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연산군 시대를 그린 유명한 역사소설 <금삼의 피>를 읽어보면 한을 품은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성종의 후궁으로 있던 윤씨와 정씨 중에서 윤씨가 연산군을 낳고 왕비로 책봉된다. 그러나 왕이 정씨를 더 아끼게 되자 두 여인은 서로 질시하여 부적 등을 사용하여 상대를 헤치려 한다. 이러던 중 윤씨는 성종과 말다툼 끝에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어 정씨 일파에 의해 폐위되고 끝내는 사약을 받게 된다. 이때 윤씨는 피를 토한 손수건을 연산군이 왕이 되면 전해달라고 유언을 남기고 한을 품고 죽는다. 세월이 흘러 연산군이 왕이 되자 그는 먼저 억울하게 죽은 생모를 다시 복위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대왕대비나 대신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갈등을 겪게 된다. 결국 연산군은 무오사화를 일으켜 폐위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귀양을 보내게 된다. 여인의 한이 결국은 피를 부른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제2화: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가 2003년에 쓴 <빠리의 나비부인>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우리나라 최초로 프랑스에서 오페라 가수가 된 재원으로서 정명훈씨가 상임지휘자로 일한 바스티유 오페라단에서도 활약하였다. 그 책에서는 여의도의 대형교회 목사님이 1993년 5월 어느날 빠리에서 우연히 저자를 만나게 되고 그만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기구한 사랑은 1년을 가지 못하고 끝이 나는데, 그만 목사님이 여인에게 한을 남기고서 헤어지고 말았다. 한을 품은 이 여인은 헤어진지 10년이 지나서 기막힌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글로 상세히 밝혀 유명한 목사님을 곤혹스럽게 하였다. (대형교회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혐의없음’이라고 면죄부를 주었고, 책은 모두 수거되어 구하기가 정말 힘들다.)
제3화: 우리는 흔히 ‘카사노바’라고 하면 여자들을 울리는 나쁜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알고 있지만, 그의 전기를 읽어 보면 그렇지가 않다. 그는 키가 크고 잘 생겼는데, 17살에 법학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천재였다고 한다. 그는 피아노를 잘 치고, 잡기에 능하고, 화술이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가 여자를 만날 때에는 멋진 정장을 하며, 분위기 좋은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가장 좋은 음식과 비싼 포도주를 시키고, 여자에게 정성을 다 바쳤다고 한다. 그가 사랑한 여자는 모두 129명이었다는데, 헤어진 후에 카사노바를 원망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고 오히려 카사노바와 사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는데, 어쨌든 여자와 헤어질 때에도 항상 최선을 다해 여자를 배려하였다고 한다.
제4화: 현대그룹을 창업한 고 정주영 회장이 여색을 좋아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여자를 접하되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존중했던 것 같다. 그는 여인이 아이를 낳으면 기꺼이 호적에 올려주고, 여인이 돈을 원하면 평생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후대하였다. 그러다가 뒤늦게 정치에 발을 들여놓고 대통령 후보까지 되었다. 공직에 출마한 후 어느 날 기자가 물었다. “후보께서는 여자 문제가 복잡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 말씀 해 주시죠” 그는 간단히 대답했다. “그래서, 나에게 서운한 여자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세요.” 이 한마디로 그의 여자문제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았다.
남자로서, 공직에 있는 사람이나 공직에 나서려는 사람은 여자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삼국지에도 나오는 구절이지만 자고로 “영웅은 호색”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남자가 조심할 것은 여자를 접하되 결코 서운하게 하지 말 것이며, 더욱이 한을 품게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무시무시한 말이 있지 않은가?
첫댓글 총장님,
지금까지 총장님 읽으시라고 39개의 글을 써서 올렸는데, 그동안 마음 고생이 심하셨을 것입니다.
총장님이 회사 사장이었으면 이러한 글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총장 자리는 경영능력 외에도 학식과 덕망이 요구되는 매우 명예로운 자리이며,
그에 걸맞게 높은 인격과 도덕성을 요구받는 자리입니다.
저희들은 오랫동안 수원대의 현실에 실망한 끝에,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고 공적인 정의감에서 교협을 만들었습니다.
교협 출범 이후 상생을 목표로 대화하자고 3달 동안이나 외쳤습니다.
저희들은 총장님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 카페를 만들고 이러한 글을 쓴 것입니다.
총장님, 대화합시다.
대개 저는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씁니다. 그런데 오늘 2시쯤 학교에 도착해 보니, 직원들이 오전 11시 40분에 배재흠 교수 연구실로 몰려와 1시간 동안 "나와서 사과하라" "교협해체하라"고 외치며 시위를 하고 갔다고 합니다. 오후 2시에 다시 온다는 말에 그만 배재흠 교수는 학교를 나와 버렸고, 이 소식을 들은 저도 학교를 나와 버렸습니다.
평소와 달리 집에 일찍 와서, 이 글을 작성하고, 오후 4시 50분에 글을 올렸습니다.
이 글이 제가 올리는 마지막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원영 교수는 다행히 오늘 외부에 있어서 직원들의 시위를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장비가 학교에 있었더라면 한바탕 큰 싸움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어디선가 냄새가 납니다. 그 무엇인가 정확히 들리지는 않지만 아주 작은 소리가 메아리칩니다.
"나도 있어요... 나도 당신들 배에 태워주세요.... 함께 하면 무서울게 없어요...." 하네요.
누군가는 오늘부터 잠자리 힘들겠습니다.
이 좋은 소식.. 이뭐꼬님 감사합니다. 소식이나 만남이 이루어지시면 꼭 부탁드립니다. 우리들도 소식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누구를 믿고 따라야 할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니까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분이 당한 실화와 유사해 신기합니다..!
이제 영화감독뿐 아니라 영화제작자들도 수원대 교협 카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겁니다.
애증의 문제까지 더해지면 흥행은 이미 보증수표이니까요,
정말 양파처럼 까면 깔수록 새로운 것들이 튀어나오니 이야말로 요지경입니다.
와우리 왕국도 우리가 자주 본 멜로드라마와 똑같은 순서를 밟아 몰락하는군요.
사람의 일생은 끝이 좋아야 전체가 다 좋은 건데, 결국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부끄럽게 막을 내리는군요.
이제 더 이상 상생을 말할 수 없습니다.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나 날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