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NGO신문 11월 7일자 10면(민족NGO섹션)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나라를 일본에 가져다 바친 부왜역적을을 대중행동을 일으킨 선각자처럼 기술하고 있는 현 국사교과서는 바뀌어야 합니다.
<보낸 원고>
[국사교과서, 올해 이것만은 꼭 바꿔라!] 〈24〉
부왜역적들의 매국행위를 바로 기술하라!
박정학/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많은 사람들이 독립협회, 독립문과 3.1 독립운동에서의 ‘독립’이란 단어의 차이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교과서에서 진정한 독립투쟁가와 19세기 말 독립협회를 만들어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섰던 사람들을 구분하기 어렵게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객관성 있게 고쳐져야 할 부분이다.
좋은 면만을 편파적으로 기술한 교육부와 교과서
교육부의 지침인 중‧고 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독립 협회는 제국주의 열강의 간섭과 이권 침탈에 대항하여 자주 독립, 자유 민권, 자강 혁신의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음을 서술한다.…독립 협회의 활동 내용과 탐구 자료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독립 협회가 어떠한 근대 국민 국가 수립을 지향하였는지에 유의한다.…독립 협회와 대한 제국은 국내외 주요 쟁점에 대해 상호 대립·협조하는 양면성을 지녔음에 유의한다.”고 하여 이 단체의 친일 매국적 행위에 기술하라는 언급은 없다.
이에 따라 교과서에서도 “갑신정변에 참여했다가 미국으로 망명했던 서재필이 귀국하여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만들었다. 독립 협회를 중심으로 자주독립에 대한 열기가 높아지자,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돌아와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올리고 국호를 대한 제국으로 하였다.”(초, 사회5—2, 65쪽). “서재필은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독립신문을 창간한 후 개화파 지식인들과 함께 독립 협회를 설립하고 자주독립을 상징하는 독립문을 건립하였다. 독립 협회는 국민 계몽을 활동 방향으로 삼고…자주 국권운동을 전개하였으며…자유 민권 운동도 벌여나갔다.…독립 협회의 활동은 이후 애국 계몽 운동으로 계승되었다.”(비상교육편, 중학역사 하, 55쪽). “독립협회는 모금을 통해 청의 사신을 맞던 영은문 터에 독립문을 세웠다. ‘이 문은 단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부터, 러시아로부터, 그리고 유럽 열강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다-독립신문, 1896.6.20.’…주로 토론을 통하여 자주 국권과 자강 개혁의 필요성을 계몽하는 활동을 하였다.…열강의 이권 침탈에 반대하는 자주 국권 운동과 부패한 국정 개혁을 요구하는 자유 민권 운동에 나서 만민 공동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만민 공동회는 한국 최초의 근대적 대중 집회였다.”(비상교육편, 한국사 180~182쪽 내용 요약)와 같이 게재하고 있다.
독립협회가 ‘일본 앞잡이 단체’라는 것 감추다
독립협회와 독립신문이 정치체제 개혁이나 열강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활동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유럽 열강의 식민지도 아닌데 ‘열강으로부터 독립한다’는 비논리적 표현을 하면서도 그 주도세력들이 안경수, 이완용, 윤치호 등 그 후 나라가 망하고 일본으로부터 작위와 상금을 받은 부왜역적들이라는 말은 하나도 없다.
여증동 전 경상대학 교수는 『부왜역적기관지 독립신문 연구』에서 “‘독립협회’는 1896년 7월에 미국시민 필립 재슨(과거 한국이름 서재필)이 이름을 짓고 조직한 단체로, 교과서에는 선각자들이 주도한 대중운동 단체로 기술하고 있으나, 사실은 ‘청국을 배척하고 일본에 붙자’는 부왜단체(附倭團體)였다”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① 창립 시기가 청일전쟁 직후(친일세력이 내각 장악)로 일본의 후원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② 핵심 구성요원이 모두 부왜역적(친일파)들이다. 제1기(1896.7~1898.2)는 고문 필립, 회장 안경수, 위원장 이완용, 위원 김가진 김종한 민상호 이근호 등이었고, 제2기(1898.2.27.~5.19)는 고문 필립, 회장 이완용, 부회장 윤치호 등이었으며, 제3기(1898.5.14.~11.6)는 필립이 추방당하고, 회장 윤치호, 부회장 이상재 등이었다.
③ 1910.9 일본정부가 돈과 귀족 작위를 내린 조선병탄 유공자에 독립협회 간부 6명이 포함되었으며, 윤치호는 1945년에 일본 귀족원 위원으로 뽑혔다.
④ 독립신문에서 ‘일본군과 싸운 의병을 비적’이라고 비하하여 보도하고, ‘일본 돈을 쓰자, 일본이 청으로부터 우리를 독립시켜 준 것을 고마워해야 한다’고 보도하는 등 나라를 일본에 넘어가도록 만드는 데 이용되었다.
이런 객관적인 자료들을 전혀 무시하고 독립협회를 ‘선각자들의 대중운동 단체’, 독립신문을 그런 활동 수단이었던 것으로만 기술하고 있는 편파적 기술이 가장 큰 문제다. 그리고 현재 독립공원에 항일 광복투쟁을 한 사람들과 함께 이들을 비적이라고 한 서재필의 동상이 서 있는 아이러니나 최근의 건국절 법 제정 움직임과 마찬가지로 진실을 덮으려는 세력이 집권층에 스며들어 겹겹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난 세기 일제의 탄압이 우리 겨레의 아픈 상처라면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되도록 만든 사람들의 행적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우리 학생들에게 겉으로 나라를 위한 것 같지만 결국에는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적 행위를 한 사람들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도록 고쳐져야 할 것이다.
<보도 지면>

첫댓글 많으신 분들이실체적 진실 파악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시네예~~~ 수고에 끝없는 박수와 존경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