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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 강규빈, 안재준, 정도제, 정승후, 차원, 정지영
자~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수업이 시작되었어요.
디킨스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구두쇠 스크루지를 떠올려요.
아니... 디킨스는 잘 몰라도 구두쇠 스크루지는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예요.
스크루지가 등장하는 디킨스의 작품은 <크리스마스 캐럴>이에요.
이 작품은 몇 년 전에 코믹 연기로 정평이 나 있는 짐 캐리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로도 만들어졌죠.
디킨스의 또 다른 유명한 작품으로는 <위대한 유산>이 있어요.
이 작품도 에단 호크, 기네스 팰트로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지요.
이렇게 자주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찰스 디킨스는 영어권 국가에서는 '엄청나게(정말 정말 엄청나게)' 인기 있는 작가예요.
디킨스를 무척 사랑해서 평생 디킨스 소설만 읽고 또 읽고 하는 게 로망인 독서가들도 많을 정도예요.
최근에 만들어진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의 아버지가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 수 있는 타임 슬립 능력을 갖고 있는데,
아들이 시간을 되돌려서 뭐 하는 데 썼냐고 물어보니까,
"디킨스 소설을 읽는 데 썼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만큼 디킨스는 인기가 있고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예요.
하지만 한국에서 디킨스는 그렇게까지 인기 있는 편은 아니에요.
번역된 작품도 (디킨스의 수많은 작품들을 감안하면) 별로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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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두 도시 이야기>는 디킨스 작품 중에서 가장 어려운 작품, 가장 디킨스답지 않은 작품으로 꼽혀요.
비평가들은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이나,
문체가 건조하고 간결한 점, 전체적인 분위기가 음울하고 비장한 점 등등을 이유로
이 작품이 '디킨스답지 않다'고 이야기해요.
여러분도 이런 점 때문에 소설이 좀 어렵다고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평론가나 여러분이나 느끼는 건 비슷하죠?
그래서인지...... 많은 멤버들이 정해진 분량을 다 읽지 못하고 왔어요.
2부 9장까지 읽어오기로 했는데, 1부만 읽어온 멤버들이 많았어요.
"무슨 이야긴지 잘 감을 못잡겠다"는 감상이 많았고요.
사실...... 이런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어요.
그럼에도 독서 리스트에 <두 도시 이야기>를 넣은 이유는,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좀 어려운' 소설들도 접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에요.
이 세상에는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읽히고 싶어하는 책들'이 있어요.
'청소년 추천도서' '권장도서'라는 걸 들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각 유명 대학에서 목록을 선정하기도 하고, '미국 대학에서 읽는 책'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해요.
플로베르, 도스토옙스키, 셰익스피어, 카프카... 뭐 이런 작가들의 책이지요.
이름도 못 들어본 작가들의 책들도 많고요.
이런 책들 중에 상당수는 사실...... 읽어보면 그닥 재미는 없는 경우가 많아요.
일단은 좀 난이도가 높다는 이유가 있죠.
예를 들어 <두 도시 이야기> 같은 경우에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것에 대해 좀 알아야 하고,
'혁명'이란 무엇인가, '혁명'이란 어떤 것인가,
'혁명'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등등의 고민을
한번 쯤은 깊게 해본 사람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한국의 학생들, 청소년들이 '혁명'에 대해 깊이 고민할 기회는 그리 많지가 않죠.
뭐 사실 어른들도 마찬가지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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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작품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어요.
이해는 잘 안 되지만 괜히 펼쳐들고 싶은 작품,
읽고 있으면 왠지 폼 나는 것 같은 작품...
바로 <두 도시 이야기>가 그런 작품이에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그런 작품이에요.
셰익스피어의 <햄릿>, <리어 왕> 같은 작품도 그런 작품이죠.
위에서 말한 작품들은 여러분이 '권장도서'로 자주 들었을, 또 직접 읽기도 했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작품과는 달라요.
<두 도시 이야기>는 여러분이 책 읽기에서 한 단계 레벨-업 되어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에요.
여러분이 지하철에서 이동 중에 <두 도시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책 좀 읽는다는 어른들은 여러분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 거예요.
남들에게 "나 책 좀 읽는 사람이다" 라는 티를 낼 수 있는 작품인 거죠.
수업 시간에 <두 도시 이야기>의 있어보이는 표지들을 소개해봤어요.
바로 아래의 것은 한국판의 표지이고, 그 아래의 것은 영어 원서의 표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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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요?
우리는 '내가 재밌어서', '내게 도움이 될 거 같아서' 책을 읽는다, 라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따져보면 '뭔가 있어보이기 때문에', '폼이 나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경우도 많이 있어요.
책을 읽는다는 것, 즉 독서 행위는 의외로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어요.
이런 게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남들 눈에 멋져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다보면 실제로 멋진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면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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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업 시간에는 1부 내용만 간략히 다뤄봤어요.
그리고 작품의 배경인 '프랑스 혁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프랑스 혁명'에 대해 멤버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프랑스 혁명'에 대한 느낌은 어떤지를 물어보았어요.
마침 학교에서 지금 배우고 있는 내용이라고 해요.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그닥 재미가 없었다는 말이 나왔어요.
우리하고는 별 상관 없는 남의 나라 이야기, 라는 생각이 든다는 말도 나왔어요.
재작년에 개봉해서 큰 인기를 끈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이 프랑스 혁명을 그린 영화여서,
영화 이야기를 좀 해봤어요.
그런데 수업 자료에도 써놨지만, <레 미제라블>의 배경이 되는 혁명은 1830년의 혁명이에요.
프랑스에서는 큰 혁명만 세 번이 일어나요. 1789년, 1830년, 1848년.
<두 도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혁명은 1789년의 혁명이죠.
아마 이렇게 설명을 해도 그게 뭐 중요한 차이인가... 아 몰랑~ 이라고 생각하는 멤버들이 많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냥 "프랑스에서는 한 60년 사이에 혁명이 아주 자주 일어났다"고 알고 넘어가는 걸로 충분하다 하겠어요.
반면에 같은 기간에 영국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죠.
이렇다는 사실을 알고 넘어가는 게 왜 중요하냐면,
이게 <두 도시 이야기>에서 '두 도시'의 차이와 연관되기 때문이에요.
'두 도시'는 '런던'과 '파리'죠. (여러분도 이쯤은 이제 알죠?)
그런데 '파리'는 혁명의 도시, 혼란의 도시, 격동의 도시, 폭력의 도시, '비밀을 폭로하는 도시'이고,
반면에 '런던'은 안정의 도시, 은행가의 도시, 법 질서의 도시, '비밀을 존중하는(혹은 은폐하는) 도시'예요.
작가 디킨스는 이렇게 서로 다른 두 도시의 성격을 설정해놓고 이야기를 풀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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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혁명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같기 때문에, <레 미제라블> 영화를 본 기억을 되살려
'혁명'에 대한 이미지가 어땠는지를 물어보았어요.
많은 멤버들이 '혁명 장면'은 그닥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요.
그보다는 장발장이나 코제트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어요.
영화 <레 미제라블>의 혁명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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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 단순한 배경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
이것이 어쩌면 소설이라는 문학 형식의 문제점일지도 몰라요.
<레 미제라블>은 좀 덜한 편이지만, 디킨스는 확실히 혁명보다는 사람의 이야기,
그 중에서도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거든요.
그런데 바로 그런 덕에, 이 <두 도시 이야기>라는 소설이 지금까지 2억 부가 넘게 팔린 것이겠죠.
한국의 세계사 교육 과정에서는 '프랑스 혁명'을 굉장히 호의적인 시선으로 다뤄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들인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실현한 계기가 되는 세계사적 사건이라는 거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그래서 프랑스 혁명이 더 이상 시험문제로 안 나오는 상황이 되면),
그때부터 '혁명'에는 거의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아요.
사실 '혁명'과 같은 건 되게 큰 이야기, 사회적인 이야기라서 자발적인 관심을 갖기 힘든 건 있어요.
솔직히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일,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사회적인 이야기, 정치적인 이야기는 멀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죠.
괜히 '사회 정의'라는 것이나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앞으로 나섰다가
결국 나만 피해보고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는 면이 있어요.
그런데 '혁명'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 '국가', '공권력', '지배층'과 맞서 싸워요.
그러다가 죽기도 하죠. 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걸까요?
왜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던 걸까요?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그런 건 나와는 관련 없는 일, 으아...... 뭐야 몰라 무서워,
혁명 같은 게 일어나면 어디 도망가서 몰래 숨어 있을래,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이 간극(gap)을 이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거예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혹시 '혁명'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우리는 각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결론적인 선택과는 별개로, 선택을 하기까지
한 사람의 마음 속에는 서로 상반되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 수 있어요.
"무섭지만... 나도 싸워야 하지 않을까? 그게 옳은 일이 아닐까?"
"그래도 일단 살아남아야 하지 않을까? 도망가서 숨어 있자!"
"이야... 이건 기회야! 부자들, 귀족들을 터는 데 앞장서서 내 이익부터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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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킨스의 소설을 읽는 이유는 바로 위와 같은 '내면의 갈등'을 잘 묘사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내적 갈등을 직접 조명하는 건 아니고,
여러 갈등들을 캐릭터화 시켜 전형성을 지닌 인물들로 표현을 했죠.
그래서 내적 갈등 자체가 부각되는 현대 소설들보다는 훨씬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어요.
'혁명'은 아주 큰 사건이고, 잘못 휘말려들면 까닥하는 사이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거대한 폭력의 흐름'이에요.
'보통의 한 사람'이 이 흐름에 휘말리게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죠.
'당당하게, 용감하게 맞서 싸운다?' 이건 정말 말이 쉬운 거죠.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고, 행복도 누구나 꿈꾸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포기하고 당당히 싸우기를 선택하는 것은 정말 쉽지가 않죠.
마음 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휘몰아치는 게 당연하죠.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거대한 혁명의 흐름에 휩쓸린 개인들의 이야기를 아주 잘 서술하고 있어요.
거대한 혁명의(역사의) 흐름.... 여기에 휘말리게 되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지금의 한국은 '혁명의 시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글쎄요......
지금도 어떤 거스를 수 없는 급격한 변화가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는 멤버들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개인의 힘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혁명의 흐름 속에서 루시 마네트, 찰스 다네이, 시드니 카턴, (루시의 아버지인) 마네트 박사, 은행원 자르비스 로리 씨, (프랑스인) 드파르주 씨와 그의 부인 등이 소설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더 중요하게는 그 선택을 하기까지 어떤 갈등을 하는지를 잘 살펴보길 바라요. 그러면 이 소설을 좀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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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킨스는 <두 도시 이야기>에서 '있어보이는' 서술들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어요.
작가 디킨스도 우리 독자들처럼, 좀 '폼을 잡고' 싶었던가 봐요.
많은 '폼 잡는' 서술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첫 문장은 세계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첫 문장으로 꼽히고 있어요.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무엇이든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
또 다음과 같은 대목도 있어요.
곰곰이 생각해 봐도 신기한 사실은,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는 심오한 비밀을 간직한 수수께끼 같은 존재라는 점이다. 밤에 대도시에 갈 때면, 어둠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집마다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리라는 엄숙한 생각이 든다. 그뿐인가. 집 안의 방마다 비밀이 있으며, 그 방에 살고 있는 수천 수백 명의 가슴속에서 고동치는 심장은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도 상상하지 못할 비밀을 품고 있다. 그런 면에서 두려운 어떤 것, 심지어 죽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이제 나는 애지중지하는 책을 펼칠 수도 없고 끝까지 읽겠다는 희망도 품지 않는다. 섬광이 비치면 깊은 물속으로 보물과 가라앉은 다른 물건들도 더는 보이지 않는다. 한쪽밖에 읽지 못하고 홱 덮어버린 스프링으로 제본한 책도 영원히 그렇게 덮여 있을 것이다. 햇빛이 아무리 수면을 희롱해도 물은 빙판 아래 영원히 갇혀 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물가에 서 있었다. 내 친구도 죽고, 내 이웃도 죽고, 내가 목숨 바쳐 사랑한 연인도 죽는다. 죽음은 저마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비밀을 변함없이 공고화하고 영속화한다. 나 역시 내 비밀을 죽는 날까지 가져갈 것이다. 그렇다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보다 내가 지나가는 이 도시의 무덤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는 더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아니, 나 자신도 이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닐까?
뭔 소린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있어 보이는' 표현들이 마구 나오죠?
작가 디킨스가 '허세 본능'을 못 이기고 독자들 앞에서 막 잘난 척 하는 표현들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디킨스가 훌륭한 것은 저렇게 있어 보이는 떡밥들을 던져 놓고 나중에 떡밥 회수를 아주 잘 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위대한 작가', '단지 훌륭한 작가일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라는 별칭을 얻은 것이겠죠.
이번에 우리가 읽은 대목인 1부에서 2부 9장까지는 작가가 막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으면서 이런 저런 '떡밥'들을 던져 놓은 대목이에요. 이제 다음 시간에 읽을 대목부터는 차근차근 떡밥이 회수되면서 디킨스의 진가가 드러나게 됩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역시 '어렵다'는 첫 인상을 받은 작품을 막 쉽게, 재밌게 읽을 수는 없으리란 생각이 드네요.
그렇지만 쉽게 포기하진 말도록 해요.
다른 한편으론, 한 번 읽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너무 조바심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이 책을 읽고 우리가 뭐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해가 안 되면 나중에 또 읽으면 되는 거니까요.
영화 <어바웃 타임>의 아버지는 인생을 몇 번이나 되돌려서까지 디킨스를 읽고 또 읽었다잖아요.
여러 작품들을 읽다보면 여러분에게도 그런 '내 인생의 작가'가 한 명 쯤 생길지도 모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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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프랑스 혁명을 소재로 한 유명한 그림들을 함께 살펴봤어요.
자크 루이 다비드, <테니스 코트의 선서> (1790)
그림의 역사적 배경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그림 자체를 그냥 찬찬히 들여다 보면 어떨까 해요.
앞서 말한 '혁명은 거대한 혼란의 소용돌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그림에서 국회 회의장에서의 혼란상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를 확인해보길 바라요.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
제작년도를 보면 알겠지만, 이 작품도 1789년 혁명이 아니라 1830년의 혁명을 그린 것이에요. 하지만 '프랑스 혁명'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아주 유명한 그림이죠. 화면 중앙의 자유의 여신은 미국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의 모델이 되었다고 해요. 여신인데, 전혀 여신 같지가 않고 평민 여상의 차림을 하고 있다는 게 포인트. 그리고 '승리'의 이미지 아래에 처참한 '죽음'의 이미지가 깔려 있다는 것도 포인트. 누군가는 혁명을 이끌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속절없이 죽임을 당하죠.
이 작품도 이런 저런 배경 설명은 그냥 한 번 읽어만 보고 잊어버려요. 중요한 건 그림 자체를 한번 찬찬히 살펴보는 것!
루이 16세의 처형 장면. 작자 미상의 그림인데, 이 잔인한 그림은 프랑스 혁명의 밑바닥에 깔린 사람들의 잔인한 심리를 잘 드러내고 있어요. 수업 시간에도 설명했지만, 왕이 아니더라도 한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공개적으로 한다는 것은 무척 잔인한 일이죠. 요즘 식으로 생각하면 처형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하고, 그걸 전 국민이 지켜보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요. 당시 프랑스에서는 이런 식의 공개 처형이 성행했는데, 이 점을 디킨스는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소설에서 비판하고 있어요.
요건 그림만 보면 "아니, 뭐 이런 잔인한 그림을...?!!"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으니까, 배경 설명이 필요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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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재밌게 읽었어요.
참 이야기가 술술 읽히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짚어주시네요.
시로샘~~정말 고맙습니다.
럴수럴수 이럴수~~~! 두 도시 이야기 다시 읽고 싶어졌어요.
가히 혁명을 이끄는 후기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