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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니엘 영재교육원 원문보기 글쓴이: 천사
“우리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이다. 우리가 복제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뿐이다.” 로버트 슈미드걸 |
나는 목회에 여러 길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목회는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 제자로 구비되게 하고 그 제자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제자답게 살도록 돕는 통전적인 과정이요 작업이다. 따라서 목회자 자신에게 제자적 삶의 철학과 소신, 실적이 없으면 아무리 화려한 구호로 치장하고 온갖 행사를 벌인다 해도 그건 목회가 아니라 종교적 병정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이러한 목양의 근본정신이 빠진 목회는 평신도들의 아픔과 눈물, 웃음과 기쁨, 그 자잘한 생활의 터널들 속으로 들어가면 여지없이 깨져버리고 만다.
최홍준 목하는 목회의 기초체력이 잘 다져진 목사이다. 무엇보다 그는 제자로 살고 제자 삼는 제자로 남겠다는 각오 하나로 달려온 목회자이다. 그가 만나는 ‘한 사람’에게 복음을 꺼내 미련스러울 정도로 자랑하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이 제자도의 광채 때문일 것이다. 사랑의 교회 개척초기부터 지켜보았지만 그는 어지간히 인내할 줄 아는 목사이기도 하다. “평생 부목사로 지내도 제자훈련 목회할 수 있다면 행복하다.”며 제자반, 다락방을 숨차게 뛰어다니던 그에게서 어질고 참을 줄 아는 듬직한 복음 전령사의 형상을 보았다.
처음 부산 새중앙교회의 최 목사가 내려갈 때 며칠 밤을 잠 못 이루며 뒤척였던 기억이 새롭다. 그의 환상적인 조력없는 내 목회를 상상하기 힘들었고, 또 기성교회의 높은 벽을 제자훈련으로 사뿐히 뛰어넘을 수 있을지 마음이 졸여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 부산 새중앙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그때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고백한다. 물론 그의 눈물에 잠긴 기도와 간경화에 걸려 위험한 지경에까지 갈 정도로 자신을 태운 목회 열정, 적용에는 유연하되 원칙에는 고집불통인 깐깐한 성품,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로님들을 위시하여 전 성도가 제자사역이 결코 유행 타는 목회방법이 아닌 교회를 향한 주님의 원리요 축복임을 깨닫고 은혜 아래 순종한 아름다운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이 책 「잠자는 교회를 깨운다」는 최홍준 목사의 제자사역 매니페스토(manifesto)요 자전적 목회 후일담이다. 여기에 아무나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그의 제자훈련 초절기교(超絶技巧)가 행간마다에 녹아 있다. “방법이나 알아보자.”는 얕은 꾀로 이 책을 집어든 사람들이 있다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 되고 말 것이라고 분명히 경고하면서, 아울러 목회를 낮아질 대로 낮아진 종의 도리(serviceability)로 인식하고 현장에서 고투하는 많은 목회자, 신학생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1998년 봄 사랑의 교회 목사 옥한흠
차 례
1장 잠자는 교회, 그 무한한 잠재력 속에서
2장 사랑이 위대하더라
3장 깨워라 일어나라
4장 훈련은 전투의 연장입니다
5장 조용한 접목
6장 대각성 전도집회 - 푸른바다를 닮은 사람들의 증언
저자 최홍준 목사
훌륭한 리더도 많고 멋진 팔로워도 많지만 듬직한 코디네이터가 없던 우리 목회 현실에서 ‘제자훈련 목회를 할 수만 있다면 평생 부목사로 지내도 좋다.“며 사랑의 교회 제자반, 다락방을 숨가쁘게 누비던 특급 디싸이플 메이커.
부산 새중앙교회에 부임하여 잠재력은 많으나 정체성에서 흔들리고 사역 자원은 풍부하나 각성돼 있지 않은 전통교회를 제자훈련 및 복음의 최대와 성경의 인간이해가 만나는 입체적인 전도집회인 대각성전도집회로 흔들어 깨우는 일에 진력한 결과, ‘87년 부임시에 400여명 모이던 교인이 10년이 지난 ’98년 5월 둘째주 현재 2,380명(주일 장년 출석성도)으로 놀랍게 부흥되었다. 환상적인 목회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중직자들, 벼슬이 아니라 은사로서 직분을 고백하고 충성하는 제직들, 한 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영적 군번과 보직을 체득하고 생활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평신도들로 거듭난 무서운 제자들의 교회, 지상명령 성취를 위해 제자도의 기본을 재확인하며 동시에 시대의 표징을 부진런히 살펴 기민하게 응전하는 교회, 열방을 향해 선교적 역량을 겁없이 키워가는 교회로 성장토록 헌신했다. 동아대를 졸업하고 총회신학원을 거쳐 합동신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95년에는 미국 리폼드신학교에서 ’제자훈련이 전통교회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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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저만큼 전통교회의 모순과 아픔을 보고 자란 사람도 드뭅니다.
한편 저만큼 상처투성이의 교회를 붙들고 안쓰러워 하시는 주님 때문에 여전히 영광스럽고아름다운 교회의 영광을 맛보고 자란 사람도 없을 것니다. 난맥과 부실의 현실을 가슴으로 깨닫는 순간, 저는 어느새 ‘기억 상실증에 걸린 교회’를 깨우는 사명 안으로 깊숙이 부르심을 받아 들어가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평범의 미학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지는 시대를 살면서 저같이 평범한 사람이 또 한 권의 책을 내려 합니다. 몇 만 명이 모이는 교회를 목회하는 것도 아니고, 자라온 환경이 남달라서 교훈을 줄 수 있는 처지도 아니면서 왜 이런 부끄러운 짓을 해야 하나 하나님 앞에 여쭙기도 많이 했습니다만, 전통교회에 부임해서 무력한 목회 현장을 보신 후에 낙담하는 분들이 어쩌면 제 모델이 참고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변명으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에는 현재 5만여 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들만 제 역할을 잘 감당해줘도 굳이 개척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교회의 수는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입니까? 현존하는 전통교회의 체계나 모습으로는 21세기에 걸맞는 목회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개척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참 좋은 교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위 전통교회는 침체되고 운동력이 없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실정에 도달한 것입니다.
저 역시 ’87년에 부산 새중앙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전통교회의 구태의연하고 병든 모습을 보며 한숨만 쉬었던 사람입니다. 당시 교회의 역사는 반백년 가까이 되었고 교인 수는 400명 정도 되었지만, 십일조를 하는 교인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서 교회재정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사례비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뿐더러 교회 천장엔 비가 새고, 교회 곳곳은 습기가 차서 곰팡이 썩는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전임 목사님께서 장로님들과의 마찰로 교회를 사임한 형편이었으니 교인과 목사 사이에 불신의 벽도 꽤 두터워져 있었습니다.
부임하자마자 들려오는 저에 대한 이상한 소문들, 선교사 한 명 지원하지 못할 정도의 선교에 대한 무기력증, 불감증, 게다가 부산의 그 을씨년 스러운 날씨…. 저와 제 아내는 서울 사랑의교회에서 옥한흠 목사님과 동역하던 부목사 시절을 그리워하며 하늘을 보고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희로 하여금 그 모든 아픔들을 끌어안고 기도하게 하셨고, 은혜를 주셔서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나가도록 하셨습니다. 잠자고 있는 듯한 교회를 흔들어 깨워, 흐르던 물줄기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소명 점검은 필수
장말 목회자의 사명을 받았는지에 대한 점검은, 제 경우 좀 극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확인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마다에게 부어주신 여러 은사들을 통해서 이런 소명의식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언변과 구술능력이 있는가, 섬김의 은사는 있는가 등등 여러 부분을 되도록 꼼꼼히 짚어보는 게 좋습니다. 목회적인 은사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소명을 주시고 응답을 주신다면 두려움 없는 행보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는 신학교 가기 전 하도 교회에서 실수를 많이 해온 터라 소명문제와 관련해 이것도 하나님 앞에 의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저같이 실수 많이 하는 사람도 신학교 갈 수 있습니까?” 젊은 혈기와 의협심으로 제가 주제파악을 못하고 장로님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목사로서의 삶을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를 하나님께 여쭈어야만 했습니다. 사찰 봉급이 작다고 4만 5천 원인 사찰 월급을 9만 원으로 올리자는 운동을 일으켜서는 장로님들하고 대결하는 바람에 장로님들의 눈 밖에 난 적도 여러 번이었지요. 그래서 신학교 시절에는 한동안 교회에 전도사 발령도 못 받은 채 교회를 출석했는데 그곳에서 마음에 맞는 목자를 만나지 못해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만약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의식이 분명하지 않았다면 전 분명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에 어려운 시절도 견뎌낼 수 있었고, 그걸 계기로 나중에는 장로님들과 더더욱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뒤늦게 시작한 공부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특히, 총회신학원은 말이 대학원이지 학부 과정보다 더 리포트도 많고 숙제도 많잖습니까? 그런데 나이도 많은 제가 그걸 따라가려니까 허리도 아프고, 머리도 아팠습니다. 영어를 배우기도 힘든데 그 어려운 헬라어를 따라간다는 건 정말로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래서 김명혁 교수님은 지금도 어디 가서 저를 소개할 때면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최 목사는 공부는 잘 못했는데 목회는 잘하는 사람입니다.”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지금은 그래도 나이가 많은 전도사들이 총신에도 꽤 있지만 당시에는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완전 ‘노털’ 신세였지요. 그래서 항상 젊은 전도사들 틈에 끼어 열등감에 시달리며 공부해야 했습니다. 어려운 과목이 있으면 여지없이 재시를 보는 낭패를 겪기도 했습니다.
이모저모로 신학교 시절의 저는 우등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사실은 공부할 새가 없었다는 말도 핑계만은 아닙니다. 교육전도사로서 주일학교를 맡아 하는 일도 그렇고, 사목으로 두 군데의 회사에 나가며 성경말씀을 가르치고 예배를 인도하는 일정만 해도 일주일이 꽉 차곤 했으니까요. 게다가 친한 동료들 몇몇이서 네비게이토나 베델성서 모임 같은 성격의 그룹을 운영하며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다든가, 강사를 모셔와서 강의를 듣는 식의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낮.밤이 따로 없을 정도로 늘 시간이 부족해 절절 매곤 했는데도 ‘공부 못했던 목사’로 낙인 찍혔으니 어쩐지 억울하다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교 시절은 좋은 교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목회 방향을 설정하고 졸업 후에도 홀로 공부할 수 있는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후회스럽지 않은 기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만남
우리나라 신학의 거두라 할 수 있는 박윤선 박사님이나 김명혁 교수님과의 만남은 제 인생에 또 다른 획을 그어놓았습니다. 그분들과 큰 인연을 맺은 건 아니지만, 캠퍼스 강의실에서 만난 박윤선 박사님과 김명혁 교수님은 훗날 제가 목회하는 데 큰 중심이 되어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짧은 만남 속에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졸업학기 때로 기억됩니다. 그 당시 박윤선 박사님으로부터 받은 수업은 성경신학 가운데 ‘목회서신’ 부분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수업을 들으면서 하나님을 향한 그분의 깊은 사랑과 열정, 그리고 기도생활에 항상 고개 숙일 정도로 존경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수업을 다 끝내고 그분은 매우 강한 어조로 우리에게 한 말씀 하셨습니다.
“여러분, 3년 동안 신학교에서 공부하며 교회에서 사역을 하다보니 여러분들이 목회적인 은사를 받은 줄로 착각하고 계시겠지요? 그러나 혹시 여러분 중에 목사로서 은사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지금이라도 안수 받지 말고 그만두시기 바랍니다. 이 중에 목사가 되지 말아야 될 사람이 목사가 되어서 자신도 망하고 교회도 망하면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여러분들이 선지동산에 왔다고 해서 무조건 선교사가 되고 목사가 되는 것을 하나님 뜻으로 알면 큰 코 다칩니다.” 그 말씀이 제겐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지요. 그래서 다시 한번 제가 정말 목회자로서 소명을 받았는지를 점검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동기 중 몇 사람은 그 말씀을 듣고 실제로 다른 길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분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 중심’ 의 철학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박윤선 박사님과 함께 정말 존경할 수 있었던 또 한 분, 김명혁 교수님의 가르침 역시 제게는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분의 진실성과 꾸밈없는 태도, 하나님의 섭리를 언제나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겸허한 자세야말로 삶의 소중한 표본을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제일 감동받았던 일은 그분의 아들 철원이가 네 살 때 뇌종양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는데, 그 투병기간 내내 아들에게 천국에 대한 소망을 심어주던 사연을 수필로 담은 글을 읽었을 때였습니다. 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만을 소망으로 여기는 그분의 견고한 믿음이 그대로 배어 나온 글이었기에 더욱 감동이 컸던 것 같습니다. 사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유학 가서 12년 동안이나 공부했으면 지적인 교만이 들 법도 한데,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목격하시면서 속수무책인 인간의 한계를 보시면서 그분이 보여주시는 삶의 태도는 언제나 겸손함 그 자체였습니다. 김명혁 교수님에게 또 한번 크게 배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 Y교회 목회를 사임하실 때였습니다. 저는 전도사로서 그분의목회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 분의 집사님이 사재를 털어 교회를 세운 그 교회 구조 탓에 교회가 그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을 보시면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로 가르치시려고 애쓰시다가 한계를 느끼시고 깨끗이 사임하시는 모습이 그렇게 멋져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도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목회야말로 더더욱 마무리가 중요한 사역이지 않습니까? 평신도들에게 가르친 대로 목회지가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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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한흠 목사님께는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첫째 제자훈련 목회는 미쳐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 이 목회는 단순성을 확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옥 목사님은 ‘미친 척’하는 분이 아니라 제자 훈련에 정말 미친 분이셨습니다. 또한 그분에게서 나오는 영적 파워는 복음(전도와 양육)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의 부동심(不動心), 바로 거기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비전만 같으면 문제없다
총신을 다니면서 장성교회를 섬기고 있던 중,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님께서 어느 날 제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제가 교회 대학부에서 제자훈련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누군가로부터 들으셨는지 함께 동역하자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당시 총신에서 함께 공부하던 우리 동료들은 좀더 효과적인 대학부 사역을 위해 네비게이토 간사들을 불러 강의를 듣기도 하고, IVF의 송인규 간사님(현재 합신 교수)등을 초청해서 공부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베델 성서공부도 했었지요. 당시 총신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습니다. 학내 문제로 한참 데모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저는 열심히 선교단체의 장점들을 대학부 사역에 접목시키는 가운데 제자훈련에 눈떠가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러자 열매가 나타나고 대학부에 때 아닌 부흥이 일어나던 시점이었습니다.
옥 목사님께서는 그 소식을 들이시고 전화를 하신 것이었습니다. 얼굴도 전혀 알지 못하는 일개 전도사를 보고 대뜸 비전이 같은 것 같으니 함께 일해보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참으로 감사하면서도 옥 목사님께 한 시간 동안이나 설득하며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옥 목사님을 섬길 수 있는 재목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지요. 당시 제 나이가 너무 많아서 옥 목사님과 별로 나이 차이가 나지도 않는 데다, 새파랗게 젊은 전도사들을 놔두고 딸린 식구가 많은 저를 부르신다면 오히려 일하시기가 불편하실 것 같았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옥 목사님께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르시기 때문에 순수한 마음으로 저같이 세상 경험 많고 나이 많은 사람을 불러주신 거라 판단했었지요. 나이만 많았지 사실 제가 가진 것이라곤 특별한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옥 목사님께서는 그런 건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최 전도사님, 문제는 다른 게 아니라 비전입니다. 비전만 같아면 얼마든지 함께 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대로 된 건물도 없는 사랑의교회(당시 강남은평교회)에서 옥한흠 목사님과의 동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저 혼자 어줍잖게 해오던 제자훈련도 목사님의 지도로 틀을 잡아가면서 할 수 있었고, 심방도 함께 다니며 환상적인 호흡을 맞출 수 있었던, 제게는 너무도 행복한 시간들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목사 같지 않은 진짜 목사
옥한흠 목사님께 받은 가장 깊은 인상은 주님 앞에서의 철저한 헌신이었습니다. 그러시면서도 매사에 형식적인 것을 싫어하시고, 꾸밈없는 소탈함으로 생활하시는 모습이 ‘참 큰사람이구나.’라는 걸 느끼게 했습니다.
옥 목사님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전통교회 목사들의 전통적인 목회의 틀을 깨고 전혀 다른 패턴의 삶을 사시는 모습이었습니다. 형식이나 의식, 권위도 다 내려놓고 순수하게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으로 섬김의 삶을 살려 하시는 모습. 말씀을 증거하실 때마다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영혼에 대한 열정. 삶의 진솔함이 늘 묻어 나오던 옥 목사님께서는 일부 전통교회 목사들이 가지고 있던 목이 굳은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겸손하고 정직하며 투명한 무엇이 있었습니다. 또한 외람된 표현이긴 하지만 제자훈련에는 완전히 미치광이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타협없는 강직함 앞에는 두 손을 들어야 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새벽기도회 때의 일이었지요. 그날따라 옥 목사님께서 새벽기도에 못 나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성도가 기도회를 마치고 나가면서 교회 입구에 나와 사모님과 성도들 앞에서 “개척 교회 목사가 새벽기도회도 안 나온다.”며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그 사실은 곧 옥 목사님께서도 알게 되셨지요.
그날, 제가 학교에 갔다가 교회로 돌아오자 목사님께서 새벽에 일어난 상황에 대해 자세히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씀드렸는데, 옥 목사님께서 그 성도에게 전화를 넣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시키는 대로 전화를 하고는 목사님을 바꿔드렸지요. 저는 목사님께서 “몸이 많이 피곤해서 새벽기도를 못 나갔다.”고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첫 마디가 “집사님, 신앙생활 몇 년 하셨습니까?” 하고 다짜고짜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시더니 “신앙생활 20년 하신 분이 목사가 사정이 있어 새벽기도 빠질 수도 있는 것을 가지고 야단을 부리면 질서가 어떻게 되겠느냐?”며 호통을 치셨습니다.
만약 그때 그분이 초신자였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겁니다. 옥 목사님께서 그렇게 단호하게 야단을 치실 분이 아니지요. 문제는 교회의 기둥이 될만한 사람이 불평불만을 나타낸 데서 실망감이 불거져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역시 옥 목사님은 한 수 위다.’ 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부교역자들의 살림살이는 어떤지, 화장실이며 부엌살림은 어떤지를 꼼꼼히 점검할 정도로 자상하시고 항상 사랑을 강조하시면서도, 절대 “목사는 이래야 하니까.” 하는 틀에 얽매이지 않았던 분이셨습니다. 신념대로 밀어붙일 줄 아는 강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이 시대의 탁월한 지도자이셨습니다.
설교에는 균형이 있어야
목자로서의 지도력에 대해서는 옥 목사님의 모습을 통해 그 후에도 여러 번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옥 목사님께서 오전예배에서 강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시면 저는 저녁예배 설교를 통해 성도들의 삶을 조명하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한번은 조화를 잃어버린 설교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범죄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말씀이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인과응보식 설교로 흐르고 말았습니다. 죄의 값은 하나님의 진노와 보응이라는 것을 아주 강렬하게 선포했지요. 왜냐하면 제자훈련을 하다보니 성도들이 죄용서 받는 데 지나친 비중을 둔 나머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이나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두려움을 간혹 간과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에 그걸 시정해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의 설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경외심을 알게 하는 쪽보다 진노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일방적으로 선포해버린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말하자면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그 설교를 하고 내려오자 옥 목사님께서 처음으로 제게 설교에 대한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자네, 설교에 균형을 잃으면 어떡하나?” 목사님은 하나님의 공의를 전하는 메시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전해져야 균형잡힌 설교가 된다는 걸 강조하셨습니다. 전 그렇게 하나 둘씩 목사님을 통해 설교, 제자훈련, 사역을 배워가며 목회자로서 준비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7년의 세월 동안 그렇게 우리는 한가족처럼 격의 없이 지내며 교회를 위해 합심해서 사역을 해나갔습니다. 그 결과, 사랑의교회는 개척 8년 만에 교회 성도들이 3천 6백명 정도 되었고, 차츰 기틀이 잡혀가기 시작했습니다.
최 목사, 부산으로 가게나!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사랑의교회에서 한참 사역하고 있던 ’86년 가을무렵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수석부목사로 섬기고 있었는데, 어느 날 부산의 노진현 목사님께서 제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노 목사님이면 우리 교단에서 가장 큰 어른이신데 왜 친히 전화를 다 주셨는지 여쭤봤더니, 저 보고 부산에 내려오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셨습니다. 당신께서 원로 목사로 계신 교회에 청빙의사를 밝히시는 내용이었지요.
저는 펄쩍 뛰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의교회를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무엇이든지 이론이 현실화될 때에 나타나는 열매를 보면 그 이론의 가치를 알 수 있는데, 그때를 즈음해서 사랑의교회에 나타나는 제자훈련의 열매는 목회자인 저를 너무나 가슴 벅차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점점 “바로 이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제자훈련을 통해 성도들이 변화되는 현장을 너무도 생생하게 목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도무지 소망 없어 보이는 사람들, 당장 이혼할 것 같은 부부들도 이 제자훈련만 받으면 복음 앞에 새로워지고, 삶이 변화되어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것을 볼 때 목회자로서 정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목사로서 그 이상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조직체가 아니고 생명체라는 것, 그러기에 생명체인 교회는 건강해야 하며, 건강하면 잘 성장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회에 속한 개인개인도 자라고, 교회도 자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사랑의 교회에서 증거되고 있었습니다. 제자훈련을 통해 교인들이 건강해지자 교회가 부쩍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아주 폭발적인 부흥이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교회 개억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접어버렸습니다. 평생 사랑의교회 부목사로 섬기며 제자훈현 사역을 하고 싶었습니다. 단독목회를 하는 것보다는, 이미 계획되어 있는 제자훈련 세미나에서 스태프로 참여해 한국교회 목사님들을 섬기며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 꿈이 한국 최초의 원로부목사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꿈을 갖고 있던 제가 노진현 목사님의 말씀에 선뜻 응할 수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당신 서울의 모 교회에서도 청빙 의사를 밝혔었지만, 사랑의교회가 저를 필요로 하는 한, 이곳에 남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있었던 상황이어서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왜 꼭 한국교회는 담임목사를 해야만 제대로 목회를 하는 것처럼 보는가?” 에 대해서도 사실상 동의가 안 됐고, 옥한흠 목사님처럼 목회를 잘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에 마음에 전혀 동요가 없었습니다. 또한 부목사로 일하면서도 얼마든지 목회의 기쁨과 보람을 누리고 있는데 굳이 단독목회, 개척교회를 해야 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던 터이기도 했습니다.
워낙 교계의 어른이시라 정중하게 거절하면서 다시는 그런 전화가 안 걸려오기만을 바랐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교만한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매주 월요일마다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거절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어른에게 때마다 고사(苦辭)의 뜻을 밝힌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그러기를 한 4개월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부족하고 어리석은 저를 추천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인데, 그날은 감사하다는 말이 도저히 나오질 않았습니다. 선뜻 마음이 부산으로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당시 새중앙교회는 안정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가서 교회를 안정시키고 부흥시킬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어물쩡거리는 사이에 새중앙교회에서는 공동의회까지 열고 저를 담임목사로 데려오는 데 만장일치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제가 그동안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던 건 자녀교육에 관한 문제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한참 예민한 시기에 아이들에게 학교를 옮기라는 것도 그렇거니와 부산과 서울이라면 문화적 충격도 따를 것이고 해서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신학교 들어갈 때는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하며 눈물어린 신앙고백을 했는데, 막상 서울에서 부산으로 옮겨가는 작은 문제에 부딪쳐서도 그렇게 이것저것 계산을 했던 제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왜 그렇게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을까요? 저는 마지막 비장의 카드로 옥한흠 목사님께 문제를 맡겼습니다. 하나님과 저와의 문제이므로 하나님께 무릎꿇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렸어야 되는데, 하나님께 참으로 죄송한 일이었습니다. 그저 옥 목사님께 문제를 맡기면서 내심으로는 ‘목사님께서 거절해주시겠지.’ 하는 기대감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사랑의교회는 당시만 해도 다른 교회와 차별화가 많이 되어 있던 터라, 부목사 자리에 앉을 만한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거절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옥한흠 목사님의 대답은 제게 상당히 큰 혼란을 가져다주셨습니다.
“최 목사, 그곳으로 가게나.”
청천벽력 같은 그 말씀은 너무도 섭섭하게 들려왔습니다. 혹시 그동안 저를 보며 나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계셨던 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했지요. 목사님은 제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최 목사라면 잘할 수 있으리라 믿네. 전통교회에도 제자훈련이 먹혀 들어갈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시험장소가 될 수도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최 목사에게 주신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옥 목사님의 그 말씀을 들으면서도 저는 계속 서운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말려주실 줄 알았는데, 말려주실 줄 알았는데….
나중에 옥한흠 목사님의 사모님이신 김영순 사모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사실이지만, 옥 목사님께서는 제게 그런 허락을 하시고서는 3일 동안 밤잠을 못 이루셨다고 합니다. 내일 다시 허락 못한다고 말할까, 어쩔까를 놓고 고심하신 것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훌륭하신 점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당신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놓고 고민하기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보고 그것을 고민하시는 분이시지요.
“최 목사, 사실은 난 자네가 여기서 떠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서운하네. 그러나 자네, 언제까지나 여기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나? 곧 50세가 되고, 60세가 되어서도 부목사로 목회하는 것에 만족할 수 있겠나? 자넨 담임목회를 해도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는 그릇이네. 나이가 들어서 갈등하지 않을 자신 있겠나? 그때는 후회해도 너무 늦어. 결혼도 적령기가 있듯이 최 목사의 목회 인생에서도 지금이 적령기일세. 지금 내가 자네를 붙잡고 있다가 나중에야 놔주면 그때는 갈 곳도 없고 하나님 앞에서 자네가 받은 여러 은사들을 펼 수 있는 기회도 없을 것 아닌가? 그러니까 여러 생각 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그곳으로 가게나.”
이렇듯, 목사님께서는 제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도 결단을 내릴 수 있었고, 옥한흠 목사님게 더없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 가족은 부산 새중앙교회에서 펼치실 하나님의 놀라운 뜻들을 다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날이면 날마다 하나님을 기대하며 가슴 부풀기보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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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해야 할 것과 변해야 할 것이 뒤바뀐 교회에서는 언제나 답답한 형식주의, 무서운 정죄, 약은 이원론이 득세합니다. 이런 곳에서는 전통이 복음을 관심이 생명을, 관념이 사랑의 역사를 질식시킵니다.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숨가쁘게 누비고 다니던 서울, 그 아름다운 제 교구들을 그리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조용히 일하시기 시작하신 것도 이때였습니다.
분열과 아픔 끝에 탄생한 새중앙교회
부산 새중앙교회는 부산 중앙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지 10년 된 교회였습니다.
분열과 아픔 끝에 탄생한 새중앙교회에 새로운 목사님이 초대 목사로 오시게 되었지만, 장로님들과 마찰이 생기고 교회 내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진현 목사님은 참으로 청렴결백하시고 인격 목회를 하시는 분이라 양적 부흥이나 야망과는 거리가 먼 분이신데, 그런 면에서 새로운 목사님과 호흡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었나 봅니다.
그러니 교회 일은 많은데 일할 사람은 없고, 일을 해도 자꾸만 불만이 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장하는 교회는 일하는 것이 즐겁고 신나기 마련입니다. 반면 성장하지 못하는 교회는 교인들이 일하면서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리며 불평 불만을 터뜨리게 됩니다. 일이 더 이상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제목이 될 때, 그 교회는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초대 목사로 오신 목사님과 그 목사님을 추종하던 몇 성도들이 함께 교회를 떠나는 바람에 새중앙교회는 참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당시 새중앙교회는 설립 10년째가 되었으나 사실은 원로목사를 모시고 나왔고, 장로, 권사 등이 모두 중앙교회 출신으로 교회 역사가 42년이나 된 교회, 지금은 54년째 된 교회로 문자 그대로 전통교회나 다를 바 없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회원들은 60세를 바라보는 50대 후반들이었고, 전임자가 당회와의 오랜 갈등으로 결국 사임하게 됨으로 중간층이라 할 수 있는 4,50대가 공동(空洞)현상을 빚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젊은이들 역시 지도자에 대한 불신으로 가윽 차 있었지요. 이런 산적한 문제들 속에서 저를 부르셨으니 그릇도 작은 제가 감당할 길이 막막했습니다.
단독 목회의 기대와 희망
막상 부임을 해서 보니 교인은 400명 정도 모여 있었습니다. 중형 교회 수준이었지요. 사실, 그 전에는 5~6백 명이 모이는 큰 교회였는데, 그 정도로 교회규모가 줄어든 것입니다. 재정적으로도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고, 상처투성이었습니다. 서로 간에 감정적인 앙금이 남아 있어서 불신의 골도 깊이 패여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예배에서 그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배가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 희망적이었던 것은 교회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사랑의교회에서 해왔던 목회 패턴과는 상당히 다르게 목회를 하게 되겠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하는 회의스러운 마음과 함께, 제가 과연 저들의 목자로서 하나님게 저들을 잘 인도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자기점검도 자꾸만 교차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위축된 마음만 커져서 스스로를 달래야 했습니다.
‘그래, 3년만 한번 부딪혀보자. 안되면 보따리 싸가지고 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배짱으로 목회 일선에 뛰어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렵기 시작한 셈이지요. 언제든지 그만둘 각오와 함께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저의 목회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여러 사건과 문제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걸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용기있게, 배짱있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개혁의 깃발은 올라가고
부산에 내려갈 때 어떤 목사님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1년 동안은 아무것도 손대지 말라고 말입니다. 절대로 한꺼번에 고치려고 생각하지 말고 서서히 개혁을 하라는 뜻이었지요.
그러나 가자마자 저를 사로잡았던 생각은 ‘어떻게 하면 이 토양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인 제 눈으로 보기에 바꿔야 할 것들이 무척이나 많아보였습니다.
그 첫 번째 개혁은 다른 날도 아닌 부임예배를 드리던 날 이루어졌습니다. 부산은 생각보다 바람이 참 많은 곳이었습니다. 겨울날씨답게 쌀쌀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부임예배를 드리기 위해 열심히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주보부에서 문의가 오기를 이번 주일에 전할 설교 원고를 미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주일 주보에 설교 내용을 실어야 한다면서 말입니다.
저는 여러 이유에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대신 새중앙교회로 불러주셔서 참으로 감사하고 열심히 주의 사역을 하겠다는 내용의 인사말씀을 원고로 건네주었습니다. 그러자 당장 한 장로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주보 검열 하시는 장로님이셨지요.
“목사님, 이 원고 말고 목사님의 이번 주일 설교 원고를 주십시오.” 저는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말씀이 선포되기도 전에 설교 원고를 달라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지요.
“장로님, 저는 설교할 때 철저하게 원고를 준비해서 설교를 합니다. 성도들이 그 원고 설교를 들여다보며 듣는 것은 마치 강의를 듣는 것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강의와 다릅니다. 설교는 원고가 있더라도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을 때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에요. 그렇게 때문에 저는 이번 주일에 한 설교를 다음 주 주보에 싣는 것은 괜찮지만 그 주간에 미리 싣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번 주일에는 인사말씀을 실어주십시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당회에서 그 문제가 당장 불거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지요.
“설교 원고를 그 주간의 주보에 내야 하는 제도가 왜 생겼습니까?" 장로님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전임 목사님께서 매주 같은 말씀만 반복해서 전하시고, 설교 준비를 도통 안 하시는 바람에 원고를 미리 내도록 종용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목사와 장로들 간의 불신의 벽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장로님들께 간곡히 말씀을 올렸습니다.
“장로님, 좋습니다. 만약에 제가 했던 설교를 또하거나, 같은 내용만 반복해서 말씀을 전하는 경우가 생겨 장로님들께서 설교원고를 그 주일에 내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나 당분간만 이 문제를 제게 맡겨주시고, 지켜보십시오.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다행히 그 날 이후, 지금까지 당회에서는 한번도 그 주간의 설교를 미리 제출하라고 한 일이 없었습니다. 부산 새중앙교회에서 이룬 첫 번째 개혁 아닌 개혁이었습니다.
헌금에 대한 동기부여는 담임목사가
환영예배를 마치자마자 교회 시설에 대한 점검에 들어갔습니다. 이미 교회 지붕엔 비가 새고 있었기 때문에 지붕 수리가 필요했습니다. 또한 앰프 시설이 엉망이었습니다. 그런 앰프 수준으로 4백 명이나 되는 청중들에게 말씀을 전달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될 정도였지요. 그래서 제일 먼저 앰프부터 교체하자고 했습니다. 당회에서는 돈이 없는데 어떻게 앰프를 교체하느냐며 되레 물었습니다. 사실 저는 교회 시설 투자에 유별난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예배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투자는 아끼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재정 상태를 살펴본 저 역시 입을 벌리고 말았습니다. 재정 상태는 극도로 빈약하여 교회당에 비가 새어도 손을 쓸 수 없었고, 심지어 교회 주위의 구멍가게마다 외상으로 빚을 지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심지어 목사 사택도 세입자를 내보내고 입주를 해야 하는데, 전세금도 이잣돈을 내어 변젯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사례비 또한 재정부장이 변통을 해가며 내주는 식이었고, 그나마 제때 나오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교인들 수로는 중형교회 정도 되었지만 교인들 대개가 가난하기도 하거니와 헌금에 대한 동기 부여도 전혀 되어 있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단 한 사람의 선교사도 지원하지 못하고 있었고, 구제헌금도 전혀 없었습니다. 너무도 춥던 어느 주일은 기름이 없어서 교회 전체에 난방이 끊기는 바람에 오돌오돌 떨며 예배를 드릴 정도로 교회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인들에게 헌금을 내도록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하루는 교인들을 모아놓고 헌금 얘기를 해야만 했습니다. 장로님들께 드린 말씀 그대로 드렸지요.
“믿음이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설교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잘 안 들린다고 수군거리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여러분들을 돌볼 책임이 있는 저도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듣는 기능이 마비된다면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새신자들에게도 말씀이 들어가야 믿음에 굳게 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만약 이 일을 잘 감당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하나님께 책망받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습니까? 좀 힘들더라도 이 일을 위해 헌금을 마련해야겠습니다. 우리 무슨 일이 있어도 앰프는 제대로 설치하도록 합시다!” 성도들의 헌금, 그것은 목자가 오해를 무릅쓰고라도 동기 부여를 해주어야 하는 의무사항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고 난 얼마 뒤부터 헌금이 쏙쏙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신이 난 우리는 그 헌금으로 앰프를 교체하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무려 다섯 번이나 교체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앰프 시설이 아주 훌륭한 편에 속한다고 자신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작년에 극동방송에서 저희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저희 교회 앰프 시설을 보고는 “방송국보다 낫다.”며 칭찬할 정도였으니까 교회로선 대단한 투자를 한 셈이었습니다.
그렇게 ‘앰프 헌금’을 하면서부터 두 번재로 손댄 부분이 ‘감사헌금’과 ‘십일조’였습니다. 당시는 헌금을 드리면 헌금자 명단을 일일이 담임목사가 호명하는 식으로 예배 순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그게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당회를 소집해서 말씀을 드렸지요.
“예배 시간에 헌금자 명단을 꼭 일일이 호명해야만 되겠습니까? 어차피 주보에 명단이 나가는데 예배 시간에 헌금에 대한 기도만 하고 명단은 안 부르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나 장로님들의 태도는 난공불락이었습니다. “그거 안 부르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헌금이 줄어들 게 뻔한데 왜 안 부르려 하십니까?” “헌금이 줄어든다고요? 좋습니다. 그러면 헌금이 줄어드는지 안 줄어드는지 한번 시험해보도록 합시다.”
그런데 그 결과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한 달도 안 되어서 헌금이 두 배로 뛰어올랐습니다. 헌금이 잘 나오게 하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들을 쓰기 보다는 성경적인 헌금의 원리를 성도들에게 가르치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걸 보여준 단적인 사례였습니다.
그 즈음해서 교회 냉방 시설 문제가 당회의 큰 쟁점이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 냉방 시설 설치를 급선무라고 여겼지만, 장로님들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냉방시설이 갖추어진 교회가 흔치는 않았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빨리 이 시설부터 갖추자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우린 전도하기 위해서라도 교회 냉방 시설을 갖추어야 합니다. 예수 안 믿던 사람들이 무엇이 갑갑해서 팍팍 찌는 교회로 오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주넘이나 다방 같은 곳을 보십시오. 다 피서할 만한 곳들입니다. 설교 듣는 데도 아직 지루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어색한 교회, 게다가 푹 찌기까지 한다면 교회로 쉽게 발길을 돌리겠습니까? 믿는 사람들끼리만 은혜 받기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휴식처요 피난처로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건 절대 낭비가 아닌 것입니다.”
수요예배를 드릴 때마다 저는 에베소서 강해를 해나갔습니다. 아시다시피 에베소서는 바른 교회관을 심어주는 데 적합한 말씀이고,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올바른 평신도 지도자관을 심어주는 데도 적합한 말씀입니다. 저는 그런 에베소서 말씀들을 근거로 해서 성도들의 생활적인 면에 깊이 파고 들어갔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 는 근본적인 문제 앞에서 다른 철학이나 제 생각보다 성경적인 원리들을 지침으로 해서 풀어나가자 무엇보다 젊은층들이 지도층에 대해 신임하는 눈치가 보였습니다. 그럴 즈음 해서 “교회 시설 투자는 사치가 아니다.” 라는 요지로 교회 내 냉방 시설을 갖추자는 얘기를 꺼냈고, 감사하게도 온 교인들의 협조하에 그 문제도 어렵지 않게 풀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 둘씩 문제가 해결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손문들, 어려운 당회 운영
제가 새중앙교회에 부임할 당시만 해도 저는 당회에 대한 아무런 훈련도 받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당회를 운영하는 데 여러 시행착오가 따라야 했습니다.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님께서도 당회를 하실 때는 회의 중심이 아니었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수시로 모여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의논하시곤 하셨기 때문에 일반 전통교회의 당회 운영에 대해서 저는 거의 모르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게다가 사랑의교회에서도 당회를 할 때 제가 직접 들어갈 수 있었던 기회는 많지 않았으니 ‘동의’니, ‘재청’이니 하는 것들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다못해 “가부를 묻겠습니다. 가하면 ‘예’. 하십시오.”라고 묻는 것조차 몰랐으니까요. 어느날 장로님게서 직접 가르쳐주셔서 안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니 부임하고 가장 힘들었던 건 당회 운영이었습니다. 저 자신부터가 미숙했으니 무슨 안건을 내놓았을 때 사랑의교회에서처럼 자연스럽고 유기적으로 의논이 되는 게 아니라 딱딱하고 서로 눈치만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식의 회의가 되고 말았으니까요. 그런 딱딱한 회의가 지금의 유연한 회의가 되기까지 그냥 된 것이 아니라는 걸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당회 운영 하나 가지고도 하나님 앞에서 흘려야 했던 눈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또한 그 흘린 눈물만큼 성과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저는 뼛속 깊이 경험해야 했습니다.
가스펠송 사건
한번은 당회에서 이런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예배 시간에 복음성가를 불러도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전통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시대의 변화에 대처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을 감당해나가야 할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위해서만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동시에 세상을 위해서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으로서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빗장을 걸어놓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젊은이들이 즐겨 부르는 복음성가인 경우도 지금까지 예배시간에 안 불렀기 때문에 계속 안 부른다면 아예 옛날로 돌아가야 옳지 않겠습니까? 그러다보면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대처할 능력을 잃게 됩니다. 장로님들, 한번 보십시오. 옛날에는 예배드릴 때 남자와 여자 사이에 휘장을 쳤잖아요. 장로님들, 기억나시죠? 남녀가 어떻게 얼굴을 보며 거룩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느냐는 발상이었지요. 그러다가 휘장을 치울 때에 얼마나 문제가 많았습니까? 또 마룻바닥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다가 의자를 놓을 때도 얼마나 문제가 많았어요? 시대는 계속해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매일 다른 이들의 뒤만 쫓아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히려 문화적인 면에서나 모든 면에서 앞장서서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항상 교회는 장로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장로가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런 강조 때문인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장로님들은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지, 끝까지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시는 분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로서는 어떤 면에서 억지 같은 제 의견을 끝까지 수렴해주셨던 장로님들은 정말로 훌륭하신 분들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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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목회는 적잖이 미련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많이 모을까, 어떻게 하면 헌금 많이 거둬서 예배당 짓고 교회 버스 돌릴까, 이런 비본질적인 것에 마음이 가 있어선 절대로 제자훈련 못 합니다. ‘한 사람’, 그것도 이 훈련의 의미와 보람에 공감하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난 이런 훈련 못 받습니다.’ 하고 버티는 사람을 위해 죽는 것이 제자훈련입니다. 저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신 예수님의 심정을 제자훈련 하며 조금이나마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당찬 심방, 힘찬 목회
성도들과 관계를 형성할 때 가장 중요한 시점이 부임 심방할 때입니다. 부임 심방을 하다보면 복음에 대한 성도들의 이해가 어느 정도인지 진단할 수 있고, 앞으로 목회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저도 서둘러 부임 심방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면서 장로님들을 불렀지요. 대부분 부임 심방시에는 장로님 댁을 제일 먼저 심방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장로님들 댁에서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차리는 게 관례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부터 못 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장로님들 댁보다 환자가 있는 곳, 보다 연약한 사람들이 있는 곳을 먼저 심방하겠다는 제 뜻을 밝히고는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환자나 극빈자가 있는 집, 어려움이나 환란을 당한 집을 먼저 방문했습니다. 방문 할 때마다 그 가정마다의 어려움들을 놓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난 후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의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방문하기 전부터 다시 한번 신신당부를 했지요. 장로님들이 모범을 보이셔서 절대 식사 준비는 하지 마시라고 말입니다. 당부대로 장로님들은 식사 준비를 안 했더군요. 그러니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심방예배도 형식적인 틀에 의해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좀더 여유있게 드릴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여유있게 드렸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형식은 예배식으로 드리되 찬송하고 말씀보며 서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 심방예배의 특징이었습니다.
전임 목사가 떠나고 1년이 넘도록 비어 있는 교회에 고대하고 고대하던 담임목사가 부임하여 심방을 하게 되자 성도들의 자세는 처음엔 너무나 진지했었습니다. 방석을 새로 준비한다. 집안을 청소한다, 온갖 정성을 들여 준비들을 하는 눈치였습니다. ‘우리집은 언제쯤일까.’ 주보의 발표를 보고 가슴 설레며 차례를 기다리던 교우들에게 전해진 소식은 뜻밖에도 “새로 오신 목사님이 심방 오믄 꼬치꼬치 캐묻는데이. 내는 홍역 치룬기라. 집사님 집에 아직 안 오셨제. 심방 받아봐래이. 땀 뺄기다, 땀 빼!”라는 것이었으니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의례적인 인사치레의 심방이 아닌, 더군다나 일방적인 방법으로 말씀을 전달하기보다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진단해볼 의도를 갖고 귀납적 방법을 활용한 심방에 교인들은 모두들 얼떨떨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짐작했던 것 이상으로 성도들의 심각한 영적 무지와, 말씀에 기초해 있지 못한 신앙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현상은 저희 교회 뿐만 아니라 많은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인지도 모릅니다.
어느 교회든 장로님들은 목사와 함께 교회를 세워가는 사람들인데 저희 교회는 어떤 면에서는 장로님들의 힘이 젊은이들과 여러 교인들 사이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교회의 어른으로서 전폭적인 신뢰를 받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인격적으로나 신앙연륜 면에서는 우리 교회 장로님들이 저력있는 분들이셨지만 당시로서는 말씀에 권위가 없었습니다. 또한 새벽기도에 나오시는 장로님들이 거의 없을 지경이었으니까 그분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교인들이 볼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았지요.
한번은 당회를 소집해서 장로님들께 새벽기도에 대한 저의 그런 의견을 쭉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새벽기도 안 나오시는 장로님들의 얼굴 표정이 환히 밝아졌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말씀을 드렸지요.
“장로님들. 아무래도 전 혼자 목회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장로님들이 도와주셔야 되겠습니다. 성경의 원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의 원리는 동역입니다. 전 동역 목회를 하고 싶지 단독 목회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장로님, 그래서 말씀인데요. 저희 교구를 좀 나누어서 여섯 교구로 만들테니까 장로님 여섯 분이 그 교구를 하나씩 맡아주십시오. 그리고 그 교구에 어려움이나 문제점이 있으면 장로님들이 기도하시면서 문제를 풀어가시도록 해주셔야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각 교구별로 문제점을 쭉 뽑았습니다. 그 문제들을 놓고 저는 전체 교구를 위해 기도하기로 하고 장로님들께서 각각 한 교구씩 맡으셨습니다. ‘이제 D됐다.’ 싶은 저는 각 교구별 교인들의 전화번호 및 그동안 제가 파악한 그분들의 상황, 형편, 기도제목도 나누어드렸습니다. 장로님들께 여쭈었지요.
“자,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장로님들은 이제 어쩔 수 없이 양떼를 맡아야 하는 감독의 자리에 서신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장로의 직분은 양떼를 위해 죽어야 하는 직분입니다. 이제 죽을 각오로 저나 장로님이나 달려가야 될 것입니다.”
일순간 분위기가 숙연해졌습니다. 저는 목회에서 기도 없이는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무엇이관대 양들을 돌볼 책임을 질 수 있겠습니까? 똑같은 인간이고, 똑같은 죄인들인데요. 그래서 간곡히 말씀을 드렸지요.
“기도 외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우리, 양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십시다. 우선 장로님들이 교회와 멀리 계셔서 새벽에 못 나오니 다른 모음 시간을 마련해서라도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했으면 합니다. 들으셨겠지만 장로님들이 새벽기도에 안 나오신다고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새벽기도로 신앙 정도를 판단해선 안 된다고 단호하게 교인들에게 가르쳐왔습니다. 그러나 목사와 장로는 성도들에게 존경을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우리 모여서 함께 기도를 하는 기도회를 갖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수요일 예배에 모두들 나오시니까 수요예배 후에 한 15분 정도 기도회를 하도록 하십시다.”
기도회를 하자는데 싫다는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장로님들도 순순히 그러자고 했습니다. 혹여 당장 하자고 하면 부담이 될가봐 4월부터 하자고 외상을 그어놨지요. 우스갯소리로 한국 사람들은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데 4월부터 하자는 소리에 손쉽게 그 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도 모임을 하며 말씀을 나누자 교회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두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말씀처럼 교회 분위기는 너무도 뜨거워졌고,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는 영적인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영적인 능력으로 교회 분위기를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두세 사람이 모이면 기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말씀을 나누었으며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졌습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그것이 저희 부산 새중앙교회 제자훈련의 시초가 될 줄 장로님들은 아마 모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수요예배 후의 기도회가 오늘날은 심야기도회로 발전했을 뿐 아니라 장로. 목사들이 환자 성도들에게 안수기도해드리는 시간으로 발전했습니다.
기도모임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저는 또한번 당회를 소집했습니다. ‘새가족반 성경공부’에 대한 안건을 내놓았지요. 그러자 장로님들은 흔쾌히 “아, 목사님, 그거 하십시오.”라고 찬성을 하셨습니다. 제가 대답했지요.
“장로님, 저의 뭘 믿고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제게 맡기시려 하십니까? 혹여 제가 이단을 가르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뜬금없는 제 물음에 장로님들은 분위기 파악이 안 돼서 제 얼굴만 쳐다보셨습니다.
“제가 새가족반 성경공부를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장로님들이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새가족반이 생기기 위해서는 장로님들이 먼저 공부를 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모범을 보이신다는 차원도 있고, 장로님들이 먼저 잡숴보시고 새가족들이 먹어도 되는지를 판단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바울도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한다고 했으니까 장로님들게서도 이 교재를 갖고 제게 5주 동안 성경공부를 받아보시고 좋다는 찬성이 일며 그때 가서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씀을 드리자 장로님들은 서로 눈치를 보시더니 “정 그러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하며 안건이 통과되었습니다. 제자훈련의 기초가 시작된 역사적인 순간이었지요.
“목사님, 참 좋네요. 빨리 다른 교인들도 이 재미를 느끼게 해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불붙기 시작한 성경공부가 바로 본격적인 제자훈련의 시초가 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Tips for Laders 1 제자훈련반 이렇게 편성하면 된다! 1. 집중한다 : 조금씩 서서히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 가는 재미, 이것이 제자훈련의 참맛이며 동시에 어려움이다. 훈련의 점진성과 철저성을 생각할 때 목표와 과정의 집중이 생명이다. 2. 소수에서 시작한다 : 지도자가 커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원을 한 제자반ㅇ에 배치하는 것은 과욕에 불과하다. 3. 세밀하게 분류한다: 동질적인(homeogenous) 교인들끼리 만나게 해주어야 한다. 연령, 교육수준, 고민의 종류가 너무 다른 이질 집단 내에서는 마음을 열고 나누기가 쉽지 않다. 4. 유지하고 점검한다 : 일단 편성된 반에 불만이 있다고 해서 편성 체계를 바꾸면 혼선만이 빚어지고 불신의 골만 생긴다. 일단 조심스럽게 편성을 유지하고 보강해 나아가는 식의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
제자훈련에 들어오겠다고 지원한 성도들은 A,B,C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신앙상태, 나이, 학력, 경제수준, 집 위치 등의 분류 항목을 평가하여 네 개 반에 골고루 균형을 잃지 않게 편성한 후 부교역자 네 분이 어느 반을 맡아도 유감이 없도록 담임목사 앞에서 편성표를 제비 뽑아 배당받게 한 것입니다. 이러니 누가 불만을 갖겠습니까? 교역자도, 성도들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그 반에 들어가 순종하고 배우게 되어 있지요. 편성을 마친 다음 주보에 발표를 하게 되면 어떤 성도는 볼이 부은 모습을 하지고 하나 3개월이 채 되기 전에 거의 대부분이 서로 좋아 만족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산고의 열매들
제자훈련반중 특별히 장로님들은 따로 반을 편성했습니다. 장로님이 여섯 분이셨으니까 여섯이서 한 반을 만들었지요. 그리고 그분들은 제가 직접 인도하기로 했습니다. 누구든 전통교회에서 목회하고 계시다면 저는 전통교회의 지도자인 장로님들이 먼저 제자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목사와 장로 사이가 좋아야 목회를 원활히 할 수 있는데, 인간적인 지혜나 방법으로 그 사이를 좋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중간에 역사하셔야 그 벽을 완전히 허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자훈련은 하나님 말씀으로 서로에게 다가 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나누고 고민하는 가운데 하나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장로님들을 진정한 평신도 리더로 성정시켜서 담임목사와 동질감을 갖고 목회의 동역자가 되게 하는 데도 이것만큼 좋은 훈련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장로님 반을 편성해서 제자훈련을 실시하는 중에 장로님들 여섯 분 가운데 네 분이 제자훈련을 따라오셨습니다.
장로님 네 분이서 사역반까지 마치시고 모두 순장이 되셨습니다. 그 일은 지금 돌아봐도 가장 큰 보람이라면 보람으로 남습니다. 제자훈련의 황금 같은 열매였기 때문입니다. 장로님들은 제자훈련에 재미를 들이시면서 숙제도 얼마나 꼬박꼬박 해오셨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이 있을 때 함께 기뻐하고 감격하며 은혜를 나누다보니 열매도 배로 맺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의 죄성 때문에 사람 자체가 변한다는 사실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지라 아무리 기도하고 제자훈련을 해도 꿈쩍도 않는 사람의 모습을 볼 때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특히 5,60이 넘으신 분이 어느 날 갑자기 확 달라지기를 기대하기는 힘든 일입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보면 완전히 악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어쩌다가 이분들의 아픔을 건드리면 불똥이 튀고 상처가 생겨났습니다. 그런 면에서 목사는 항상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고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되는 사람입니다. 단점이란 나한테도 있고 상대방에게도 있기 마련이므로 상대방을 이해하는 쪽으로 목사가 서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이해의 폭이 클수록 목사와 성도 간의 사이도 좋아지고 우애도 좋아집니다. 사랑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사랑이 있으면 이해해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이해를 해야 사랑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불같은 성격 탓에 연세 드신 분들을 이해하고 따르기가 참 힘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이해력이 부족해서 “어떻게 이럴수가, 이럴수가….” 하다가 결국 병이 나기도 했습니다.
Tips for Leaders2 탈락 기미를 보이는 훈련생을 격려하는 법 1. 무엇보다 목회자 자신이 제자훈련에 대해 확신있는 자세를 유지한다. 2. 난관에 부딪친 훈련생의 영적, 육적, 사회적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한다. 3. 단순히 의무감에 호소하거나 직분, 신앙 연조 등을 이유로 들어 열심을 재촉하지 말고 제자훈련의 당위성과 난관, 영광과 보람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시킨다. 4. 생활상의 비근한 실례들- 예를들어 입시공부, 군 훈련, 스포츠 연마, 신입사원 연수 등등 -을 적절히 들어 모든 훈련에는 어려움이 따름을 지적하고, 특히 영적 훈련인 제자훈련에 그만한 대가가 치러져야 함을 말해준다. 5. 제자훈련은 오히려 많은 굴곡과 망설임 때문에 더 값진 것임을 잘 설명하고 다시금 동기를 부여해준다. |
제자훈련, 양극에서 균형잡기
제자반에서는 신학적인 문제로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사소한 문제가 서로간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그래서 제자반 분위기가 험악해져서 탈락하는 형제가 나오게 되면 나중에는 리더도 지치고 반이 깨지는 현상까지 생기는 것입니다.
Tips for Leaders3 제자훈련을 힘들어 하는 4가지 이유 1. ‘나는 이렇게 밖엔 못 사는데…’ 생각과 삶의 수준이 드러날까 걱정한다 2. ‘저 사람만 없으면 나오겠는데…’ 눈엣가시 같은 사람 때문에 마음 열기, 나누기 가 힘들다 3. ‘저분은 왜 저러실까…’ 훈련 지도자와 충분한 신뢰형성이 없어 자꾸 떠돈다 4. ‘또 날 시키면 어쩌지?’ 애초부터 반배정이 잘못돼서 훈련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
제자훈련에서의 리더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탁상공론식의 이론에만 그쳐서도 안 되고, 잡담이나 늘어놓는 수다 떠는 장소로 바뀌지 않도록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주는 일은 전적으로 리더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 그룹과 제자반의 반목
저희 교회에는 제가 부임하기 전부터 ‘에덴회’라는 젊은이 부부 그룹이 있었습니다. 참 신선한 젊은이들로 구성된 그룹이었지요. 그러다보니 이 그룹을 해체해야 하느냐, 그대로 흡수하여 한 반을 만드러야 하느냐가 고민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방침은 흩어서 재편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진행하고 있었기에 적지 않은 고민이 따라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보를 젊은이들 중에 한 형제가 알고는 제게 호소하는 것이었습니다. “꼭 이 반을 해체해야 하느냐? 그대로 둘 수 없느냐?” 하는 내용이었지요. 저는 처음에 해체를 설득하다가 나중에 타협점을 제시했습니다. 그 그룹을 해체하지 않을 테니 그 그룹에 몇 사람을 추가 편성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결국 그 그룹을 그대로 유지시켜서 부교역자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나 이 결정은 바둑으로 말하면 악수(惡手)였습니다. 12명의 반원 가운데 지금에 와서 순장으로 쓰임받는 사람은 3명밖에 없으며 결국 에덴회라는 그룹은 해체되었고 제자반도 활성화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 아무리 목표가 선하고 비전있어 보이는 교회 안의 어떤 사조직도 당회의 지도 밖에 있는 경우, 교회에 덕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진단해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자훈련에서의 시행착오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 제자훈련을 하게 되면 교재 중심으로 진행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 지도자들의 방식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제자훈련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켜 예수 그리스도의 소명 받은 일꾼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교재를 따라가는 수준에서 사람을 보는 수준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옥한흠 목사님께 배운 대로 부교역자들에게 이렇게 충고합니다.
“교재만 보입니까? 그건 제자훈련이 결코 아닙니다. 사람이 보이십니까? 그때부터 제자훈련이 되어가는 줄 아십시오. 사람이 보일 때 어떤 질문을 누구에게 할 것인가가 보일 것입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되심을 발견하고 감격하며 눈물 흘리는 형제를 보고 ‘구원의 확신이 있느냐?’고 질문한다든지 아직까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도 없는 형제에게 ‘하나님께서 네 소유를 다 요구한다면 전적으로 다 위탁할 수 있겠느냐?’ 라고 질문을 하게 된다면 비효율적인 공부를 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을 보라. 사람을 읽어라. 심령을 살피라.” 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새로운 헤러티지, 새가족반
제자훈련반이 불붙기 시작하면서 교회 조직을 정비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교회가 살려면 구역별 모임 및 예배가 살아나야 되는데, 사실상 구역예배는 교제 모임이 되어버리거나 명목상으로만 운영되는 형국이었습니다. 어떤 구역은 칠순이 다 되신 할머니께서 구역장을 맡고 계셨습니다. 신앙 연륜이나 살아오신 지혜들은 그분들을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지만 예배를 인도하시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랐습니다. 그래서 개혁을 일으키기로 하고 당회에서 안건을 올렸습니다.
“이제부터는 각 구역을 조직적으로 나누고, 그 모임을 구역 모임이라 하지 않고 다락방 모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각 구역장은 제가 임명한 순장이 맡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무사히 그 안이 통과되었고 순장 임명권도 제게 넘어왔습니다. 저는 순장을 임명하기 위해 모든 구역장들을 흡수하고 순장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교육은 성경문제 쪽지를 나누어주고 그것을 귀납법적으로 가르치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들이 못 따라오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못 하겠습니다.”
그러시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침에 60세 이상의 부인 성도는 ‘마리아반’이라는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 매주 금요일(지금은 수요일) 10시~12시까지 부교역자에게 맡겨 성경을 가르치며 친교 모임으로 운영하고, 남자 성도들을 위해서는 ‘갈렙반’을 만들어 노인층을 흡수했습니다. 당시 기존 구역 운영은 기존 방법대로 계속 진행하면서 구역장들을 제자훈련에 편입시켜 훈련하게 되니 일주일에 세 번을 나와야 하는 고충이 따랐으나 초창기 멤버들이 얼마나 열심이었던지 처음 시도되는 제자훈련에 매력도 갖고 부담도 가지면서 잘 따라와주었습니다.
소위 밭을 갈때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밭을 부분적으로 갈아서 부분적으로 모종을 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완전히 뒤집어서 하는 방법이 있지요.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그동안 사랑의교회에서 쌓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고, 만약 일주일이라도 제자훈련 세미나에 참석하고 온 사람을 위해서는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저는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예 제자훈련반과 순장반을 동시에 시작한 것입니다.
또한, 당신 전체 성도가 평균 주일 출석 400여 명, 등록 교인 500여 명중 제자반에 편성된 숫자가 60명으로 12퍼센트 정도였으니 나머지 성도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새가족반’을 편성하여 담임목사가 직접 매주 한 과씩 1시간30분 동안 강의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5주 코스를 모든 성도들에게 받도록 한 것입니다.
‘새가족반’ 훈련 프로그램은 우리 교회가 숫적으로 성장하는데, 또한 교회 본연의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데 상당한 공헌을 했습니다. 저희 교회 시무장로님들도 그 반을 거쳐가야 했고, 집사가 되신 분, 권사가 되신 분들도 다 거쳐가야 했습니다. 아예 ‘새가족반’을 거치지 않으면 제자반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했고 심지어 세례도 받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니 새중앙교회에서 새가족반을 하지 않으면 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새가족반을 선호한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통계상 새가족반을 거친 사람은 90퍼센트가 교회에 정착합니다. 그러나 새가족반을 안 거친 사람들은 정착율이 50퍼센트도 안 되는 형편이었으니 어느 목사가 새가족반에 집착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느 교회에서 장로로 있다가 왔든지, 권사로 있다가 왔든지 간에 새가족반을 이수하지 않으면 집사나 장로, 교사도 안 시켰습니다. 그리하여 ’87년 10월에 17명의 새가족이 우리 교회의 첫 열매로 탄생하고 그때부터 ‘새가족반’은 새중앙교회의 전통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역복병, 건강 적신호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네 분의 장로님들과 함께 시작한 제자훈련이 열매를 보기 시작한 것은 교회 성장에 큰 활력이 되었습니다. 장로님들뿐만 아니라 여러 평신도들에게서도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제자훈련에 박차를 가하던 중 ’89년에 제가 덜컥 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제자훈련에 진액을 빼다보니 아마 체력에 한계가 온 모양이었습니다. 제자훈련 목회에 미쳐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제자훈련 목회는 체력뿐 아니라 심신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고난도 사역입니다.
고신 의료원 특실 11호. 주일이었습니다. 이날은 2년간 제자훈련, 사역훈련을 마치고 처음으로 남자20명이(장로님 4명 포함) 순장으로 임명되는 날이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날인데 입원하다니…. 부목사에게 장로님들과 사역훈련을 마친 분만 면회 가능하다고 연락을 했습니다. ‘절대 면회 사절, 절대 안정’이라는 팻말이 병실 입구에 붙어 있었습니다.
주일 오후, 링거를 손에 꽂은 채 침대에 앉아서 20명의 사역반 명단을 펴 들었습니다. 순원들의 명단이 적힌 다락방 명부를 들고 한 분 한 분 이름을 부르며 순장으로 임명하면서 순원들을 맡아 양을 치는 목자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달라는 권면을 덧붙였습니다. 감격의 순간이었지요. 목사도, 스탭도, 임명 받은 순장들도 울었습니다. 병실은 남자들의 오열과 감격의 숨결로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실은 사역반을 마칠 무렵에 순장에 대한 부담을 갖고 순장으로 섬기기를 사양하는 분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러나 뒤에 이분들이 고백하기를 “만약 목사님께서 교회에서 순원의 명단을 주셨다면 지는 아마 순장직을 거절했을 겁니다. 그런데 당시 병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명단을 주시는 목사님을 볼 때 저도 모르게 덥석 받아버렸지예!”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8년이 넘도록 계속 순장을 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이처럼 사역의 정점에서 간경화를 만났지만, 오히려 이 병이 사역에 힘을 실어준 면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제 병은 쉽게 낫질 않았습니다.
본궤도에 오른 제자훈련
계속해서 병이 낫질 않고 1년이 다 되도록 질병의 포로가 되어 지내다보니 성도들에게 눈치가 보이고, 마음의 절망이 깊어갔다는 점이었습니다. 부임 초기에 수요 집회를 강해설교로 직접 했는데, 발병 후 수요 강해를 중단하고 제자훈련만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자훈련 사역과 주일 설교를 감당하기에도 점점 몸이 벅차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러자 서서히 오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목사는 성도를 돌보기 위해 존재하는데 성도가 목사를 염려하며 돌보게 됐으니 저는 이렇게는 못하겠습니다. 차라리 본향에서 쉬고 싶습니다.” 저는 당시 말씀을 준비한 후 선포하기 전 강대상 뒤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곤 했습니다.
“저를 데려가주십시오. 성도들 눈치를 보며 더 이상 사역하지 못하겠습니다.” 막바지에 다다른 것 같은 절박감과 함께 이제는 더 병마와 싸울 힘이 없다고 느껴지던 시점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무작정 “나를 데려가달라.”고 떼를 쓴 것도 그나마 마지막 죽을 힘을 다 내어 떼를 쓰는 격이었습니다. 그순간 얼마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온몸이 그 눈물로 데워지는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정말 물리적인 뜨거움이 느껴졌는데, 그 느낌은 하나님께서 저를 본향으로 부르시는 응답으로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강대상에 서기 직전에 받은 그 느낌 때문에 저는 아주 담대해졌습니다. 비장한 각오를 하게 되었지요. ‘좋다. 이제 곧 하나님께로 갈 텐데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서자.’ 놀라운 사실은 그 시각 이후로 제 설교가 너무나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전에 없이 매우 강한 메시지 선포가 시작되었습니다. 성도들이 쓸데없이 큰 집을 사거나 부를 축적하기 위해 땅을 사는 일, 큰 차를 사는 일들을 지적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그런 일들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여겨 예배를 드려달라고 요청하던 분위기였는데 말입니다. 집 두 채 가진 사람을 보며 “복도 많다.” 고 부러워 할 때였지요. 그런데 저는 그것을 죄라고 외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간뎅이가 부어 이제 겁이 없어졌습니다.”며 당당하게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날 이후로는 소화도 잘되었고, 알브민 수치가 2.6에서 3.6으로 상승하여 병원에서 체크를 했던니 간경화 상태는 그대로인데 나머지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할레루야! 8년이 지난 지금도 ’90년 6월의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면 누구든지, 언제든지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때 그일 , 강대상 뒤에서 뜨겁게 역사하셨던 성령 하나님의 손길을 회상하면 은혜가 됩니다. 정말로 미약한 존재인 저와 함께하시며 오늘도 사용하고 계신 그 하나님을 생각하면 가슴 벅찬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간경화라는 병을 통해 제게 담대함과 여러 은혜를 맛보게 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때부터 제자훈련을 우리 교회의 특장(特長)으로 자리잡게 해 주셨습니다. 제자훈련을 받지 않으면 주일학교 부감이나 부장을 할 수 없다는 무언의 법칙 아닌 법칙이 생겨났으며, 순장으로 일하지 않고는 안수집사가 될 수 없을뿐더러 각 기관에서 중직을 맡을 수 없게까지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여러 모양으로 어려웠던 ’89년이 지나고 ’90년이 시작되면서 교회는 서서히 부흥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제자훈련과 함께 ‘대각성 전도집회’가 성과를 거두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교인 1천 명 시대를 바라보게 되었지요. 교회는 이때가 가장 중요합니다.
교인 1천 명을 육박하게 되면 팀사역이 불가피해지고 그렇게 되면 부교역자를 제대로 투입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부교역자는 제대로 훈련받은 사역자여야만 합니다. 때문에 담임목사는 장로 사역을 지원할 뿐 아니라 교역자 사역도 동시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을 과감하게 부교역자에게 맡기고 부흥케 하는 일에 전력질주해야 하는 시점이 이때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역자를 적절히 투입하여 반원들의 상황을 살피게 하고, 교역자에게 정보를 주고 교정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제자훈련 교재의 단원마다에 중요한 부분을 어떻게 아루며 코멘트를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를 잊지 않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는 전도집회에 매달렸습니다. 왜냐하면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마친 사람에게 순장의 일을 맡겨야 하는데, 교회가 성장하지 않으면 사병은 없고 장교만 우글거리는 병영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훈련된 성도는 성장하면서 열매를 맺거나 교회의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창출하기 때문에 새신자가 정착하는 확률이 더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이게 바로 제자훈련이 교회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공식이요 경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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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잡고 고민하다보면 방법이 생깁니다. 이게 이치인데 많은 목회자들이 방밥만을 알아서 교회 부흥 비책으로 제자훈련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은 적절치도 못하지만 성공하지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제자훈련은 일시적 유행(fad)이나 방법론이 아니라, 신구약성경을 꽉짜면 한 대접으로 나오는 탕재같은 하나님의 계획이요 뜻이기 때문입니다. 철학에서 잔략이 나오고 전략에서 구체적인, 변용 가능한 전술이 나옴을 명심하십시오.
제자 훈련은 왜 시켜야 하는가?
전통교회에 제자훈련을 접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목회철학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봅니다. 보통은 제자훈련을 성경공부 기법으로 알고 방법론에서 성공과 실패를 찾으려는 경향이 많은데, 분명 그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재미있게 가르쳐 사람이 잘 모이도록 할지는 몰라도 사람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많은 경우, 교회가 비생산적인 일에 소모전을 벌여서 힘을 낭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소모전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교회가 미숙아(未熟兒)적인 의식과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관’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우선순위인가를 모를 뿐 아니라 훈련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가 무엇인가, 왜 교회가 존재하는가를 가르쳐줘야만 합니다. 이것은 설교든 개인심방이든 어떤 통로를 통해서든 내가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교육이 일차적으로 필요한 이치와 같습니다.
솔직히 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성도의 특권의식만 강조해서 구원의 확신을 강조하는 데 주력했지, 소명에 대해서는 소홀히 해왔습니다. 소명에서도 언제나 특별소명만을 생각하고 일반소명, 즉 모든 성도가 세상에 파송된 제자라는 것을 혼동하여 소명 받은 자는 모두 신학교에 들어가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폐단이 있음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소명은 특별소명을 말하는 것이고 예수 믿는 자는 모두 일반소명을 받은 사람들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 하나, 정말 강조하고 싶은 점은 제자훈련은 성경공부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성경 지식을 늘리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변화시켜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역자로서 비전을 갖게 하는 데까지 훈련시키는 과정입니다. 만약에 제자훈련을 해야 복 받는다고 권한다면 믿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호소력이 없을 것입니다. “나는 복 많이 받았으니 안 받아도 됩니다.” 라고 많은 성도들이 속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기피할 것이고 지성인일수록 복을 좋아하면서도 은근히 거부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Tips for Leaders 4 제자훈련, 왜 해야 하는가? 1.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았다는 것은 죽어서 천당이나 가자, 이 땅에 살 동안은 될 수 있으면 죄짓지 말고 살자는 소극적인 생활양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그분을 드러내는 온전하고 역동적인 삶을 말한다. 2. 제자요 증인의 삶은 옵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명령, 모든 성도를 향한 일반 명령이다. 따라서 제자로 살아도 좋고 안 살아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3. 제자는 가만히 앉아서 되지 않는다. 자기가 따르는 분에 대한 풍성한 실존적 지식과 그분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 그분의 의지를 자기 생활에서 관철하는 철(鐵)의 규율이 있어야 한다. 4. 주님은 이 훈련을 교회에 부탁하셨고 사도들은 이 훈련을 그들 사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이해하였으므로, 오늘날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즉 제자훈련은 하나의 목회 방법(a way of pastoring)이 아니라 목회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다. |
제자훈련 체제로 변환할 때의 어려웠던 점
기존 교회를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변화를 바라면서도 변화에 저항하는 체질로 굳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들이 변화를 바라면서도 막상 변화되는 데 겪는 진통과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성도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실을 정직하게 직시하고, 그 현실을 인정하도록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급선무라 할 것입니다. 즉, “우리의 신앙고백과 생활이 일치한다고 보는가? 괴리는 없는가? 신앙생활은 기쁨이 넘치는가? 주일이 즐겁고 기다려지는가? 봉사가 즐겁고 기쁜 일인가? 예배가 은혜가 되고 교회생활과 일상생활이 갈등없이 일치하는가? 교회에서의 영적 교제는 어떤가?” 등등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자기 인식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면 “그대로 방치해둘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이 문제를 극복할 용기를 심어주어야 합니다. 막연한 권면이나 성경 둘러대기, 구호에 그치기 십상인 ‘인격변화’, ‘삶의 변화’와 같은 말들을 접고, 있는 그대로 문제를 직시하게 한 후 비전을 제시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삶을 제시하고 그 목표를 이루는 방법을 나눌 때 십중팔구는 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장로님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역시 장로님들과의 만남, 면담, 당회, 기도회 등을 통해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 똑같이 필요합니다. 젊은 목사가 신앙의 선배요 인생의 선배인 장로들을 훈련시킨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 때문에 성령의 은혜와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결국 제자훈련 사역은 흐르는 물줄기를 틀어 방향을 바꾸는 작업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산성화되어 있는 교회 체질을 알칼리화하는 객토 작업과도 같은 셈이지요. 더군다나 대단한 개혁이기 때문에 장애 요인이 많을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최근 들어 교회 성장학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새들백 교회 이야기」라는 책이 꽤나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 책에 매우 주목할 만한 개념 하나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목적에 의해 이끌려 가는 교회(Purpose Dfiven Church)라는 것입니다.
저자 릭 워렌은 이 책에서 교회를 몇 가지 종류로 구분지었습니다. 먼저 전통이 이끄는 교회가 있습니다. 전통이 이끄는 교회가 애용하는 말은 “우리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해왔다.”라는 것입니다. 이어 인물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는 “지도자가 무엇을 원하는가?”입니다. 재정으로 움직이는 교회도 있습니다. 재정 중심의 교회는 “비용이 얼마나 들까?”가 사역의 핵심 질문입니다.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는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지속하는 데에 모든 에너지가 모아지며, 건물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는 교회 건물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릭 워렌은 “우리가 건물의 형태를 만들지만 후에는 건물이 우리의 형태를 만든다.”라는 윈스턴 처칠 경의 말을 인용해서 이를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제시되어야 하는 교회상은 이와 같은 유형의 교회를 반박하며 목적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튼튼한 교회는 목적 위에 세워지기 마련입니다. 릭 워렌은 분명히 말합니다. “계획과 프로그램과 사람들은 영원히 지속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야망의 목회냐 비전의 목회냐
제자훈련을 목회에 접목해야 하는 사역은 결코 선택사항이 될 수 없습니다. 목회가 무엇입니까? 성도를 성숙케 하여 세상에 파송하고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변화시켜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존귀하신 이름이 높임을 받게 하는 총체적인 작업 아닙니까? 때문에 전도와 양육이라는 두 기둥을 굳게 세워나가는 것이 목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양육체계가 제대로 되어 있다면 전도받은 성도들이 정착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며, 동시에 교회의 양적 부흥도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바라볼 때 순간순간 “누구를 위해 목회하는가?” 라는 질문을 해봅니다. 주님인가? 나인가? 나 자신의 영광을 위함인가? 주님의 영광을 위함인가? 잘못하면 나 중심의 목회에 빠질 위험이 얼마나 큰지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 부흥이나 성장도 모두가 주님을 위한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일임을 너무나 잘 알면서 망각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무슨 일이든 주님을 위해, 맡겨주신 성도들을 위해 죽도록 충성해야 할 사명자가 자칫 야망의 노예로 전락하기가 쉽습니다.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동분서주하며 양떼들을 방치해두는 현장이 있는지 않은지, 그야말로 야망의 목회냐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알 것입니다. 그리고 의식있는 성도라면 이런 부분에 대한 그 목사의 진의를 알고도 남을 것입니다.
결국 야망의 목회냐 비전의 목회냐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가름은 우리 곁에 상존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야망의 목회인가 아닌가를 진단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처음 부임할 때나, 개척했을 때의 멤버들이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목회현장을 스스로 진단평가하는 데 냉철해보십시오.. 그리고 한번 성도의 입장에서 그들이 어떤 목회자를 원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 교회를 부흥시키려는 목회자,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회에 분명한 철학도 없이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 마구 끌어들이며 계속 몰아부치되 오직 숫자를 불리는 일에만 정신이 빼앗겨 있는 목회자를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평신도는 항상 ‘나와 관계된’ 목사를 생각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나를 향한 비전이 있는가, 나의 자녀를 향한 비전이 있는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따라서 목회현장을 볼 때, 그와 같이 목회 초창기부터 함께 헌신하는 성도들이 뿌리를 깊이 내리고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신뢰하며 헌신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면 그 교회의 목회자가 야망의 목회자인가, 비전의 목회자인가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그 반면, 몇 년이 못 되어 사람들이 자주 바뀌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것도 이사나 직장 전근으로 인한 자연스런 이동이 아니라 목사에게 염증을 느끼고 떠나는 경우가 많아지면 야망의 목회를 한 것이 아닌지 조심스레 진단해봐야 합니다. 이런 야망의 목회에 환멸을 느껴 떠나는 것은 제자훈련 목회 자체를 거부하고 떠나는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러나 제자훈련을 몇 년 받았는데도 함께 동역해야 할 사람들이 물갈이하듯 떠나는 것을 본다면 자신을 야망의 목회자라고 스스로 진단하고 치료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의 평가 방법이 있습니다. 교회에 모이는 회중의 숫자를 표현할 때 혹 허수를 말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Tips for Leadrs 5 야망의 목회로 가는 증후군 1. ‘나 중심’(me-centered)으로 교회와 목양을 생각한다. 2. 비본질적인 것들에 관심을 갖고 거기에 신경을 쏟는다. 3. 진득하게 사람을 키우지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둘러싸여 지낸다. 4. 건물, 숫자 등에 조급한 마음을 갖고 정작 중요한 전도와 양육에는 무관심하다. 5. 교제를 과장하고 출석 교인을 속인다. |
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옥한흠 목사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떤 목사가 되었을까?’ 제 목회 생애에서 옥 목사님이 끼치신 결정적인 영향은 바로 비전 목회를 알게 해주셨다는 점입니다. 목사님은 개척교회시절, 초창기 예배 모임의 숫자를 헤아리는 문제에 무관심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에 속지 않으시고 오직 그분의 관심은 제자 삼는 일이었기 때문에 마땅히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주보에 성도의 출석 상황을 정확하게 기재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에 들어오는 양들의 숫자를 무시한 채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목동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스텝들은 주일을 지키는 성도, 안 지키는 성도를 분명히 가려 주일이 지나면 함께 출석을 체크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출석 숫자를 정확히 주보에 기록했던 것이지요.
왜 중직자가 문제인가
목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양떼를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양떼를 위한 용기도 낼 줄 알며 그들을 위해서라면 목숨가지 걸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목사는 특히 교회 중직인 장로를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이해가 되는 사람을 누가 이해 못 하겠으며 사랑스러운 사람을 누가 사랑하지 못 하겠습니까? 주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해가 안 되는 성도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먼저 그의 입장에 서보아야 합니다. 본래 ‘Understand'라는 단어가 ’~아래(under)'와 ‘선다(stand)'의 합성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듯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수준으로 내려가봐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를 위해 성육신(Incarnation)하시지 않았습니까? 주님께서는 친히 우리 사람의 모습으로 내려앉으셨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향해 마음을 열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따라서 목사인 저도 장로님들을 바라보며 옛날 세대, 기성세대라고 몰아붙이기보다는 그 시대를 감당하신 어른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합니다.
만약 장로님의 성격이 너무나 부정적이라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떻겠습니까? 예를 들어 너무나 많은 목사들에게서 상처를 받은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목사를 대하는 자세가 기본적으로 불신에 가득 차 있다면 그 또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신실하지 못한 목사에게 실망을 많이 한 경우일 것입니다.
교회 일을 세속적인 일과 같은 안목으로 보는 장로가 있습니까? 그분은 분명 영적인 면에 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반대만 하는 장로님은 안계십니까? 교회가 하나님 중심의 훈련을 등한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목사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서 드럼 같은 악기를 사용해선 절대 안 된다며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불가.”라고 하는 분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무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편을 묵상했다면 그렇게 주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미국에 그리소교라는 교파는 두 개로 갈라졌는데, 무반주 교파와 반주 교파로 나뉘어졌다고 합니다. 심한 경우는 피아노를 치면 안 된다는 분도 계십니다. 제자훈련을 반대하는 장로님이 계실 때도 이해가 안 된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해보십시오. 겉으로는 시간이 없느니 하며 말로는 표현을 안 하지만 속으로는 ‘흥, 날 보고 훈련 받으라고 난 당신보다 신앙경륜도 훨씬 많다고. 또 당신보다 더 고명한 목사님 밑에서 신앙생활했어. 그리고 장로고시에도 평균 85점이 넘었어. 왜 이래? 장로 경력이 당신 목사 안수 받은 경력보다 배는 넘을 거야. 그런데 새삼스레 무슨 제자훈련이야?’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생각도 그분 입장에서 보면 틀린 생각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겸손하지 않고서는 목회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교회에 장로문제가 심각하다면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이 우리 목사들의 분쟁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저는 언젠가 총회에 총대로 참석했다가 정년제 문제로 격론을 벌이는 원로 선배 목사님들에게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은퇴 후에 살아갈 대책을 세워줘야 은퇴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교회 원로목사님이신 노진현 목사님께서는 “나는 법이 시행되기 전인 70세에 은퇴했소. 70이 넘어서 목회한다는 것은 교회를 위하는 일이 아니오.” 하시면서 찬성 발언을 하셨는데, 반대하시는 목사님들은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그래도 큰 교회는 교회에서 생활비가 나오지 않는가? 하지만 작은 교회는 담임목사 모시기도 어려운데 은퇴목사를 누가 책임지겠는가? 성경 어디에 정년제가 있는가? 모세는 80세 되던 때부터 사역하지 않았는가? 죽도록 충성하려는데 왜 총회가 인간적인 법으로 막으려 하는가? 은급제 보장하라!”
저는 그런 발언이 연속되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보다 장로 총대가 참석하고 있었기에 그분들 얼굴 보기가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릅니다. 결국, 그분들은 교단을 떠나셨고 몇 년이 지나 정년제는 법으로 정해졌습니다.
오늘날, 목사들은 무엇이라고 설교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6:25)는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많이 외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게 외칠 때 “노후 보장, 노후 대책을 위해 목회하고 계십니까?”라고 장로 총대가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변할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최소한의 목사 자존심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흥과 당회, 그 아름다운 역학에 관하여
우리 교회는 하나의 좋은 관습이 있습니다. 3부 예배(12시)전에 당회원 전원이 당회실에 모여 기도한 후 예배실로 올라가고, 예배 후 당회실에서 점심을 함께 먹는 것입니다. 대개 당회는 이 점심 식사 후에 하게 되는데, 이때 논의는 서로 자유 토론 하는 것으로 시작되다가 당회장인 제 쪽에서 “그럼, 그렇게 하시죠.” 하면서 안건을 결정합니다. 때로는 장로님 중에 한 분이 “지금 당회를 한 겁니까?”하고 질문을 합니다. 제가 “당회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하면 “당회 서기가 기록을 하셔야죠.” “아, 그렇군요. 당회 서기는 기록을 하십시오.”라는 식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98년 들어 4부 예배가 생기는 바람에 이런 모습이 사라져 아쉽기만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는 결코 조직체가 아니라 유기체임에 틀림없습니다. 저와 같은 식의 행동도 문제가 없지 않겠으나 지나치게 당회나 제직회를 관료적으로 조직화하여 분위기가 경직되는 것은 더욱 문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목사와 장로는 그 교회의 성도들을 행복한 성도로 만들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집안에서 아빠, 엄마가 싸우면 자녀들은 몹시 불안에 떨고 불행해집니다. 마찬가지로 목사와 장로가 싸우면 성도들이 행복하지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때문에 목사와 장로는 교인들이 만족해 하고 행복해 하는 교회를 만들어 하나님의 뜻을 성취케 하고 언제나 교인들 서로가 사랑하는 분위기가 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당회가 화평하면 좋은 교회이고, 불화하면 좋은 교회가 아니라는 도식은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 일리있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 당회장은 당회원 가운데 어느 분에게라도 차별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누구를 인정하고 누구에게 더 비중을 두면서 다른 누군가를 무시한다고 할 때 결코 좋은 분위기의 당회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편, 목사는 좋은 장로를 세울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좋은 장로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신앙생활 오래하고 봉사 많이 했다고 해서 성숙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마땅히 장로는 성숙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때문에 교회는 성도를 성숙시킬 책임이 있고 그 중에 특히 더 성숙한 사람이 장로로 세움받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장로가 됐다고 해서 다 성숙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목사가 되었다고 해서 다 성숙하다고 볼 수 없는 것과 똑같습니다.
장로를 도와주는 일은 목사의 큰 책임 중 하나입니다.
장로님들을 섬기면서 가장 크게 기쁘고 보람되었던 일은 장로님들과 제자훈련을 했던 일과 그로 말미암아 장로님의 손에서 많은 순원들이 길러져나온 일이었습니다. 장로 순장이 인도하는 다락방에서 순원이었던 분이 순장이 되고 장로가 되어 당회에서 함께 동역하며 봉사하는 모습은 정말 환상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장로님, 저의 진정한 목회 파트너이십니다
장로 수양회에서 한번은 제가 장로님들께 이렇게 메시지를 전하며 호소한 일이 있습니다.
“제가 사역하는 일 중 가장 곤혹스러운 일 가운데 하나가 중직자들의 장례를 집례하는 일입니다. 소천하신 분의 삶을 소개하며 은혜를 나누어야 할 텐데 할 말이 없을 때만큼 곤혹스러울 때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권사님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모든 성도들이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한데 어떤 권사님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은혜를 나눌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발, 우리 장로님들도 분명 세상을 떠나실 텐데 집례하는 목사가 곤혼스럽지 않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성도들이 함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간증거리가 풍성한 삶을 사십시오.”
거기에 엇붙여서 “저도 언젠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장례예배를 드릴 텐데 장례중 조사(弔詞)에서 하실 말씀이 풍성하도록 제 삶을 꾸려가겠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이러한 말씀을 드릴 수 있는 당회 분위기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장로제도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제도의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결국 장로의 자질문제라고 보아야 합니다. 장로직을 수행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이 자질문제도 제대로 평가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몇 년 전부터 장로사역 활동비를 예산에 책정했습니다. ’97년에는 일천오백만 원을 예산에 할애해놓기도 했습니다. 목사가 심방할 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씀만 가지고 가도 성도는 만족해 하지만, 장로님께서 심방하실 때는 어려운 가정일 경우 빈손으로 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로님들께서 시간을 내어주시는 것만도 감사한데 심방비까지 지출하는 것을 보며 담임목사로서 여기에 사역비가 필요함을 알고 예산에 반영한 것입니다. 또한 장로님들 중에서도 생활비 수준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예산 반영이었습니다. 이렇듯 장로님들이 열심히 뛸 때 목사나 성도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법입니다.
’95년에 제가 안식년을 맞았었는데, 담임목사가 없는 기간에도 새신자들이 연 평균 150-200명 가량 꾸준히 늘었음을 봐도 장로님들이 얼마나 열심히 양떼들을 돌보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목회자와 장로는 싸우는 관계, 세력 다툼의 관계가 아니라 양떼를 돌보는 일에 함께 동역해야 할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양떼들을 위해 제자훈련을 실시할 때 그것이 양떼를 위해 유익하다면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기도하고 격려해주어야 마땅합니다. 아니, 한발 앞서 나가 장로님들이 먼저 제자훈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나이 문제로 도저히 훈련을 받을 수 없다면 기도의 사람으로 성도들을 위하여 축복해주시고 위로해주시면서 제자훈련 사역에는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도 역시 목회 전문가는 누구라고 볼 수 있습니까? 목회자 이상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장로님들은 목회자들이 거짓 가르침을 전하거나 양떼들을 실족시키지 않는다면 항상 그를 도와 협력하는 장로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능력을 회복하고 부흥의 불을 다시 지피기 위해서는 목사, 장로가 영적으로 회복되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저희 교회를 10여 년 이상 목회하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장로님들과의 사이가 점점 좋아지는 것에 대해 너무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활주로를 치워라
우리가 목회철학이나 전략을 이론적으로 배우고 확신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자훈련을 직접 실시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개혁자의 양심을 가지고 맞서지 않으면 금방 짓밟혀버릴지도 모르는 일인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 안일’이나 ‘자기 방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는 감히 시작할 수 없는 일이 제자훈련이기도 합니다. 자기 희생과 자기 노출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다시 말해서 목을 내놓고 사는 사람이 아니면 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목회라는 일 자체가 우리 인간의 능력과 지혜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자훈련 역시 성령께서 책임지실 때 가능한 일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이 성령의 손에 얼마나 잘 맞는 도구가 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1) 훈련의 정의
첫째, 긍정적인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구체적인 훈련 방법을 설정해야 합니다.
셋째, 훈련에 합당한 대상을 선택해야 합니다.
넷째, 훈련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실제적인 효과가 있어야 합니다.
2) 교역자가 먼저 준비해야 할 일들
담임목회자 자신이 제자훈련 목회철학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자신의 목회철학을 수정하여 평신도를 동역자로 만들어 함께 일하게 하는 구체적인 결의와 확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확신이 결여된 모방은 생명없는 조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방 목회는 생명이 깊지 못하고 도중에 하차하는 불행을 낳을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약술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교회관을 재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목사 자신부터 교회가 왜 지상에 존재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추상적인 의미가 아닌 무엇보다 하나님은 진정한 예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로부터 신령과 진정의 참예배를 받으시기 위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배가 어떻게 드려지는가? 살아있는 예배인가? 생명력 있는 예배인가?” 의 문제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그 교회의 심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자훈련, 운영의 묘에 관하여
■ 전통 기성 교회에 제자훈련을 든든히 뿌리내리게 하는 10가지 원리
1. 목회철학을 정립하라
한마디로 보호목회를 할 것인가 훈련목회를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철학이 결여된 행동은 언제 중단될지 모릅니다.
2. 목회 토양을 올바로 진단, 평가하여 처방하라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파악하여 그들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위로해주며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며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권면이나 책망은 언제나 뒤로 미루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해하시고 기다리시며 인내하심같이 그들 수준으로 내려가서 가족도, 자식도, 부모도 이해해주지 않는 일을 목사님은 이해해주시리라는 확신을 성도들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 마음을 열 것입니다. 목회자가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3. 목회철학에 입각한 교회론을 증거하라
위로와 격려가 선행되었다면 도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성도 자신의 자아 정립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천국 가는 대기소 정도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교회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교회의 준재 이유를 성도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에서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4. 훈련의 필요성을 역설하라
오늘날 왜 교회가 힘을 상실하고 있습니까? 성도들이 세상에서 왜 능력을 잃어버렸습니까?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닙니까?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와 같은 훈련의 필요성을 놓고 도전하십시오.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놓고도 도전하십시오.
5. 장로 그룹부터 제자훈련시키라
그분들을 설득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사실인즉 목사도 제자훈련을 통해 함께 성장해갑니다. 주님을 모시고 말씀을 공부하며 지켜 행하는 적용을 함께 할 때에 목사와 성도가 같이 성장되는 것입니다.
6. 시작했다면 첫 그룹을 사활을 걸어라
시작이 실패하면 다시 회복하기란 너무나 힘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납적인 방법을 적극 활용해서 해야지, 설교식의 소그룹을 운영해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석을 도입하십시오. 무엇이든지 끄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데 힘쓰도록 재미가 있어야 하고 영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것입니다.
7. 목회 철학에 입각한 비전을 제시하라
교회의 기본 사명인 예배를 갱신하고 세상을 향하여 선교의 일꾼을 키우는 일, 그들(성도)의 자녀들에게 꿈을 제시하는 일들을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교육과 훈련을 병행하여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이 보여져야 합니다. 목적이 이끌어가는 교회가 되어갈 때 제자훈련은 뿌리를 내려갈 것입니다.
8. 제자훈련 제도권 밖의 성도들을 포용하라
60세 이상된 남녀 성도들을 위해서 마리아, 갈렙반을 운영하는 것, 예수 사랑 실천부의 활용 등이 필요할 것입니다.
9. 훈련받지 않은 사람을 등용하지 말라
교회 안에 지도자들이 훈련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먼저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즉, 목사와의 목회철학 면에서 이질감을 나타냅니다. 교회운영을 해야 하는데, 훈련되지 않은 지도자와의 마찰이 생기면 어떻게 그 많은 문제를 해결해나가겠습니까?
10. 감동을 주어라
먼저 교회를 성숙시키시고 그들을 감동시키십시오.
제자훈련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는 10가지 핵심 노하우 1. Philosophy - 목회철학을 정립한다. 목회철학에서 목회전략이 나오고 구체적인 방법론이 나온다. 이 순서를 뒤집어선 안 된다. 2. Soil Check Up- "맥도 모르면서 침통부터 흔든다.”는 말이 있다. 먼저 교회의 맥, 토양과 문화, 영성과 영적 흐름을 진단하라. 3. Ecclesiology- 교회론을 전파해야 한다. 제자훈련은 목회 방법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 사명, 증거의 핵심부분이다. 교인들을 좀더 깊은 데로 데리고 드리어가야 한다. 4. Discipline - 교회는 응석이나 받아주는 탁아소가 아니다. 한탄이나 삭혀주는 정신과 병원이 아니다. 교회는 병영이다. 그러므로 훈련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5. Elder Discipline - 장로는 목사의 가장 가까운 목회 동역자이다. 제자훈련 목회의 진정한 공력(功力)은 장로 그룹의 제자훈련에서 나타난다. 6. First Group - 시작했으면 뒤를 돌아보지 말라.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면 첫 그룹에 목숨을 걸어라 7. Vision - 성도들은 목사의 개인적 야망과 제자훈련 철학에 입각한 비전을 구분 할 줄 안다. 비전제시 없는 훈련은 반드시 실패한다. 8. Generosity - 제자훈련을 쉽게 이해 못하는 사람들을 따돌리지 말고 품어라. 언젠가는 그들도 제자훈련에 동참한다. 9. Man Power - 훈련받지 않은 사람을 학연, 지연, 혈연 어떤 인연으로든 교회 일꾼으로 등용하지 말아라. 사람에 관한 원칙이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 10. Touching - 제자훈련은 무미건조한 성경공부나 교리교육이 아니다. 섬김과 나눔으로 마음을 열어라 |
제자훈련은 결국 인재 목회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에서는 지성인들이 오히려 교회를 겉도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직업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서 설 자리 없는 사람들이 교회 내에서 지도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것 자체가 문제시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소외받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 곳이니까요. 그러나 교회에 워낙 사람이 없다보니 누구 한 사람 교회로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그 사람의 인격이나 신앙의 성숙도를 진단하기도 전에 직분부터 주고, 일을 시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도 처음부터 믿음이 좋았던 것처럼 위선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람은 교회의 지도자로 서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능력 없는 지도자, 인격이 부족한 지도자, 비전 없는 지도자, 무지한 지도자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더 이상 발전이 없고, 소망이 없어집니다. 이때 가서 문제를 수습하려면 이미 때는 늦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될 일은 교회 지도자 양성을 위해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훈련받은 지도자만이 모든 이들을 포용하고 목회자와 한마음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간혹 이런 평신도 지도자의식을 갖지 못한 목사들은 소위 ‘엘리트’인 사람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또한 훈련받지 못한 ‘엘리트’ 계층의 사람들 역시 눈만 높아서 “저렇게 비전 없는 사람이 이 교회 지도자라니.” 하는 마음으로 목사를 무시한 채 교회를 겉돌게 되고 나중에는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분이 낮든 높든, 직업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말고 그들 모두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을 훈련시켜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 훈련받은 지도자가 성도로부터 존경받아야 건강하게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중히 여기는 목회1
교회가 대형화될수록 한 영혼, 한 영혼을 돌아보는 일, 교회를 가족화시키는 일이 무척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제자훈련은 교회의 가족화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한 예로 제자훈련 1기 수료생들은 지금도 한 두달에 한번씩 모여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10년이 넘는 교제이지요. 이러다보니 교회 안에는 아름다운 코이노니아가 형성되고 교회가 대형화 되면서도 한 가족처럼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족화 현상이 참으로 좋은 것이지만 때론 문제점을 낳을 때도 있습니다.
제가 부임해서 교회 직분자를 살펴보니 패택(彼擇)안수 집사라는 사람이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분의 사생활에 대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는데도, 저만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완전히 공개된 비밀이었지요. 그런데도 피택 안수 집사 명단에 올라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삶이 어떻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회원들은 한 분도 그분을 명단에서 빼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서로의 인간관계와 정 때문에 모질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동안 교회의 치리가 인간관계에 의해 간과되고 있었다는 걸 반영해주는 실례였습니다. 그러나 그건 최선의 아닙니다. 차선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 교회, 아니 전통교회의 문제점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과감히 메스를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들진 못했고 한 2년 지나서도 변화가 없자 제가 메스를 들어야 했습니다. ‘이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일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장로님들게 말씀드렸습니다.
“삭제하십시다. 제명하십시다.”
저는 그 당시 상당히 마음을 졸였습니다. 그분은 한 당회원과 친인척이 되는데, 혹여 이 일로 당회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분이 이 일로 인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면 더없이 좋겠지만 실족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저는 몇날 몇일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아무 반대없이 그분을 제명했지만 무척이나 긴장감이 돌았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교회의 순결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지키기 위해 때로 지도자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어린 양들을 보살피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지요.
사람을 중히 여기는 목회2
목회는 무엇보다 사람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때론 단호하고 무서운 결정을 내려야 사람이 살 때도 있고, 때로는 아버지처럼 보살펴주는 자애로움이 있어야 사람이 살 때도 있습니다. 부교역자들과 동역하는 데도 담임목사는 엄격하게 리더십을 발휘하다가도 따뜻한 보살핌을 줘야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선교사님들을 돕기 위해 선교헌금에 대한 동기부여를 계속했습니다. 교회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선교인데 보내는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 중의 문제였으니까요.
저는 아예 ’88년부터 예산을 책정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로님, 올해의 제 사례비를 동결해주십시오. 그대신 사례비 인상분만큼 선교사님에게 보내는 헌금을 더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당회에 신선한 충격이 되었나 봅니다. 당회에서는 사례비를 동결할 수 없다고 우겨댔지만, 제가 계속 고집을 부려 실제로 제 고집대로 밀어부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항상 안건이 있을 때마다 무기로 삼는 것이 사례비 동결입니다. 그만큼 제가 먼저 희생하는 모범을 보이겠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10년 동안 3번을 동결시킨 적이 있었는데, 한번은 제 사례비를 동결시키면서 부교역자들의 사례비는 인상시켰습니다. 부교역자들의 경제 사정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는 게 한국교회의 실정입니다. 그래서 섬길 수 있는 한 최선의 예우를 해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그런 시행을 한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96년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 건축이다 뭐다 해서 경제 사정이 어려웠습니다. 그러자 부교역자들이 자원해서 자신들의 사례비를 동결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부교역자들이 그러는데 전들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만 또 올릴 수가 있겠습니까? 부교역자들에게 가서 그랬지요.
“자네들 때문에 나도 동결시키게 됐네. 나만 올릴 수는 없잖은가? 책임지게나.”
그러면서 우리는 허허 웃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장로님들은 그때 항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목사님 봉급이 이 정도밖에 안 되면 우리 체면이 뭐가 되겠습니까?”
그러면서 무조건 목사님 사례비를 올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직회 예산위원회에 올라가서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목사가 논 사고 밭 삽니까? 목사는 먹고 살 수 있으면 됩니다. 교회에서 자식 교육 시켜주잖아요. 사회 평균치보다 높은 사례금 때문에 성도들 시험에 들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요, 사례비를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존경과 신뢰를 먹고 살고 싶습니다. 그러니 사례비를 내려주십시오. 장로님들은 장로님 체면 봐달라고 하는데, 장로님 체면 때문에 목회에 은혜가 안 된다면 장로님 체면도 말이 아니고 목사 체면도 말이 안 됩니다. 목회가 은혜가 되어야지요. 그러니 집사님들 가결하지 마십시오. 집사님들, 이대로 하기로 동의하십시오. 재청하십시오. 됐습니다. 그러면 가하면 ‘예’. 하십시오. 아니면 ‘아니오.’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해서 무사히 통과되었던 일이 있습니다. 사례비 동결 문제. 이건 지금까지도 제겐 비장의 카드인 셈입니다.
교회 성장의 일등공신, 원로 목사님
Tips for Leaders 7 원로목사님과의 관계 1. 영적 아버지로 - 원로 목사님을 아버지처럼 존경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아름답고 따스하다. 그분에게 사랑과 존경으로 문안하라. 2. 신앙의 멘토로 - 세대 차와 같은 말로 간단히 덮어버릴 수 없는 충만한 경험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그분에게 배워라. 3. 사역의 메트로놈으로 - 목회는 컨덕팅(지휘)이다. 언제 빠르게 언제 느리게 언제 박력 있게 나아가야 할지 그분에게 여쭈라. |
당회 분과 활성화
교육관 건축이 2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저는 무엇보다 당회 분과를 활성화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개척교회는 담임목사가 결정하면 모든 행정이 척척 돌아가지만, 전통교회는 한 가지 안건을 처리하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기다려야 하는 결점이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전통교회는 개척교회의 순발력을 배울 필요성이 있습니다. 개척해서 빠른 시간 안에 성장한 교회는 교회 행정 면에서는 매우 앞서가기 마련이지요. 전통교회는 사소한 문제조차 늘상 당회만 소집하다보면 정작 일은 이미 끝나버리는 경우도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담임목사 지출 결의서’ 도장까지 없애버렸습니다. 지출계획서를 따로 만들어서 장로님 선에서 최종결재가 나도록 하는 방안을 만들었지요. 담임목사는 전체를 보고 살필 수 있도록 하고 나머지는 분과 별로 사무 행정을 보도록 당회에서 결정한 것입니다.
대신 십일조와 감사헌금 및 각종 헌금 명단과 목록은 당회에서 함께 보도록 했습니다. 양떼들의 헌신을 담임목사뿐만 아니라 장로님들께서도 함께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교회 재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야 하는 까닭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면에서 열려 있고 서로 믿어주는 체계입니다. 그렇다고 담임목사 혼자서 독단으로 행하는 체제도 아니지요. 모든 건 당회 분과에서 결정하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분과 활성화가 그만큼 정착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미래목회는 가정사역이 필수
우리 교회가 성장하면서 계속적으로 불신자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송길원 목사님께서 맡아 하신 가정사역도 한몫하고 있었습니다.
송길원 목사의 가정사역은 기대 이상의 반응과 열매를 보여주었습니다. 부부성장학교, 부부 세미나, 결혼예비학교 등에서도 성과가 많았지만, 그분의 가정설교도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붕괴될 가정이 다시 세워지고, 새로워지는 간증들이 속출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 잘 안 믿는 남편들이 송 목사의 특이한 설교 앞에 거꾸러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송 목사는 그야말로 아주 실생활적인 가정설교를 했습니다. 때로는 설교를 듣다가 배꼽을 잡고 웃느라고 정신이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송 목사가 저녁 설교를 한다고 하면 모이는 회중이 100명에서 150명가량 차이가 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가정사역을 교회 내에 도입하는 일은 교인들에게 좋은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풍성한 꼴을 먹임으로 영양이 고루고루 섭취된 건강한 교인들로 성장시킬 수 있게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교회 내에 가정사역을 도입하는 일에 대해서는 전통교회의 관심이 쏠리지 못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미국에 가서 찰스 스윈돌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교회를 둘러보며 가장 큰 도전을 받았던 부분이 바로 이 가정사역이었습니다. ‘이혼 나라’라는 말이 돌 정도로 미국에서는 가정들이 심각하게 파괴되다보니 교회가 그 방면에 눈뜰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전염병이 심하게 돌면 그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한 백신이 발달되는 이치와 같았습니다. 미국에 있는 대형교회란 대형교회가 모두 가정사역을 도입하여 상당한 열매를 거두는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다가오는 21세기에는 더더욱 가정사역의 필요성이 절실해질 것입니다. 파괴되는 가정의 일원들을 치료하고 복음으로 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교회가 제 역할을 감당하기란 상당히 벅찰 것이란 예감이 듭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교육관 건축, 그 낙수(落穗)
교육관을 지으려고 부지 확보를 모색할 때의 일입니다. 교회 건물에 바로 인접한 주택은 어렵지 않게 구입했는데, 중앙에 있는 주택을 구입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당회원 가운데 두 분이 반대를 했습니다. ’90년말이라고 기억되는데 그 정도의 갑에라도 사지 않으면 몇 년 후 전철 개통을 앞두고 갈수록 땅값이 오를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도 두 분은 반대의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당회원 모두가 토의에 토의를 거듭했지만 어떠한 설득에도 합의점에 이르지 못하자, 위원들 중에는 다수결로 하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이때 저는 교육관 건축과 당회 분위기, 즉 일이 우선이냐 사람이 우선이야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깊이 생각한 끝에 당회 분위기, 즉 사람을 선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교육관 건축을 위한 대지 구입 건은 모든 당회원의 합의가 있을 때까지 보류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후 1년 정도 지나 반대하던 당회원의 합의로 당시 구입하려고 했던 가격보다 1억 원 가까운 돈을 더 주고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일은 손해본 셈이 되었지만 사람을 잃지는 않았기 때문에 저는 그때의 일로 인해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많은 발전을 한 것만큼 세계교회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웅장한 교회당이나 수양관 건축의 뒤안길에는 많은 사람들을 실족케 한 과오도 적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교회당을 헌당한 후 수고한 목사님은 그곳을 떠나야만 하는 경우가 허다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건물 짓는 일을 제자 만드는 일보다 우선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먼저 사람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성숙한 당회는 당회원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구성되어 있을 때 가능하며, 이때 그 분위기도 좋아집니다.
물론 목회의 장래를 볼 때 일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찌 사람을 무시하면서 일을 먼저 할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목회의 리더십은 화평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다같이 받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안식년을 마치고
저는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머무는 동안 새들백교회에서 참으로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 교회의 예배는 잊을 수가 없는데, 가만히 보니까 예배에 생동감이 넘쳐나게 하는 요인은 뭐니뭐니 해도 찬양과 메시지였습니다. 메시지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다는 것과 예배 순서 하나하나가 작품이 되고 있다는 점들이 강력한 도전이 되었습니다. 문화적인 면에서도 도전을 받았습니다. 강대상 하나에서부터 영상 시스템, 꽃꽂이에 이르기까지 청중을 압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지요.
그래서 안식년을 마치고 오자마자 저는 서서히 교회 분위기를 쇄신해 나갔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는 조금씩의 아픔이 서려 있었지만, 강대상을 치우고, 액정 시스템을 도입하고, 성가대 좌석을 새로 배치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예배 갱신이 하나둘씩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모든 목회자들의 소망이 어떻게 하면 예배를 좀더 열정적이고 생동감 있게 드릴 수 있느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배 갱신을 위해서는 목사가 짐을 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목사가 새롭게 연출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모든 예배는 묵도로 시작해서 축도로 끝날 뿐만 아니라 모든 순서 순서들이 딱딱 끊어져 있습니다. 그런 예배 순서의 정형성을 뒤바꾸어 성령께서 간섭하실 때처럼 자연스럽고 충만한 예배가 되도록 하기 위해선 목회자가 그만큼 고민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목회자가 성장하는 만큼 교회가 성장하고, 목회자가 고민하고 기도하는 만큼 교회 갱신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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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교회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특징이 드러납니다. 그건 전도를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왜 전도를 강조하는데 사람들이 몰릴까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전도가 부담스러운 것이라면 전도하라고 강권할 이유가 없습니다. 전도는 내가 완벽하게 살아야 할 수 있는, 또는 내가 온전히 선 후에야 돌아볼 수 있는 여유사가 아닙니다. 전도는 신진대사처럼 숨쉬기처럼, 힘든 운동 후 맛보는 달콤한 휴식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고 우리에게 유익한 활동입니다. 더욱이 전도는 주님의 마지막 명령입니다.
“전도 못 하는 게 죄스러워예”
제자훈련을 마친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자기정체성을 뚜렷이 정립하게 됩니다. 자기정체성이란 바로 자신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하는 긍지나 특권의식만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사명과 책임을 감당해야 합니다.
따라서 제자훈련이 전도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제자훈련이 무르익다보면 자연히 전도에 대한 동기를 부여받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선 교회로까지 인도된 사람들에게 전도집회 형식을 통해 목사가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교회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될 때 전도폭발이나 다른 방법을 통해 올바로 믿음을 안내해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전도와 양육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제자훈련을 한다면 반드시 전도집회를 갖고, 전도집회를 했다면 반드시 양육을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의 대각성전도집회는 행사가 열리기 넉 달 전부터 전교회적으로 미리 준비를 합니다. 각 다락방의 리더가 되는 200명이 넘는 순장들이 꾸준히 전도하기 때문에 다락방마다 전도의 움직임이 있는데, 집회를 한달 정도 앞두고는 전도에 대한 특별 교재를 가지고 제가 직접 다락방공부를 시킵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주 정도 전도를 촉구하는 내용의 설교를 주일예배 강단에서 전합니다. 이때 전도설교의 초점은 ‘교회론’을 가르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슬비편지가 만들어준 접촉점
전도 촉구설교를 하는 즈음이면 교인들 각자가 정해진 태신자를 대상으로 각자의 방법으로 접촉하게 됩니다. 그 하나의 방법으로 이슬비 전도 편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전도촉구설교를 시작하는 때쯤 해서 “지금부터 이슬비전도편지를 보내십시오.” 하는 광고를 주보에 냅니다. 이미 이런 과정에 익숙해 있는 성도들은 완벽한 준비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이슬비편지를 통해서 전도집회 준비가 시작됩니다.
처음 이슬비전도편지를 보내기 시작할 당시에는 집회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합니다. 석 달이나 넉 달 후를 내다보고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속 편지만 보냅니다.
이렇게 뜸을 들여나가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이 방법 역시 모두 관계전도인 셈입니다. 이웃사람일 경우에는 그 집 아이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줍니다. 우리 교인들은 이런 일에 아주 익숙해 있습니다. 이런 실제적인 접근방법들과 간증을 나누는 과정이 순장반에 있습니다.
집회를 앞두고 믿지 않는 이웃이나 가족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회에 나올 수 있도록 권유해나가는 과정에서 이슬비전도편지가 좋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슬비전도편지는 전도에 대한 실제적인 동기부여로 교회부흥에 중요한 기초를 놓아주었습니다. ’94년에 처음으로 교회 안에서 이슬비전도학교가 실시됐는데, 이 때문에 전도에 박차가 가해지고 대각성전도집회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정(情)의 문화에 익숙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를 받았으면 그것을 빚으로 여깁니다. 그런 면에서 부드럽고 정감어린 이미지를 주는 이슬비전도편지는 일반인들이 기독교에 대해 지니고 있는 방어적인 자세나 저항감을 무장해제시켜주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편지의 기본내용도 좋지만 보내는 사람이 직접 정성들여 몇 자 곁들여 써주는 것도 상당히 효과가 좋았습니다. 처음부터 별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장애를 제거시켜주며 접근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그야말로 서서히 조금씩 젖어들게 하는 ‘이슬비 전도’라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슬비전도편지는 우리 교회에서 전도의 불씨를 한층 뜨겁게 덥혀준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전도설교가 관건이다
대각성전도집회는 매년 5월 경에 열립니다. 기조니교회의 ‘총동원주일’은 대개 하루 동안만 행사가 진행되지만, 우리는 3일 동안 전도집회를 가집니다. 주일 저녁부터 그 다음날의 월, 화, 수 낮밤 동안 진행되는데, ’97년 집회에는 약 천 명 정도의 전도 대상자가 참석했습니다.
참석자에게는 가슴에 꽃을 달아줍니다. 그리고 다른 교회에서 온 사람은 새신자로 보지 않습니다. 다른 교회의 교인들은 절대로 데리고 오지 않도록 불문율 같은 걸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다른 교회의 교인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집회한다는 걸 알리지도 않는데, 그들이 와서 신앙생활에 새로운 도전을 받고 돌아가기도 합니다. 막상 전도집회가 시작되면, 집회마다 조용하면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고무시켜주는 찬양이 있고, 또 간증이 있습니다. 이때, 주로 간증을 많이 하고 다니는 강사급의 간증자들은 세우지 않습니다. 두 부류의 신자들을 간증자로 세우는데, 한 부류는 비교적 최근에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초신자들입니다. 이들 대다수가 대각성전도집회에 끌려왔다가 예수 믿게 되었다는 사람들입니다. 또 다른 한 부류는 모태신앙이거나 어릴 때부터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인격적으로 예수를 만난 사람이거나 예수 믿은 뒤 세상에 빠져 타락한 채 방황하다가 다시 전도받아서 교회에 나오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들 가운데는 과거 교회에서 청년회장 하던 사람도 있고, 미션스쿨을 나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 두 그룹은 각기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귀를 바짝 열게 합니다. ‘나도 저 사람과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마음을 녹여놓은 뒤 이런 간증 내용에 맞는 찬양을 선정합니다. ‘돌아와 돌아와’ 나 ‘탕자처럼’ 같은 찬송으로 특송을 하는 것입니다.
간증이 끝나면 그들에게 공감대가 형성되는 메시지를 이야기하듯이 무겁지 않게 전합니다. 본래 새신자가 교회를 나오면 우리가 교회 안에서 보통 쓰는 용어를 잘 못 알아듣기 마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도 그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누구며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주는 또 무엇인가? 영생은 무엇이고 성령이나 아멘은 또 무슨 뜻인가?” 하는 의문들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설교는 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너무 종교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으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도록 전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십자가 부활을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양념을 치는 겁니다. 양념을 어떤 것으로 택하는가가 문제입니다. 그러나 새신자가 듣기에 부담없는 말을 전하면서도 핵심을 잡아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대각성 전도집회 설교 제목
제1회 (1988. 4. 10-13)
10 주일, 낮 |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요21:1-17) |
10 주일, 밤 |
지혜자가 본 인생 (전1:12-18) |
11 월, 낮 |
하나님의 진단 |
11 월, 밤 |
거듭나야 합니다 (요3:1-16) |
12 화,낮 |
하나님의 평가 |
12 화,밤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요일4:10) |
13 수,낮 |
하나님의 처방 |
13 수,밤 |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 (요4:5-14) |
제2회 (1989. 4. 23-26) 생명의 주 예수께 오라!
23 주일, 낮 |
백성을 구원한 놋뱀 (민21:4-9) |
23 주일, 밤 |
당신의 현주소는 어딘가? (눅15:11-24) |
24 월, 낮 |
당신에게 구원이 필요한 것을 아십니까? |
24 월, 밤 |
현존하는 천국과 지옥 (눅16:19-31) |
25 화,낮 |
예수만이 구원자인 것을 아십니까? |
25 화,밤 |
죄인과 예수님 (눅19:1-10) |
26 수,낮 |
믿음으로만 구원(영생)받는 것을 아십니까? |
26 수,밤 |
종말은 준비했는가? (눅21:25-36) |
제3회 (1990. 4. 22-25) 구원의 주 예수께 오라!
22 주일, 낮 |
노하시는 하나님 (요3:35-36) |
22 주일, 밤 |
구원에 대한 오해 (막10:17-22,30) |
23 월, 낮 |
인간으로 오신 성자 예수님 |
23 월, 밤 |
예수없는 가정의 위기 (엡5:18-33) |
24 화,낮 |
죽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 |
24 화,밤 |
예수 이름의 능력 (행4:5-12) |
25 수,낮 |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
25 수,밤 |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벧후3:3-13) |
제4회 (1991. 4. 7-10) 사랑의 주 예수께 오라!
7 주일, 낮 |
새로운 출발 (눅15:11-32) |
7 주일, 밤 |
하나님과 화목하라 (골1:19-23) |
8 월, 낮 |
당신은 예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
8 월, 밤 |
예수님과 축복된 가정 (엡5:22-27) |
9 화,낮 |
당신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셔야 합니다. |
9 화,밤 |
은혜의 복음 (롬5:19-21) |
10 수,낮 |
당신은 하나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
10 수,밤 |
그날이 오면 (계20:12-15 ; 마25:31-46) |
제5회 (1992. 4. 5-8) 소망의 주 예수께 오라!
5 주일, 낮 |
주님을 만난 나다나엘 (요1:43-51) |
5 주일, 밤 |
구원의 시금석 (롬9:30-33) |
6 월, 낮 |
단순한 믿음 (막5:25-34) |
6 월, 밤 |
구원의 길 (롬3:19-26) |
7 화,낮 |
인생의 갈증과 예수 (요4:3-19) |
7 화,밤 |
영원한 속죄의 피 (히9:11-15) |
8 수,낮 |
내일이면 늦으리 (눅16:19-31) |
8 수,밤 |
용서받은 죄 많은 여인 (눅7:36-50) |
제6회 (1993. 5.23-26) 생명의 주 예수께 오라!
23 주일, 낮 |
생명 나무 (창2:4-17) |
23 주일, 밤 |
아시 태어나야(거듭나야)합니다 (요3:1-18) |
24 월, 낮 |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요1:1-14) |
24 월, 밤 |
죄의 권세와 은혜의 권능 (롬5:17-21) |
25 화,낮 |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롬5:8-11) |
25 화,밤 |
그리스도의 의의 옷 (갈2:15-16) |
26 수,낮 |
영생의 선물 (엡2:8-9) |
26 수,밤 |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 (마26:28 ; 히9:22) |
제7회 (1994. 5. 8-11) 부활의 주 예수께 오라!
8 주일, 낮 |
예수님의 첫 번째 사역은 가정이셨다(요2:1-11) |
8 주일, 밤 |
구원 받을 표준 믿음 (롬4:18-25) |
9 월, 낮 |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여인 (요4:3-9) |
9 월, 밤 |
예수를 믿어야 할 절대적 이유(요일1:1-4) |
10 화,낮 |
단순한 믿음에 놀라운 축복 (막5:25-34) |
10 화,밤 |
변화된 삶을 바라지 않겠는가?(눅19:1-10) |
11 수,낮 |
죄사함 받고 의인된 기쁨을 아는가?(요8:1-11) |
11 수,밤 |
당신의 임종 때 할 말은 무엇인가?(딤후4:6-8) |
제8회 (1995. 6.18-21) 피난처 되신 예수께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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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주일, 밤 |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전1:12-18) |
19 월, 낮 |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살아야(갈2:16) |
19 월, 밤 |
죽음 후의 세계를 확인하십시오 (묵16:1-8) |
20 화,낮 |
심판날이 가까웠습니 (벧후3:13) |
20 화,밤 |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으세요(막16:1-18) |
21 수,낮 |
당신도 주님의 용서가 필요합니다(요8:1-11) |
21 수,밤 |
하나님께서 보내신 유일한 구원자(요14:6 ;행4:12) |
제9회 (1996. 5.19-22) 위로자되신 예수께 오라!
19 주일, 낮 |
교회는 잔칫집입니다 (마22:1-14) |
19 주일, 밤 |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 (요1:1-14) |
20 월, 낮 |
개종에 불안을 갖고 계십니까? (요17:22-31) |
20 월, 밤 |
기독교와 고통의 문제 (고후1:3-9) |
21 화,낮 |
인생의 방황을 끝낸 사람 (요3:1-15) |
21 화,밤 |
기독교와 조상 제사 (고전10:20-21) |
22 수,낮 |
믿는 자는 영생을 얻으리라 (요3:16-21) |
22 수,밤 |
운명을 바꾼 사람 (눅19:1-19 ; 고후5:14-17) |
제10회 (1997. 5. 25-28) 평안의 주 예수께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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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주일, 밤 |
당신은 무신론자입니까? (시14:1-3) |
26 월, 낮 |
질그릇같이 연약한 인생이지만(고후4:7-9) |
26 월, 밤 |
왜 인간이 죄인입니까? (롬3:10-18) |
27 화,낮 |
보람되고 환희에 찬 인생인데(고후5:14-17) |
27 화,밤 |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마16:13-17) |
28 수,낮 |
성경, 복된 인생의 안내서(딤후3:15-17) |
28 수,밤 |
기독교와 참된 자유 인생 (갈5:1-1,3) |
냉담자도 포기하지 않는다
메시지를 전한 뒤 처음엔 강단 앞쪽으로 걸어나오게 초청하는 형식으로 결신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형식적으로 느껴져서인지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서 지금은 나눠준 전도책자에 자신의 결신 여부를 쓰라고 합니다. 긍정적인 반응이나 결신, 그리고 전화나 편지를 보내달라는 등의 반응을 동그라미 표시로 나타내게 하고, 주소도 함께 써넣게 합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복음초대(calling)를 하는 것보다 믿을 마음이 생기는 대로 인격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첫날에 나와서 매력을 느끼는 경우 사흘 동안 모두 다 나오기도 합니다.
’97년 집회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이 650명, 결신자가 400명 정도 되었습니다. 한 번의 집회에 거의 40퍼센트 가까운 사람들이 결신을 합니다. 물론 결신자가 꼭 들록하는 것은 아닙니다.
참석자와 결신자들에 대한 사후처리는 모두 열매를 거두는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집회가 끝난 뒤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은 본격적인 전도폭발 대상이 되며, 그들에게는 계속해서 이슬비전도편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나서 다락방으로 인도하는데, 집회 뒤 1년 동안은 해당 구역에서 순장을 중심으로 그 사람을 맡아 돌보며 차츰 정착시켜나갑니다. 집회에서 냉담한 반응을 보인 사람에게도 한 번 왔다 간 사람이므로 놓치지 않고 타깃으로 삼는 사후관리에 힘씁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라도 전도해서 한 영혼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투자하는 것도 크게 없이, 상을 주거나 널리 포스터로 알리는 일도 아니지만, 사람을 통해 하는 일이어서 결국 새로운 생명으로 열매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집회를 통해 결신한 새신자들은 교회에 나오면 우선 5주 과정으로 되어 있는 새가족반을 거치게 하는데, 이때 전도와 새가족반의 긴밀한 연계가 중요합니다. 보통 많은 교회들을 보면 새신자들을 위한 전략이 빈약합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밑 빠진 독처럼 성정이 더딜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새가족반 5주 과정을 마치면 ‘기독교가 이런 것이구나. 신앙생활은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알게 되고 신앙생활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새신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제가 다 직접 인터뷰를 합니다. 신앙생활의 기초가 잘못 잡히면 신앙생활보다 더 힘든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잘 인도받으면 날마다 보람있고 기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기신자에게 더 유익한 대각성집회
한가지 놀라운 점은 대각성전도집회가 새신자들에게만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불신자들과 기존신자들이 집회에 함께 참석함으로써 기존신자들에게도 복음이 새롭게 들려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때마다 깨닫게 되는 것은 기존 성도들을 새롭게 하는 것은 역시 복음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묵은 마음이 기경(起耕)되고 새로워집니다. 집회중에 눈물을 철철 흘리기도 합니다. 집회 때에는 온 교인이 치유받고 하나가 되는 모습이 역력히 나타납니다. 매집회 때마다 새신자들이 한 번에 150명, 200명씩 찾아옵니다. 이들이 처음에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뜨거워지고, 나중에는 눈물을 흘리며 결신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며 자신들도 감격스러워지는 것입니다.
교회사적으로도 미국의 무디를 통해서 일어났던 부흥운동 같은 것은 전 세계적으로 번져나간 대각성운동이었습니다. 이처럼, 대각성운동은 율법화되고 윤리도덕화 되어버린 형식적인 종교생활이 복음을 통해 갱신되는 운동입니다. 기존교인들이 새로워지는 가운데 뜨겁게 다시 헌신하면서 전도열정이 생기게 되었고, 그들이 모여서 복음을 증거할 때 온 미국과 전세계에 대각성부흥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핵심은 복음의 능력이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복음을 통한 대각성 부흥운동의 맥이 끊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낳고 네가 길러라”
가끔씩은 다른 교회에서 제게 대각성집회에 와서 전도설교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옵니다만, 그때마다 저는 다 거절합니다. “네가 낳고 네가 길러라.”는 뜻에서입니다. 복음설교도 하고 집회 계획도 스스로 짜보는 경험들이 모든 목회자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처음엔 잘 안 되는 듯해도 자꾸 해보면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대각성전도집회를 하려는 교회 가운데 50퍼센트가 실패한다고 합니다. 목사가 복음설교를 잘 못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것은 모두 훈련이 부족한 탓입니다. 처음부터 복음설교를 잘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계속 연구하면서 전해보면 잘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전도집회 시기를 발표하고 계속 교회가 그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행사가 이끌어가는 교회가 아니라 목적이 이끌어가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Tips for Leaders 8 대각성집회를 성공시키는 3가지 요소 1. 영적 의미 점검(Significance)- 대각성전도집회는 기존 신자와 초대된 불신자 모두에게 의미심장한 집회이다. 기존 신자에게는 훈련된 제자로서 생산성을, 불신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선사한다. 2. 철저한 준비(Preparation) - 수술 전 혈액형, 혈당, 간 수치, 과거 병력, 심장쇼크, 이상체질, 주사 과민반응 등등을 철저하게 검사하며 준비하는 것처럼 영적 잉태를 보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 준비와 일의 분담이 필요하다. 특히 불신자들을 위한 간증과 설교가 집회의 백미인 만큼 최고, 최상의 강사, 간증자를 준비한다. 3. 사후 관리 (After-Ssevice)- 많은 노력을 기울여 준비한 대각성전도집회가 일회일과성 행사가 되지 않으려면 세밀한 영적 AS를 해야 한다. 냉담한 사람, 가벼운 관심을 보이는 사람, 마음이 크게 움직였으나 결신하지 못한 사람 등등으로 자세히 반응을 분류하여 다음 전도대상으로 삼는다. |
■대각성전도집회, 이렇게 준비한다.
1. 대각성 전도집회 카운트다운
- 집회 날짜를 정한 후 4개월 전부터 주보 앞에 날짜를 기재한다.
-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주간에 전도촉구 설교를 전한다.
- 총지휘자는 각 교역자에게 책임 배정을 구분하여 맡게 된다.
- 총지휘자로부터 집회 계획안이 나오면 각자의 맡은 바를 이행한다.
2. 집회 2-3주 전 주일예배시 전도촉구설교를 한다.
3. 집회 한 달 전부터 다락방에서 전도에 대한 특별교재로 공부한다.
4. 집회기간
5. 후속조치
1) 집회중에 결신 혹은 기독교에 대해서 긍정적인 관심을 나타낸 대상자들에게 편지를 작성하여 발송한다.
2) 긍정적인 반응없이 이름과 주소만 써낸 대상자들은 각 교구 담당자들이 나누어서 명단을 관리하고, 교회는 이들을 70인 전도대 혹은 전도폭발팀에서 복음 제시의 대상으로 삼도록 한다.
■ 계획안
(새중앙교회 제10회 대각성전도집회)- (날짜별 진행계획표)
날짜 |
요일 |
내 용 |
담당자 |
진행상황 |
3.23 3. 30 4.6 4.13 4,20 4.27 5.4 5.11 5.18 5.25 |
주일 |
제10회 전도대회 담당교역자 책임배정회의 주제 정함 플래카드 부착(본당 두 기둥) 전도대상자 카드 주보 삽입 이슬비 전도편지 광고 이슬비 전도편지 1신 띄우기-주보광고 교회 분위기 홍보 ( )주 전 - 입간판제작 교회 소개지 제작 현수막 도안 및 신청(교회 건물 부착) 금식기도 명단 및 공동기도제목 작성 인쇄 13일 연쇄기도 명단 작성 현수막 부착(교회 건물) 40일 연쇄 금식기도 명단 주보 삽입 간증자 확정 전도용 테이프 제작 (왜 예수를 안 믿는가?) 전교인 새벽기도 주보광고 전도용 테이프 배부 간증지도 계속 전교인 새벽기도 실시(2주간) 초청장 제작 13일 24시간 연쇄기도 명단 - 주보에 삽입 전도지 배부 초청장 배부 13일 24시간 연쇄기도 실시 집회용 소책자 제작 초청장 발송 꽃, 간식 준비 대각성 전도집회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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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획안 설명
1. 집회가 열리기 두 달 전에 전도대상자를 적어서 내게 하고 그 명단을 주보에 기재한다.
2. 주제를 정한다.
- 제10회 대각성 전도집회
주제 : 평안의 주 예수께 오라
- 교회 내에 집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곳곳에 ‘집회 7주 전’부터 시작하여 6주 전, 5주전…1주 전까지 매주일 바꾸어 부착한다.
3. 40일 연쇄금식기도 명단은 집회 전 40일부터 당일까지 다락방별로 아침, 점심, 저녁 순서의 명단을 작성, 주보에 유인물로 삽입하여 성도들에게 알린다.
- 이때 명단이 있을 유인물 뒤쪽에 기도제목을 인쇄하여 내준다.
- 릴레이식으로 한꺼번에 금식하며 기도는 집에서 한다.
4. 13일 연쇄 기도 명단도 마찬가지로 집회 전 13일부터 당일까지 다락방별로 명단을 작성, 주보에 삽입하여 알린다.
- 이때의 기도는 교회의 정해진 장소에 나와서 하게 한다.
- 우리 교회의 경우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편의상 마리아반(60세 이상이 모이는 모임)에서 교대로 기도하게 한다.
5. 집회 전 전교인 특별 새벽기도회를 2주간 동안 실시한다.
6. 전도용 테이프를 제작하여 염가로 판매한다(1개당 500원씩).
7. 간증자는 대부분 현재 제자훈련을 받고 있는 교인들 중에서 선정하여 각 제자반 담당자가 지도하게 된다.
이 때 간증은 (1) 예수님을 믿기 전의 나의 상태, (2) 예수님을 믿게 된 동기, (3) 예수님을 믿고 난 후의 자신의 변화, (4) 앞으로의 결심 등의 순서로 써오게 하며 7-8분의 분량으로 정리하도록 도와준다.
8. 전도지를 자율적으로 가져가게 한다.
9. 초청장을 제작하여 집회3주 전부터 배부하여 대상자들에게 띄우도록 한다.
10. 집회용 소책자는 3일 동안의 집회 순서와 매회 설교 본문이 적혀 있는 노트 형식의 난과 마지막 페이지에 ‘집회를 참석하고 나서’라는 난을 만들어 매 집회시간이 끝날 때마다 기입하게 하여 회수한다.
11. 환영 꽃
- 집회에 초대받은 전도대상자에게 달아준다.
- 이때 꽃은 집회 7회 중에서 한번만 달아준다. 대부분 전도를 한 사람과 함께 오기 때문에 구분이 된다. 7회 다 참석하더라도 꽃은 한번만 달아주기 때문에 매회 새로 나온 사람들의 숫자를 파악하게 된다.
12. 낮 집회 때는(3회) 간식(음료와빵, 혹은 과자류)을 준비하여 집회 마친 뒤 전도 대상자와 함께 나누도록 한다.
대각성 전도집회 통계 대조표
년도 |
구분 |
주일낮 |
주일밤 |
월,낮 |
월,밤 |
화,낮 |
화,밤 |
수,낮 |
수, 밤 |
평균/계 |
제1회 88.4. 10-13 |
참석 |
657 |
468 |
306 |
509 |
262 |
534 |
379 |
600 |
464/3715 |
결신 |
|
|
12 |
21 |
1 |
23 |
20 |
20 |
계 97 | |
제2회 89.4. 23-26 |
참석 |
785 |
1093 |
408 |
607 |
387 |
542 |
451 |
811 |
619/4299 |
결신 |
|
31 |
7 |
10 |
7 |
5 |
34 |
32 |
계126 | |
제3회 90.4. 22-25 |
참석 |
922 |
715 |
426 |
682 |
391 |
655 |
426 |
739 |
621/4965 |
결신 |
|
30 |
30 |
16 |
6 |
7 |
9 |
26 |
계114 | |
제4회 91.4. 7-10 |
참석 |
1127 |
880 |
511 |
787 |
530 |
724 |
452 |
845 |
732/5856 |
결신 |
21 |
49 |
17 |
20 |
10 |
18 |
13 |
22 |
계170 | |
제5회 92.4. 5-8 |
참석 |
1247 |
863 |
447 |
712 |
44 |
751 |
514 |
791 |
727/5819 |
결신 |
|
41 |
24 |
15 |
14 |
23 |
17 |
31 |
계165 | |
제6회 93.5. 23-26 |
참석 |
1394 |
990 |
590 |
808 |
608 |
761 |
588 |
907 |
830/6646 |
새신자 |
46 |
138 |
126 |
117 |
74 |
82 |
55 |
78 |
716 | |
결신 |
19 |
22 |
12 |
26 |
17 |
27 |
19 |
34 |
176 | |
제7회 94.5. 8-11 |
참석 |
1397 |
786 |
460 |
662 |
504 |
621 |
502 |
948 |
735/5880 |
새신자 |
|
88 |
84 |
77 |
81 |
52 |
50 |
80 |
530 | |
반응한수 |
|
18 |
27 |
36 |
27 |
25 |
22 |
63 |
218 | |
제8회 95.6. 18-21 |
참석 |
1601 |
1117 |
656 |
743 |
702 |
786 |
665 |
1045 |
914/7315 |
새신자 |
50 |
160 |
140 |
110 |
115 |
80 |
110 |
120 |
111/885 | |
반응한수 |
|
39 |
43 |
36 |
34 |
25 |
33 |
40 |
36/250 | |
제9회 96.6. 19-22 |
참석 |
1831 |
1036 |
582 |
714 |
574 |
744 |
588 |
904 |
872/6973 |
새신자 |
54 |
133 |
120 |
110 |
110 |
100 |
95 |
130 |
116/733 | |
반응한수 |
|
50 |
50 |
50 |
55 |
49 |
38 |
56 |
49/348 | |
제10회 97.5. 25-28 |
참석 |
2050 |
1223 |
773 |
981 |
780 |
952 |
750 |
1153 |
1,082/8662 |
새신자 |
50 |
165 |
160 |
130 |
120 |
100 |
100 |
145 |
121/970 | |
반응한수 |
|
52 |
70 |
60 |
89 |
51 |
45 |
73 |
62/440 |
해산의 수고를 격려하며
그동안 저는 책을 쓰시는 분들이 한 권의 책을 쓰신 후에 계속해서 책을 내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왜 그렇게 연이어서 책을 펴낼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한 권의 책을 세상 앞에 내놓게 된 지금에 이르러서야 왜 그분들이 연속적으로 책을 펴내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원고를 마감하고 나면 끝없는 아쉬움이 계속 밀려오기 때문에 그것을 채울 마음으로 2권, 3권을 쓰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 역시 그런 아쉬움에 밤잠을 설칠 정도로 고민하게 됩니다. 과연 이 상태로 책을 내보내도 되는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 까닭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안타깝고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과연 미력하나마 제자훈련과 대각성전도집회에 대한 소개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 장을 써나갈 때는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민감하게 대처하여 목회의 변화를 추구하고 교회를 새롭게 하려는 동역자님들에게 도전과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막상 마지막 장을 무리짓다보니 그런 작은 의욕보다는 부끄러움과 아쉬움만 크게 남는 걸 발견합니다.
그러나 어찌 됐든 우리 모두는 교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몸부림 쳐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 지은 밥이 삼층밥이든, 찐밥이든 고루 잘 익은 밥을 짓기 위한 최선의 노력들이 계속 될 때 생명은 굶지 않고 살아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부산새중앙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제자훈련과 대각성전도집회에 대한 미흡한 소개들이 동역자들로 하여금 건강한 교회, 영양가 있는 교회를 만드는 데 좋은 재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 세상에는 이상적인 교회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이 목회의 길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꼴, 맛있고 영양가 있는 밥을 지어 성도들에게 먹여야만 거듭나는 교회,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기에 그런 이상을 향한 우리의 몸부림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4:19)라고 말한 것처럼 끊임없는 해산의 수고를 우리 목회자들이 감당해나갈 때 한국교회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