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 섬의 지리와 역사
이스터 섬은 바다에서 융기한 세 화산으로 거의 이루어진 삼각형의 섬이다.
세 화산은 거의 붙어 있지만 100만 년 , 어쩌면 수백만 년 전에 각각 다른 시기에 융기되었으며,
인간이 정착한 이후로 줄곧 활동을 정지한 휴화산이었다.
가장 먼저 융기한 포이케 화산은 약 60만 년 전 (일설에 따르면 300만 년 전)에 폭발했고,
지금은 삼각형 섬의 남동쪽 부준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그 후에 폭발한 라노카우 화산은 섬의 남서쪽 부분을 형성했다.
삼각형 섬의 쪽에서 가장 나중에 융기한 테레바타화산이 약 20만 년 전에 폭발하면서 흘러내린 용암이
섬 표면의 95퍼센트를 뒤덮었다.
폴리네시아의 기준에 따르면 이스터 섬의 면적(66평방마일)과 해발 (510미커)은 미미한 수준이다.
깊은 계곡이 없어 하와이 섬에 비하면 이스터 섬의 지세는 완만한 편이다.
가파른 분화구들과 분석구(噴石丘)를 제외하면 이스터 섬에서는 거의 모든 곳을 안전하게 걸어다닐 수 있다.
반면에 하와이 마르키즈 제도에서는 조금만 걸어도 낭떠러지가 나타난다.
남위 27도의 아열대 지역 ㅡ 북반구에서는 마이애미와 타이베이와 비슷한 위치 ㅡ 에 위치해서
이스터 섬의 기후는 온화한 편이며, 화산 폭발 덕분에 토양은 비옥하다.
이런 점에서 이스터 섬은 세계의 다른 지역을 옥죄는 문제에서 벗어난 축복의 땅이었고,
작은 낙원으로 가꿔가기에 충분한 땅이었다.
그러나 이스터 섬의 지리적 위치는 정착자들에게 적잖은 문제를 안겨주었다.
아열대 기후대에 위치해서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겨울에 비하면 따뜻하지만
대부분의 섬이 열대 지역에 위치한 폴리네시아 군도에 비하면 쌀쌀하다.
누질랜드, 채텀 제도, 노퍽 섬, 라파 섬을 제외할 때
폴리네시아인들이 정착한 다른섬들은 이스터섬보다 적도에서 가깝다.
따라서 폴리네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중요한 열대 식물,
예컨대 코코넛(근대에 들어서야 이스터 섬에 전해졌다.)은 이스터 섬에서 잘 자리지 못한다.
또한 주변 바다는 산호초가 서식하기에는 너무 차기 때문에 산호초와 관련된 어류와 갑각류를 찾아보기 어렵다.
배리 몰렛과 내가 테레바카 화산과 포이케 화산 주변을 둘러보면서 확인했듯이, 이스터 섬에는 바람이 많앗다.
지금도 바람 때문에 빵나무 열매가 익기도 전에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하건대,
잦은 바람은 옛 농부에게 상당한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특히 이스터 섬은 외다로 떨어져 있어, 산호초에 서식하는 어종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어종이 부족하다.
피지 섬에는 1,000여 종이 서식하지만 이스터 섬에서는 127종밖에 서식하지 않는다.
이런 지리적 요인들 때문에 태평양 일대의 다른 섬들에 비해서 이스터 섬에는 먹을 거리가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연 평균 1.270밀리미터에 불과한 강유량도 이스터 섬의 지리적 조건과 관계가 깊다.
지중해변과 남캘리포니아의 강유량에 비하면 넉넉한 강우량이지만 폴리네시아의 기준에 따르면 적은 양이다.
게다가 땅에 떨어진 비는 고일 틈도 없이 다공성(多孔性)을 띤 토양에 급속히 스며든다.
따라서 담수 공급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테레바카 산에서 내려오는 하나뿐인 간헐천도 내가 방문한 시기에 말라 있었다.
지하수면이 지표아 가까운 곳에서는 우물이 개발되었고,
해안지대에는 해저에서 솟아오르는 샘물들이 밀물선과 썰물선 사이에 있어 적극적으로 이용된 듯하다.
이처럼 열악한 조건 때문에 엄청나게 힘들었겠지만
이스터 섬 주민들은 마시고 요리하며, 곡물을 재배하는 데 충분한 물을 확보했다.
이스터 섬 사람들이 아메리카가 아니라 아시아에서 도래한 폴리네시아인이며,
석상을 비롯해서 그들의 문화가 폴리네시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들을
헤이에르달과 데니켄은 무시했다.
1774년 쿡선장이 이스터 섬에 잠시 상륙했을 때
그를 안내한 한 타히티 원주민이 이스터 섬 사람들과 무리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결론 냈듯이,
그들의 언어는 폴리네시아어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하와이와 마르키즈 제도의 원주민어의 같은 뿌리를 가지며 ,
특히 초기 망가레바어로 알려진 방언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동폴리네시아 방언을 사용했다.
낚시 갈고리, 손도끼, 작살, 산호 줄칼 등 연장들은 전형적인 폴리네사아의 것으로,
특히 마르키즈 제도의 초기 모형과 무척 비슷하다.
두개골도 '활꼴 턱(rocker jaw)'으로 알려진 폴리네시아인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돌기단 아래에서 발견된 12구의 뼈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2개의 샘풀 모두에서 확인된 9가지 염기쌍의 결여와 세 가지 염기 치환은
대부분의 폴리네시아인에게서도 발견되는 특징이다.
세 가지 염기 치완 중 두 가지는 아메리카 인디언에게서는 전혀 없는 현상이기 때문에,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이스터 섬 주민의 유전자 공급원에 영향을 미쳤다는 헤이에르달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한편 이스터 섬의 주된 식량은 바나나, 타로토란, 고구마, 사탕수수, 꾸지나무 열매였다.
이런 곡불도 대부분 동남아시아가 원산지로 폴리네시아인들의 전형적인 식량이었다.
이스터 섬의 유일한 가축이던 닭도 폴리네시아의 대표적인 가축이고, 원산지는 아시아였다.
정착자들의 카누에 무임승차해서 이스터 솜에 들어온 쥐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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