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모여사는 고을은 속도가 빠르게 변해 가나 그 고장의 이름은 영원히 남겨 지고 불리워 지고 있다. 지금도 원주 토박이 노인들에게는 봉산동이라기보다 배말, 원인동보다 비각거리, 평원동보다 진골목, 중앙동보다 옥거리라고 불린다.
옛날 원주 역 뒤쪽은 넓은 옥답과 맑은 봉천의 냇물 그리고 냇물 양쪽으로 송림이 우거져서 운치가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 유명했던 것이 고추장이다.
이 정지뜰에서 생산 되는 고추장이 얼마나 맛이 좋았는지, 해마다 한번씩 궁중에도 진상되었고 강원감영의 원님들은 이것을 원주의 큰 자랑으로 삼았단다.
그리고 원주 사람들도 먼곳에서 온 손님에게는 토산물로 정지뜰 고추장을 선사했다고 한다. 이토록 정지 고추장이 유명한 것은 그윽한 향기와 감치는 맛이었다고 한다. 하기는 전라도 순창고추장도 유명하지만 딴곳에서 아무리 잘 담근 고추장도 이 고장에서 아무렇게나 담은 고추장 맛을 따르지 못했단다.
하도 정지 고추장이 유명하니까 한때는 정지뜰에 사는 솜씨있는 아낙네들을 초청해 고추장을 담그는 대갓집도 있었으나 결국 그 맛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필연코 정지물이 좋아서 그럴것이라고 정지물에 정지뜰 아낙네 손으로 담궈 보았으나 역시 제맛이 나지 않았다.
그런후엔 아예 정지뜰에 사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제맛이 다 들은 연후에 가져갔었다는 것인데 아무튼 이쯤되고보니 원주와서 정지 고추장맛을 못본사람은 행세를 못했다는 말까지 있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정지뜰에서 담그는 고추장이라야 별다른 양념재료를 더 넣은 것도 아니고 같은 물까지 써보아도 딴곳에서는 제맛이 안난다는 것이다.
이곳은 넓은뜰 한가운대로 봉천냇물이 흐르고 서쪽에는 남북으로 흘러내린 백운산 낙맥, 동쪽에는 치악산 낙맥이 역시 남북으로 흘렀는데, 내리쭤이는 태양광선과 토질의 영향 그리고 우거진 송림에서 풍기는 냄새와 송화가루의 영향 등이 원인이 되어 그토록 독특한 고추장맛이 생긴듯 하나 , 그 원인을 과학적으로 증명 된 것은 없으나 그토록 유명했던 ‘신비의 고추장맛’이 지금은 간곳이 없다.
10여년전만 해도 소나무와 물흐름이 있었으나 세월의 아쉬움만 뒤로 한채 지금은 개발 논리에 제물이 되어 단골메뉴로 등장 하여 아쉬움이 그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