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oked on classics
오래된 CD를 자동차의 플레이어에 넣었다. 차 선생인지 모 선생의 곡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멋지게 시작한 곡이 한숨이 바뀌기도 전에 드럼이 만들어 내는 "쿵짝 쿵짝 쿵짝" 리듬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곡이 마칠 때까지 드럼 소리는 터줏대감이 되어 버티고 있다. 드럼의 강한 비트를 배경으로 한 이 곡은 고전음악 여러 곡을 묶어서 연주하는 곡이다. 한때를 풍미했던 "Hooked On Classics"이다. 메들리가 유행했던 시절에 미국의 유명 오케스트라에서 취입한 것이다.
드럼의 강한 비트를 깔고 귀에 익은 클래식 선율들이 계속해서 지나간다. 이런! 망쳤네. 강한 비트가 귀에 거슬리기 시작한 것이다. 비트가 나의 귀를 점령하기 시작하고 멜로디는 기가 죽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그 아름다운 흐름이 사라져가는가 싶더니 어느덧 시나브로 내 귀는 규칙적인 비트를 무시하기 시작한다. 곡이 마무리 지어질 때쯤, 신기하게도 드럼의 비트는 나에게 더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보통 이런 예는, 인간의 귀라는 것이 듣고 싶은 것을 골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할 때 차용한다. 그런데 출근하는 차 안에 내가 느낀 것은, 음악을 들으면서 내가 기대하는 것 또는 좋아하는 것 이외의 부분을 다르게 대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 그 외 부분을 무시했거나, 계속되는 패턴이라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고 문제로 삼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무시하기 시작하니 익숙해져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일까?
어찌 되었건 더 이상의 Hooked on classics는 없었다.
익숙하다는 것은 (사람이 일에) 서투르지 않고 능숙하다는 뜻과 (사람이 대상에) 자주 대하거나 겪어 잘 아는 상태에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무시하다는 것은 (사람이 사물을) 그 의의나 가치를 가볍게 여기거나 인정하지 않다로 시작하여 (사람이 무엇을) 업신여겨 깔보는 것으로 종결된다.
익숙함인가 무시인가.
돌아보건대, 나는 이 곡을 완결된 하나의 곡으로 대하지 않고 두 개의 다른 것이 섞여 있는 것으로 대했다. 서로 다른 것이 뒤엉켜 시간을 타고 흐르다가 한 부분이 서서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마치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 흡수되는 탁한 지류처럼 본류에 묻혀 버리고만 현상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까. 여전히 그 소리는 CD의 반짝이는 라인에서 읽혀 POWER를 획득한 후에 온갖 반도체를 거치고 구리선을 지나 적당한 물리적인 힘으로 스피커를 움직이는 여전히 또 하나의 주류였음에도 나는 애써 외면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평안한가? 그렇다면 그것은 거짓된 평안이다. Hooked on classics를 듣는 자가 비트를 제거하고 들었다면 이는 자기기만이다. 차라리 다른 CD를 선택했어야 한다. 잘 연주된 이것저것이 서로 얽히고설킨 그런 곡 말고 원곡에 충실한 것을 들었어야 했다. 내가 이 곡을 선택했다면 비트와 흐르는 선율들을 함께 즐겨야 했다. 어깨춤을 동반하면서....
내가 속한 모임과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 때때로 나는 그들을 분석하고 나누어 본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드럼의 비트처럼 애써 무시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익숙해 있거나 무시했던 부분이 어느 날 나에게 갑자기 도드라져 보일 때, 나는 당황했다. 마치 그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 것처럼. 매일 침대를 함께 사용하는 그녀에게도 예외는 없다. 아이들에게는 특별히 더 많이 적용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늘 함께하기에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나의 기대치가 항상 선행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치 CD처럼 내가 고른 것으로 착각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수첩을 사주면서 일정 관리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그 일정에 따라 주변 정리하는 것까지를 훈련했다. 큰 아이의 책상에는 연도별로 조그만 수첩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그것을 통해 그 아이의 몇 년간 일정을 한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잘 정리된 주변을 보면 흐뭇하기도 하다. 그러나 작은 아이는 시작할 때부터 그런 것이 도무지 자기 인생에는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듯하더니 지금 그의 주변에서는 한 권의 수첩도 발견할 수 없다. 작은 아이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계획적인 삶을 나는 기대하면서 그가 무계획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익숙한 채로 지내다가 책상 책꽂이에 있는 졸업한 지 2년이 넘은 고등학교 교과서를 볼 때면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기대하다가 강한 비트의 드럼 소리에 놀라는 나를 발견한다. 그의 삶은 그냥 그것으로 아름다운 것을, 나의 쓸모없는 분석이 아이의 자유로운 삶을 재단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큰 아이의 삶이 왠지 팍팍하고 재미없어 보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Hooked on classics는 메들리이다.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들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 그리고 즐거움과 흥을 더하기 위해 드럼의 비트를 이용하고 있다. 개인도, 그 개인이 모여 이룬 단체도 하나로 합하기 위한 어떤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따로 분리했을 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본류와 마치 다른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가 되었다면 그 하나는 분리되어 대접받으면 안 될 것이다. 하나로 읽혀야 하고, 하나로 들어야 하며, 그 자체가 아름다움으로 대접받아야 마땅한 것이리라.
존재하는 것, 그것은 그 존재 자체로서 귀중한 것이고 그 자체로 사랑받아야 마땅한 것이리라.
이제 Hooked on classics 다시 들어보자.
(2016년 8월 23일 평상심)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완전히 글 쓰시는 것이 프로시네요. 혹시 진짜 프로신데 제가 못알아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
회원님의 김형경작가 소개로, 요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대출해서 읽고 있습니다.
2권 188쪽에 이런 말이 나오네요.
"존재하는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소중하고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