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비열전 19-3.2
제19대 숙종(이순)의 여자들
중인!
절대 그런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다행히도 잘 태어났다.
이유는 세가지 이다.
첫째는..
나는 엄마 아빠 덕에 미인으로 태어났다.
요새야 성형수술이 발전해서 좀 못생겨도
돈만 좀 투자하면 예쁜 얼굴로 만들어 준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타고난 아름다움은 큰 복이었다.
내가 자랄 때 모든 사람들이
날 이쁘다고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조선왕조 시대에 가장 권위 있는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나를
조선 최고의 미녀라고 인정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최고의 미녀로서 이 나라의
최고의 자리인 왕비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저 돈키호테처럼 이룰 수 없는 꿈을 꾼 것이다.
그러나 난 돈키호테가 아니라 장.옥.정.이다.
''나는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다짐했다.
둘째는..
나는 능력 있는 엄마 윤씨가 있었다.
아버지 장형은 평범했으나
엄마 윤씨는 한가락(?) 하신 분이다.
조사석!
장렬왕후 조씨와 친척간이시다.
지금으로 치면 장관을 하신 분이다.
그분의 내연녀가 누군 줄 아는가~?
윤씨, 내 엄니다.
미모와 두뇌가 받쳐주었다.
엄니 덕에 정치권에 줄을 댈 수 있었다.
소위 누구처럼 엄마 빽을 이용할 수 있었다.
셋째는..
우리 오촌 장현이다.
비록 중인 출신 역관이었지만 무역을 통해
당시에 ☆☆☆과 같은 재벌이 되셨다.
그럼 난 무었인가~?
재벌의 종질녀 즉, 조카다.
오촌 아제 덕택에 나는 세상을
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다.
장현 아제도 내 미모를 이용, 왕실과 조정에
줄을 댈 수 있기 때문에 날 적극 지원했다.
원래 돈 있으면 다음에는 권력을 찾는다.
그러니 생각해봐라!
비록 내가 중인 출신이지만
내 꿈을 펼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래서 나는 왕비가 될 것을
저 창덕궁을 향해 굳게 굳게 맹세했다.
''이 장옥정, 꼭 왕비가 되리라!''
그리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라고 믿었다.
그래서 난 열여섯 살에 첫 날개를 폈다.
인조의 손자 동춘군의 부인 신씨를 이용
장렬왕후 조씨 나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명목상으로는 조대비를 모신다는 것이지만
내 마음속에는
''임금을 꼭 내 품에 안겠다"는 것이었다.
저 해품달(해를 품은 달)처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나의 원대한 희망인 왕비가 되기 위한
첫 걸음이자 교두보 확보였다.
장나인!
궁에서 나의 첫 직함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녀였다.
인생의 최고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얼굴 관리에 신경을 썼다.
저 많은 나인 중에서 돋보일려면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하게 빛나야 한다.
사람의 첫인상은 3~6초에 결정된다고 한다.
난 기회를 잡으려고 엄청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
이쁜 얼굴에 더 이뻐 보일려고 오이팩도 하고
얼굴 맛사지도 남들 모르게 열심히 했다.
(뭐..요즘 여인네들 하는거 보면 알잖유..)
그리고 기회가 왔고,
나는 그 기회를 단숨에 휙 잡아챘다.
숙종!
비록 14살이었지만 조숙했다.
내 나이 방년 16살이고 저 복숭아꽃보다
밝게 빛나는 나를 그가 놓칠 수가 있는가~?
그래서 여차 저차 그리 되었다.
숙종은 날이면 날마다 나에게 빠져들었다.
드디어 중전 인경왕후가 숙종을 딱하게 여겨
대왕대비에게 별도의 처소를 마련해 주도록
건의해서 우리는 응향각에서
마음대로 운우지락을 즐길 수 있었다.
남들 눈치 안 보고...
비록 인경왕후가 나에게 기회를 주었지만
나는 내 꿈을 접을 수가 없었다.
슬슬 왕비를 제거하기 위한 모략을 시도하다가 대왕대비에게 걸려 궁에서 쫓겨났다.
조금 더 절제하고 신중했어야 했는데..
나의 불찰이 컸다.
난 쫓겨나가 동평군 집에 머무르면서
재기하기 위해서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다.
'꿈은 노력하면 이루어진다'
라는 굳은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1,680년 첫왕비
인경왕후가 천연두로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래서 곧 나의 세상이 올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숙종이 둘째 인현왕후를 들이고
다른 후궁들과 재미있게 지냈다.
그 소리를 들을 때 나는 피가 끓었다.
''괘씸한 숙종 같으니라고...''
그런데 이게 웬 떡이냐~?
1681년 대왕대비 장렬왕후와 시어머니인
명성왕후가 나를 다시 들이라고 했다.
내가 밖에서 공작을 잘했기 때문이다.
조신하게 반성 잘하고 있다고..^^
그래서 난 1681년 환궁했다.
개선 장군 아니 개선 후궁으로!
너무 오랫만에 만난 우리들은
이징명이 상소를 올릴 정도로 불타올랐다.
숙종은 정사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나뿐이었다.
정□사에 관심이 없고
정♡사에 관심만 있었다
그러니 눈에 뵈는 것이 있었겠는가~?
난 잘못이 없다!
I'm not guilty!
시어머니 명성왕후는 나를 다시 내쫓았다.
고지가 저긴데 또 좌절이었다.
그래서 난 독기를 품었다.
그리고 오년이 지났다.
1686년(숙종12) 이다.
내 나이 28세에 이르렀다.
그런데 저 인현왕후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를 다시 궁으로 들여도 좋다고 했다.
난 다시 꿈을 안고 궁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꼭 왕비가 되리라고..
음,, 와~~길다.
다음편까지 내 이야기를 계속 하겠다..
기대하시라...ㅎㅎㅎ
내일 또 계속 됩니다 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