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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해(解)
【傳】 解는 序卦에 蹇者는 難也니 物不可以終難이라 故受之以解라 하니라 物无終難之理하니 難極則必散이라 解者는 散也니 所以次蹇也라 爲卦 震上坎下하니 震은 動也요 坎은 險也니 動於險外면 出乎險也라 故爲患難解散之象이며 又震爲雷하고 坎爲雨하니 雷雨之作은 蓋陰陽交感하여 和暢而緩散이라 故爲解라 解者는 天下患難解散之時也라.
해괘(解卦)는 〈서괘전(序卦傳)〉에 “건(蹇)은 어려움이니, 사물은 끝내 어려울 수 없으므로 해괘(解卦)로 받았다.” 하였다. 사물은 끝내 어려울 이치가 없으니, 어려움이 지극하면 반드시 흩어진다. 해(解)는 흩어짐이니, 이 때문에 건괘(蹇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괘(卦)됨이 진(震)이 위에 있고 감(坎)이 아래에 있으니, 진(震)은 동함이요 감(坎)은 험함이니, 험의 밖에 동(動)하면 험함에서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환난(患難)이 해산하는 상(象)이 되며, 또 진(震)은 우레가 되고 감(坎)은 비가 되니, 우레와 비가 일어남은 음(陰)·양(陽)이 서로 감동하여 화창해서 풀어지고 흩어지기 때문에 해(解)가 된 것이다. 해(解)는 천하(天下)의 환난(患難)이 해산되는 때이다.
解는 利西南하니 无所往이라 其來復이 吉하니 有攸往이어든 夙하면 吉하리라.
해(解)는 서남(西南)이 이로우니 갈 필요가 없다. 와서 돌아옴이 길(吉)하니, 갈 바가 있거든 일찍하면 길(吉)하리라.
【本義】 无所往이어든 其來復이 吉하고 有攸往이어든 夙이 吉하니라.
【본의】 갈 곳이 없거든 와서 돌아옴이 길(吉)하고 갈 곳이 있거든 일찍함이 길(吉)하다.
【傳】 西南은 坤方이니 坤之體는 廣大平易라 當天下之難方解하여 人始離艱苦하니 不可復以煩苛嚴急治之요 當濟以寬大簡易 乃其宜也니 如是則人心懷而安之라 故利於西南也라 湯除桀之虐而以寬治하고 武王誅紂之暴而反商政은 皆從寬易也라 无所往其來復吉有攸往夙吉은 无所往은 謂天下之難이 已解散하여 无所爲也요 有攸往은 謂尙有所當解之事也라 夫天下國家는 必紀綱法度 廢亂而後禍患生하나니 聖人이 旣解其難而安平无事矣면 是无所往也니 則當修復治道하여 正紀綱하고 明法度하여 進復先代明王之治 是來復也니 謂反正理也니 天下之吉也라 其는 發語辭라 自古聖王이 救難定亂에 其始는 未暇遽爲也요 旣安定則爲可久可繼之治라 自漢以下는 亂旣除則不復有爲하여 姑隨時維持而已라 故不能成善治하니 蓋不知來復之義也라 有攸往夙吉은 謂尙有當解之事면 則早爲之乃吉也라 當解而未盡者를 不早去則將復盛이요 事之復生者를 不早爲則將漸大라 故夙則吉也라.
서남(西南)은 곤방(坤方)이니, 곤(坤)의 체(體)는 광대(廣大)하고 평이(平易)하다. 천하(天下)의 환난(患難)이 막 풀릴 때를 당하여 사람들이 비로소 어려움과 괴로움에서 떠났으니, 다시 번거롭고 까다롭고 엄하고 급함으로 다스리지 말고, 관대(寬大)하고 간이(簡易)함으로 구제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와 같이 하면 인심(人心)이 은혜롭고 편안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서남(西南)이 이로운 것이다. 탕왕(湯王)이 걸(桀)의 학정(虐政)을 제거하고 너그러움으로 다스렸으며, 무왕(武王)이 주(紂)의 사나움을 주벌(誅伐)하고 상(商)나라의 정사(政事)를 되돌림은 모두 관대(寬大)함과 간이(簡易)함을 따른 것이다. ‘무소왕(无所往) 기래복길(其來復吉) 유유왕숙길(有攸往夙吉)’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은 천하(天下)의 어려움이 이미 해산되어 할 필요가 없음을 이르고, 갈 바가 있다는 것은 아직도 마땅히 풀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천하(天下)와 국가(國家)는 반드시 기강(紀綱)과 법도(法度)가 폐지되고 혼란한 뒤에 화환(禍患)이 생기니, 성인(聖人)이 이미 그 어려움을 풀어서 안평(安平)하여 무사하면 이는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니, 마땅히 다스리는 도(道)를 닦고 회복하여 기강(紀綱)을 바로잡고 법도(法度)를 밝혀서 선대(先代) 명왕(明王)의 정치(政治)를 나아가 회복함이 이것이 와서 회복함이니, 정리(正理)로 돌아옴을 이르는 바, 천하(天下)의 길(吉)함이다. 기(其)는 발어사(發語辭)이다. 예로부터 성왕(聖王)이 어려움을 구제(救濟)하고 난(亂)을 평정(平定)함에 그 처음에는 대번에 할 겨를이 없고, 이미 안정되면 오래하고 계속할 수 있는 정치(政治)를 하였다. 한(漢)나라 이후로는 난(亂)이 이미 제거되면 다시는 일을 하지 않아 우선 때에 따라 유지(維持)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훌륭한 정치(政治)를 이룩하지 못하였으니, 내복(來復)의 뜻을 알지 못한 것이다. ‘갈 바가 있거든 일찍하면 길(吉)하다’는 것은 아직도 마땅히 풀어야 할 일이 있으면 빨리하는 것이 길(吉)하다는 것이다. 마땅히 풀어야 할 일인데 미진(未盡)한 것을 일찍 제거하지 않으면 장차 다시 성(盛)해지고, 일이 다시 생겨날 것을 미리 다스리지 않으면 장차 점점 커진다. 그러므로 일찍하면 길(吉)한 것이다.
【本義】 解는 難之散也라 居險能動이면 則出於險之外矣니 解之象也라 難之旣解면 利於平易安靜이니 不欲久爲煩擾라 且其卦自升來하여 三往居四하여 入於坤體하고 二居其所而又得中이라 故利於西南平易之地라 若无所往이면 則宜來復其所而安靜이요 若尙有所往이면 則宜早往早復이니 不可久煩擾也라.
해(解)는 어려움이 흩어지는 것이다. 험(險)에 거하여 능히 동하면 험함의 밖으로 나올 수 있으니, 해(解)의 상(象)이다. 난(難)이 이미 풀리면 평이(平易)하고 안정(安靜)함이 이로우니, 오랫동안 번거롭고 소요(騷擾)하고자 하지 않는다. 또 이 괘(卦)가 승괘(升卦)[ ]로부터 와서 삼(三)이 가서 사(四)에 거하여 곤체(坤體)에 들어가고, 이(二)가 제자리에 머물러 또 중(中)을 얻었다. 이 때문에 서남(西南)의 평이(平易)한 땅이 이로운 것이다. 만약 갈 곳이 없다면 마땅히 제자리로 돌아와 안정할 것이요, 만일 아직도 갈 곳이 있다면 마땅히 빨리 가서 빨리 회복할 것이니, 오랫동안 번거롭고 소요(騷擾)해서는 안 된다.
彖曰 解는 險以動이니 動而免乎險이 解라.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해(解)는 험(險)하고 동(動)하니, 동하여 험함을 면함이 해(解)이다.
【傳】 坎險震動하니 險以動也라 不險則非難이요 不動則不能出難이니 動而出於險外면 是免乎險難也라 故爲解라.
감(坎)은 험하고 진(震)은 동(動)하니, 이는 험하고 동(動)하는 것이다. 험하지 않으면 어려움이 아니요 동(動)하지 않으면 어려움에서 나올 수가 없으니, 동(動)하여 험함의 밖으로 나오면 이는 험난(險難)함을 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解)라 한 것이다.
【本義】 以卦德으로 釋卦名義라.
괘덕(卦德)으로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하였다.
解利西南은 往得衆也요.
‘해리서남(解利西南)’은 가서 무리를 얻음이요
【傳】 解難之道는 利在廣大平易하니 以寬易而往하여 濟解면 則得衆心之歸也라.
난(難)을 푸는 도(道)는 이로움이 광대(廣大)하고 평이(平易)함에 있으니, 너그러움과 화함으로써 가서 구제하여 풀어주면 사람들의 마음이 귀부(歸附)함을 얻게 된다.
其來復吉은 乃得中也요.
‘기래복길(其來復吉)’은 중(中)을 얻은 것이요.
【傳】 不云无所往은 省文爾라 救亂除難은 一時之事니 未能成治道也요 必待難解하여 无所往然後來復先王之治라야 乃得中道니 謂合宜也라.
‘무소왕(无所往)’을 말하지 않은 것은 글을 생략한 것이다. 난(亂)을 구원하고 어려움을 제거함은 한 때의 일이니 치도(治道)를 이룬 것은 아니요, 반드시 어려움이 풀려서 갈 필요가 없기를 기다린 뒤에 선왕(先王)의 정치(政治)를 와서 회복하여야 중도(中道)를 얻게 되니, 마땅함에 합함을 이른 것이다.
有攸往夙吉은 往有功也라.
‘유유왕숙길(有攸往夙吉)’은 가서 공(功)이 있는 것이다.
【傳】 有所爲則夙吉也니 早則往而有功이요 緩則惡滋而害深矣라.
할 일이 있으면 일찍하면 길(吉)하니, 일찍하면 가서 공(功)이 있을 것이요, 늦게 하면 악(惡)이 불어나서 해(害)가 깊을 것이다.
【本義】 以卦變으로 釋卦辭라 坤爲衆하니 得衆은 謂九四入坤體요 得中有功은 皆指九二라.
괘변(卦變)으로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곤(坤)은 중(衆)이 되니, 무리를 얻었다는 것은 구사(九四)가 곤체(坤體)로 들어감을 이르고, 중(中)을 얻고 공(功)이 있다는 것은 모두 구이(九二)를 가리킨 것이다.
天地解而雷雨作하고 雷雨作而百果草木이 皆甲拆하나니 解之時大矣哉라.
천지(天地)가 풀려서 우레와 비가 일어나고, 우레와 비가 일어나서 온갖 과목(果木)과 초목(草木)이 모두 껍질이 터지니, 해(解)의 때가 크다.”
【傳】 旣明處解之道하고 復言天地之解하여 以見解時之大라 天地之氣開散하여 交感而和暢이면 則成雷雨하고 雷雨作而萬物이 皆生發甲拆이라 天地之功이 由解而成이라 故贊解之時大矣哉라 王者는 法天道하여 行寬宥하고 施恩惠하여 養育兆民하며 至於昆蟲草木하니 乃順解之時하여 與天地合德也라.
이미 해(解)에 대처하는 도(道)를 밝히고, 다시 천지(天地)의 풀림을 말하여 해(解)의 때가 큼을 나타낸 것이다. 천지(天地)의 기(氣)가 열리고 흩어져 서로 감동해서 화창하면 우레와 비를 이루고, 우레와 비가 일어나면 만물(萬物)이 모두 발생(發生)하여 껍질이 터진다. 천지(天地)의 공(功)이 해(解)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므로 해(解)의 때가 크다고 칭찬한 것이다. 왕자(王者)는 천도(天道)를 본받아 너그러움을 행하고 은혜를 베풀어서 억조(億兆)의 백성을 양육(養育)하여 곤충과 초목(草木)에까지 이르니, 마침내 해(解)의 때를 순히 하여 천지(天地)와 더불어 덕(德)을 합하는 것이다.
【本義】 極言而贊其大也라.
극언(極言)하여 그 큼을 칭찬한 것이다.
象曰 雷雨作이 解니 君子以하여 赦過宥罪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우레와 비가 일어남이 해(解)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과실(過失)을 저지른 이를 사면(赦免)하고 죄(罪)가 있는 이를 너그럽게 처리한다.”
【傳】 天地解散而成雷雨라 故雷雨作而爲解也니 與明兩而作離로 語不同이라 赦는 釋之요 宥는 寬之니 過失則赦之可也어니와 罪惡而赦之則非義也라 故寬之而已라 君子觀雷雨作解之象하여 體其發育則施恩仁하고 體其解散則行寬釋也라.
천지(天地)가 해산(解散)하여 우레와 비를 이룬다. 그러므로 우레와 비가 일어남이 해(解)가 된 것이니, 밝음이 둘이어서 이(離)가 된다는 것과는 말이 같지 않다. 사(赦)는 풀어줌이요, 유(宥)는 너그럽게 처리함이니, 과실(過失)은 사면(赦免)함이 가하나 죄악(罪惡)을 사면(赦免)하면 의(義)가 아니다. 그러므로 너그럽게 처리할 뿐이다. 군자(君子)가 우레와 비가 일어남이 해(解)인 상(象)을 관찰하여, 그 발육(發育)함을 체행(體行)하면 은혜(恩惠)와 인(仁)을 베풀고, 그 해산(解散)함을 체행(體行)하면 너그러움과 풀어줌을 행한다.
初六은 无咎하니라.
초육(初六)은 허물이 없다.
【傳】 六居解初하니 患難旣解之時에 以柔居剛하고 以陰應陽은 柔而能剛之義니 旣无患難而自處得剛柔之宜[一有也字]라 患難旣解하여 安寧无事하니 唯自處得宜면 則爲无咎矣라 方解之初하여 宜安靜以休息之니 爻之辭寡는 所以示意라.
육(六)은 해(解)의 초기에 처하였으니, 환난(患難)이 이미 풀린 때에 유(柔)로써 강위(剛位)에 거하고 음(陰)으로써 양(陽)에 응(應)함은 유(柔)하면서도 강(剛)하게 하는 뜻이니, 이미 환난(患難)이 없고 자처함에 강(剛)·유(柔)의 마땅함을 얻은 것이다. 환난(患難)이 이미 풀려서 안녕(安寧)하여 무사하니, 오직 자처하기를 마땅하게 하면 허물이 없게 된다. 해(解)의 초기를 당하여 마땅히 안정해서 휴식하여야 하니, 효(爻)의 말이 적음은 이러한 뜻을 나타낸 것이다.
【本義】 難旣解矣요 以柔在下하여 上有正應하니 何咎之有리오 故其占如此하니라.
어려움이 이미 풀렸고 유(柔)로서 아래에 있으면서 위에 정응(正應)이 있으니,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剛柔之際라 義无咎也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강(剛)과 유(柔)가 교제(交際)하는지라 의(義)에 허물이 없는 것이다.”
【傳】 初四相應하니 是剛柔相際接也라 剛柔相際하여 爲得其宜하니 難旣解而處之에 剛柔得宜면 其義无咎也라.
초(初)와 사(四)는 서로 응(應)하니, 이는 강(剛)과 유(柔)가 서로 교제하고 접하는 것이다. 강(剛)과 유(柔)가 서로 교제하여 그 마땅함을 얻었으니, 어려움이 이미 풀리고 대처함에 강(剛)·유(柔)가 마땅함을 얻으면 그 의(義)에 허물이 없는 것이다.
九二는 田獲三狐하여 得黃矢니 貞하여 吉하도다.
구이(九二)는 사냥하여 세 마리의 여우를 잡아 누런 화살을 얻었으니, 정(貞)하여 길(吉)하도다.
【本義】 貞하면 吉하리라.
【본의】 정(貞)하면 길(吉)하리라.
【傳】 九二以陽剛得中之才로 上應六五之君하니 用於時者也라 天下에 小人常衆하니 剛明之君在上이면 則明足以照之하고 威足以懼之하고 剛足以斷之라 故小人不敢用其情이라 然尤常存警戒하여 慮其有間而害正[一作政]也어늘 六五以陰柔로 居尊位하여 其明易蔽하고 其威易犯하고 其斷不果而易惑하니 小人一近之면 則移其心矣라 況難方解而治之初엔 其變尙易라 二旣當用하니 必須能去小人이면 則可以正君心而行其剛中之道리라 田者는 去害之事요 狐者는 邪媚之獸니 三狐는 指卦之三陰이니 時之小人也라 獲은 謂能變化除去之를 如田之獲狐也라 獲之則得中直之道하니 乃貞正而吉也라 黃은 中色이요 矢는 直物이니 黃矢는 謂中直也라 群邪不去하여 君心一入이면 則中直之道 无由行矣니 桓敬之不去武三思 是也라.
구이(九二)는 양강(陽剛)하고 중(中)을 얻은 재질로 위로 육오(六五)의 군주(君主)와 응(應)하니, 당시에 쓰여지는 것이다. 천하(天下)에 소인(小人)이 항상 많으니, 강명(剛明)한 군주(君主)가 위에 있으면 밝음이 비추어 알고 위엄(威嚴)이 두렵게 하고 강(剛)함이 결단(決斷)한다. 그러므로 소인(小人)이 감히 그 정(情)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항상 경계하는 마음을 두어서 틈이 있어 정(正)을 해칠까 염려하는데, 육오(六五)는 음유(陰柔)로서 존위(尊位)에 거하여 밝음이 가리워지기 쉽고 위엄(威嚴)이 범하기 쉽고 결단(決斷)함에 과단성이 없어서 미혹되기 쉬우니, 소인(小人)이 한번 가까이 하면 그 마음을 바꾸어 놓는다. 더구나 환난(患難)이 막 풀려서 다스리는 초기에는 그 변함이 아직도 쉽다. 이(二)가 이미 쓰여짐을 당하였으니, 반드시 소인(小人)을 제거한다면 군주(君主)의 마음을 바로잡아 강중(剛中)의 도(道)를 행할 수 있을 것이다. 사냥은 해(害)를 제거하는 일이요 여우는 바르지 못한 짐승이니, 세 여우는 괘(卦)의 세 음효(陰爻)를 가리키는 바, 당시의 소인(小人)이다. 획(獲)은 변화시키고 제거하기를 사냥에서 여우를 잡음과 같이 함을 말한 것이다. 잡으면 중직(中直)의 도(道)를 얻으니, 이는 정정(貞正)하여 길(吉)한 것이다. 황(黃)은 중앙(中央)의 색(色)이고 시(矢)는 곧은 물건이니, 황시(黃矢)는 중직(中直)함을 이른다. 여러 간사(奸邪)함을 제거(除去)하지 못하여 군주(君主)의 마음이 한번 들어가면 중직(中直)한 도(道)가 말미암아 행해질 수가 없으니, 환언범(桓彦範)과 경휘(敬暉)가 무삼사(武三思)를 제거하지 못한 것이 이것이다.
【本義】 此爻取象之意는 未詳이라 或曰 卦凡四陰에 除六五君位면 餘三陰이 卽三狐之象也라 大抵此爻 爲卜田之吉占이요 亦爲去邪媚而得中直之象이니 能守其正이면 則无不吉矣리라.
이 효(爻)에 상(象)을 취한 뜻은 미상(未詳)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괘(卦)가 모두 네 음효(陰爻)인데, 이 중에 육오(六五)의 군위(君位)를 제(除)하면 나머지 세 음(陰)이 바로 세 여우의 상(象)이다.” 한다. 대저 이 효(爻)는 사냥을 점치는 길점(吉占)이 되고 또 사미(邪媚)를 제거하여 중직(中直)을 얻는 상(象)이 되니, 그 바름을 지키면 길(吉)하지 않음이 없으리라.
象曰 九二貞吉은 得中道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구이(九二)가 정길(貞吉)함은 중도(中道)를 얻었기 때문이다.”
【傳】 所謂貞吉者는 得其中道也라 除去邪惡하여 使其[一无其字]中直之道로 得行이면 乃正而吉也라.
이른바 ‘정길(貞吉)’이라는 것은 그 중도(中道)를 얻은 것이다. 사악(邪惡)을 제거하여 중직(中直)한 도(道)가 행(行)해지게 하면 정(正)하여 길(吉)한 것이다.
六三은 負且乘이라 致寇至니 貞이라도 吝이리라.
육삼(六三)은 지고 있어야 하는데도 타고 있는지라 도적(盜賊)이 오게 하니, 정(貞)하더라도 부끄러우리라.
【傳】 六三은 陰柔居下之上하여 處非其位하니 猶小人宜在下以負荷어늘 而且乘車면 非其據也니 必致寇奪之至니 雖使所爲得正이라도 亦可鄙吝也라 小人而竊盛位면 雖勉爲正事나 而氣質卑下하여 本非在上之物이니 終可吝也라 若能大正則如何오 曰 大正은 非陰柔所能也니 若能之則是化爲君子矣라 三은 陰柔小人이니 宜在下어늘 而反處下之上하니 猶小人宜負而反乘하니 當致寇奪也라 難解之時而小人竊位면 復致寇矣라.
육삼(六三)은 음유(陰柔)가 하체(下體)의 위에 거하여 처함이 제자리가 아니니, 소인(小人)은 마땅히 아래에 있어 짐을 져야 할 터인데 또 수레를 타고 있으면 그 차지할 자리가 아님과 같으니, 반드시 도적의 빼앗음이 이르게 될 것이니, 비록 하는 바가 정(正)을 얻더라도 역시 비루하고 부끄러울 만하다. 소인(小人)이 성대한 지위를 도둑질하면 비록 억지로 올바른 일을 하더라도 기질(氣質)이 비하(卑下)하여 본래 위에 있을 사물이 아니니, 끝내는 부끄럽게 된다. 만일 크게 바르게 하면 어떻겠는가? 크게 바르게 함은 음유(陰柔)가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만일 할 수 있다면 이는 변하여 군자(君子)가 된 것이다. 삼(三)은 음유(陰柔)의 소인(小人)이니, 마땅히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도리어 하체(下體)의 위에 처하였으니, 소인(小人)이 마땅히 짐을 져야 하는데 도리어 수레를 탄 것과 같으니, 마땅히 도적의 빼앗음을 이르게 할 것이다. 환난(患難)이 풀리는 때에 소인(小人)이 지위(地位)를 도적질하면 다시 도적이 이르게 된다.
【本義】 繫辭備矣라 貞吝은 言雖以正得之라도 亦可羞也니 唯避而去之면 爲可免耳라.
〈계사전(繫辭傳)〉에 구비되었다. ‘정린(貞吝)’은 비록 정도(正道)로 얻더라도 역시 부끄러울 만함을 말한 것이니, 오직 피하여 떠나가면 면할 수 있다.
象曰 負且乘이 亦可醜也며 自我致戎이어니 又誰咎也리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저야 하는데도 타는 것이 또한 추악(醜惡)한 것이며, 나로부터 도적을 불러들였으니 또 누구를 허물하겠는가.”
【傳】 負荷之人而且乘載면 爲可醜惡也라 處非其據하여 德不稱[一作勝]其器면 則寇戎之致는 乃己招取니 將誰咎乎아 聖人又於繫辭에 明其致寇之道하여 謂作易者其知盜乎인저 하시니 盜者는 乘釁而至니 苟无釁隙이면 則盜安能犯이리오 負者는 小人之事요 乘者는 君子之器니 以小人而乘君子之器면 非其所能安也라 故盜乘釁而奪之라 小人而居君子之位면 非其所能堪也라 故滿假而陵慢其上하고 侵暴其下하나니 盜則乘其過惡而伐之矣라 伐者는 聲其罪也요 盜는 橫暴而至者也라 貨財而輕慢其藏이면 是敎誨乎盜하여 使取之也요 女子而夭冶其容이면 是敎誨淫者하여 使暴之也요 小人而乘君子之器면 是招盜하여 使奪之也니 皆自取之之謂也라.
짐을 져야 할 사람인데도 수레를 타고 있으면 추악(醜惡)함이 되는 것이다. 처함이 제자리가 아니어서 덕이 기물(器物)에 걸맞지 않으면 도적이 옴은 바로 자기가 불러 취한 것이니, 장차 누구를 허물하겠는가. 성인(聖人)이 또 〈계사전(繫辭傳)〉에 적을 불러들이는 방도(方道)를 밝혀 “역(易)을 지은 이는 그 도적(盜賊)을 알 것이다.” 하였으니, 도적은 틈을 타고 이르니, 만일 틈이 없다면 도적이 어찌 범하겠는가. 지는 것은 소인(小人)의 일이요 타는 것은 군자(君子)의 기물(器物)이니, 소인(小人)으로서 군자(君子)의 기물(器物)을 타고 있으면 편안한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도적이 틈을 타 빼앗는 것이다. 소인(小人)으로서 군자(君子)의 지위에 거하면 감당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자만(自滿)하고 큰 체하여 윗사람을 능멸(陵蔑)하고 소홀히 하며 아랫사람을 침해(侵害)하고 포학(暴虐)하게 하니, 도적이 그 과실과 악함을 타고 공격한다. 벌(伐)은 그 죄(罪)를 성토(聲討)함이요, 도(盜)는 횡포(橫暴)하면서 오는 이이다. 재화(財貨)가 있음에 보관을 소홀히 하면 이는 도둑을 가르쳐 훔쳐가게 하는 것이요, 여자(女子)가 용모(容貌)를 요염하게 치장하면 이는 음탕한 이를 가르쳐 폭행하게 하는 것이요, 소인(小人)으로서 군자(君子)의 기물(器物)을 타고 있으면 이는 도둑을 불러 빼앗아 가게 하는 것이니, 이는 모두 자취(自取)하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
九四는 解而拇면 朋至하여 斯孚리라.
구사(九四)는 네 엄지발가락을 풀어버리면 벗이 이르러 믿으리라.
【傳】 九四以陽剛之才로 居上位하여 承六五之君하니 大臣也而下與初六之陰爲應이라 拇는 在下而微者니 謂初也라 居上位而親小人이면 則賢人正士遠退矣요 斥去小人이면 則君子之黨이 進而誠相得也라 四能解去初六之陰柔면 則陽剛君子之朋이 來至而誠合矣요 不解去小人이면 則己之誠未至하니 安能得人之孚也리오 初六은 其應이라 故謂遠之爲解라.
구사(九四)가 양강(陽剛)의 재질로 높은 지위에 거하여 육오(六五)의 군주(君主)를 받들고 있으니, 대신(大臣)인데 아래로 초육(初六)의 음(陰)과 응(應)이 된다. 무(拇)는 아래에 있으면서 작은 것이니, 초(初)를 이른다. 높은 지위(地位)에 거하여 소인(小人)을 친히 하면 현인(賢人)과 정사(正士)가 멀리 물러갈 것이요, 소인(小人)을 배척하여 버리면 군자(君子)의 당(黨)이 나와서 진실로 서로 뜻이 맞을 것이다. 사(四)가 초육(初六)의 음유(陰柔)를 풀어버리면 양강군자(陽剛君子)의 벗이 와서 진실로 합할 것이요, 소인(小人)을 풀어버리지 않으면 자기의 정성이 지극하지 못한 것이니, 어찌 남의 믿음을 얻겠는가. 초육(初六)은 그 응(應)함이라 멀리함을 일러 풀어버린다고 한 것이다.
【本義】 拇는 指初라 初與四皆不得其位而相應하니 應之不以正者也라 然四陽而初陰하여 其類則不同矣니 若能解而去之면 則君子之朋이 至而相信也라.
무(拇)는 초(初)를 가리킨다. 초(初)와 사(四)는 모두 제자리를 얻지 못하고 서로 응(應)하니, 응(應)하기를 정도(正道)로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사(四)는 양(陽)이고 초(初)는 음(陰)이어서 그 유(類)가 같지 않으니, 만일 초(初)를 풀어버리면 군자(君子)의 벗이 이르러 서로 믿을 것이다.
象曰 解而拇는 未當位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엄지발가락을 풀어버리라는 것은 자리에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傳】 四雖陽剛이나 然居陰하여 於正에 疑不足이어늘 若復親比小人이면 則其失正이 必矣라 故戒必解其拇然後能來君子하니 以其處未當位也일새라 解者는 本合而離之也니 必解拇而後에 朋孚라 蓋君子之交而小人容於其間이면 是與君子之誠이 未至也라.
사(四)가 비록 양강(陽剛)이나 음위(陰位)에 거하여 정도(正道)에 부족한가 의심되는데, 만일 다시 소인(小人)을 친한다면 그 정도(正道)를 잃음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엄지발가락을 풀어버린 뒤에야 군자(君子)를 오게 한다’고 경계하였으니, 그 처함이 자리에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解)는 본래 합하였다가 떠남이니, 반드시 엄지발가락을 풀어버린 뒤에야 벗이 믿을 것이다. 군자(君子)와 사귀면서 소인(小人)이 그 사이에 낀다면 이는 군자(君子)와 더부는 정성이 지극하지 못한 것이다.
六五는 君子維有解면 吉하니 有孚于小人이리라.
육오(六五)는 군자(君子)가 풀어버림이 있으면 길(吉)하니, 소인(小人)에게서 징험(徵驗)함이 있으리라.
【傳】 六五居尊位하여 爲解之主하니 人君之解也라 以君子通言之하면 君子所親比者는 必君子也요 所解去者는 必小人也라 故君子維有解則吉也라 小人去則君子進矣니 吉孰大焉이리오 有孚者는 世云見驗也니 可驗之於小人이라 小人之黨去면 則是君子能有解也라 小人去면 則君子自進하여 正道自行하리니 天下不足治也라.
육오(六五)가 존위(尊位)에 거하여 해(解)의 주체(主體)가 되었으니 인군(人君)의 풂이다. 군자(君子)로 총괄하여 말하면 군자(君子)가 친비(親比)하는 것은 반드시 군자(君子)이고 풀어버리는 것은 반드시 소인(小人)이다.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소인(小人)을 풀어버림이 있으면 길(吉)한 것이다. 소인(小人)이 떠나가면 군자(君子)가 나오니, 길(吉)함이 그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유부(有孚)는 세상에서 ‘징험(徵驗)을 보는 것이다’ 라고 하니, 소인(小人)에게서 징험(徵驗)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인(小人)의 당(黨)이 떠나가면 이는 군자(君子)가 풀어버림이 있는 것이다. 소인(小人)이 떠나가면 군자(君子)가 스스로 나와 정도(正道)가 스스로 행해질 것이니, 천하(天下)를 굳이 다스릴 것이 없다.
【本義】 卦凡四陰而六五當君位하여 與三陰同類者니 必解而去之則吉也라 孚는 驗也니 君子有解를 以小人之退로 爲驗也라.
괘(卦)에 무릇 음효(陰爻)가 넷인데 육오(六五)는 군위(君位)에 당하여 세 음(陰)과 동류(同類)인 것이니, 반드시 동류(同類)를 풀어버리면 길(吉)하다. 부(孚)는 징험(徵驗)함이니, 군자(君子)가 풀어버림이 있음을 소인(小人)이 물러감으로써 징험(徵驗)하는 것이다.
象曰 君子有解는 小人退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군자(君子)가 풀어버림이 있음은 소인(小人)이 물러가는 것이다.”
【傳】 君子之所解者는 謂退去小人也니 小人去則君子之道行이라 是以吉也라.
군자(君子)가 풀어버리는 것은 소인(小人)을 물리쳐 버림을 이르니, 소인(小人)이 떠나가면 군자(君子)의 도(道)가 행해진다. 이 때문에 길(吉)한 것이다.
上六은 公用射(석)隼于高墉之上하여 獲之니 无不利로다.
상육(上六)은 공(公)이 새매를 높은 담장 위에서 쏘아 잡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도다.
【傳】 上六은 尊高之地나 而非君位라 故曰公이니 但據解終而言也라 隼은 鷙害之物이니 象爲害之小人이라 墉은 墻이니 內外之限也라 害若在內면 則是未解之時也어니와 若出墉外則是无害矣니 復何所解리오 故在墉上하니 離乎內而未去也라 云高는 見防限之嚴而未去者라 上은 解之極也니 解極之時而獨有未解者는 乃害之堅强者也라 上居解極하니 解道已至하고 器已成也라 故能射而獲之니 旣獲之則天下之患이 解已盡矣니 何所不利리오 夫子於繫辭에 復伸其義하여 曰 隼者는 禽也요 弓矢者는 器也요 射之者는 人也니 君子藏器於身하여 待時而動이면 何不利之有리오 動而不括이라 是以出而有獲이니 語成器而動者也라 하시니라 鷙害之物이 在墉上하니 苟无其器어나 與不待時而發이면 則安能獲之리오 所以解之之道는 器也요 事之當解와 與己解之之道至者는 時也니 如是而動이라 故无括結하여 發而无不利矣니 括結은 謂阻礙라 聖人於此에 發明藏器待時之義하시니 夫行一身으로 至於天下之事에 苟无其器어나 與不以時而動이면 小則括塞하고 大則喪敗하나니 自古로 喜有爲而无成功과 或顚覆者는 皆由是也니라.
상육(上六)은 높은 곳이나 군위(君位)는 아니므로 공(公)이라 말하였으니, 다만 해(解)의 종(終)을 의거(依據)하여 말한 것이다. 준(隼)은 사납고 해치는 사물이니, 해로운 짓을 하는 소인(小人)을 상징(象徵)한 것이다. 용(墉)은 담장이니, 안과 밖을 한계(限界)하는 것이다. 해(害)가 만일 안에 있다면 이는 아직 풀 수 없는 때이나 만일 담 밖으로 나갔다면 이는 해(害)가 없는 것이니, 다시 무엇을 풀겠는가. 그러므로 담 위에 있는 것이니, 안에서는 떠났으나 아직 떠나가지 않은 것이다. 높다고 말한 것은 방한(防限)함이 엄격하나 떠나가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상(上)은 해(解)의 극(極)이니, 해(解)가 지극한 때에 홀로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해로움이 견고(堅固)하고 강한 것이다. 상(上)이 해(解)의 극(極)에 거하였으니, 해(解)의 도(道)가 이미 지극하고 기물(器物)이 이미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쏘아서 잡을 수 있는 것이니, 이미 잡고나면 천하(天下)의 환(患)[해(害)]이 모두 풀리게 되니, 어찌 불리(不利)함이 있겠는가. 부자(夫子)는 〈계사전(繫辭傳)〉에 다시 그 뜻을 펴서 말씀하시기를 “새매는 새이고, 궁시(弓矢)는 기물(器物)이며 새매를 쏘는 것은 사람이니, 군자(君子)가 자기 몸에 기물(器物)을 보관하여 때를 기다려 동(動)하면 어찌 불리(不利)함이 있겠는가. 동(動)하여 막히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나가서 잡음이 있는 것이니, 기물(器物)을 완성(完成)하고 동(動)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사납고 해치는 물건이 담 위에 있으니, 만일 이에 대한 기물(器物)이 없거나 또는 때를 기다리지 않고 발(發)하면 어떻게 그것을 잡겠는가. 이것을 해결하는 방도(方道)는 기물(器物)이요 일에 마땅히 해결하여야 할 것과 자신이 이것을 해결하는 방도(方道)를 지극히 함은 때이니, 이와 같이 하고서 동(動)하기 때문에 괄결(括結)이 없어서 발함에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괄결(括結)은 막힘을 이른다. 성인(聖人)이 이에 대하여 기물(器物)을 보관하고 때를 기다리는 의(義)를 발명(發明)하셨으니, 한 몸을 행함으로부터 천하(天下)의 일에 이르기까지 만일 이에 대한 기물이 없거나 때에 맞게 동(動)하지 못하면, 작게는 막히고 크게는 상패(喪敗)한다. 예로부터 일하기를 좋아하여도 성공하지 못하거나 혹 전복(顚覆)을 당하는 것은 모두 이 때문이다.
【本義】 繫辭備矣라.
〈계사전(繫辭傳)〉에 구비되었다.
象曰 公用射隼은 以解悖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공(公)이 새매를 쏨은 패란(悖亂)을 풀려고 해서이다.”
【傳】 至解終而未解者는 悖亂之大者也라 射之는 所以解之也니 解則天下平矣라.
해(解)의 종(終)에 이르렀는데 아직 풀리지 않은 것은 패란(悖亂)의 큰 것이다. 쏨은 이것을 풀기 위한 것이니, 풀면 천하(天下)가 평(平)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