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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찾고 깨달음을 얻다 | ||||||||||||||||||||||||||||||||||||||||||||||||
한국문화 오디세이<26> 심우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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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는 순서를 소에 소설가 정도상의 작품 가운데 ‘내 마음의 실상사’란 작품이 있다. 소설 속 화자는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이지만 창작을 위해 실상사에 왔지만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한다. 화자가 택한 마지막 방법은 고향을 향해 걸어가서 육체노동자인 친구 봉구를 만나 생동하는 삶을 목격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전북 도내엔 남원 실상사를 비롯, 정읍 내장사, 무주 안국사, 백련사, 전주 승암사, 선린사, 정혜사, 순창 만일사, 강천사, 고창 미소사 등 사찰마다 심우도(尋牛圖)가 그려져 있다. ‘심우’는 소를 찾는다는 뜻으로, 소는 ‘참마음’, ‘진리의 은유다. 심우도(尋牛圖)는 선종(禪宗)에서 인간의 본성을 찾아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목동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 묘사한 것으로, 목우도(牧牛圖)라고 한다. 10가지로 하고 있어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하며, 중국 송(宋)나라 때의 승려 곽암(廓庵)이 처음 그린 그림으로, 같은 시대 보명(普明)의 목우도(牧牛圖)와 함께 한국에 전래되어 같이 십우도로 불렸다.
수행자가 본성(本性) 즉, 소을 잃어버린 뒤 그것을 찾아 헤매는 그림부터 소를 찾은 후 다시 중생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모습으로, 곧 선(禪)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는 순서를 소에 비유하여, 소를 찾고 얻는 과정과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10단계의 과정은 기의 본심인 소를 찾아 나선다, 소는 못 보고 소의 발자취만 발견한다, 소를 발견한다, 야생의 소를 잡는다, 소를 길들인다, 소를 타고 무위의 깨달음의 세계인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 소는 달아날 염려가 없으므로 소 같은 것은 모두 잊어 버리고 안심한다, 다시 사람도 소도 모두 본래 공임을 깨닫는다,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른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깨닫는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로 구분될 수 있다.
두번째는 ‘견적(見跡)’이다. 야생소는 아직 보지 못하고 소의 발자국만 발견한 단계로, 본성을 찾으려는 일념으로 열심히 수행을 하다가 보면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 느끼게 되는 과정을 비유한 것이다. 아직 깨달음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심성의 자취를 느끼는 단계에 이른 것을 말한다.
네번째는 ‘득우(得牛)’다. 깨달음의 상징인 야생의 소를 잡은 단계다. 이 경지를 불교의 선종에서는 ‘견성(見性)’이라고 하는데,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의 원석을 발견한 것과 같은 상태다. 야생소가 야성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이, 아직은 방종하려는 마음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한 단계로, 소의 몸에 색깔이 남아 있는 것이 이러한 상황을 상징한다. 다섯번째는 ‘목우(牧牛)’다. 소를 길들이는 단계다. 소의 고삐를 잡지 않고 놓아두어도 주인의 말을 듣고 있다. 속세의 때를 지워가는 과정으로 소의 몸통이 흰색으로 변해가는 것이 이러한 과정을 상징한다. 불교에서는 이 과정을 중요시하는데, 완전히 유순해 지도록 길들여야지 이때 달아나면 그 소를 다시 찾기 어렵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를 해야 하는 단계다. 여섯번째는 ‘기우귀가(騎牛歸家)’다. 소를 타고 깨달음의 세계인 집으로 돌아오는 단계로, 이때 소는 완전히 흰색으로서 다른 명령없이도 주인과 일체가 되어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 때,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깨달음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상징한다. 일곱번째는 ‘망우존인(忘牛存人)’이다. 이제 소는 달아날 염려가 없으므로 소에 대한 걱정은 잊어버리고 안심하는 단계로, 깨달음의 세계인 집에 돌아와보니 애써 찾던 소는 온데간데 없고 자기만 남아있다는 내용이다. 즉, 소는 깨달음의 종착역에 도달하게 하는 방법이었으므로, 종착역에 도착한 지금은 방법은 잊어버리는 것이다. 배를 타고 피안의 세계에 도착하면 배는 버려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논리다. 여덟번째는 ‘인우구망(人牛俱忘)’이다. 다시 사람도 소도 모두 본래 ‘공(空)’임을 깨닫는 단계다. 소를 잊은 다음, 자기 자신도 잊어버리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텅빈 원 하나로 표현한다. 모든 것을 초월한 경지에 이르는 이세상 전부가 덧없으며, 전부가 오직 ‘공(空)’임을 의미한다. 아홉번째는 ‘반본환원(返本還源)’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깨닫는 단계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라고 한 성철 스님의 말씀처럼, 조그마한 번뇌도 묻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참된 지혜의 단계를 비유하는 과정이다. 열번째는 ‘입전수수(入廛垂手)’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 단계다. 지팡이에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는 것을 의미,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을 구제함에 있음을 상징한다. 물론 어깨에 맨 큰 포대는 사람들에게 베풀어 줄 복과 덕을 담고 있다. ‘심우’는 불도의 깨달음을 얻으려는 마음을 일으키는 발보리심을 나타내고, ‘견적’에서 ‘기우귀가’까지는 수행의 과정을, ‘망우존인’과 ‘인우구망’은 보리심을 성취하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반본환원’은 열반의 경지에 진입하는 모습을, ‘입전수수’는 깨달음을 얻은 뒤에 중생을 제도하는 단계를 나타낸다. 반야심경의 한 구절에 핵심 모두가 집약된다.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해서, 마음에 어떤 거리낌이 없다. 마음에 거리낌이 없으면, 두려움 마저 없어진다. 뒤바꾸어진 헛된 꿈에서 아주 멀리 떠나, 마침내 열반에 이르게 된다’/이종근 기자 |
첫댓글 봉서사에서 주지스님께 심우도를 처음 이야기 들었는데...감회가 새롭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