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공자ㆍ붓다ㆍ예수ㆍ무함마드도…유년기 존재의 결핍
#왕은 아내를 잃고, 왕자는 엄마를 잃다
꼭 1주일 만이었다.
왕자를 낳고서 마야 부인은 세상을 떠났다.
왕은 아내를 잃었고, 왕자는 엄마를 잃었다.
2500년 전이었으니 요즘처럼 사진도 없었다.
싯다르타 왕자는 엄마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사진을 통해서도 말이다.
그러니 왕자가 갖는 그리움이 얼마나 컸을까.
‘엄마’라는 두 글자가 싯다르타에게는 커다란 삶의 결핍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불교에는 “번뇌가 곧 보리”라는 말이 있다.
삶의 고뇌와 깨달음의 지혜가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번뇌와 지혜, 서로 다른 그 둘을 하나로 뚫을 때 깨달음이 온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
번뇌는 피하고 싶고, 깨달음만 얻고 싶다.
이런 사람은 깨달음을 얻기가 어렵다.
왜 그럴까.
세상을 이미 번뇌와 깨달음, 두 쪽으로 갈라놓고 한쪽만 편식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만 통하는 건 진리가 아니다.
번뇌에도 통하고, 깨달음에도 통해야 진리가 된다.
진리는 모든 걸 관통하기 때문이다.
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싯다르타의 결핍감은 커다란 번뇌였을 터다.
자신의 출생과 동시에 세상의 절반이 꺼져버린 느낌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 번뇌가 깨달음의 언덕을 넘어서게 하는 가장 큰 엔진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팔리어 경전에 기록된 붓다의 유년기는 눈길을 끈다.
여느 아이들과 달리 싯다르타는 어려서부터 생각이 깊고, 사유하는 성향이 강했다.
나는 그러한 성향의 뿌리에
‘엄마의 결핍’이 적잖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공자도, 예수도, 무함마드도…존재의 결핍
‘축의 시대’에는 인류사의 스승이 여럿 출현했다.
그중 한 명인 공자도 그랬다.
공자의 부친인 공흘과 어머니인 안징재의 나이 차는 무려 54세였다.
공흘이 70세 때 16세의 안징재를 맞아들였다.
공흘에게는 이미 본처와 아홉 명의 딸이 있었다.
전쟁이 난무하고, 사람의 목숨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춘추전국시대였다.
대(代)가 끊길까 봐 걱정하던 공흘은 칠순의 나이에 공자를 낳았다.
3년 후에 공흘은 세상을 떠났다.
싯다르타는 출생 1주일 만에 엄마를 잃었다.
공자는 3세 때 아버지를 잃었다.
24세 때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공자의 유년기와 청년기에도 채울 수 없는 결핍이 있었다.
더구나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아버지를 하늘, 어머니를 땅에 비유한다.
공자는 어린 나이에 하늘을, 젊은 나이에 땅을 상실한 셈이었다.
그러한 결핍의 바닥에서 공자는 성장했다.
따지고 보면 예수도 그랬다.
예수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동정녀 잉태를 인정하고,
유대교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어쨌든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돼, 어머니인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마리아의 남편이자 예수를 키운 요셉은 친아버지가 아니었다.
그 사실은 요셉도 알고, 마리아도 알고, 예수도 알았다.
2000년 전 유대 사회는 보수적이었다.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으면 돌에 맞아 죽기도 했다.
그러니 ‘친아버지의 부재’는 예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물론 여기에 반박하는 사람도 있다.
“예수님은 하느님(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에게는 오로지 신성(神性)만 있다.
그런 예수가 어떻게 결핍을 느끼며 살았겠나.
예수님은 전지전능한 하느님과 동급이지 않나.” 이렇게 받아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반박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교에서도
“예수는 100% 신이자, 100% 인간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사춘기에 우리가 겪는 온갖 신체적ㆍ정서적 변화를 예수도 똑같이 겪었을 터다.
그런 예수에게 어떻게 결핍감이 없었을까.
그런 결핍이 없었다면 예수는 100% 인간일 수도 없지 않을까.
그리스도교뿐 아니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도 유복자로 태어났다.
엄마의 배 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6세 때는 엄마도 세상을 떠났다.
무함마드 역시 뿌리에 대한 결핍을 안고서 자랐다.
누구에게는 그 고통이 독이 되고, 또 누구에게는 그 고통이 약이 된다.
그런데 인간의 삶에서 존재의 뿌리에 대한 결핍만큼 강력한 엔진도 별로 없지 싶다.
삶과 죽음 그리고 영원에 대해 스스로 되묻게 하는 추동력 말이다.
싯다르타 왕자는 어린 나이에 ‘죽음’을 사유했을 터다.
엄마의 죽음을 통해 사람의 죽음을 궁리했을 터다.
그런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도 내다보지 않았을까.
결국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그 너머의 무언가를 찾으려 하지 않았을까.
룸비니 동산에는 이중주의 선율이 흘렀다.
붓다의 탄생과 엄마의 죽음, 기쁨과 슬픔의 선율이 동시에 흘렀다.
내 삶에 생겨난 가장 큰 구멍이, 내가 지나야 할 가장 큰 언덕을 뛰어넘게 한다.
나는 룸비니 동산을 떠나 카필라 성으로 갔다.
싯다르타 왕자가 자라난 궁이 있던 곳이다.
룸비니에서 버스로 40분 정도 거리였다.
2500년 전의 성이니까, 남아 있는 번듯한 건축물도 없었다.
대신 카필라 성이 있었던 벽돌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출처:중앙일보]백성호: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