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명으로 풀어본 한국사
□ 종로구 팔판동의 유래
○ 강릉 김씨 판서들이 집단으로 살다
현재 종로구 팔판동八判洞은 당시 강릉江陵김金씨의 판서들이 집단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으로 전해진다
김노진 묘비·경기도 연천군
그중 유일하게 영의정에 까지 오른 사람은 김상철金尙喆, 김노진金魯鎭등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문물과 제도를 총망라한『동국문헌 비고東國文獻備考』의 편찬 책임을 맡아 귀중한 사료를 남겼다.
팔판동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강릉 김씨가 배출한 이름 있는 인물들이 많아 소개하고자 한다. 숙종조의 대제학 김상규金尙奎, 영조조의 대사간 김상건金尙建과 대사성 김상지金简志, 정조조의 대사간 김상구金尚菁를 비롯하여 강릉江陵의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된 명유현名儒賢김윤신金潤身과 김담金潭, 김충렬金忠烈, 김첨경金添慶, 김연경金演慶등이 있다.
또한 강릉 김씨는 일제의 암흑기에도 의병장 김현경金憲卿과 독립운동가 김영호金永浩를 배출했다. 김현경은 을미사변乙未事變이후 삼척三陟지방의 창의 장倡義將으로 의병대장 민용호閔龍鎬와 함께 죽서루竹西樓에서 일본 관군官軍을 격파하고 잠시 삼척의 군수 서리를 지내다 체포되어 옥사했다.
김영호는 3.1운동 후 상하이(상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으로 활약하다 체포되어 5년의 옥고를 치렀다. 김영호는 만주滿洲사변 후에 중한中韓의용군 총사령관으로 일본군과 싸우다 상하이에서 체포되어 우리나라로 압송 도중 선상에서 자결하였다
나중 경기도편에서 밝히겠지만 강릉 김씨가 많이 살던 팔판서 마을은 현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통현리通峴里에도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