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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Arithmétique. 03
제2권 기하학Géométrie 43
제3권 무한소 분석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4권 비판철학과 실증주의 La philosophie critique et le posivitisme 253
제12장 칸트의 수학적 철학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Kant 253
제13장 오귀스트 꽁트의 수학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Auguste Comte 282
제14장 과학적 토대들의 변형Transformation des bases scientifiques 302
제5권 산술학의 진화 L’évolution de l’arithmétique 341
제15장 수의 독단론Le dogmatisme du nombre 344
제16장 산술학의 유명론Le nominalisme arithmétique 354
제6권 수리[논리]계산의 운동 L’mouvement de logistique 369
제17장 수학들의 수리[논리]계산 철학의 형성 Formation de la philosophie logistique des mathématiques 370
제18장 수리[논리]계산적 철학의 붕괴 Dissolution de la philosophie logistique 394 §234
제19장 절대적 연역의 관념 L’idée de la déduction absolue 411
제7권 수학적 지성과 진리 L’intelligence mathématique et la vérité 427
제20장 직관의 근대적 용어 La notion modern d’intuition 427
단원 A. 용어의 형성 Formation de la notion 430
[1절] 종교적 선입견들 Préoccupations religieuses 430 §259 §260
[2절] 형이상학적 직관 L’intuition métaphysique 433 §261
[3절] 과학들 속에서 직관 L’intuition dans les sciences 434 §262 §263 §264
단원 B. 근대 수학들의 방향정립 L’orientation des mathématiques modernes 437 §265
[1절] 고전적 수학들 속에서 직관L’intuition dans les mathématiques classiques 437 §266 §267
[2절] “선천적” 원리들의 비판 Critique des principes “a priori” 440 §268 §269 §270
[3절] 현대 수학자들에게서 직관 L’intuition dans les mathématiens contemporains 443 §271 §272
단원 C. 수학들에서 직관주의 운동의 해석L’interprétation du mouvement intuitioniste dans les mathématiques 447 §273
[1절] 심리학에 도움(의뢰) Recours à la psychologie 449 §274 §275
[2절] 물리학에 도움(의뢰) Recours à la physique 449 §276 §277 §278
[3절] 수학 철학의 문제 Le probleme de la philosophie mathematique 456 §279 §280
제21장 산술학적 진리의 뿌리들 Les racines de la vérité arithmétique 460
단원 A. 셈법에 앞서 수학 La mathématique avant la numération 463 §284
[1절] 일대 일 교환의 실행 La pratique de l’échange un contre un 464 §285 §286
[2절] 일대 일 교환의 진리 La vérité de l’échange un contre un 467 §287 §288 §289 §290
단원 B. 수라는 용어 la notion de nombre 472
[1절] 수의 구성적 조작작업 L’opération constitutive du nombre 472 §291 §292 §293
[2절] 류적 개념과 수 Le concept générique et le nombre 475 §294 §295 §296 §297
[3절] 완전 귀납이라는 원리 Le principe dit d’induction compete 481 §298
단원 C. 분할 La division 484 §299
[1절] 수들 이론의 요소들 Les éléments de la théorie des nombres 485 §300 §301 §302
[2절] 분수들의 이론 La théorie des fractions 490 §303 §304 §305 §306
[3절] 산술학적 진리의 확장(외연) L’extension de la vérité arithmétique 494 §307 §308
제22장 기하학적 진리의 뿌리들 Les racines de la vérité géométrique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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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장 산술학적 진리의 뿌리들 Les racines de la vérité arithmétique 460
단원 B. 수라는 용어 la notion de nombre 472
1절 수의 구성적 조작작업 L’opération constitutive du nombre 472
[일(1)을 다루었고, 그리고 둘(2)에 대해 논의한다.]
§291. [수의 생성에는 두 대상의 동등가를 발견해야 하고, 그리고 각각이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수의 관념이 구성된다.]
일방적이면서 상호적인 대응의 관계는 우리에게 정신의 최소한 노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던 관계이다. 이 관계는 요소적 관계이며, 우리가 의미를 규정해야만 했던 보다 복잡한 관계들에게 모델로 사용할 수 있을 관계이다. 그러나 관계는 류(類)가 아닐 것이고, 그 류에서 특별한 경우들이 종(種)별화에 의해 끌어내 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순수하고 단순한 대응으로부터 소위 말하는 산술적 영역으로 이행하지 못할 것이다. 수의 생성(la génération)은 발명의 노력을 함축한다. 발명은 이번에는 검증작업의 규칙을 요구할 것이다. 이 수의 생성작업은 새로운 동등성의 발견에서 있다. (472)
다시 한번, 우리는 그러한 발명의 메카니즘[사유절차]이 무엇이 될 수 있을 지를 상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사실들 속에서 그것의 흔적을 재발견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타일러(Edward Tylor, 1832-1917)에 따르면 “마르끼즈 섬들의 주민들은, 각 손의 하나에 의해 물고기 또는 과일을 세면서, 단위들 대신에 짝들에 의해 수나열의 체계(기수법)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한 타우나(un tauna) 즉 2와 동등가가 되는 한 쌍(une paire)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그들은 쌍에 의해서 계속해서 센다. 그리고 그들이 타마우(takau), 즉 10을 말할 때, 그들은 10쌍 즉 20(스물)을 말하고자 한다.”수나열의 체계(기수법)에 근거하는 초기 실행은, 한 대상을 두 번 다루는[세는] 대신에 두 대상을 한 번에 다루면서[세면서], 사람들이 상업적 계산작업을 요약할 수단을 발견했다는 것을 가정한다. 혁신(l’innovation, 개선)은 옛 사용법에 익숙해 있었던 상대편에게서 혼동할 대상이 있어야만 했다. 그 혁신은 아마도 참을성 있고 경계하는[의심하는] 조정을 불러왔다. 결국 이 조정은 계산작업의 두 형식들 사이에 동등가의 지성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런 동등가의 지성은 우리 눈에는 수 2의 개념작업을 구성하는 것이다. (472)
이런 동등가의 추상적 표현은 다음과 같은 형식일 것이다. 두 배라는 것이 1의 두 번과 동일하다는 것(Une fois deux égale deux fois un), 다시 말하면 2 x 1 = (1 x 1) + (1 x 1)이다. 여기서 관계하는 두 항들의 어떠한 항도 2(deux)의 관념을 규정하는데 충분하지 못하다. 하나의 대상을 그 외 다른 대상 옆에 두는 것, 또는 이것들을 동시에 제시하기 위하여 두 대상을 한 번에 다루는 것, 이것은 몸짓들일 뿐이다. 만일 심리학의 일반적 착각에 의해서, 우리가 운동을 관찰하는 주체의 의식 안으로 우리의 고유한 심성적 연합작용들의 놀이를 도입하는 경우에만, 이 몸짓들에게 우리는 수적인 기호화 작업에 속성을 부여할 뿐이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사용되었던 이 두 절차들, 하나가 다른 것에 의해 도달한 결과의 동일성이 확정되었을 때, 다른 용어로 말하자면, 진리의 주장과 검증의 조정이 있었을 때, 그 때에 관념이 효과적으로 구성되었다. (473)
§292. [수라는 단위는 종적 항목이 아니라 류적 항목이고, 계산에서 수는 류적 항목을 넘어선 추상(상상작용)의 작업일 것이다. 계산의 토대로서 요소는 지각작용에서 만들어진다. 합리론의 진리와 경험론의 실재성은 상호 전환 가능할 때, 합법적이라 할 수 있다.]
이리하여 인간이 구별된 개념작업에서 형성하였던 최초의 수에 관하여, 2(deux)라는 수에 관하여, 만일 수학 철학의 길을 파라독사들로부터 또 해결할 수 없는 것들(insolubilia)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사람들은] 근본적이라고 하는 학설의 관점을 확립한다. 진리 관계들과 거짓 관계들 사이에서 어떻게 출발하는지를 자문하기에 앞서, 정신은 가능한 모든 종류의 관계들을 허용하는 관념들의 세계를 제기하면서 시작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념은 정신의 내부에 있는 진리에 의해 구성된다. (473)
이런 결론은 류적 개념의 설명과 더불어 비교에 의해 밝혀진다. 예를 들어 ‘프랑스’ 개념은 두 가지 수렴의 작업들을 포함한다. 하나는 추상작업이고 내포에 포함된 성격들을 제공한다. 다른 하나는 일반화 작업이고 외연 안에 포함된 개체들을 제공한다. 속성들과 주어들의 연관은 판단의 생산자격으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2(deux)와 같은 수적 개념은 두 계산작업의 만나는 점에 있다. 하나는 단순히 행동의 반복이고 더하기의 배아이다. 다른 하나는 일체의 행동이고 곱하기의 배아이다. 반면에 단지 두 조작작업의 종합이 류적 개념 속에서 임의적인 접근이 될 수 있고, 또 담론의 한 요소와 다른 것만을 형성할 수 있다. 반면에 유적 개념의 진리는 언어의 협약적 질서 속에 남을 것이고, 수적 개념 속에서 두 계산 작업의 종합은 확인될 수 있는 진리이다. 사람들이 더하기 길에 의해 또는 곱하기 길에 의해 진행하는 것, 구성된 전체는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런 동일성의 재인식에서 지지점을 이용하는 지각작용은 여기서 마치 검증작업의 도구처럼 개입한다. 지각작용은 수적 개념으로 과학의 요소를 만든다. (473)
새로운 문제가 더하기 과정의 고찰에 의하여 제기되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짝의 항들에 대해 하나로부터 그리고 다른 하나로부터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고, 만일 질서의 전도가 마지막 결과에 영향이 없이 있는지를 스스로 질문하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한 질문 앞에서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는 동등하게 당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마도 왜냐하면 계산작업이 스스로 확립했던 항목들의 자연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한정[정의]되었기 때문에, 이 항목들 사이에 교환(une permutation, 치환)이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수(數) 안에서 차이(une difference)를 도입한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 형식은, 이 형식 하에서는 충분이유율(principe de raison suffisante)이 항상 적용작용 안에 소개되는데, 어떻게 긍정적 증거를 끌어내는가? 다른 한편 우리는 경험만을 근거고 토대를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경험에게 질문할 수 있는 경우라면, 또한 만일 우리가 이미 형성된 수의 용어에 도움을 받아 경험의 앞에서 가는 경우라면, 경험은 우리에게 응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점에게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또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만일 사람들이 이법[합리]와 경험을 동시에 유지하지 못한다면, 마치 과학적 삶의 가장 단순한 표출에 이미 참여된 것처럼, 또 마치 두 기능들의 연결이 지성을 특징있게 하는 그 기능들을 표현하는 것처럼, 생겨나는 난점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두 기능들이란, 하나는 관계의 내적 기능이며 용어를 고유하게 구성한다. 다른 하나는 일치의 외적 기능인데, 두 관계들의 동일성을 확정하고 그리고 진리의 주장에 또 실재성의 판단에 이렇게 이른다. 교환(une permutation, 치환)이 합법적이라고 말하는 것, 그것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과 다른 것이 전혀 아니다; 교환에 의해, 이법[합리]는 경험에 근거하여 분명하게 파악했다. (474)
§293. [수학과 철학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은 기호와 진리의 동등가이다. 이런 동등가로부터 더하기, 곱하기, 거듭제곱하기 등에서 대체 가능성에는 난점이 있다. 특히 4승 이상의 거듭제곱이 갖는 형식은 더하기와 곱하기로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생겨난다.]
이제 개념작업을 일반화해보자, 수 2(deux)의 분석은 우리를 개념작업에로 인도한다. 수(數)는, 수가 따로 떨어져 있는 재현작업의 국면을 치장할 수 있는 한에서, 단순하고 복잡한 형식의 [분모로서] 명칭작업에 의해 표현될 수 있는 한에서, 결국에는 수가 지성을 위하여 대상이 되어야 하는 한에서, 방정식의 잔여물(le résidu)일 뿐이다. 그것은 수에게 그것의 지성성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동등가의 개념작업이란 수가 구성되었던 계산작업에게 수적 대상을 연결하는 것이다. 따라서 획일적 항목에 의해 수의 고유한 개념을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철학자들-수학자들은, 수를 그려진 또는 쓰여진 상징(le symbole)으로, 즉 과학적 담론의 형체 안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상징으로 다시 데려온다고 주장하면서, 잘못 만들어진 입말(la langue)에 속고 있었다. 그들은 그 자체로 자족적인 기호(un signe)를, 사물자체 이라는 진리(une vérité)를 상상했으며, 이 때에, 엄격한 정확성 안에서 수는 기호화(signification, 의미)와 진리화(vérification, 검증, 확인)에 대해서만 말하도록 허락받는다. 단순한 계산작업의 전형을 나타나게 할 수 있었던 손가락 계산(calcul digital, 수치 계산) 그 자체는 주의 깊은 관찰자에게 두 인물에 속한 행동을 분간해 낸다. [손의 이중성이 있는데] 손과 더불어(avec la main) 사람은 계산하고, 그리고 손 위에서(sur la main) 사람이 계산한다. 이런 이중성을 제거해 보세요, 그 이중성 덕분에 사유의 운동이 실행되고 있고 그리고 대응의 관계는 확립되고 있는데, 소위 말하는 계산은 더 이상 없고, 그리고 비정합적(불일치의) 몸짓[무언극]만이 있다. (475)
수의 한정된 형식 하에서 고려된 수도 그와 거의 다르지 않다. 말하자면 수나열(numération, 기수법)의 규칙적인 절차는 일련의 수들에 대한 무한정한 외연[확장]을 허락한다. 문명화된 인민들 안에서 사용된 수나열의 절차는 더하기와 곱하기의 방법적 조합이다. 예를 들어, 십진법 체계 안에서 10(dix)까지 수들을 정의하는 방정식의 첫 항목은 더하기 상응[대응]한다. 10으로부터, 수[il, 방정식의 첫 항은)는 곱하기, 보다정확하게 거듭제곱(l’exponentiation, 누승법)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잡다한 조성(composition)은, 다음 찰나로부터 어떠한 난점을 끌어내지 못한다. [이 찰나로부터란, 말하자면] 우리가 수 2(deux)의 예를 근거로, 배가의 절차와 더하기 절차의 동등가를 확립했던 그 찰나로부터, 그리고 [이 둘의] 하나 대신에 다른 하나로 대체하는 가능성을 기초했던 그 찰나로부터, 라는 의미이다. (475)
게다가 사람들은, 수의 구성적 방정식이 곱하기 용어로 또는 더하기 용어로 해석을 허용할 수 있는 것을 직접적으로 명증성을 밝히는 심리학적 관찰에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여기에 호기심을 일으키는 사실이 있다. 이 사실은 데카르트의 성찰들에 그의 「반대들」에서 부르댕(Bourdin, 1595-1653)에 의해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어떤 한 사람을 알았는데, 그는 어느 날 잠들면서 4시[시각]를 알리는 소리를 들었고, 이렇게 하나, 하나, 하나, 하나, [수를] 세었다. 그런데 그의 개념작업의 불합리 앞에서 그는 소리치게 되었다. 자, 미친 듯한(folle, fou) 시계가 있고, 그 시계가 한시각을 네 번 세었다.”주의의 늦춤은 것은 수의 무의식적 적용을 허락하는 습관적 반작용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 늦춤은 노력 자체를 발가벗은채 두는 것인데, 그 노력은 수적인 용어 그 자체를 획득하기 위하여 필수적이었고, 그리고 근본적 방정식에 의해 표현된다. 즉 하나의 네 번은 1번의 4과 동일하다. (475)
2절 류적 개념과 수 Le concept générique et le nombre 475
[수 1, 2, 3 등이 종개념이라면 류개념은 무엇일까? 수는 원래 류개념이고 종개념은 사과 한 개, 배 한 개에서 하나일 것이다. 류개념의 보편적 상위 류개념은 무엇일까? 대수로서 x일 것이다. 부정수가 상위 류개념이 아닐까? (58WLD)]
§294. [류의 항목과 수의 용어는 다른 방식 하에 또는 다른 도식 하에 있다. 류는 논리적 절차에서 판단의 항목이라면, 수는 상상작용의 과정에서 열거의 단위이다. 전자는 항목과 후자의 단위가 정합적 대응이 있다고 하는 것이 착각일 것이다.]
앞선 연구들은 당대의 수학적 철학의 걸림돌(la pierre d'achoppement)이었던, 아마도 당대의 철학 일반의 걸림돌이었던 난처한[어려운] 문제에 부딪혔다. 그것은 수적 용어와 류적 용어 사이에 사이의 연관들에 대한 문제이다. 우리는 질문의 체계적 해결을 위하여 이런 문제를 다시 다루어야 한다. (475)
무엇보다 먼저,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곳에서 거기에 관해 강조했기 때문에, 우리는 착각(l’illusion)을 상기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이 착각으로부터 개념의 고전적 심리학이 유래한다. 이 착각은 내포와 외연의 대안을 회피할 수 없는 또 단순히 해결할 수 없는 형식적 논리학에서 그것의 반향(la répercussion)을 가졌다. 순수 내포로서개념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발들을 형성하지 못할지도 모를 성질들이 있고, 가설적이고 공상적인 대상일지라도 이 하나의 대상에 묶이지 않을 성질들이 있고, 이 성질들이 그냥 있는 그대로 사유된 성질들이전혀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순수 외연으로서개념은 없다. 왜냐하면 개체들은 지각할 수 있는 특성의 도움으로, 만일 그 특성이 흐릿할지라도, 규정되지 않을 것인데, 그 개체들이 그냥 있는 그대로 사유된 대상들이전혀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의 개념은 없다고 우리는 마치 다음처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뽀르 르와얄의 논리학(1662)에 의하여 시작하면서 마치 우리의 철학개론서들 안에 전통이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담론의 단순한 항[목]에 대응하는 재현작업의 단순 요소를 개념에 의해 이해한다. 그런데 판단들만이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인이란 용어가 심리학적 또는 지적인 또는 정치적인 질서의 어떤 특별성들을, 사람들이 어떤 시간에 어떤 토지 위에서 만날 수 있는 개체[개인]들과 연관 있는 하나의 판단 속에 있다. [한편] 어떤 방식으로 특성들이 관계하는지를 스스로 묻지 않고서 이런 특성들을, [다른 한편] 개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서 이런 개체들을, 인식한다는 것은 똑같이 불가능하다. 프랑스인이란 용어의 심성적 실재성은, 그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인들이다(Les Français sont français)과 같은 명제의 형식이라고 주장했던 명시적 관계 속에서 외연과 내포의 종합이다. 따라서 개념은 판단의 잔여물(le résidu)이다. 그러나 판단 속에 함축되어있는 국면의 이중성에 의해 개념은, 외연의 형식 하에든 내포의 형식 하에든, 보다 복잡한 관계들 속에서 이용되기에 적합하다. 프랑스인은, 그 프랑스인들은 혁명가들이다라고 하는 이런 긍정문 안에서 마치 주어처럼 그려질 것이다. 그리고 로베스삐에르는 프랑스인이다라는 문장에서 마치 속어[술어]처럼 그려질 것이다. (476)
이처럼 개념의 구성적 판단을 유지하는 심리학적 실재성은 경험의 두 평면들 사이에 놓여있는 정신의 작동 안에 있다. [한편] 혼동되고 혼란의 경험이 있고 이 경험으로부터 사람들은 성질들을 추출하며, 성질들에 의해 종들과 류들이 정의된다. [다른 한편] 조직화된 경험이 있고, 경험에서 서로 공통적인 술어들 덕분에 개체들이 계층화되어 있다. 개념은 소위 말해서 지적인 해체와 재조성의 이중 과정이며, 즉 단어의 데카르트적 의미에서 방법(une méthode) 또는 칸트의 의미에서 도식(un schème)이다(그러나 사람들이, 칸트가 어둠 속에 내버려둔 것으로 보이는 퇴행적 분석의 찰나를, 명시적으로 밝히는 조건에서). “개의 개념은 규칙(une règle)을 의미한다. 이 규칙에 따르면 나의 상상작용은, 경험이 나에게 제공한 특별한 어떤 것에게 또는 심지어 내가 구체적으로(in concreto) 재현할 수 있는 가능한 어떤 이미지에게 제한되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사족동물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다.” (477)
§295. [류는 대상들의 이미지인데, 수는 이미지의 재현일까? - 언어에서 류적 추상과 수적 추상의 차이와 수에서 서수법과 기수법의 차이는 서로 전혀 다르다. 전자는 포함관계로서 상위와 하위를 설정하여 단위설정울 할 수 있는데 반해, 후자는 상응관계로서 각각이 자기 단위를 설정하여 관계 방식을 다양하게 정립하려 하여, 방정식을 여러 방식으로 만든다. ]
우리에 따르면 그러한 것은 유적 개념의 심리학적 실재성이다. 우리는, 수적 용어가 채워야 할 아주 다른 함수를 갖는다는 것을 제시하고자 원할 것이고, 동시에 다른 한편 수적 용어가 마치 류적 개념처럼 지적 활동성의 너울을, 즉 분석론을 위한 그리고 경험의 조직화를 위한 방법을, 재현한다는 것을 제기하고자 원할 것이다. (477)
만일 류적 개념이 마치 소위 말하는 개념처럼 고려했다면, 수는, 우리가 이미 그것을 고려할 기회를 가졌는데, 개념의 역할에 대해 거꾸로 또 보충적 역할을 가질 것이다. 류의 단위 속에서 토대로 된 대상들 앞에서 우리는 단지 개념적 이미지만을 보존한다. 그런데 수는, 닮은 대상들의 일체가 지각작용을 위하여 덮어씌우는 이런 동일성에도 불구하고, 심정적 혼융에 장애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도구이다. 그리고 칸트는 깔끔하게 수의 역할을 인식했는데, 아직은 초보적인 심리학적 용어론에 따라서 수를 해석한다고 할지라도, 그때 그는 수의 직관적 자연[본연]을 주장했다. 경향성들의 깊은 대립에 의해서, 사람들이 설명하기를, 수의 관념의 개입에 앞서서 공간이 계층[소집합]의 동일성 안에서 잡다한 개체들을 유지하게 하는데 이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도브리즈호퍼(Dobritzhoffer, 1717-1791)는 아비폰(Les Abipons)족에게서 언어의 흥미있는 이런 형식을 폭로했다. “그들은 야생말들을 사냥하고 또는 기른 말들을 죽이고 돌아왔을 때, 어느 사람도 그들에게 당신은, 그 일에 얼마나 관여했는가? 라고 묻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데려갔던 말들의 무리까 얼마 만한 자리를 차지하는가?라고 묻는다.” (477)
또한 다른 방식으로 인종학은 류적 용어와 수적 용어의 이런 근본적 이중성을 확인한다. 인종학은 류적 추상과 수적 추상 사이의 점진적인 분이의 작업에 참석하도록 우리에게 허락한다. 수들은, 용어법[용어지정]이 서로 연관있는 대상들의 성질에 따라 동일 용어법이 아니라는 그런 방식으로, 계층[소집합]들의 내부에서 전개된다. 하나의 유일한 예로서 그러나 특이하게 기호화가 있는 예로서 만족하기 위하여, 미국 인류학자인 보아스(Franz Boas, 1858-1942)는 다음의 목록을 제시하였다. 그 목록은, 영국의 남아메리카 콜롬비아 식민지에서 하일축 족(The Heiltsuk)의 방언에서, 소위 말해서 2(deux)를 지칭하기 위해서 아니라 오히려 수의 이름의 부재를 보충하기 위하여, 흔히 사용된 형식들 중의 몇몇 어떤 것들을 재현한다.
사람들은 deux êtres animés 살아있는 두 존재들을 위해 : Maalok로 대신할 것이다.
− deux êtres ronds 둥근 두 존재들 .. : Masem.
− deux êtres longs 긴 두 존재들 .. : Mat’ak.
− deux êtres plats 평평한 존재들 .. : Matlqsa
− deux jours 두 낮들 : Matp’enequls.
− deux brasses두 팔들 : Matp’enkh.
− deux objets réunis 두 합해진 대상들 : Matlouth.
− deux groupes 두 집단들 : Matlsmots’ult.
− deux tasses remplies두 가득찬 무더기 : Matl’aqtlala
− deux tasses vides 두 빈 무더기 : Matl’aqtla.
− deux boîtes pleines 두 가득찬 상자 : Masemala.
− deux boîtes vides 두 빈 상자 : Masem.
− deuxcanots chargés 짐실은 두 카누 : Mats’ake.
− deux canots avex leur équipage선원이 탄 두 카누 : Mats’akla.
− deuxobjets ensemble sur la plage해변의 두 대상들 일체 : Maalis.
− deuxobjetsensemble dans la maiso 집안의 두 대상들 일체: Maalitl.
이 모든 계층들의 공통적인 관념은, 마치 말투의 잡다한 형식들 안으로 들어가는 뿌리의 동일성이 이미 이런 것을 증거하는 것처럼, 잠재적(latente)이다. 이 관념은 명시적으로 분간되는데, 이 때는 각각의 수(數)가, 계층들에 관련하여 전적으로 독립적이고, 획일적인 표현으로 갖추어져 있을 때이다. 그러면 승리는 완전하고, 더욱이 너무나 완전하다. 왜냐하면 용어의 단순성은 의식을 위하여 노력들의 복잡성을, 그것으로부터 도래할 것을 준비했던 노력들을 지워버릴 위험이 있다. 마찬가지로 개념의 이론은 내포와 외연의 해결할 수 없는 선택지 속에서 스스로 상실되었다. 그리고 수의 이론은 서수법(l’ordiantion)과 기수법(la cardination)의 환원할 수 없는 이원성에 부딪히게 되었음이 틀림없다. (478)
§296. [수의 나열에서 다섯째와 5는 다른 것임에도 반복적으로 상응한다. 마치 짝(쌍)처럼. 그리고 다섯은 1 2 3 4 보다 상위 항목이(류적 용어가) 아니다. 각각이 단위가 되고 단위들의 동질성이 되면서 계산(cacul)이란 특성이 도출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양편(개념, 수)에서 착각이 비슷하지 않는가?라고 자문할 수 있다. [전혀!] 순수하게 서수의 수도 없고 순수하게 기수의 수도 없다. 모둠(une collection 집단)은 마치 나누어질 수 없는 전체처럼 지각에 속한 덩어리로 주어지며, 모둠은 수가 아니다. 모둠은, 만일 그것들로부터 차이나는 요소들이 발언되기 위해 구별되는 경우에만, 다시 말하면 정신이 그것의 각 단위를 계속적으로 주목할 수 있는 경우에만, 수가 될 뿐이다. 거꾸로 정신 앞에서 줄지어 서는 일련의 단위들은, 만일 줄(열)이 각각의 단위에게 할당되는 경우에만, 다시 말하면 만일 사유가 단위의 관념 – 사유를 진행했던 단위들의 관념을 지나가는 단위의 관념이며 - 속에 도입되기 위하여 개입하는 경우에만, 만일 사유가 귀결로서 계속을 동시성으로 전환할 줄 아는 경우에만, 수가 된다. 계열의 열과 모둠의 숫자는, 따로 파악된 각각이, 차후의 판단들 안에서 이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때는 산술적 영역으로부터 그 영역이 허용하는 경험적 적용들로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며, 또 사람들이 주어진 체계 안에서 요소의 자리를 규정해야 할 것이든지, 주어진 그룹 안에서 요소들의 목을 고정해야 할 것이든지 할 때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개념작업의 내용을 총체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그리고 개념작업의 원리를 정의하기 위하여 과학적 개념작업만을 단지 간직하기를 원한다면, 서수법과 기수법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정신이 요소들의 각각 거쳐가는 계속적인 작동들의 계열과, 지적 대상의 단위들 속에 여러 작동들을 끌어모으는 종합 사이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5와 같은 기호(un signe)는 수적 용어를 표현하기 위하여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기호는 다음과 같은 정식에 의하여 명백하게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즉 첫째,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이러한 것이 5(다섯)를 만든다. 사유의 특징적인 진행방식은 또한 여기서 상응의 관계이다. 이것이 열거하는 계산작업의 반복[하나, 둘, 셋, 넷, 다섯]과 이렇게 형성된 모둠(5)의 재현 사이에 상응이다. (479)
이런 상응 속에서, 류적 용어가 박탈되어 있었던 과학적 가치를 수적인 용어에 부여하는 진리가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왜냐하면 이웃하는 두 요소들의 교환(une permutation, 치환)은 이법[근거]에 충격을 가하는 것이 전혀 아니고 경험을 모순되게 말하는 것도 전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교환을 마치 합법적인 것처럼 고려해야만 한다. 그런데 만일 이런 전도(l’interversion)은 합법적이라면, 점점 더 가까이, 모든 전환은 마지막 결과를 변화하지 않고서 허락되었다. 따라서 수열거(l’énumération)의 순서는 무차별적이다. 말하자면, 모둠 5가 형성되었던 계속적인 계산작업들의 각각은, 그것을 앞서거나 또 그것을 뒤따르는 계산작업으로부터 질적으로 구별된 계산작업이기를 그만둔다. 이렇게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방정식을 얻는다. 첫째=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하나의 비슷한 방정식 소에, 산술적 사유의 전개에서 마지막에 나타난 용어가 함축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용어는 숫적 추상화작업의 극한적 항목을, 즉 단위(unité)라는 항목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각 단위는 다른 단위에 동일한 것으로 제기된다. 말하자면 정신은 어떠한 특수한 규정작업에, 즉 사물의 내속적 성격에 더 이상 멈추지 않는다. 또 정신은, 정신 자신이 대상을 마치 대상처럼 제시한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대상의 어떠한 것도 더 이상 알지 못한다. 현존의 판단은, 대상을 제시하는 작동을, 단순하고 벌거벗은 원리로 어느 정도로는 환원된다. 따라서 자, 숫적인 단위라는 것이 있다. 이로부터 이런 귀결로부터, 내부로부터 한 단위가 다른 단위와 구별되는 어떠한 것도 없다. 단위는 단쥐 둘째 작동, 또는 셋째작동만 있을 것이다. 이로부터 수적인 단위들의 절대적 동질성이 나온다. 이로부터 숫적 걔산의 여러 잡다한 성질들이 도출된다. (480)
§297. [자연수에서 수의 계산을 위한 여러 방식(더하기, 배가하기, 곱하기, [다곱셈])에서 성립하는 단위 1이 있다. 그 절차에서 파라독사와 진리주의의 이중성이 있다. (방향에 따라) 종합과 분석이 있다.]
우리는 이제 다음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수란 용어(la notion)가 무엇인가? 수란 단어의 전통적 의미에서 개념이 아니며, 심지어는 고유하게 말하는 판단도 아니다. 그것은 추리의 법칙(une loi)이며, 그것은 분해와 조성이라는, 또는 사람들이 여전히 말하는 것처럼, 분석과 종합이라는 이중 과정의 조건이다. 이처럼 우리는 칸트의 도식(le schème)의 생각 속에서 그것을 재발견했고, 특히 우리는 데카르트의 방법(la méthode) 생각 속에서 재발견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두 과정들 사이에 명증의 요청을 도입했다. 명증의 요청은 연역법의 요소들에게 절대적 가치를 부여했을 것이고, 그리고 마치 우주의 체계처럼 선천적으로 확립되도록 합리적 종합에게 허락했을 것이다. 이처럼 그는, 심지어 방법의 범위를 특이하게 제한한다고 할지라도, 방법을 변질하게 하는 조건들을 “방법”의 사용에게 부여할 것이다. 우리의 견해에 따르면, 반대로 “방법”의 본질은 명석 판명한 관념들의 상대성 안에 있을 것이다. 수들은 우주의 유일한 실재성의 고유한(sui generis) 추상작업에 의해 따로 떨어진 요소들이다. 그리고 수적인 종합의 내적 질서는 지각작용의 자료들과 더불어 종합의 결과들의 대조(la confrontation)에 의해 검증되었다. (480)
따라서 우리는 분석의 출발점에서 지각된 실재성이 발견된다고 말할 것이다. 게다가 수학적 사유의 활동성은 경험의 세계에서만 실행될 수 있다. 세계를 말하는 것은 거의 순진섬이다. 왜냐하면 경험은 현존 그 자체에서 공연적(coextensive)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각작용들에 의해 제공된 그룹들은 해제[해결]하는 활동성에 종속되었다. 그 활동성은 그룹의 요소들의 각 요소를 분간하고 그리고 요소를 현전의 단순한 사실로 끌고 간다. 그리고 대상을 제기하는 작동으로 또한 대상을 하나로서 세는 작동으로 끌고 간다. 이렇게 서로서로 동질적이게 하는 단위들로부터, 종합적 사유는 수(un nombre)를 다시 만들려 할 것이다.
단위에 의해 단위를 이어지는 직선의 더하기를, 사람들은 수의 구성작업에 마치 본질적인 것처럼, 마치 소위 말하는 계산에 앞선 것처럼, 즉 일상적인 것처럼 고려한다. 이 직선의 더하기는 마치 다른 계산작업들 처럼 계산작업이며, 더하기의 단순한 형식이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형식이 계열[급수]의 초기 수들에만 실천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 수나열(numération)의 체계 전체는 마땅히 곱셈에 호소하게 한다. 그리고 사실상, 배가하기(la duplication, 배수작업)가 수적 용어들의 형성작업 안에서 기원으로부터 본질적 역할을 실행했다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480)
사람들은 1+1의 더하기를, 배가하기(la duplication)를 또는 사람들이 더하기와 곱하기(la multiplication)로부터 조합작업 같은 것을 이용한다면, 수의 구성적 종합은 동등하게 유효하다. 수의 용어가 최종적으로 정의되는 것은 종합적 계산작업들의 동등성(l’équivalence)에 의해서이다. 나는 다음 표현들을 가질 수 있다: 1 + 1 + 1 + 1 + 1 + 1, 또는 2 + 4, 또는 2 x 3, 또는 2 + 2 + 2. 이런 계산작업들은 명석하다. 그러나 이런 계산작업들은 동등하다. 왜냐하면 계산 작업들에 도달한 수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 6이다. 그리고 그것의 증거는 무매개적이다. 만일 내가 계산작업을 정의하는 그룹 만들기의 각각에게 상응하게 한다면, 계산작업들이 등질적 단위들로 형성되는데, 그리고 형상은 등질적 단위들을 표현하는데, 계산 작업들은 등질적 단위로부터 조성된다. 나는 I I I I I I 이라는 단위들의 동일한 병치를 얻는다. 그의 정식은 수학과학의 실천적 풍부성과 논리적 엄격성을 매우 놀라운 방식으로 통합한 것인데, 화이트헤드(Whitehead, 1861-1947)의 기발한 정식에 따르면, 파라독사(le paradoxe)는 진리주의(truisme자명한 이치)가 된다.사유의 실증적 진행방식 전체는 종합이다. 모든 증명작업은 분석이다. 그러나 추론적 종합은 총체적[적분적] 해결을 허용할 수 있는 종합이며, 그 해결에 의해 검증된다. (481)
3절 완전 귀납이라는 원리 Le principe dit d’induction compète 481
§298. [완전 귀납법에 의해 수의 나열, 즉 개별적 적용이 가능하고, 완전 연역법에 의해 선천적으로 생성적 작업의 필연성을 얻는다.]
우리는 효과적인 복잡성에 관하여, 그리고 수에 의해 채워진 함수의 특수성에 관하여 강조해야만 한다. 이것은 단지 수 자체의 지성에 도달하기 위하여 수가 함축하는 진리를 표시하기 위하여 있었을 뿐만아니라, 또한 우리가 해결하려는 상태로 놓기 위해서이고, 또는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수학적 계산작업들의 발전에 의해 일으킨 문제들을, 그것들의 진실한 항목들 안에서 제기하기 위해서이다. (481)
이리하여 이미 구성된 수들 사이의 조합들에게, 수의 구성작업이 수행되는 수의 지적인 역동론[운동역학]을 넓히기 위하여, 동시대 수학자들은 원리를 기원하며, 원리의 정식은 다음과 같다. “만일 하나의 성질이 수1의 진리라면, 그리고 만일 사람들이 [또한] 그 성질은 n + 1의 진리라고 - 성질이 n의 진리이니까 - 확립한다면, 성질은 모든 완전수의 진리일 것이다. (481)
이 원리 위에 지지받은 증명의 절차는 16세기 이탈리아 과학자, 즉 마우롤리코(Francesco Maurolico, 1494-1575)에 의해 수학 안에 도입되었다. 마우롤리코는 절차의 새로움을 그 자신이 강조했다.고대인들은 증명의 절차를 알지 못했다. 또는 어째거나 그들은 그것을 근거로 만들지 못했다. 그것의 고유한 자연[본연]에 의하여, 그들의 논리학은 유한한 대상들로 규정되었던 계층들에게 상대적인 규칙들만을 고려하고 한다. 반면에 마우롤리코의 정식 안에서 정태적이고 실재적인 재현작업의 틀들을 넘치는 진보의 원리가 있다. 심지어 마우롤리코의 절차에 상대적인 동시대 수학자들의 설명작업들 안에서 어떤 망설임을 도입했던 것은 직관의 요청들과 진보의 원리 사이에 대조이다. 관념들의 심층은 분명하지도 확실하지도 않으며, 거기에는 밝혀야 하는 기술적 어떤 난점이 있었다. 이 혼란은 격에 맞지 않은 용어법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것은 계산작업의 철학적 기호화를 감추기에 충분했다. (482)
왜냐하면, 사람들은 마우롤리코의 절차 안에서 귀납적 질서의 절차를 보고자 원했다는 것이고,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수학적 귀납법의 원리에 결합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것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수학적 귀납 원리란, 모르간(Morgan, 1806-1871)이 말했던 계속적인 귀납법(induction successive) 또는 사용하고 있는 정식에 따르면 완전한 귀납법(induction complète)이다. 그런데 만일 사람들이 모든 애매함을 멀리하고 싶다면, 어느 정도에서도 귀납법이 중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잘 제시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개별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이행은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사람들이 개별적(particulier)과 일반적(général)이란 단어들에게, 이 단어들이 류적인 개념들의 질서 속에서 갖는 의미를 보존하는 한에서이다. 류적 개념들을 규정하는 것, 그것은 개체적인 실재성들의 관찰로부터 공통의 본질로 결론 내는 추상화 과정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역사에서 루이1세, 루이2세, 등등에서 루이 16세까지의 이름을 지닌 모든 인물들은 왕권을 실행했는데, 사람들은 개별적인 것에서 일반적으로 나아간다. 이때 사람들은 원칙적으로 프랑스에서 비슷한 호칭이 실질적인 통치권들을 지칭한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리고 루이17세와 루이18세의 이름 하에 알려진 역사적 인물들의 현존으로부터, 사람들은 이들 둘 모두가 프랑스 왕관을 차지했다는 것을 연역해낸다. 그런데 루이 18세에게는 진실인 것이 루이17세에게는 거짓이다. 이러한 것은 일반적 규칙으로부터 개별적 경우로 되어있다. 그러나 개별적 경우들의 얼마간의 수의 관찰에 의해서만 얻어졌을 뿐인 이런 일반적 규칙이 정의상으로 이미 관찰된 개별성의 요약일 뿐이다. 그 요약은 새로운 개별성의 앞에서 어떠한 종류의 보증도 제공하지 못한다. (482)
그러한 겄이 소위 말하는 귀납벅의 과정이다. 사람들이 산술적 연역법을 정의하기 위하여 귀납법에 참조할 때, 사람들은 착각적인 것(l‘illusoire)에 또는 불확실한 것(l‘incertain)에 토대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마치 뗀(Taine, 1828-1893)이 정상적 지각작용을 정의하기 위하여 환각작용(l’hallucination)에 참조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자연의 불가사의한 목적성의 호소에 의해 거짓으로부터 진리로 이행을 이렇게 정당화하도록 강요되었다.게다가 관념들의 자연적 질서에서 전복의 기원을 재발견하는 것이 쉽다. 만일 사람들이 산술학적 귀납법에 대해 말할 때, 사람들은 1, 2, 3, …16, 17 등등을, 마치 사람들이 루이1세, 루이2세 … 루이16세, 루이17세에 동화하는 개별적인 실재성들처럼, 상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동화작업에 대해 수 백년 뿌리들을 상기할 기회를 가졌고, 그리고 게다가 우리가 이러한 것을 곧 보게 될 것인데 마치 불가분성의 이론처럼 이론을 위하여 정당화되는 이런 동화작업은 여기서 반대방향을 만들 것이다. 루이1세, 루이2세, 루이17세, 루이18세 등은 개별자들이다. 이들의 현존과 이들의 운명은, 이들의 통상적 호칭이 이들을 되돌아가게 했던 계층으로부터 독립하여, 깔끔하게 관찰 가능할 수 있다. 반면에 수들 안에서는 추상화의 정도 또는 일반화의 정도를 표시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모든 수들에 공통인 것은, 수들을 각각 개별적으로 구성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이 과정의 법칙들에 근거하는 추론들은 필연적으로 이 수들에 적용된다. 왜냐하면 이 추론들은 조건들을 파생하기 때문이며, 조건들 없이 수들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완전한 귀납법(induction complète)의 원리는 점진적 연역법(déduction progressive)의 원리이다. 사람들은 전자의 원리로부터, 수학적 귀납법(le raisonnement par récurrence, 귀납적 추리, 회귀적 추론)의 이름으로 규정된 이런 저런 수에게, 개별적 적용을 묘사했다. 후자의 원리로부터 적용은 선천적으로성공을 보장받았는데, 왜냐하면 수들은 점진적 연역의 생산물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0에서 1로, n에서 n+1로 이동되는 성질이 수들의 보편성을 위해 가치있다고 주장하는 것, 그것은 논리계산학자들의 기발한 용어론에 따르면, 필연적이고 이상적인 생성작업으로부터 필연적이고 이상적인 유산[상속]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그 위에서 사유가 스스로 움직이는 평면은 세속적 귀납법을 만나지 못한다. 그 귀납법은 실재적으로 생성된 개체들에 관한 일이었을 것이고 그리고 그 귀납법에서 동일한 질문이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제기될 것이다: 루이 16세의 아들이 프랑스 왕위의 계승자였던가? (483)
따라서 논리계산학자들[기호논리학자들]은, 쁘왕까레에 반대하여,유한한 완전수들을 정의한 절차로부터 유한한 수들에게 적용되는 추론의 절차로 이행하기 위하여, 그리고 실증적 계산작업의 결합법칙(l'associativité)과 교환법칙(la commutativité)을 증명하기 위하여 – 또한 마우로리꼬와 모르간에 의해 주어진 예 자체에 따라서,홀수 수들의 합산에 의해 연속적 제곱수들(carrés consecutifs)의 형성작업을 증명하기 위하여, 새로운 종합적 원리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할 근거가 있다. (484)
그러나 절차의 적용은 완전수의 정의의 분석적 귀결일 뿐이라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논리계산의 방법론은 행복하게도 정의의 관념에게 예전에 부여했던 철학적 중요성을 정당하게 하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신칸트학파] 리엘(Aloys Riehl, 1844-1924)은 [독일 수학자] 람베르트(Lambert, 1728-1777)의 심오한 단어를 인용한다. “과학의 토대는 그것이 정의가 아니라는 것이고, 오히려 정의를 구성하기 위하여 앞선 것을 아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종합의 원리는 지연 수들의 계열을 창조했던 지적 동태학 안에 있다. 그리고 그런 까닭에 토대는 마치 원리 그자체부터 산술학적 조합들의 수들에까지 넓혀지고, 이 조합들은 더하기(덧셈)과 곱하기(곱셈)과 같은 구성적 계산작업과 동일 질서로 되어 있다. (484) (59T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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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4 마우롤리코(Francesco Maurolico, Franciscus Maurolycus, Φραγκίσκος Μαυρολύκος, 필명 Étienne Pascal, 1494-1575), 이탈리아 수학자, 천문학자, 고대 지리학, 광학, 역학, 음악, 천문학을 번역.
1595 부르댕(Pierre Bourdin, 1595-1653), 반데카르트주의자, 제수이트 신부, 클레르몽 대학 수학교수(1638-1653)
1596 데까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1717 도브리즈호퍼(Martin Dobrizhoffer ou Dobritzhoffer, 1717-1791). 오스트리아 제수이트 선교사, 여행자, 인종학자. 우선 파라과이,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 활동.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일 계몽기(Aufklärung) 철학자.
1728 람베르트(Jean-Henri Lambert, Johann Heinrich Lambert, 1728-1777), 독일 수학자, 철학자. (il a démontré que le nombre π n'est pas rationnel).
1758 로베스삐에르(Maximilien Robespierre, 1758-1794)[서른여섯], 프랑스 대혁명의 지도자. 변호사, 의원, 정치가.
1801 아돌프 가르니에(Adolphe Garnier, 1801-1864) 철학자, 대학교수, 시몬 주프르와의 계승자, - [텐의 학위 논문은 1851년 오랄 시험에서 좌초했다가 1852년 다시 이루어졌는데, 논문심판관들은 긴 우려들(déconvenues)을 표현했다. 그중 5째, 그는 뗀의 학위논문에 대한 재심 심사평을 학장이었던 르끌레끄(Victor Leclerc)에게 보냈다고 한다.],
1806 모르간(Auguste (ou Augustus) De Morgan, 1806-1871), 인도태생, 영국 수학자, 논리학자. 불(1815–1864)과 함게 근대 논리학을 세우다.
1828 뗀(Hippolyte Taine, 1828-1893), 프랑스 철학자, 역사가, 아카데미 회원.
1832 타일러(Edward Burnett Tylor, 1832-1917) 영국 인류학자, 옥스퍼드 대학 첫 인류학 교수. Primitive Culture 1871 fr, La civilisation primitive, vol. 1, 1876, 1181 p; vol. 2, 1878, 602 p. [프랑스에 영향으로 마르셀 모스: Marcel Mauss (1913), «Note sur la notion de civilisation.» Extrait de L’Année sociologique, 12, 1913, pp. 46 à 50. - 레비브륄, Lucien Lévy-Bruhl, Les fonctions mentales dans les sociétés inférieures (1910), La mentalité primitive (1922). L'âme primitive. (1927).] - 프랑스는 타일러의 문명사적 관점을 레비브륄에 의해 심성적 관점으로 바꾸어 놓았다.
1844 리엘(Aloys Riehl, ou Alois Riehl, 1844-1924), 오스트리아 철학자. 신칸트학파. Der philosophische Kriticismus ...1887, vol. 2.
1854 쁘왕까레(Henri Poincaré, 1854-1912),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기술자, 철학자.
1858 보아스(Franz Boas, 1858-1942), 독일 출신 미국 인류학자. The North Western Tribes of Canada, Reports of the British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s, 1890.
1861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 영국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잔후에 미국에서 활동.
1872 바카(Giovanni Vacca, 1872-1953), 이탈리아 수학자, 과학사가, 그리고 중국학에 관심.
1941 ?-? 브뤼네(Pauline Brunet, ?-?)[1941-], 프랑스 영어 교수, 여성 영어 번역가. trad. de l'anglais par Pauline Brunet, La civilisation primitive [« Primitive Culture, 1871 »], trad. vol. 1, 1876, 1181 p; vol. 2 [에드몽 바르비에(Edmond Barbier) 번역], 1878, 602 p.]
마르끼즈 제도(諸島)(Les îles Marquises): 태평양의 폴리네시아(프랑스령)의 여러 섬들이다. 15개 섬으로 되어 있으며, 총인구는 2017년 기준 9,346명이다. 화산섬이며, 최고점은 우아포우섬에 있는 우아베산이며, 해발 1,230m이다 (Les îles Marquises ou Te Henua Ènata (en marquisien : Te Fenua Ènata (Sud) / Te Henua Ènana (Nord), soit « la terre des humains ») forment un des cinq archipels de la Polynésie française.
아비폰(Les Abipons)족: 남아메리카 인디언 종족, 아르헨티나의 챠오 지방와 리오 데 라 플라타 연안에 사는 종족.
하일축 족(The Heiltsuk), 영국의 남아메리카 콜롬비아 식민지에서 중앙 코스트(the Central Coast)의 인디언 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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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 대 수학사 : 브레이어 철학사가 시대의 상황에서 가우스 곡선의 중앙에 위치하는 사건들이 무엇이며 이를 다루는 방식들에 대한 철학자들의 담론들에 대해 서술했다면, 브룅슈비끄의 수학사는 인간의 지성이 그 시대의 지성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다룬 장면(지대, 영역, 위상)을 어떻게 체계화하고 또 다른 새로운 방법을 창안하는지를 다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철학사가 시대 상황 또는 시대 지성의 정점(마루)을 담론화한다면, 수학사는 생산력의 변화에 따른 삶의 양식(양태)에 새로운 창안과 발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전자가 각 시대의 공론장에서 진위, 선악, 미추의 한계를 규정하면서 각 시대를 거울로 삼아 사유한다면, 후자는 당대까지의 한계 설정을 넘어서려는 지성의 반짝이는 노력을 제시하고, 나아가 새로운 탐험의 길을 제시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수학은 지성의 생산물이고 철학은 반성의 도구로 보인다. (59SMH)
(15:05, 59TKH) (13:31, 59UK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