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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 땅에 왜 삽니까(1626.2014.8.17)
전3:1.11,12:13
삼남연회 청장년관에서 주관하는 8.15구국기도회를 금년에는 백두산에서 했습니다. 전에 지리산 노고단에서 할 때에도 가 본적이 있습니다. 노고단에 올라가는데 비가 옵니다. 비가오는데도 기도회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감리사가 되어서 백두산에서 구국기도회를 간다고 감리사님도 가셔야 한다고 해서 금년에 감리사협의회 회장 목사님과 총무인 제가 함께 동행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백두산에 올라가서 천지를 바라보면서 천지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저 건너편이 북한인데 다음에 백두산에 올라올 때에는 통일이 되어서 북한쪽에서 올라와서 천지를 보앗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가이드가 하는 말이 백두산은 왜 백두산이냐 우스운 이야기로 백명중에 두명만 볼 수 있어서 백두산이고, 천지가 왜 천지냐고 우스면서 하는 말이 천지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천지라고 해서 웃기도 했습니다. 백두산 정상에서는 종교적인 어떤 해위를 할 수 없도록 걸리면 중국으로 끌려가서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정상에서는 마음으로만 하고 내려와서 수요예배겸 성찬식과 더불어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만강에도 갔는데 뗏목투어를 하는데 북한 가장 가까이 3미터 정도가지 대주더라고요. 그냥 뛰어내리면 북한으로 들어갈 정도로 가갑게 가보았습니다. 북한 초소도 있고 잘못하면 총도 쏠 수 있다고 하면서 카메라중에 줌이 되는 카메라도 사진을 찍으면 그것이 총으로 간주하고 북한에서 총을 쏠 수있다고 하여 사진 촬영을 할 수 없게 하고 중국땅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두만강이 유유히 흐르는 것을 보면서 건너편이 북한이고 우리 삼남연회가 통일이 되면 함북지방에 교회를 개척해야 하는데 바로 두만강 건너편 바라보는 곳이 개척자리라고 감독님 말씀 하셔서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이 기도해주셔서 백두산 영봉에 올라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하고 왔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 땅에 사는 존재이유가 뭘까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 사는 존재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내 삶의 목적을 찾아서 여행을 떠나 보려고 합니다. 내 인생의 가장 위대한 지식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디자인(계획)을 아는 것입니다. 내 인생 최고의 성공은 그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그 목적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낭비하며 살기엔 너무나 소중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내 삶의 목적을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에 ‘너 이것 버려야 되겠다, 너 이것 짤라야 되겠다’하나님께서 말씀 하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복을 받고 살려면 진정으로 버릴 것은 버리고, 끊고, 일할 것은 해야 합니다.
우린 너무나 분주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복잡하고 분주한 삶 가운데에 또 다른 시간을 짤라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함께 토의하고 책을 읽고 묵상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인가 내 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 내서 버릴 때에 새로운 습관을, 새로운 영적인 훈련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 보던 시간을 줄여야 할 것입니다. 컴퓨터에 앉는 시간을 줄여야 할 것입니다. 의미 없는 만남의 시간들을 짤라야 될 것입니다. 그래야 만이 진지하게 이번 기회에 우리 모두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1.내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Who do you think made this world?
(후 두유 씽크 메이드 디스 월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우연히 생기지 않았습니다.
Everything in this world was not created accidentally.
에브리 띵 인디스 월드 워즈 낫 크리에이티드 액시던틀리.
만드신 분이 있습니다.
There is a person who made it.
데얼 이즈 어 펄슨 후 메이드 잇
절대자가 있습니다.
He is God and an absolute being.
히 이즈 갓 앤 언 앱솔룻 비잉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This world was made by God.
디스 월드 워즈 메이드 바이 갓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을 우리들은 아니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살면 하나님의 창조목적대로 살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도 모르고 그냥 저냥 살수는 없습니다. 고전 10:31절에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려면 예배의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에 예배드리려고 하면 벌써 하나님이 그 마음을 아십니다. 엿새 일하고 주일은 쉬어야 합니다. 말씀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눅10장에 보면 예수님의 친구들이 나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지요. 예수님께서 이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을 접대하기 위해서 부엌에서 무언가를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릎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며 예수님으로부터 음성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분주해진 마르다는 ‘예수님 저 철없는 동생에게 좀 언니를 도우라고 좀 쫓아주세요’부탁하지요.
어느 가정에서나, 어느 상황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바로 이 순간 예수님께서 소중한 교훈을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에게 또 우리에게 남겨 주십니다. ‘많은 일로 네가 분주하지만 몇 가지만 하든지 한 가지만 하고,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투자했으면 좋겠다. 마리아는 더 좋은 편을 선택했으니 빼앗기지 아니할 것이다’ 여기 ‘택했다’는 말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인생의 중요한 목적을 알기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주일성수, 온전한 십일조, 예배, 기도, 전도,봉사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시간과 여러분의 관심과 여러분의 기도를 어디에 투자하시겠습니까?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70평생을 살아간다고 하면 25,550일 정도를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삶을 어디에다 투자해서 여러분 인생의 목적을 얼마나 선명하게 얼마나 분명하게 붙드느냐 여하에 따라서 여러분 인생의 미래가 결정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진정한 목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삶을 시편 기자는 그렇게 말합니다. 시39:6절‘우리의 모든 수고는 헛되게 끝날 수 있다’그러나 너희들이 하나님에게 집중하고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가지게 되면, 하나님에게 인생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살아가면 나머지 인생의 모든 필요한 것은 내가 채워 주마!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향해 가지고 계신 인생의 목적을 이해하려면 시간을 투자 해야 됩니다.
성경에 보면 한 사람이 바뀌어지는 데에 한 사람의 패러다임이 바뀌는데 한 40일정도가 소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의 삶은 비가 오는 40일 동안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40일에 걸쳐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며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정탐꾼들은 약속된 땅에서 40일동안 머물며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때문에 40일동안 도전받고 변화되어 당당히 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니느웨 도시가 변화되는데는 40일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40일동안 금식하며 하나님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동안 제자들과 머물며 제자들의 삶을 바꾸어 주기를 원하셨던 것이지요. 앞으로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얼마만한 인생의 우선순위를 두고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내 삶의 목적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에 무게 중심을 두고 살아가시겠습니까? 여러분, 이 여행이 끝나고 나면 몇 개월동안 여러분이 기도한 내용대로 하나님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내 삶의 목적을 보여주십시오.
2.구름같은 인생의 트로피는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때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때를 따라 흐르는 물같이 지나갑니다. 봄이 오면 곧장 뒤따라서 여름이 오고 또 한여름인가 싶으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나가면 눈보라치는 겨울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세월은 순식간에 그렇게 흘러갑니다.
우리는 시간을 따라 다가오는 때를 잘 알고 때에 맞춰 살아야지 때를 거스르고 살려고 할 때 큰 낭패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겨울에 밭에 나가서 씨를 심는 사람은 때를 잘못 택한 사람입니다. 가을에 추수할 때 잠자는 사람은 때를 잘못 택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사에 때를 따라 역사하기 때문에 그때의 상황을 잘 분별해서 살아야 성공적으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때’가 있다는 말씀은 목적을 이룰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수동적인 ‘때’가 아니라 능동적인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때’를 아는 지혜와 ‘때’를 선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들의 인생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의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깨닫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꼭 붙들어서 하나님의 축복하심의 때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 가 있다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지금이 무엇을 하는 때인 줄을 정확히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금이 잡을 때인지, 잡았던 것을 놓아야 하는 때인지를 아는 것, 지금이 심을 때인지 아니면 뽑을 때인지, 지금이 거 거둘 때인지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인간의 가질 수 있는 최상급의 지혜는 때를 구분하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범사에 기한이 있고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 자체가 아름다운 것인 줄은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마음먹고 실행하면 그 계획한대로 이루어질 때 좋은 지식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따라 모든 것을 조정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고통스런 때가 있어도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은혜의 방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음을 믿고서 열심히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울면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서두르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인내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만사가 기한과 때가 있으니 내 정욕대로 되지 않는다 하여 조급한 마음을 가지면 안됩니다(약5:7-11). 그러므로 우리들은 인내하면서 충성하여야 합니다. 기한과 때는 게으른 자를 위하여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내일로 미루지 말고 세월을 아껴야 하는 것입니다(시90:12,엡5:16).
성도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날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약속의 때를 기다린다는 말은 바로 구원의 시간을 기다림이요,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계가 악으로 가득 찬 것 같고, 불의가 행세하고 인권이 탄압 당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이 역사의 종말에는 모든 악이 물러가고 진리와 의의 세계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약속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리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약속의 때를 끈질기게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때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 때를 알기 때문에 더욱더 기도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이 주님을 위해서 일할 때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위해 디자인하신 하나님의 계획, 당신 인생의 목적을 알고 계십니까?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도 이렇게 잊혀지고 버려지는 트로피를 위해 사시겠습니까? 일시적이고 순간적이고 썩어 없어질 목적에 여러분의 삶을 투자하시겠습니까? 인생론을 펼쳤던 전도서의 기자는 그 마지막 부분 12:1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사람의 본분, 사람의 전부라는 인생의 목적이란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를 누려본 저자 솔로몬은 재물과 부귀가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전5:10절‘은을 사랑하는 자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인생최고의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이었지만 영화나 명예 또한 인생의 목표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전4:16절‘저의 치리를 받는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찌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성공도 쾌락도 인기도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세간에 사람들이 하는 죠크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여자가 40이 되면 배운 사람이나 안 배운 사람이나 똑같아 진답니다. 50이 되고 나면 고친 사람이나 안 고친 사람이나 똑같아 진답니다. 60이 되고 70이 되면 남편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그게 그거랍니다. 80이 되고 나면 돈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같아지고, 90이 되면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그게 그거랍니다. 이게 인생이라고 하는 거지요.
오래 전에 최희준이라는 가수가 ‘하숙생’이란 노래를 불렀는데 아직도 세인들의 입에서는 이 노래가 불려집니다. 왠지 아십니까? 그게 진리라는 것이지요. 이런 노래입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이게 인생이라는 거예요.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이지요.
3.지은이의 사용설명서를 읽어보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내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 목적을 알 수 있을까요? 만약 내가 한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한번도 보지 못한 진기한 발명품을 선물로 받았다면 그것의 목적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발명품을 만든 발명가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을 사더라도 사용 설명서를 먼저 읽어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상 쓰는 핸드폰 모델만 바뀌어도 사용설명서를 읽어봅니다. 우리는 내 인생의 목표를 알기 위해서는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 물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면서도, 하나님을 만나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을 내 인생을 돌봐주는 이용물 정도로 도깨비 정도로 생각합니다. 내가 만들은 수 많은 인생의 문제들을 뒤치닥 꺼리하시는 분으로, 하나님 그분을 만나려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그분이 주시는 선물에만 깊은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무릎 앞에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를 이렇게 만드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무엇을 하며 살기를 원하십니까? 내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디자인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분 앞에 물어보는 기회를 우리가 함께 갖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영화 부시맨에 보면 난장이 흑인족 부시맨이 살고 있는 마을에 큰 소리와 함께 코카 콜라병 하나가 떨어집니다. 비행기가 뭔지 콜라가 뭔지 모르는 이들은 조종사가 버린 콜라병 하나를 들고 하나님이 주신 물건이라 생각합니다. 이 병 하나 때문에 생기는 갈등, 싸움을 재미있게 그려 나가지요. 결국은 이 병을 지구 끝에 가서 버리자고 결정합니다. 영화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제작이 끝난 다음 제이미우스 감독은 부시맨들이 사고 싶은 물건 마음대로 사며 그리고 쓰라고 많은 돈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돈이 뭔지 모르는 이들은 돈을 종이 대신 쓰기도 하고, 태우기도 하고, 바람에 날려보내기도 했습니다. 보십시오. 어떤 것의 목적이나 용도를 모르면 이처럼 엉뚱해지는 것입니다. 왜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자살을 쉽게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허무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입니까? 인생의 참된 목적을 그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내 삶의 경륜을 계획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만약 우리 인생을 만든 하나님이 아니 계신다면 인생은 허무하고 살아갈 이유도 의미도 목적도 없어지고 맙니다. 그런점에서 가장 사악한 사상 가운데 하나가 진화론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거부하는 사상이지요. 미생물이 발달합니다. 동물이 됩니다. 원숭이가 발전되고 진화되어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누군가를 죽였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큰 잘못이 아닙니다. 진화된 발전된 미생물을 죽인 것에 불과한 것이지요.
닭 한 마리를 죽이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위대한 일을 통하여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이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커다란 계획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나를 만들고 여러분을 만들고 우리 모두를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 생명이 온천하보다 더 귀중한 것입니다.
4.여러분은 영원한 삶을 위해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11절‘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여기서 영원을 나타내는 ‘올람’이라고 하는 말은 구약에서 시간을 의미합니다. 어떤 시간인가 하면, 과거와 미래로 한없이 뻗어가는 시간입니다. 한없이 먼 과거로 부터 한없이 먼 미래 까지 뻗어간 그 시간이 곧 영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비록 이 땅에 애쓰면서 노고 가운데 살아가지만, 우리는 해 아래 이 세상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해 위에 있는 영원한 세계를 사모 하면서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란 실상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무 속에 있는 인생에게 하나님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는데 이것은 오직 사람만이 가지는 것입니다.
영원의 근본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요(출3:14),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일1:1-2). 그리고 영원은 장소적인 면에서는 천국입니다. 이곳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만이 가는 인생의 고향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원에 대한 동경이야말로 하나님이 인생에게 심어 주신 본래적이요, 근원적인 것입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참된 삶의 의미를 심어 줍니다. 무가치한 삶에서 참된 것을 바라보게 하고, 세상의 풍파에 시달리는 인생에게 소망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에 내세의 소망 속에서 살아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의 마음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사실을 바울 사도는 로마서 1장 19절에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내게 이 귀한 것을 주셨는지 안 주셨는지 모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힘써야합니다.
우리가 돈을 잃은 것은 약간 잃은 것입니다. 돈은 생겼다가도 없어지고 없어졌다가도 다시 생깁니다. 우리가 건강을 잃은 것은 많은 것을 잃은 것입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 됩니다. 이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이 형상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만 이 선물을 주셨습니다. 선물은 받아서 잘 써야 제 값어치를 발휘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느날 우리의 심장이 더이상 뛰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맥박과 호흡이 멎는 때가 올 것입니다. 우리의 지각과 의식도 다 사라진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그것으로 우리의 육체는 지구상에서의 시간과 결별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 존재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의 육체를 ‘장막’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미래의 몸은 ‘집’이라고 부릅니다. 고후5:1절‘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장막은 텐트입니다. 장막은 계속 머무르기 위해서 짖는 곳이 아니라 잠시 머무르기 위해서 잠시 비를 피하고 햇빛을 피하고 잠시 동안 그늘을 만들고 더 좋은 집을 짖기 전에 임시 방편으로 잠시 동안 거처하기 위해서 짖는 것이 장막입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육체는 장막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이 지으신 집이 있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된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지금 준비해야 합니다. 기회는 단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두 번 다시 주어지지 않는 기회입니다. 이 생명이 끝이 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생에서 우리의 모든 것은 단숨에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너무나 잔인할지 모르지만 우리들의 인생은 영원한 생명에 비하면 너무나도 짧습니다. 이 짧은 인생동안에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신분이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우연히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 연약함을 안고 태어나 살아간다 할지라도 ‘오발탄’은 없습니다. 21세기 할 일 많은 이 땅, 분단된 조국의 현실과 함께 살아가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의 만남 그 속에 내가 태어남, 당신이 맘에 들던 안 들던 바로 거기에 당신 인생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하나님이 계획하고 만드신 그 목적이 내 삶을 이끌어 갈 때에 나는 바른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고 할 때 ‘이끈다’는 말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인생을 하나의 수레에 비교한다면 이 수레를 끌고 가는 말이나 노새나 당나귀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된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엉뚱한 것에 의해 끌려 다니곤 합니다.
과거에 묶여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죄책감이 언제가 했던 한번의 실수가 그들의 인생을 끌고 다니는 것이 있습니다. 과거에 받은 상처에 꽁꽁 묶여서 꼼짝 달싹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처보다 크지 못하는 사람, 상처에 매여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을 온전히 이룰 수 없습니다. 알지 못하는 어떤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썩어지고 없어질 세상에 질질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질이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사람의 인정받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참된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목적은 그들의 삶에 의미와 보람을 줍니다. 목적을 알고 나면 그들의 삶이 단순해 집니다. 목적은 우리네 삶에 집중력을 가져다 줍니다. 초점이 맞는 삶을 살게 해 줍니다.
영향력 있는 삶을 살고자 하면 초점에 집중하며 살아야 합니다. 목적은 열정을 낳습니다. 삶에 기운과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목적은 우리의 에너지를 영원한 세계, 영생을 위해 투자하게 해 줍니다. 종말의 승리자가 되게 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여러분 한분 한분이 진정한 목표를 알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영원히 살아가야 될 삶의 목표를 진정으로 깨닫고 준비하며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지요. 목숨이 다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죽음으로 인생은 끝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영원히 함께 살기 위하여 여러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아름다운 교제를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기 원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여러분이 얼마나 소중했으면 여러분과 영원히 함께 살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여러분 썩어 없어질 허탄한 곳에 인생을 투자하지 마십시오. 영원한 가치에 투자하십시오. 이 땅에 살아가다가 없어질 허무한 구름 같은 것들을 붙들고 살아가지 마십시오. 그것들을 놓을 때에 진정한 끈을 우리는 붙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순간적이고 허무한 것들을 놓을 때에 영원한 가치를 우리는 붙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짜르십시오. 버리십시오. 포기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디자인 해 놓으신 영광스런 계획을 인생의 목적을 붙드는 복된 기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던 어느 선교사님은 여러해 동안 많은 열정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선교 열매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두 아들이 아프리카 풍토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두 아들을 땅에 묻고 어머니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여 역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선교사님은 슬픔과 비감한 심정을 이기지 못해 끝내 선교를 포기하고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배에는 휴가를 얻어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미국의 대통령 일행이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샌프란시스코 항에 도착했을 때 해군 군악대의 연주와 예포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대통령 일행이 내리자 붉은 주단이 깔려졌습니다. 그들이 내리고 다른 승객들이 내렸습니다. 마지막에 선교사님이 힘없이 내렸을 때는 붉은 주단이 걷혀진 다음이었고 해군 군악대도 떠나간 다음이었습니다.
쓸쓸한 바닷가를 거닐며 하나님 앞에 넋두리를 늘어놓았습니다. ‘휴가를 얻어서 사냥을 즐기고 돌아오는 대통령 일행은 저렇게 엄청난 환영을 받는데 낯설고 물설은 땅에 내 사랑하는 가족을 묻어두고 돌아오는 내게는 환영하는 사람도, 날 반겨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인생입니까?’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들아 종아, 이 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네가 진정으로 내 진정한 고향에 돌아올 때에 해군 군악대의 아름다운 연주가 아니라 천군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너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붉은 주단이 아니라 내 몸을 찢어 만든 보혈의 주단을 깔아서 너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네가 잃어버린 그 아들, 네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랑하는 아내가 하늘나라에서 천사들과 함께 영광스럽게 변화된 모습으로 너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종아, 아들아, 이것이 네 삶의 마지막이 아니니라’
여러분, 여러분 인생의 종착점에 섰을 때에 여러분이 달려왔던 인생길을 돌이켜 보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지 물어보시면서 내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디자인 해놓은 설계대로 잘 살다가 하나님나라에 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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