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이 시시각각 현전하면 번뇌를 어디에서든 해탈한다.
佛法時時現前塵勞處處解脫.
“불법시시현전(佛法時時現前)”, 시시각각 마음속에 언제나 불법이 있다면, 하 선생님은 말씀하기를, “진로처처해탈(塵勞處處解脫.)”, 당신은 어디에서든 모두 번뇌[塵勞]를 해탈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이상을 증명하는 말씀입니다. 앞에서 저는 하 선생님이 말씀하기를 “염불은 가장 깊은 반야이다. 이는 최상 비밀의 핵심이고, 파초 잎을 벗겨서 보이는 속마음이다.”라고 했다 했는데, 이곳에서 하 선생님은 말씀합니다.
한 마디 부처님 명호가 그 즉시 바로 상적광(常寂光)이다.
一句佛號當下即是常寂光.
이 경지는 가장 수승한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염불의 정념(正念)이 한 마디 한 마디 이어짐이 곧 상(常)이요, 맑고 또렷하면서 동요하지 않음이 곧 적(寂)이요, 광명이 두루 비춤을 광(光)이라 한다.
正念相續即是常, 湛然不動即是寂, 光明遍照之謂光.
하 선생님이 말씀하기를, “정념상속즉시상(正念相續即是常)”, 염불은 정념(正念)이며 한 번 외움이 한 번 외움으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상(常)입니다. “잠연부동즉시적(湛然不動即是寂)”, 이 부처님 명호가 또렷하며 지극히 맑고 이 속에는 동요가 없는 것이 바로 적(寂)입니다. 대단히 고요하고 맑습니다[寂淨]. “광명변조지위광(光明遍照之謂光)”, 광명이 두루 비추는 것을 광(光)이라 합니다. 그러기에 염불인에게는 1유순(一由旬)의 광명이 있습니다. 1유순은 최소한 40화리(華里; 0.5km)라고 우리가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당신은 잘 닦아서 당신에게는 1척 남짓의 광명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 이 모두 비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듣고서 기뻐합니다. 당신이 염불하면 당신에게는 응당 40리의 광명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사람들을 찾아 보여주기를 좋아합니다. 이렇다면 이른바 그 즉시 한 마디 부처님 명호가 바로 상적광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일으키면 곧 틀리고, 생각을 움직이면 곧 어긋난다.
起心即錯, 動念即乖.
이는 두 번 말하는 것입니다. 조금 전 오전에 이 두 마디를 말하였는데, 여기에 또 이 두 마디가 있습니다. “마음을 일으키면 곧 틀리고, 생각을 움직이면 곧 어긋난다.”
만약 정진하겠다는 마음을 일으키면, 이는 허망이지 정진이 아니다.
若起精進心, 是妄非精進.
“나는 정진하겠다”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당신의 이 마음은 허망이지 정진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음을 일으키면 곧 틀리고, 생각을 움직이면 곧 어긋난다.” 하였습니다. 진정한 불법은 당신이 첫걸음을 내디디고 들어갈 곳이 없습니다. 이상의 말씀들은 모두 하 선생님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여러 경전에서 모두 이와 같이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총결론[總結]인데, 당신이 기꺼이 받아들일지 아닐지, 믿을지 믿지 않을지에 달려 있습니다.
언제나 정토가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일상생활에서 사용함에 갖가지가 부족함이 없다.
常思淨土在目前, 日用頭頭無缺欠.
당신이 정토가 눈앞에 있다고 언제나 생각하고 있으면, 이것이 제가 보기에는, “항상 죽을 死(사) 자를 미간에 걸어 놓는다 [常把死字掛在眉].”는 구절보다는 좀 즐겁습니다. 눈앞이 바로 정토라고 늘 생각하면, 당신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함에 갖가지가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기가 바로 정토로서, 7보 연못⋅8공덕수⋅향광장엄(香光莊嚴)⋅부처님이 모두 설법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