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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8권
13. 보은부(報恩部)
〔여기에는 세 가지 연(緣)이 있음〕
13.1. 술의연(述意緣)
대개 들으니 삼보(三寶)의 중한 은혜는 네 종류의 중생[四生:胎ㆍ卵ㆍ濕ㆍ化]을 사랑하고 돕는 것이다. 시방을 교화하여 기를 적에 마치 외아들을 돌보는 것과 똑같이 여기나니, 그 근기가 아무리 미세해도 왕립하지 아니함이 없고 그 지혜로써 오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어루만져 주신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우전왕(優塡王)으로 하여금 형상을 조각하게 하였으니 무성해짐이 부광(浮光:물에 비치는 달 그림자)과 같았고, 사닉(斯匿:波斯匿王)은 형상을 주조하여 일으켜 세우고는 자리를 피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는 신령하고 상서로운 일들이 여러 번 일어났고 아름다운 명성은 멀리까지 들려졌으니, 마치 풀이 바람부는 대로 쓰러지는 것과 같아서 기억하면 죄가 소멸하고 복이 생겨나며, 공경하면 그 선함이 먼 시대에까지 미친다. 이것은 진실로 여래께서 나의 법신을 길러주셨고 부모님께서 내 육신(肉身)을 길러주셨기 때문이다.
그 은덕(恩德)이 이미 깊고 하늘처럼 높고 멀어 갚기 어려운 일이거늘 더구나 다시 중한 은혜를 어겨 배반하고서야 어찌 고통의 바다에 영원히 잠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부인은 짐(鴆)새의 독약을 남편에게 먹였으나 남편은 도리어 나라의 후한 상을 받았고 나무꾼은 짐승을 해쳤다가 두 팔이 다 떨어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은혜를 아는 것은 큰 자비의 근본이니 선업(善業)의 첫 문을 열어 사람들의 사랑과 공경을 받고 명예(禮)가 멀리까지 들리며, 죽은 뒤에는 하늘에 태어나고 마침내는 부처님의 도를 이룰 것이다.
그러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축생보다 더 심한 사람이다.”
13.2. 보은연(報恩緣)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네 가지 은혜가 있으니, 그것을 갚기란 매우 어렵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어머니의 은혜요, 둘째는 아버지의 은혜이며, 셋째는 여래의 은혜요, 넷째는 법을 설해 주는 법사의 은혜이다.
만약 누구든지 이 네 종류의 사람을 공양하면 한량없이 많은 복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세상에서는 남들의 찬탄을 받고 미래 세계에서는 보리(菩提)를 증득할 것이다.”
또 『대반야경(大般若經)』[제 사백사십삼 권에 있는 말이다]에서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 은혜를 아는 것이며 또한 은혜를 갚는 것입니까?’
응공(應供)이시며 정등각(正等覺)이선 분께서 대답하셨다.
‘부처님께서 바로 은혜를 알고 또 은혜를 갚는 분이니라. 왜냐 하면 일체 세간에서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 사람치고 부처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니라.’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중생이 은혜를 알고 되돌려 갚는다면 이 사람은 공경할 만하다. 작은 은혜도 오히려 잊어서는 안 되거늘 더구나 큰 은혜이겠는가?
설령 그가 여기에서 백천 유순(由旬)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오히려 내 곁에 가까이 있는 것과 다름이 없어서 나는 항상 그를 찬탄하고 칭찬할 것이다.
만약 어떤 중생이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큰 은혜도 오히려 기억하지 못하거늘 더구나 작은 은혜이겠는가?
그 사람은 나와 가깝지도 않고 나 또한 저를 가까이 하지도 않느니라.
정녕 그가 승가리(僧伽梨)를 결치고 내 곁[左右]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은 오히려 나와 멀리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비구들은 마땅히 은혜 갚기를 생각해야 하고 은혜 갚지 않는 것을 본받지 말아야 하느니라.’”
또 『사리불문경(舍利弗問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개 계를 받은 사람은 그 능력에 따라 준비하여 그에게 보시하되 물질의 많고 적들을 한정하지 말아야 한다.’
문수사리(文殊舍利)가 부처님께서 아뢰었다.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부모의 은혜는 너무도 크므로 갚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또 사승(師僧)의 은혜는 이루 다 칭량(稱量)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렇다면 어느 것이 더 크단 말씀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개 속가에 있는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섬기면서 그 슬하에 있는 것은 낳아 길러주신 은혜를 갚으려는 것이 아니요, 낳아 길러주선 은혜가 깊기 때문에 크다고 말한 것이다.
만약 스승을 쫓아 배워서 지견(知見)을 개발(開發)했으면 그 다음로 큰 은혜인 것이다.
대개 출가한 사람이 부모가 있는 나고 죽는 집을 버리고 법의 문에 들어와 미묘한 법을 받았으면 그것은 법사(法師)의 힘이다.
법의 몸을 낳아 길러주시고 공덕의 재물을 내어 지혜의 목숨을 길러주셨으니 그 공보다 더 큰 것은 없다.
다만 그 낳은 바를 따라서 다음이라고 했을 뿐이다.’
또 『중음경(中陰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미륵(彌勒)에게 물으셨다.
‘염부제(閻浮提)에서 아이가 태어나 땅에 떨어져서부터 세 살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먹은 젖이 얼마나 되겠느냐?’
미륵이 대답하였다.
‘먹은 젖이 일백팔십 곡(斛:섬)인데 그것도 다만 어머니의 뱃속에서 먹은 사분(四分)은 제외된 것입니다.
동방의 불우체(弗于逮)에서는 아이가 태어나 땅에 떨어져서부터 세 살이 되기까지 먹는 젖이 일천팔백 곡이며,
서방의 구야니(拘耶尼)에서는 아이가 태어나 땅에 떨어져서부터 세 살이 되기까지 먹는 젖이 팔백팔십 곡이며,
북쪽의 울단왈(欝單曰)에서는 아이가 태어나 땅에 떨어지면서부터 언덕 위에 내다 앉힙니다. 그리하여 길 가는 사람들이 손가락을 물려주면 칠 일 만에 성인이 됩니다.
그 국토에는 젖이 없고 중음(中陰)에 처해 있는 중생들은 바람을 마십니다.’
[옛 사람이 쓰는 작은 되[升]는 지금 당(唐)나라 되로 한 되가 옛날 되로는 세 되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먹는 젖이 매우 많은 것같이 느껴진다.]”
또 『난보경(難報經)』에서 말하였다.
“왼쪽 어깨 위에 아버지를 얹고 오른쪽 어깨 위에 어머니를 얹고 천 년이 지나도록 등 위에서 보는 대ㆍ소변을 다 받아낸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 부모의 은혜는 다 갚을 수 없느니라.”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부모에게 효순(孝順)하고 공양한 공덕의 과보(果報)는 일생보처(一生補處)보살의 공덕과 꼭 같느니라.”
또 『육도집경(六度集經)』에서 말하였다.
“예전에 보살은 대리가(大理家)로서 거억(巨億)의 재산을 쌓아두고 늘 삼존(三尊:三寶)을 받들고 중생들을 사랑으로 대하였다.
시장에 나갔다가 자라를 파는 것을 보고 슬픈 마음이 생겨 값이 얼마냐고 물었다.
자라 주인은 보살에게 자비(慈悲)스런 덕이 있음을 알고 대답하였다.
‘백만금입니다.’
보살이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보샅은 그 자라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물에 놓아 주었다.
그 자라가 재미있게 놀다가 떠나가는 것을 보고
보살은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맹세하며 말하였다.
‘온갖 어려운 데를 만나더라도 편안하고 온전하기가 지금 이와 같게 하소서.’
이렇게 큰 서원을 세우자, 모든 부처님께서 훌륭하다고 칭찬하셨다.
자라는 그 후 어느 날 밤에 와서 보살이 있는 방문을 갉았다. 보살은 문에서 이상한 소 리가 나자 곧 나가보았다.
자라가 보살에게 말하였다.
‘저는 막중한 은혜를 입고 몸이 안전해졌으나 무엇으로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물 속에 사는 미물인지라 물의 영허(盈虛 :사정)만은 잘 알고 있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장자 큰 홍수가 나서 틀림없이 큰 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부디 하루 속히 배를 점검하십시오. 그 때가 임박해지면 맞이하러 오겠습니다.‘
대답하였다.
‘참으로 착하구나.’
이튿날 새벽에 대궐 문에 나아가 이 사실을 왕에게 알렸다. 왕은 예전부터 보양에 대한 좋은 소문을 듣고 있던 터라 그 말을 믿고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옮겨가 대피하였다.
드디어 때가 되자 자라가 왔고 홍수가 들이닥쳤다.
자라가 말하였다.
‘빨리 내려와 배를 타십시오. 내가 사는 곳을 찾아가면 아무런 탈이 없을 것입니다.’
배가 얼마쯤 가다 보니 그 뒤에 뱀 한 마리가 배를 향해 왔다.
보살이 말하였다.
‘저 뱀을 구제해주자.’
자라가 말하였다.
‘매우 좋은 일입니다.’
다시 여우 한 마리가 물에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또 말하였다.
‘건져주자.’
자라가 대답했다.
‘좋은 일입니다.’
또 보니 어떤 사람이 제 뺨을 치며 하늘을 보고 울부짖고 있었다.
‘불쌍히 여기시어 제발 저의 목숨을 건져 주십시오.’
보살이 말하였다.
‘건져주자.’
자라가 말하였다.
‘부디 건져주지 마십시오. 대개 사람이란 거짓이 많아 끝내 믿을 것이 못됩니다.
은혜을 배반하고 세력을 좇으면서 흉악한 짓을 좋아하고 반역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보살이 말하였다.
‘짐승들은 이렇게 구제해 주면서 내가 사람들은 천하게 여긴다면 어찌 그것을 인(仁)이라고 하겠는가? 나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
그리고는 그 사람을 건져주었다.
자라가 말하였다.
‘후회하겠구나.’
마침내 풍토(豐土)로 가기 위하여 보살에게 하직 인사를 하며 말하였다.
‘이제 은혜를 다 갚았으니 바라건대 물러가겠습니다.’
보살이 대답하였다.
‘나는 여래ㆍ무소착(無所着)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을 증득한 사람이니 반드시 그대를 제도해 주리라.’
자라가 말하였다.
‘매우 훌륭하십니다.’
자라가 물러가자 뱀과 여우도 각각 떠나갔다.
여우는 굴 속에서 살다가 옛날 사람들이 숨겨두었던 자마금(紫磨金) 일백 근을 얻어 기뻐하며 말하였다.
‘마땅히 이것으로 저 사람의 은혜를 갚아야겠다.’
여우는 돌아와서 보살에게 아뢰었다.
‘소충(小蟲)이 큰 은혜를 입어 보살것없는 목숨을 건졌습니다. 저는 굴 속에 기거하는 미물인지라 굴을 구하여 스스로 편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굴 속에서 금 백 근을 얻었습니다. 이 굴은 무덤도 아니요, 집도 아니니, 저 금은 겁탈한 것도 아니요, 도적질한 것도 아닙니다. 내 정성으로 마련한 것이온데 현자(賢者)께 바치고 싶습니다.’
보살은 깊히 생각해 보았다.
〈이것을 받지 않아 헛되이 버려진다면 아무런 이익이 없을 것이니 저 빈민(貧民)들에게 보시하여 중생들을 구제하는 것도 또한 좋지 않겠는가?〉
그리고는 곧 그것을 받았다.
물에 떠내려가던 사람이 그것을 보고 말하였다.
‘나와 반씩 나누어 가집시다.’
보살이 곧 열 근을 그에게 주자 물에 떠내려가던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은 무덤을 파고 그 금을 빼앗았으니 그 죄를 어떻게 하겠소?
그 절반마저 나누어 주지 않으면 내 반드시 유사(有司)에게 고발할 것이오.’
보살이 대답하였다.
‘나는 이것을 저 가난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려고 하는데 당신 혼자 차지하려고 하는 것은 너무도 지나친 일이 아니오?’
물에 떠내려 가던 사람이 마침내 유사에게 고발하였다.
보살은 구속되었으나 호소할 곳이 없어 오직 삼존(三尊)께 귀명(歸命)하고 스스로를 꾸짖고 후회하며 말하였다.
‘부디 저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하루 속히 팔난(八難)다른 학설이 있으니, 왕난(王難)ㆍ적난(賊難)ㆍ화난(火難)ㆍ수난(水難)ㆍ병난(病難)ㆍ인난(人難)ㆍ비인난(非人難)ㆍ독충난(毒虫難)을 말하기도 한다.
에서 벗어나게 하고 원결(怨結)로 인해 지금의 나처럼 되지 말게 하여 주소서.’
뱀과 여우가 한자리에 모여 말하였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뱀이 말하였다.
‘내가 장차 그 분을 구해야겠다.’
그리고는 좋은 약을 입에 문 채 감옥문을 열고 감옥 안으로 들어가서 보살을 보니 얼굴 모습이 수척해지고 창백하였으며 마음엔 슬픔이 가득했다.
뱀이 보살에게 말하였다.
‘이 약을 몸에 지니고 계십시오. 제가 장차 태자의 발가락을 물어 그 독이 매우 심하여 아무도 고칠 수 없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현자께서는 그 때 이 약을 가지고 고쳐주겠다고 자청하시어 상처에 붙이면 저절로 나을 것입니다.’
보살은 잠자코 뱀이 시키는 대로 했다.
이윽고 태자의 목숨이 장차 마치려 할 즈음 왕이 영을 내렸다.
‘누구든지 태자의 병을 고쳐 주면 그를 상국(相國 :政丞)으로 봉하여 나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게 하리라.’
보살이 위에서 들은 대로 자청하여 가서 약을 붙이자 태자의 병이 즉시 낳았다. 왕은 기뻐하면서 그 까닭을 물었다.
보살이 그 본말(本末)을 자세히 이야기 하자
왕은 탄식하고 스스로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내가 암둔하기가 너무도 심했구나.’
그리고는 즉시 물에 떠내려 가던 사람을 벌주고 온 나라에 큰 사면령(赦免令)을 내리고는 보살을 상국으로 삼있다.
그리고는 보살의 손을 잡고 궁중으로 들어가 함께 앉아 부처님 법에 대하여 담론(談論)을 즐기며 마침내 태평성대를 이룩하였다.
부처님께서 여러 사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그 이가(理家:보살)는 바로 지금의 내 몸이었고, 그 국왕은 바로 미륵의 전신이며, 자라는 바로 지금의 아난이요, 여우는 바로 추로자(秋露子)이며, 뱀은 곧 지금의 목련(目連)이요, 물에 떠내려가던 사람은 바로 조달(調達)이니라.
보살은 자비와 지혜의 도무극(度無極:波羅蜜)으로 이와 같이 보시를 행하였느니라.’
또 『신바사론(新婆沙論)』에서 말하였다.
“옛날 건타라국(揵駄羅國)의 가니색가왕(黃田內侍)에게 어떤 황문(黃門:內侍)이 있었다. 그는 항상 궁 안의 일만 감독하다가 잠깐 성 밖으로 나갔었다. 그는 소떼를 보았는데 그 수효가 오백 마리쯤 되었다.
그 소떼가 성 안으로 들어오자 소 모는 사람에게 물었다.
‘이 소들은 다 무슨 소인가?’
대답하였다.
‘이 소는 장차 그 종자를 없애려는 소입니다.’
그러자 황문(黃門)은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전생에 악업을 지어 남자 구실도 못하는 몸을 받았으니, 이제 마땅히 돈을 주고라도 이 소들을 환난에서 구해주어야겠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 대가를 치루고 그 소들을 구해주었다. 이러한 선업의 힘 때문에 이 황문은 곧 남자의 몸을 회복하였다.
그러자 그는 매우 기뻐하면서 잠시 후에 성 안으로 돌아와 궁문(宮門) 앞에 서서 기다린 채 사람을 시켜 왕에게 한 번 뵙기를 청한다고 아뢰게 하였다.
왕은 이상하게 여겨 곧 불러들여 그 이유들 물었다.
그 때 황문은 이 앞서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아뢰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한편으론 놀랍고 한편으론 기뻐서 그에게 귀한 보배와 재물을 후하게 주고 다시 높은 벼슬자리로 승진시켜 그로 하여금 바깥 일을 맡아 보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