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차시간이 예상외로 짧았던 탓일까? 7437호가 기관차 사진 찍고 들어오더니 열차가
얼마 안 있어 출발했다. 열차는 이제 부산을 향해 마지막 질주를 시작한다.
열차가 달리며 멀리 선로가 하나 멀어져 가는 것이 보였다.
“저기 선로가 뭐죠?”
“장생포선일 거에요. 저게 아마 울산에 있는 SK인가? 거기 공장에 들어간다죠.”
또 하나의 선로가 멀어져간다.
“저건 울산항 선이겠네요.”
“네.”
울산은 그야말로 공업 도시이다. 왜 광역시로 승격되었는지 알지는 못하겠지만 온갖
공장이 보이고 공장의 굴뚝과 공장, 공장 사이를 연결하는 각종 파이프가 그물처럼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에 굴뚝 꼭대기에서부터 조명이 보인다.
멀리 창 밖을 보니 어느덧 점점 어둠이 짙어져 간다.
“겨울이라 날이 짧다 보니 벌써 저녁이네요.”
덕하역에 도착했다. 어둠은 점점 짙어져서 하늘은 짙은 파란색을 띠었다.
“여기 어딘가 가다 보면 바다가 보인다는데요.”
“글쎄, 어디쯤 되는지 저도 잘 몰라요.”
남창역을 출발했다. 조금만 더 달리더니 어둠 속으로 둥근 게 보였다.
“저기가 원자력 발전소에요.”
“맞아요. 아마 고리 원전일 거에요.”
점차 어둠이 짙게 깔려가고 있었다. 이제 부전역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철도청KTX025호는 잠시 잠이 들었다. 7437호는 이를 놓치지 않고 플래시를 터뜨려
사진을 찍었다. 철도청KTX025호가 일어났다. 7437호는 다시 카메라를 들이댔다.
철도청KTX025호는 고개를 돌렸다.
“왜 나한테만 사진 찍으려고 그러세요...”
“전 이게 좋거든요.”
“제발 찍지 마세요.”
“네. 알았어요.”
그제서야 철도청KTX025호는 다시 잠이 들었다. 7437호는 영동선 511호, 우아한냉혹,
TSR★러시아가 앉은 자리로 다가갔다.
7437호가 소정리역짱, min-hu에게 말했다.
“잠시 좀 저쪽으로 가주세요.”
그 자리에는 이제 4명이 앉았다. 7437호가 제안을 한다.
“내가 지금 세 분을 저 쪽으로 빠지라고 한 이유가 부전역까지 완승하면 우리는 바로
뒤풀이 들어갈 거에요. 알죠? 무슨 말인지? 내가 전에 듣기로는 경성대 근처에 맛있고
싼 술집이 많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그 쪽을 한 번 가보려고 하거든요. 처음에 부산역하고
가까운 서면을 가려고 했는데 예상외로 비싸다고 하더라고요. 서면이 번화가니까.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술 값은 내가 쏠 테니까 일단 들어가서 2차까지 때리면 되거든요.”
이 때 영동선 511호가 말했다.
“제가 부산에서 아는 사람하고 만나기로 해서 아마 길어야 한 시간쯤 있을 것 같아요.”
“어차피 우리도 밤 11시 55분 차로 올라갈 거라 많이 뛰지는 못해요. 길어야 2차쯤
갈 거 같거든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로는 처음에 소주 한 잔에 삼겹살이나 부대찌개
먹으려고 했는데 소주가 좀 세서 금방 취하잖아요. 그러다 만약 돌아가던 중 사고 나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맥주를 마실까 해요.”
우아한냉혹이 말했다.
“저는 어떤 술이든 상관없이 마실 수 있어요.”
“어쨌든 걱정하지 말고 일단 경성대 앞 술집으로 가서 술이나 마시죠. 돈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네.”
“아마 1인당 3000cc 생맥주 원샷한 다음 다시 3000cc 맥주로 마무리할 거에요.”
열차가 서생역에 도착했다. 서생역을 보니 소나무는 많은데 역사나 타는 곳 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어? 여기 서생역 맞아요?”
“네. 여기는 역사도 없어요. 그냥 정거장 수준이랄까.”
열차는 월내역을 지나 좌천역으로 달렸다. 7437호가 말했다.
“좌천역에서 아마 동대구로 가는 통일호 열차와 교행할 거에요. 그런데 그 열차가 7000호대
견인일 수도 있고 혹은 4400호대 견인일 수도 있어요. 확실한 것은 잘 모르지만요.”
열차는 좌천역에 멈췄다. 좌천역에서 교행 때문에 정차한다고 방송이 나왔다.
“우리가 정차하는 역은 좌천역으로 동대구로 가는 통일호 열차와 서로 바뀌는 관계로
멈추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7437호는 불현듯 어쩌면 이번 완승이 마지막 통일호 탑승이 될 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통일호 객차 내부에서 볼만한 것들을 사진찍었다. 4월이면 없어지는 그리고 폐차되는
이 객차는 그나마 철도박물관에 갈 지 조차도 미지수인 듯하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두는 것이다.
잠시 후 동대구로 가는 통일호 열차가 들어왔다. 4400호대 견인인데 신도색이다.
“어? 4400호대 신도색이네요.”
“네. 맞네요.”
이윽고 열차가 좌천역을 출발했다. 7437호가 말했다.
“지금 여기까지 내려오면서 내가 간간이 캠코더로 님들의 모습을 찍었어요. 한번 보세요.”
“네, 보죠.”
7437호는 캠코더를 재생 모드에 맞추고 테이프를 맨 처음으로 돌렸다. 그리고 재생을 시작했다.
방금 전 어두웠을 때 열차가 출발할 당시에 모습을 본 사람들이다.
“내가 철도청KTX025호님에게 집중적으로 클로즈업해서 사진 찍었어요.”
철도청KTX025호가 말했다.
“왜 하필 나에요.”
“이 사람은 이렇게 갈굴 필요가 있어서 그랬지요.”
그리고 잠시 후에 원주에서의 장면이 나타났다. 영동선 511호가 뒤늦게 합류하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두들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 녹화장면을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넌지시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홍익회 직원이 카트를 굴리다 멈춰 서더니
신기한 듯 그 녹화 장면을 쳐다보았다.
“어. 전부다 쳐다보네요? 역시 우리 여행은 재미있었나 봐요.”
뒷자리에 있던 한 중년의 아저씨가 물어본다.
“너희들 어디까지 가?”
“끝까지 가거든요. 저희는 오늘 아침 6시 50분에 청량리에서 출발해서 지금까지 타고 있는 거에요.”
이윽고 열차가 일광역으로 들어갔다.
“이 곳 일광역 하니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어요.”
“뭔데요?”
“2년전 철동에서 있었던 이야기 중에 일광역 역무원 할아버지 이야기가 있었대요.
이야기에 의하면 그 할아버지가 워낙 불친절해서 입장권이나 구형 에드몬슨 승차권을
주는데 인색하대요. 사진 찍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게 막는다나, 어쩐다나?”
“그래요?”
“네. 그 당시 어떤 분인지 모르는데 대화하는 내용에 보면 맞는지 모르겠지만 일광역
역무원 할아버지 욕을 많이 하는 듯하던데요. 일광역 역무원 할아버지가 에드몬슨
승차권 얻어간다고 그러면 안 준다고 거절한다고 딱 잘라 이야기한다던가 하는 거죠.”
열차는 일광역에 잠시 정차했다가 다시 떠났다. 기장역을 거쳐 송정역에 도착했다.
송정역 밖을 보니 많은 여관, 모텔, 그리고 각종 편의시설 건물이 네온사인으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 근처에 해수욕장이 있어요. 그래서 송정역 부근에 이렇게 많은 민박이나 여관,
그리고 편의시설이 많은 거죠.”
열차가 송정역을 떠났다. 이제는 바닷가를 끼고 달린다. 낮에 중앙선 달릴 때처럼
열차가 상구배로 점차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중앙선의 그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어둠 속으로 열차는 절벽을 타고 달렸다. 절벽 아래로 바다가 보였고 파도치는 모습이 보였다.
“저기 저. 바닷가에요.”
“우와...”
“저기 바닷가에서 예전에 내가 매복을 서봤는데 정말 장난 아니에요. 바닷가를 바라보면
왠지 탈영하고 싶어지더라고요. 특히 어두운 밤에는 좀 무섭죠. 특히 강릉, 속초 이 지역은
무장간첩이 제 집 드나들 듯 돌아다닌다고 그러잖아요. 게다가 실탄까지 총에 장전하고
들어가니 얼마나 살얼음 같은 분위기겠어요?”
“그렇죠.”
“어쨌든 바닷가에서 파도 치는 모습 특히 야경은 정말 멋있어요. 이걸 적외선 투시경으로
한번 보면 모든 게 뚜렷이 보여요.”
해지고 어두워 진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바닷가에서 파도 치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누구에게나 멋있을 것이다. 그것도 잠시. 멀리 광안대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드디어 부산에 도착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가 보다.
“저기 다리 하나 보여요.”
“이제 부산에 다 왔네요.”
“네. 저게 광안대교라고 그래요.”
“맞아요. 광안대교 맞아요.”
광안대교가 완전히 나타났다. 뒤이어 해운대해수욕장의 야경이 보였다. 그리고 해운대의
야경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불야성이다. 휘황찬란한 불빛이 계속 보였다.
열차는 어느덧 이 불야성 사이를 달리며 해운대역에 도착했다. 아까만해도 사람들이
제법 많은 편이었는데 절반의 손님들이 내렸다. 그리고 남은 손님은 얼마 없었다.
7437호는 아는 여자가 부산에 살고 있다며 전화를 걸었다.
“제가 부산에 아는 여자가 있어요. 그 친구한테 전화 하면 이렇게 대화하지 않아요.”
“어떻게 대화해요?”
“부산 사니까 대화할 때는 항상 부산 사투리 써가며 대화하거든요.”
“와하하하... 기대되네요.”
전화가 연결되었다. 여자가 전화통화를 한다.
“어, 왜 전화했노?”
“여보셈.”
전화상에서 7437호의 아는 여자가 전화로 이야기한다.
“니 어디고?”
“내 지금 부산 내려온다 아이가.”
“맞나?”
“맞다. 니 어디 있는데?”
“내? 지금 서면 롯데백화점 있다.”
“거기하고 부전역하고 가깝지 않나?”
“가까운데 내 서면에서 친구랑 약속 있다.”
“진짜고?”
이윽고 도로 뒤로 벡스코가 보였다. 7437호가 다소 어눌한 부산 말씨로 그 여자에게 말했다.
“내 므고? 지금 벡스코 지나고 있다 아이가. 야경 억수로 머있다. 내 한 30분 뒤면 부전역 도착한다.”
“니 온 김에 종민이 만나고 가지 그래?”
참고로 종민이(가명)는 7437호의 아는 여자친구의 국민학교 동창이다.
“종민이? 내 부산 내려오면 경성대인가 거기 갈란다. 내 거기서 내 동호회 아는
사람하고 술 먹기로 했다 아이가. 같이 온나.”
“종민이하고 어디고? 부산 롯데에서 만나기로 했다. 여기 지하상가다.”
“지하 상가라꼬? 마 그럼 어디고?”
“내? 내 지금 분수대 앞에 와있다 아이가.”
“분수대라꼬? 그럼 트레비분수 말이가?”
“트레비 분수 맞나?”
“맞다. 그 롯데 부산점 지하에 있는 분수대 이름이 트레비분수다.”
“니 그럼 오늘 여기서 자고 갈 거제?”
“마 몬 짠다. 내 여기서 잠 몬 짠다.”
“맞나?”
“맞다. 이따 부산역에서 11시 55분 차 타고 올라갈끼다. 시간 나면 경성대 앞으로 온나.
내가 오늘은 거하게 쏠 기다. 알았제?”
“내 서면에서 8시에 약속 있어. 그래서 몬 올거 같다.”
“아무튼 조심해서 잘 들어가고. 알았제?”
“그리고 니 언제 서울 올거고? 어차피 서울 친구 집들이 간다 하지 않았노?”
“맞제. 근데 아직 몬 올라가고 내 친구들이랑 같이 올라가기로 했다 아이가.”
“어차피 친구 신혼방 본다믄 한 번쯤 와서 집들이 가보그라.”
이윽고 열차가 수영역을 지나갔다.
“마. 부산 야경 참말로 머있다. 그 므고? 광안대교 말이가. 그 참 야경 조타 아이가.”
“니 언제 서울 올라오그라. 내 니 올라오믄 내 책임지고 고철 태워줄기다.”
“정말? 내도 고철 탈 수 있노?”
“정말이다. 내 책임지고 태울 수 있다. 걱정 말그라.”
“그런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간다며. 부산에서 내림 안되나.”
“된다. 내가 어떻게든 책임 진다 아이가. 얼른 올라온나.”
이윽고 동래역에 도착했다. 동래역에 내려서 교행대기 때문에 또 정차한다. 이때 우아한냉혹과
TSR★러시아는 타는 곳에 내려서 사진을 찍었다. 7437호는 동래역에 내려서 멀리 보이는
건널목을 구경했다. 멋있게 사진을 찍고 있을 무렵 건널목에서 빨간 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곧 열차가 통과하겠네요.”
“그렇죠.”
잠시 후 불빛이 보이며 열차가 들어온다. CDC였는데 꽃무늬에 현재 도색이 혼합 편성된 차량이다.
그리고 열차가 또 떠난다. 모두 다시 열차에 올라탔다.
열차가 또 부산시내의 야경을 배경으로 달린다.
“내 부산사투리 어땠어요?”
TSR★러시아가 대답했다.
“거의 뭐... 환상적이었는데요. 저번보다는 좀 어눌했어요.”
열차가 거제역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출발했다. 드디어 마지막 역인 부전역으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자. 이제 짐들 챙기세요. 조금 있으면 부전역이니까요. 얼른 옷걸이에 건 옷은 다 챙기세요.”
“네.”
“혹시라도 두고 내리는 건 없는지 잘 살펴 보세요. 그리고 자리 밑에 쓰레기 있으면은
쓰레기 한 데 모아 뒀다가 버리세요.”
이 때 철도청KTX025호가 말했다.
“우리 완승한 김에 여객전무님이랑 같이 사진 찍죠.”
“그래요. 완승했으니까 한 번 사진 찍읍시다.”
드디어 마지막 정차역 안내방송이 나온다.
“마지막 역을 앞두고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마지막 정차역인
부전역에 제 시각에 정차하겠습니다. 손님 여러분께서는 잊으신 물건이 없는지
다시 한번 좌석 주위나 옷걸이 선반 등을 확인하시고 챙겨 두었다가 열차가 완전히
부전역 타는 곳에 멈춰서면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저와 승무원 모두는 철도를 이용하여
주신 손님 여러분께 깊이 감사 드리며 다음에 철도를 이용하시면 보다 정성껏
모실 것을 약속합니다. 남은 여행 목적지까지 안녕히 가십시오.”
모두 좌석 밑에 떨어진 쓰레기를 정리했다. 워낙 많이 장보고 다녔던 덕에 물은 한 통이 남았다.
그리고 갖가지 먹을 거리가 많이 남았다. 그래도 버려진 쓰레기를 모두 모아 비닐봉지에 담았다.
그러는 사이 열차가 부전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열차가 부전역 종착 선로로
들어가 타는 곳에 멈췄다. 드디어 장장 11시간 30여분의 완승이 끝났다.
“자. 모두들 수고했어요.”
“수고했습니다.”
7437호가 철도청KTX025호에게 물었다.
“여객전무님하고 잘 이야기해서 사진 같이 찍자고 하세요.”
“네.”
모두들 내렸다. 그런데 7437호가 주머니를 한참 뒤지고 있었다. 대용 승차권이 나오지 않아서였다.
“어라. 대용승차권이 어디 갔지?”
TSR★러시아가 말했다.
“가야님, 잘 찾아보세요.”
“네.”
한참을 뒤졌다. 다행히 잠바 바깥 주머니에서 대용승차권이 나왔다.
모두들 부전역 나가는 곳으로 나간다. 언제부터인가 부전역 구역사는 철거된 상태고
신역사를 만들어 운영한다. 신역사는 깨끗하고 에스컬레이터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첫댓글 울산역에서 부산쪽으로봐서 가장 우측에 선이 동해남부선이고 그다음에선이 장생포(sk공장안에 있음)선이고 그다음이 동부화학(비료).삼성정밀.(비료)태원물산.석고(시멘트재료))울산항(컨테이너)에 가는 선입니다.
대단하시네요.저도 9년전에 부전역에서 청량리(1222열차)까지 집사람(결혼하기전에 연애할때)이랑 같이 타고 갔었는데^^ 그때는 참 좋았는데 ~~~ 갑자기 옛생각이 나는군요. 나중에 여건이되면가족들이랑 다시 갈겁니다.......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