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행으로 인생 연소시키는 삶
<28> 증시랑에게 보내는 대혜선사의 답장 ⑤-1
[본문] 편지를 받아보니, “‘밖으로는 모든 인연을 쉬고 안으로는 마음에 헐떡거림이 없어서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 것은 이것은 방편의 문이라.
방편의 문을 빌려 도에 들어간다면 좋지만 방편을 지켜 버리지 아니하면 병이 된다”라고 하였으니 진실로 보내온 말씀과 같습니다. 내가 그것을 읽고 뛸 듯이 기쁜 마음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강설] 증시랑에게 보낸 다섯 번째 편지다. 증시랑이 달마스님의 글을 읽고 자신의 견해를 밝혔는데 그 견해가 마침 대혜선사의 마음에 맞아 대단히 기뻐했다는 내용이다. 증시랑이 달마스님의 가르침을 방편의 문이라고 이해한 것을 대혜선사는 크게 기뻐하며 인가하였다.
참선공부의 요체는 먼저 밖의 인연을 다 쉬어서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한다. 좌선을 하면서 안으로는 여행갈 생각, 도반 생각, 신도 생각, 해제비에 대한 생각, 한 자리를 얻어 볼 생각, 노후 생각, 토굴 생각 등등 온갖 생각에 이끌리고 있으면 그것은 참선이 아니다.
이러한 생각이 다 끊어지고 마음이 꽉 막혀서 마치 담벼락과 같아야 한다. 설사 도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와 같은 삶의 자세는 참선인으로서 매우 바람직한 모습이다.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 깨달아
혼신을 다해 보살행 실천하라
[본문] 요즘 제방에서 칠통(漆桶)같은 무리들이 다만 방편을 지켜서 버리지 아니하고 그것을 사실의 법으로 여겨서 사람들을 지시한다 하니 이것 때문에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삿된 것과 바른 것을 분별하는 글(辨邪正說)”을 지어서 그들을 구제하였습니다.
근세에는 마군은 강하고 법은 약해서 맑은 상태에서 맑은 상태에 들어가 합하는 것으로 구경의 법을 삼는 사람들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또 방편을 지켜서 버리지 아니하는 것으로 종사(宗師)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삼대처럼 많고 좁쌀처럼 많습니다.
[강설] 방편을 실다운 법으로 알고 있다면 그것은 대단히 큰 착각이며 인생을 그르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선사께서는 우선 ‘삿된 것과 바른 것을 가려내는 글’을 지어서 사람들을 깨우쳤다. 이 글은 소흥 4년, 서기 1134년 선사가 46세시에 지었다.
이 문제는 일상사에서나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반드시 알아야 할 일이다. 불교를 믿으면서 삿된 가르침을 따른다면 오히려 불교를 믿지 않는 것만 못하다. 요즘은 삿된 주장은 강하고 참되고 바른 이치의 가르침은 약(魔强法弱)하다. 그러므로 널리 배우고 골고루 익혀서 삿된 사상에 치우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맑은 상태에서 맑은 상태에 들어가 합하는 것(湛入合湛)”이란 제7식과 제8식까지 철저히 맑고 텅 비어서 그 텅 빈 자리가 최상의 경지인줄 착각하는 것이다. 이 또한 구경의 경지는 아니다.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을 철저히 깨달아서 혼신을 다해 보살행으로 인생을 연소시킬 줄 아는 삶이라야 된다. 텅 빈 마음과 조용한 삶은 결코 훌륭한 길이 아니다.
[본문] 나는 근래에 일찍이 납자들과 같이 이 두 가지 문제를 거론하였는데 보내온 글에서 말한 것과 꼭 같아서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대가 마음을 반야 가운데 머물러두어 생각생각에 빈틈없이 하지 않았다면 과거의 모든 성인들의 여러 가지 다른 방편을 환하게 꿰뚫어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강설] 두 가지 문제란 방편을 실법으로 알고 굳게 지켜서 버리지 않는 것과 "맑은 상태에서 맑은 상태에 들어가 합하는 것(湛入合湛)”이란 제7식과 제8식까지 철저히 맑고 텅 비어서 그 텅 빈 자리가 최상의 경지인줄 착각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의 참선납자들에게 가장 많은 문제점이 이 두 가지였다. 다행히 증시랑은 마음을 반야 가운데 머물러두어 생각생각에 빈틈없이 하였기 때문에 환하게 알 수 있어서 큰 다행이라는 것을 밝혔다.
[출처 : 불교신문 201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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