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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29(목) ◈ 수 20:1-9 하나님이 지정하신 도피성에서 돌보심과 안식을 얻으라.
오늘의 말씀 수 20:1-9
도피성 제정 명령
20: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0: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20: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도피성에 관한 규정
20:4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20:5 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20: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도피성의 위치
20:7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20:8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도피성의 제정목적
20: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 주해: 성령님의 조명
이스라엘 백성의 땅 분배를 마친 후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실수로 살인한 사람을 피의 보북으로부터 보호하는 도피성을 지정하도록 명령하신다.
도피성을 정하여 실수로 살인한 자를 보호하는 제도이다. '피의 보복자'(히, 고엘)는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기에, 가족을 죽인 자를 찾아 피의 값을 갚는 것도 그의 의무이다.
그러나 과실치사의 경우 피로 보복하는 것은 또 다른 무죄한 피를 흘리는 일이 될 것이고, 피의 보복을 불러 복수의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
이에 하나님은 도피성을 세워 실수로 살인한 자가 공정한 판결을 받을 때까지 보호받게 하셨다. 억울한 이가 없게 하고, 더 이상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정의이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동인하게 적용이 되었다.
1. 도피성의 제정 명령
오늘 본문은 모세가 명령한 대로 도피성을 제정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모세를 통하여 말한 도피성을 너희를 위해 정하라고 하셨다. 도피성은 이스라엘 땅 어디서든지 접근할 수 있도록 6곳이 지정된다.
하나님은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는 그를 죽여 생명의 값을 치르게 하셨다(출 21:23-25).
안전을 위한 제도가 없던 고대 시대에는 스스로 자신이나 가족을 보호해야 했다. 피해를 당한 자는 피의 보복자(고엘)가 되어 가족이나 가까운 친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재판 제도가 있었지만 피의 보복자의 보복은 정당한 보복이었다.
그러나 고의로 사람을 죽이지 않은 경우, 즉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에는 피의 보복자로 부터 살인자를 보호하게 하는 것이 도피성 제도이다.
살인자는 레위인의 성읍중에 지정된 도피성으로 도망하면, 그는 그곳에서 보호를 받는다. 도피성은 모두 레위인이 거주하는 성읍들에 있다(13,21,27,32,36,38절). 여호수아는 요단 동편에 세 곳, 요단 서편에 세 곳을 도피성으로 제정하였다.
2. 도피성에 관한 규정
도피성은 “받아들이는” 성읍이다. 도피성의 장로는 도망자가 성문어귀에서 사고경위를 설명하면 우선 그를 받아들여야 한다.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때까지 성읍 안에 머물 곳을 마련해주고 그를 피의 보복자에게 넘겨 주어서는 안 된다.
도피성의 '받아들임'이 실수한 이의 억울한 죽음을 막는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실패하며, 불행을 만날 수 있다. 그런 이에게 필요한 것이 수용과 용납이다.
불행이 우연히 닥치더라도 누군가 그를 필연적으로 포용한다면, 우리 사회의 불행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부지중에 살인했다고 하여 무조건 보호해 주는 것은 아니다.
살인자가 회중 앞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기까지 도피성에 머물러 있을 수 있으며, 또 현직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아야 한다. 그가 부지중에 살인한 것으로 판명되면 현직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것이다.
재판을 통해 실수로 살인한 것이 드러나면 피의 보복은 면하지만, 도피성을 떠나 자신의 기업이나 가족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자유의 몸이 되는 시점은 현직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 자유롭게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 재판을 통해 무죄로 인정되어 용서는 받지만, 진정한 자유는 대제사장의 죽은 후에 누린다.
왜 대제사장이 죽으면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완전한 자유를 얻는지 설명은 없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그림자로써,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속량 됨을 예표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용서받은 살인자가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것은, 장차 대제사장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도피성의 효력을 발휘한다. 비로소 죄인 된 살인자는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된다.
3. 도피성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
고의적으로 행한 죄는 처벌을 받으며, 하나님께는 속죄제를 드려야 하고, 죄를 범한 대상에게는 속건제(보상함)를 드려야 한다.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면 피해를 본 당사자의 보복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고의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해도, 의에 이르지 못한 모든 죄인의 삯은 사망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한 죄인들이 피해야 할 곳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도피성이다.
죄 사함을 받은 성도가 완전한 자유함을 누리는 시점, 생명을 누리는 시점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할 때이다. 바울은 이것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또는 “항상 예수의 죽음에 나를 넘기움은 항상 예수의 생명이 이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고 하였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온전한 자유와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 편에서 진리 안에서의 온전한 자유를 누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무덤에 연합될 때이다. 그 때에서야 비로소 온전한 자유를 누리며 아버지 집에 거하게 된다.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그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단번에 지성소로 들어가셨다(히 9:12; 마 27:51).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주님 안에 거하는 자는 참 피난처인 아버지와 아들안에 거한다.
시편에서 하나님은 ‘피난처’로 불린다. 곧 하나님 자신이 도피성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 46:1).
하나님이 믿는 자의 피난처인 것은 15번 이상 언급된다. 십자가를 통해 하늘 아버지께 나아가는 자는 아버지 품, 곧 그 피난처에서 안식한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히 6:18-19).
우리는 부지중에 지은 죄가 많다. 심지어 남을 돕고 섬기면서 짓는 교만한 죄, 말로 상처주는 죄, 자기 의를 드러내는 죄, 자기를 주장하는 죄를 수시로 짓는다. 그리고 죄를 지은 사실과 상처를 주었는지 조차 모른다.
어디 그뿐인가? 하나님은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하다 하셨다. 노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항상 악하다. 즉 부지중에 항상 악을 행한다. 이 많은 죄로부터 보호받고 안식하는 유일한 길은 도피성에 달려가 주님의 죽으심에 참여하는 것이다.
4. 도피성은 그리스도의 무덤이다.
우리가 얼마나 지독한 죄인인지 아시는 하나님은, 도피성에 피한 자에게 목숨을 부지 할 수있는 기회를 주신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말씀 묵상은 성경의 내용을 파악하거나 깨닫거나 적용하려 함이 아니라, 도피성이신 그리스도안에 피하기 위하여 달려가는 것이다. 우리는 죄를 짓고 정죄감이 들면 숨을 곳을 찾는다.
아무 성으로 달려가서 보호해 달라고 하면 피의 보복자가 와서 복수하여 죽인다.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도피성, 십자가로 달려가는 자는 보호를 받고 공정한 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도피성 즉 예수님에게 자신이 저지른 사건을 자백하고 회개하는 자를 주님은 용납하시며, 보호하며 안식하게 하신다.
실수라고 해도 살인자가 어찌 정죄함이 없겠는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그 피가 우리 양심까지 새롭게 하여 하나님안에 거하게 하기 때문이다.
◈ 나의 묵상
도피성은 피해자 측에서는 억울한 제도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피해자인 반면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많이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부지중에 실수로 피의 보복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래서 도피성을 제정해 주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나, 인생의 대부분 만물 안에서 무엇을 성취해야만 안식을 얻는 줄 알고 살아간다. 안정, 성공, 풍요를 피난처로 삼고자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한다.
그러나 힘쓰고 애쓸수록 미움과 경쟁, 시기와 분쟁을 일삼는 살인자가 되어간다. 사람은 죽이지 않았으나, 고의성은 없었으나 결국 미움, 시기, 질투는 살인죄와 같은 죄를 저지른다. 야망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고 고통을 주는 자가 되어버린다.
모든 인간관계는 마틴 부버가 말한 대로 ‘나와 너’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그것’의 관계로 전락하였다. “나와 너의”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라 나와 그것의 관계가 됐다는 것은 결국 인간관계와 물질의 관계로, 또한 소유의 관계로, 경쟁의 관계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이다.
요나가 박넝쿨을 피난처 삼았듯이,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존재물들을 피난처 삼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멀리 도망치는 자가 되었다. 잠깐의 안식을 원하나 그 너머에 더 깊은 공허와 목마름이 기다리고 있다.
영원에 무지한 나의 신앙의 열심, 그것은 광신적이고 세속적 신앙에 이르게 하였다. 오래 참으신 하나님이 공의로 심판하셨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자, 피난처를 찾지 못한 자! 나의 원함이 몰수되고 티끌과 재 가운데 누운 자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비참한 자, 죄인 중의 괴수에게 피난처가 주어졌다. 오직 계시의 영으로만 알 수 있는 영생의 말씀으로 영생을 사는 자리로 인도하셨다.
당신은 인생의 피난처, 영혼의 안식처를 찾았습니까? 무엇을 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디로 가야 안식하는 도피성이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휘장 안, 만물 위, 태초부터 계신 아버지 집에 들어가는 아들이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은 실수로 범한 죄라도, 자기변명과 합리화로 포장한 죄라도, 도피성으로 가져오라고 하신다.
도피성으로 달려가지 않고 양심의 기능이 발동하여, 스스로 용서한 죄들, 또한 도피성에 들어가서도 정죄감에 시달린 모든 교만, 자기연민으로 고통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창조주 하나님이 달리신 십자가로 나오라 하신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도피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십자가로 피하여 공의로운 재판을 받으라 하신다. 나의 죄는 유죄이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십자가로 말미암아 나의 죄의 유전은 말소되었다.
삼위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더 이상 정죄함이 없는 생명을 얻었다. 그리고 양자 삼아 주셨다. 아들의 생명으로 의롭게 된 나를 하나님은 용서하고 용납하여 기뻐하신다.
사랑하는 주님을 내 마음과 생각의 보좌에 모셔 들인다. 그리고 나의 진정한 도피성 되시며 대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참여한다. 옛사람과 죄의 몸은 주님과 함께 죽었고 오직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를 찬양한다.
◈ 묵상 기도
주님 평생 스스로 피난처를 찾는 자였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인생, 그 거처가 무덤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의 존재물, 유력한 사람들, 성과물로 피난처를 삼으며 안식하고자 했습니다.
아담 안에서 대를 따라 죄를 물려받은 가련한 인생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의 죄를 말소 시키시고 의로운 자라 공표 하셨습니다.
오 주여, 가슴 떨리는 은혜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나의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이 죄인을 어찌 이리도 사랑하시는지요. 갚을 길 없어 아버지 앞에 엎드립니다.
주님 날마다 십자가에서 삼위하나님과 생명의 교제를 합니다. 이곳이 나의 피난처요 나의 생명이 회복되는 곳이며, 평안한 안전지대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의도적으로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생명을 내어놓으셨습니다. 나의 생명을 살리시려고 당신의 품을 도피성으로 정하셨습니다.
죄를 깨달을 때마다 도피성인 십자가 아래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소서. 십자가 밑에 모든 죄를 내려놓고 새 사람 되어 아버지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날마다 죄로부터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도피성 되시는 주께로 나아갑니다. 주의 품 안에서 해결해야 할 신앙과, 인생의 문제가 매일 매일 쏟아집니다. 주님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이 주께로 향하는 길을 알아 그리로 나아갑니다. 오직 구속한 주만 보이게 하소서.
내 아버지만이 나의 피난처 되시며 환난 날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나는 아무 자격 없으나 아들을 힘입어 당신의 품으로 들어갑니다. 내 안에서 사시는 이는 주님이시오니 주님께서 이루신 복음의 자유함에서 안식하게 하소서.
복음충신교회 성도들의 삶에서 날마다 죄사함을 넘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무덤에 연합되게 하소서.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십자가인 도피성에 날마다 달려가게 하소서. 오늘도 나의 피난처 예수님 안에 거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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