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고도 후기(1)
여행의 서
2월 19일(금)
실감이 나지 않는 여행길이다. 달랑 배낭 하나에 짐을 챙기는데 도무지 집어 넣을 게 없다. 현지가 봄 날씨라고 전해 들어 가벼운 옷과 우산 그리고 여행자 21명의 티켓 사본과 비자, 약간의 위안화를 준비했다. 배낭이 평상시 걷기여행처럼 단출하다. 평소 무거운 것을 들면 어깨가 아파서 무거운 짐 기피증이 있어서 그런가. 밤 비행기라 가방을 다 싼 다음 무엇을 해야 할지 시간이 정체된 느낌이다. 밥 먹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배가 고팠다. 오랜 기간 집 떠날 것을 몸이 먼저 알아 차렸나보다.
2007년 KBS에서 다큐멘터리로 흥미진진하게 시청하고 꼭 가보고 싶어 동경해 왔던 그 곳을 9년 만에 가게 되었다. TV를 보면서 엄청난 스케일의 장엄한 산수에 매혹되고 소수민족들이 척박한 땅에서 생계유지를 위해 고단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위대해 보였다. 그 모습을 땅을 밟고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출발한다.
사전 모임을 통해 얼굴이 익숙한 분들이 있지만 지방에서 오는 사람, 어린 아이들, 가족 단위의 여행 참가자들이 모두 제시간에 모였다. 밤 10시 45분에 쿤밍행 직항에 탑승, 비행시간은 4시간 30분. 12시가 넘어서 기내식이 나왔다. 사실 탑승 수속을 밟느라 저녁을 먹지 못한 터여서 시장했다. 덮밥과 빵을 맛있게 먹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밥이 맛있는 건 여행의 설레임 때문이리라. 차의 고장답게 녹차 맛이 좋았다. 두 잔을 마셨다.
2시 36분 쿤밍 공항에 도착하였다. 날씨가 으스스하였다. 현지 안내자 두 분의 안내로 40분간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에서 잠깐 눈을 부치고 다음날 쿤밍 시내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쿤밍은 운남성 서남부의 한라산 높이 지대로 사시사철 꽃이 지지 않는 도시라고 했다.
사시사철 꽃이 지지 않는 도시, 쿤밍
2월20일(토)
첫날은 시내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으스스한 날씨에 보슬비가 내려 우산을 쓰기도 안 쓰기도 어정쩡하였다. 쿤밍시의 상징인 큰 탑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고 빌딩이 가득하여 여느 대도시 못지않았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서울보다 사람이 적다는 느낌과 전기오토바이 전용도로가 있다는 것. 시내 중심에 있는 취호 공원에 들렀는데 자연호수라 한다. 넓은 호수에 갈매기와 비슷하게 생긴 빨간부리 철새로 가득하여 마치 포구를 연상케 하였다. 공원에는 한 무리의 중.장년 남녀가 민속음악에 맞춰 무예와 같은 춤을 추는데 기품 있어 보였다. 한 켠에는 노인 커플들이 손을 맞잡고 자연스럽게 춤추는 모습이 부럽게 보였다. 파고다 공원의 노인들 모습이 부자연스럽고 더 쓸쓸한 이유가 명확히 떠오른다.
시내 투어 중 재미있는 것은 조별로 구경 겸 미션을 수행하고 모이는 거였다. 4개조로 120위안과 모일 장소가 표기된 약도, 무전기 1대씩을 지급 받았다. 미션은 신(新).구(舊)시가지가 분명한 곳 사진 찍기, 구(舊)지도 찾기, 동상 찾기, 점심 먹기였다.
조별로 각자 흩어져 이동하는데 통신도 안돼, 말도 못해, 달랑 지도 한 장 들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혹시나 일행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조마조마한 심정이라 구경에는 관심 없고 지도 따라 찾아다니기 바빴다. 화장실을 가야하는데 난감하다. 쇼핑몰 건물이라 공중화장실이 분명 있으리라 짐작은 가지만 워낙 건물이 커서 찾을 수가 없다.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중국어 소책자에 있는 글자를 가리켰으나 알아듣지 못했다. 궁하면 다 통하게 마련인가 무작정 버거킹 매장으로 들어가 화장실을 찾았다. 매장 테이블과는 칸막이와 문 하나 사이에 있었다. 역한 지린내가 코를 자극했다. 일을 보고 나오니 햄버거 특유의 향신료와 기름 냄새가 범벅이 되어 이내 지린내를 잊게 하였다. 온기라곤 찾아 볼수 없는 서늘한 매장에서 태연하게 햄버거를 맛있게 먹는 중국인들의 모습을 보며 여기가 중국임을 실감하였다.
중요한 건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우리 조는 골목으로 들어가 식당 앞에 메뉴사진을 크게 붙여 놓은 집으로 들어가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앳돼 보이는 아가씨가 명함크기의 메뉴판을 내밀었지만 어떤 재료의 음식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각자 1가지씩 5가지를 시켜야 하는데 도무지 난감하다. 하는 수 없이 손님들이 먹는 음식을 가리키며 “이거 1개” 검지손가락을 치켜들었더니 알아듣는다. 이렇게 3개를 시키고 나머지는 밖으로 나가서 사진을 보고 2개를 주문했다.
음식은 단품으로 밥이랑 같이 나왔다. 일테면 우리나라의 밥과 국인 셈이다. 밑반찬이나 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체로 먹을 만했으나 후추 알 크기의 향신료는 어찌나 독한지 혀가 얼얼하였다. 음식을 먹고 나오는 길에 메모지에 ‘水’자를 써서 물을 사먹었다. 약도와 한자로 지도를 써서 어디로 가야하냐고 물었으나 손짓으로 무조건 쭉 가라고 하니 알아들은 건지 인사치레로 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나중에 발표 시간 때 들은 다른 조의 식사이야기는 우리 조처럼 남들이 시킨 것을 먹었거나 맛있는 거한 요리를 먹은 조도 있었고, 또 다른 조는 3찬에 10위안(약2천원)에 파는 식당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이것저것 맛보았다고 하였다.
지도를 따라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자체가 가볼 만한 곳 이었다. 쿤밍의 가장 중심인 광장 사방에 큰 도로가 나 있다. 동서로는 신건축과 구건축으로 대비를 이루고 남북으로는 금융과 관공서, 쇼핑몰이 들어서 번화가를 이룬다. 바로 광장바닥에서 중국지도를 찾았다. 사거리 모퉁이에는 경찰차와 제복을 입은 경찰이 상주해 있다. 우리 일행이 모여서 현지 안내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경찰이 다가왔다. 무엇을 하는지 감시차원이라고 한다. 몇 년 전 티벳 라마승들이 독립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뒤부터라고 한다. 경찰이 도로에 상주해 있는 모습은 중국정부나 한국정부나 매 한가지다.
점심 후 화조시장을 돌았는데 옛 건물과 새로 지은 건물이 공존하고 있는 곳 이었다. 오래된 건물은 목조 건물로 보수를 하지 않아 쓰러질 듯하다. 아마 새 건물을 짓기 위해 그냥 둔 것처럼 보인다. 몇 년 후에는 전혀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옥으로 만든 장식품과 악세사리, 염주 등 전통수공예품을 파는가하면 다른 쪽에서는 화초를 팔고, 금붕어, 거북이 등을 파는 곳도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꽃대가 여러 개 나온 한란에 자꾸 마음이 갔다. 좁은 시장통에서 조장이 군고구마를 사줘 먹었는데 크기는 큰대 식감이나 맛은 우리나라 것보다 못하였다. 종일 흐린 날씨에 싸늘하고 습한 기온에 손이 시렸다. 근래에 들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눈이 많이 왔다고 한다. 거리 곳곳에 나무가 얼어서 누렇게 말라 죽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녁은 150년 된 라오팡즈(老房子)식당에서 먹게 되었다. 목조건물로 대문의 높이가 어른 키 두 배다.
‘ㅁ’자형의 2층 목조건물로 마당도 ‘ㅁ’자다. 세월의 더께 때문인지 건물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거우면서 짙다. 종일 추위에 떨어서 식당에 들어가면 좀 따뜻해질까 내심 좋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문조차 없다. 식탁은 원탁테이블로 되어 있어 음식이 하나씩 나오면 원판을 돌려서 앞 접시에 음식을 가져다 먹을 수 있다. 음식은 기와에 구운 얇은 삼겹살, 어묵처럼 얇은 떡볶음, 고구마전, 죽순볶음, 소고기탕수육, 가지볶음, 잉어튀김, 두부조림, 죽순야채볶음 등이 었고 무엇보다 뜨끈한 자연산 버섯탕은 그나마 추위에 떤 몸을 녹여 주었다. 첫날이라 신경을 많이 쓴 식사였다.
식사 후 숙소에 들어와 각자 짐을 정리하고 한 방에 모였다. 1주일을 함께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라 자기소개도 하고 여행에 대한 기대도 풀어 놨다. 어떤 이는 우연히 여행생협 팟방을 듣고 어린쌍둥이와 함께 오고, 어떤 가족은 귀촌을 위한 정리 차 부부와 딸이, 또 다른 4가족은 아버지의 힘겨웠던 마음을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어떤 이는 익히 알고 있던 차마고도를 가보기 위해, 각기 다른 목표와 생각을 가지고 차마고도 여행에 합류하였다.(계속...)
첫댓글 글을 읽으니 여행 당시 모습이 다시 또 그려지네요. 다음편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