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다섯 가지 덕행을 닦고 인욕의 마음을 품어서 상대에게 받음을 비방하지 않고,
또한 다시 약간의 뜻인 ‘나는 훌륭한데 저는 나만 못하구나’ 하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다시 이 마음인 ‘저는 훌륭한데 나는 저만 못하구나’ 하는 것이 없으며,
혹은 다시 마음에 ‘저는 나와 동등하고 나는 저와 동등하네’라 함을 내는 것이니,
이것을 여덟째의 일이라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조명 보살마하살아,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한량없는 온갖 법이 불가사의하여서 여러 5도(道)에 들어가 마음속에 생각하는 바를 손가락 튀기는 동안에 모조리 알아서
어리석은 마음이 있든 어리석은 마음이 없든, 애욕의 마음이 있든 애욕의 마음이 없든, 화내는 마음이 있든 화내는 마음이 없든 낱낱이 분별하여 다 아나니,
이것을 아홉째의 일이라 이르느니라.
다시 다음에 조명 보살마하살아,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시방의 온갖 부처님 세계에 노닐면서 백성에게 권하여 불사(佛事)를 베푸는데,
문득 5도(道)에서 형상을 받는 괴로움을 설명하길
‘비록 다시 하늘에 난다 하지만 이것이 상도(常道)가 아니요,
사람의 몸은 백번 변해도 나고 죽음이 한량이 없고,
저돌적인 축생(畜生)은 끝내 해탈이 없고,
먹는 것만 탐내는 주린 귀신[餓鬼]은 형상 받음이 더럽고,
지옥의 과보를 받은 것은 죄가 다 없어져야 비로소 나오게 되니,
오직 열반만이 쾌락함이 비할 바 없도다’라고 하니,
이렇게 경로(經路)를 가리켜 보여서 무위(無爲)에 나아가게 하느니라.
이것을 조명 보살마하살이여, 열 가지 일의 행이라 이르는 것이니,
이것은 2승(乘)이 능히 미쳐서 알 바가 아니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