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East Sea의 부활
박봉옥
한자 名은 이름을 뜻하고, 부수인 夕은 저녁을, 口는 입을 뜻한다. 원시적에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사방이 캄캄해서 사람이 보이지 않아 소리를 질러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리거나 가족을 찾을 때 부르는 게 이름의 원초다. 사전을 펼쳐보니 이름이란 어떤 사물이나 단체를 다른 것과 구별하여 부르는 일정한 칭호라고 적혀 있다. 아무튼 명문, 명사, 명산, 명약, 명의, 명작, 명절, 명창 등의 단어에서 보듯이 명자가 앞에 붙으면 이름날 정도로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이름이 없으면 아예 존재 가치가 없다.
2014년 2월 6일 한반도 동쪽에 있는 바다, 우리나라의 동해가 국제적으로 이름을 다시 찾았다. 미국 버지니아주 의회가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East Sea)와 일본해(Sea of Japan)를 병기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법안은 주지사의 서명을 거쳐 오는 7월 1일부터 발효되지만,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는 버지니아주의 한인 사회와 역사의 정의를 제대로 인식한 주 의원들이 노력한 결과이다.
유엔이나 국제수로기구에서 명칭에 대해 관련국간 합의를 보지 못할 경우 병기할 것을 건의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지만 실제 해당 국가들 뿐만 아니라 제3국에서도 자국의 논리에 따라 정의롭게 실현되지 못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일본이 일본해라고 부르듯 당연히 동해를 한국해라고 불러야 옳은 게 맞다. 하지만 우린 애국가를 통해 마르고 닳도록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불렀으니 동해가 더 익숙하다. 동해 병기 법안 통과는 비단 미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처음 있는 사례여서 국제적으로 동해 명칭이 확산되는 중대한 기점으로 평가된다.
버지니아주 하원의 마크 김 의원은 “한국은 104년 전 시작된 일본의 강점으로 35년간 그들의 언어인 한글과 한국이름 등 모든 것을 잃어야했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했는지 내 부모님은 당시 얘기를 하는 것을 꺼릴 정도다. 이렇게 발언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없던 상황에서 바다 이름 역시 강제로 바뀐 것”이라고 한국인들에게 동해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웅변하였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남의 땅을 강제로 점령하고 우리의 말과 글을 쓸 수 없게 하고 심지어 나라 이름과 개인의 이름까지 빼앗긴 암울한 역사가 있었다. 그것 뿐인가 그네들은 총칼로 우리 민족을 얼마나 해쳤는지 모른다. 우린에겐 핍박과 억압으로 가득 찬, 몸과 마음을 빼았겼던 치욕스런 일제 강점기가 있었다.
버지니아주에서 동해 병기 운동을 주도해 온 ‘미주 한인의 목소리, VoKA’의 피터 김 회장은 회견을 통해 “어느 날 초등학생 아들이 ‘일본해’라고 하더군요. 꾸짖었더니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는데 왜 그러느냐, 교과서에도 그리 돼 있다.’고 말하는 걸 듣고 ‘아차’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그런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다. 1985년 겨울쯤으로 생각된다. 서생에서 동해남부선을 타고 부산으로 볼일이 있어 나가는 그때 나와 같은 칸에 일본인이 동승하고 있었다. 아마 그 일본인 가족은 아이들의 방학을 틈타 한국에 여행온 것같았다. 가장인 듯한 남자는 나와 같이 비좁은 열차 칸에 서서 스쳐가는 차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좌석에 앉아 있었다. 열차가 일광을 거쳐 기장, 송정을 지나면서 햇살에 눈부신 푸른 바다가 한없이 펼쳐졌을 때다. 그 일본인은 가족들을 향해 차창 밖에 막 펼쳐진 동해의 장관을 보라고 손짓했다. 동해의 검푸른 모습에 감탄을 한 듯 탄성이 터져 나왔을 때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일본인 가장은 지니고 있던 작은 수첩에 日本海라고 적어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를 지켜본 난 그 일본인에게 “캔 유 스피크 에이고?” 라고 영어를 할 줄 아느냐 하고 물었다. 그가 못한다고 답하자마자 난 그의 수첩을 다짜고짜로 달라고 하여 韓國海라고 크게 적고 건네주며 日本海가 아니라고 했다. 그가 나의 돌발적인 행동에 머쓱한 표정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오래전의 일이라 까마득하지만 아마 그네들은 재일교포였던 것 같았고 그래서 난 더욱 화가 났었다.
국제적으로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된 것은 1929년부터다. 바다 명칭을 정하는 IHO, 국제수로국이 처음 발간한 공식 해도집에 일본해로 단독 표기했다. 이 표기는 1953년 3차 개정판까지 유지돼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당시 한국은 식민 지배와 6·25전쟁을 겪으며 동해 명칭 문제에 어떤 입장도 내놓지 못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국가에는 동해가 나옵니다. 2000년 넘게 쓰여 온 동해 명칭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삭제됐습니다. 이제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2012년 2월 6일 낮 12시 40분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있는 주의회 의사당 본회의장에서 동해 명칭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인이 아니라 티머시 휴고 공화당 하원의원이었다.
사람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해 고민하고, 사람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빠짐없이 이름을 정해주고 붙여왔다. 심지어 저 멀리 우주의 별을 찾아서라도 이름을 붙여 존재를 증명했다. 그래서 고유명사라고 하지 않는가? 자신을 소개할 때에도 이름을 먼저 말한다.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기 이름에 먹칠하지 않고 명예롭게 살기위해 노력한다. 빼앗긴 동해의 이름을 반드시 찾아서 불러줘야 하는 게 우리의 소명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안일한 삶에 빠진 자신에 화두를 던지며 멀리서나마 버지니아주 한인 사회와 상하 의원에게 무한한 경의를 보낸다.
첫댓글 시사성과 국적이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최근에 감동적인 그 소식을 TV 뉴스로 들었습니다. 그런 사연을 담은 이여기를 에세이로 지금 읽으니 감회가 또 다르군요.
정말 한인 사회 큰 일 하셨네요. 애쓰시는 그들에게 감사하고 싶은 마음을 글로 전합니다.
잘 하셨습니다. 나라는 국민 한 사람으로부터 출발하는 거로군요.
첫댓글 시사성과 국적이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최근에 감동적인 그 소식을 TV 뉴스로 들었습니다.
그런 사연을 담은 이여기를 에세이로 지금 읽으니 감회가 또 다르군요.
정말 한인 사회 큰 일 하셨네요. 애쓰시는 그들에게 감사하고 싶은 마음을 글로 전합니다.
잘 하셨습니다. 나라는 국민 한 사람으로부터 출발하는 거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