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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은 내 나이가 70이 되어 칠순을 맞이한 해였다. 삼성전자에 취직해서 수원에서 생활하고 있던 딸 해지가 아빠 칠순을 성대하게 지내게 하고 싶었던지, 나름대로 계획을 하고 있었던 같았다. 알래스카 크루즈여행을 하게 해 주려고 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원치 않았고, 여건이 여의치 않아서, 직장에서 일주일간 휴가를 내고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행이 끝나고 여행비로 준비해 놓은 것 같은 돈 500만원을 현금으로 주기도 했다. 의외의 거금을 받으면서 대견한 딸의 모습을 본 것 같아 흐뭇하기도 했다.
그 때 기록해 놓은 여행일지가 저장되어 있어서 옮겨본다.
★칠순여행 1 2008. 10. 15(수) - 21(화)
금년에 칠순이 되기에 날짜는 아직 며칠 남았지만 좋은 계절에 기념여행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딸과 의논한 것이 이번여행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15일 수요일에 우선 딸이 거주하고 있는 수원에 갔다. 오후 2시50분 무궁화열차를 이용하여 오후 7시경 수원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딸을 만나 딸이 거주하는 원룸으로 갔다. 아내가 준비한 찰밥과 딸이 준비해 놓은 밥과 고기로 오붓한 저녁식사를 했다.
16일 에는 수원에서 오전 9시에 출발하는 춘천행 버스를 이용하여 11시 반경에 춘천에 도착했다. 날씨가 좋지 않았다. 계속 안개가 끼어서 시야가 흐리므로 좋은 산천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 춘천에 도착하면 춘천 MBC가 위치한 높은 곳에 올라 호반의 도시 춘천의 경관을 구경하기로 했으나 안개 때문에 포기하고 택시를 이용하여 곧바로 소양강댐으로 갔다. 유람선을 이용하여 인제까지 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유람선 노선이 없었다. 없어진지가 10년도 넘었다고 했다. 가을에 그 유람선을 타고가면서 아름다운 단풍구경을 했던 것이 10년도 더 된 이전의 일이었던가 보다. 두 번이나 이용했었는데 아쉬웠다. 이익이 없어 폐지 된 노선이라 했다. 자동차도로 사정이 좋아지고 승용차를 가진 사람이 많아 유람선을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소양강 주변을 돌아오는 유람선만 있었다.
댐 주변을 구경하고 닭갈비와 막국수로 점심을 먹은 후,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고 춘천터미널로 나와야했다.
춘천에서 속초까지는 두 시간이 못 걸렸다. 옛날과는 전혀 다르게 도로가 4차선으로 확 포장되고 직선화되어 있었다. 한계령을 넘어가며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한다는 것은 옛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미시령고개에 미시령터널이 만들어져 있어서 터널을 지나니 바로 속초시내였다. 아름다운 산과 단풍구경의 양이 훨씬 줄어들었다. 승용차로는 옛 도로를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속초에 오후 5시경 도착하여 척산 온천으로 갔다. 척산 온천장에 7만원 주고 숙소를 얻어 놓고 주변식당에서 순두부백반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맑은 두부국이었다. 우리지역 순두부를 생각하고 시켰는데 전혀 틀리다. 남도지방 음식이 최고라는 말이 실감되었다.
저녁식사 후에 온천탕에서 목욕을 했다. 방을 얻으니 온천탕이용은 자유였다.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이용했다.
17일 아침에는 늦으막히 일어났다. 아침식사는 온천장식당에서 된장찌개로 간단히 먹고 설악산으로 갔다. 9시 반경 설악산에 도착하여 먼저 권금성에 가기위해 케이블카 표를 구입했다. 11시 15분에 이용할 수 있는 표를 구입했다. 설악산주차장으로 몰려드는 자동차 행렬이 꼬리를 물고 있었고, 벌써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평일인데도 좋은 계절 탓인지 자동차와 사람들이 얽혀 복잡했다.
우리는 케이블카 시간이 될 때까지 신흥사를 구경하기로 했다. 절 입구에 커다란 불상이 우선 구경거리였다. 절은 조그만 했다. 대웅전이 없고 아미타불을 모신 절이기 때문에 극락보전이 중심이라고 하고 제일 큰 건물이었다. 생각보다는 소규모의 사찰이었다. 전에는 지나만 다녔기에 그 크기를 모르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5분 간격으로 50명씩 타고 내리는 케이블카 두 대가 쉼 없이 움직인다. 권금성에 오르니 거기에도 사람이 많다. 권금성정상에 오르는 길은 계단과 나무길 등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정상에 오르는 약 50m 정도의 길은 급경사 바위 길로 네발을 사용해야 되는 위험한 길이다. 높이가 921m인 최정상에는 적십자봉사대원들이 상주하면서 안전한 등반을 돕고 있었다. 아내와 나도 정상에 다녀왔다.
권금성에서 바라다 보이는 설악산은 아름다웠다. 중봉과 공룡능선이 멀리보이고, 지척에 아름다운봉우리들이 널려 있다. 사진배경으로 좋은 곳이 너무 많았다.
권금성에서 내려와 비선대에 갔다. 포장된 넓은 도로가 평지 같아서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다. 중간에 식당이 있어서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오고가는 사람들로 도로가 가득하다. 숲길을 한참 걸어간 후 계곡을 만나고, 아름다운봉우리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비선대를 지나면 금강굴에 갈 수가 있고, 천불동계곡을 지나 대청봉까지 갈 수도 있다. 오색에서 대청봉에 올랐다가 천불동계곡을 따라 하산한 경험이 있어서 그때 고생했던 기억이 새로웠다. 이번여행은 비선대까지였다.
설악산 구경을 마치고 시내버스로 속초시내에 나와서 강릉행버스에 올랐다. 어두운 시간에 강릉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곧바로 경포대에 갔다. 목포-완도 이름이 붙은 식당에 들어가 저녁식사로 회를 먹었다. 식당 종업원에게 숙소를 이야기했더니 소개해 주겠다고 한다. 소개 받은 숙소가 괜찮았다. 4만원을 주고 숙소를 정한 후 바다를 찾아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바다는 보이지 않고 횟집과 모텔들만 즐비하다. 어느 도시를 걷는 것 같았다. 얼마를 헤매다가 해수욕장바다를 찾았다. 해수욕장 주변은 전부 나무판자로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었다. 판자로 된 길을 따라 많이 걸었다. 달도 밝은 좋은 밤이었다.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었는데 처음에 길을 잘못 찾아 주변의 번화가를 걸었지만 그것도 괜찮았다고 우리는 이야기했다.
18일 아침에는 해가 6시20분에 뜬다고 했다. 나와 아내는 6시경 방을 나와 바닷가로 나갔다. 날씨가 맑지 않아 기대가 되지 않았지만 바닷가에 나가서 판자로 된 산책길을 걸으며 사진도 찍고 했다. 해가 바다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것을 보아야 장관인데 7시경에 구름 속에서 나오는 해를 맞이해야 했다. 그렇게라도 해를 볼 수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경포대 나주식당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고 강릉시내에 나와 동해행 버스에 올랐다. 동해에는 특이하게 시내에 동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과연 천곡천연동굴이 시내에 있었다. 상당히 길고 아기자기한 종류석들이 볼만 했다. 굴을 구경했으니 더 이상 갈 곳도 마땅치 않아 귀로에 오르기로 하고 터미널에 가니 마침 13시 서울 강남행 고속버스를 탈 수 있었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 없어 중간에 휴게소에서 김밥과 빵으로 대신했다. 주말이기에 교통이 혼잡하려나 염려했는데 비교적 좋았다. 날씨도 좋아서 주변에 아름다운 단풍을 비롯한 경치들을 차창 밖으로 구경할 수 있었다. 버스전용차선이 좋았다. 6시 반경 서울에 도착하여 지하철로 강남역에 가서 수원행 버스를 타고 딸의 방으로 갔다.
다음날인 19일은 주일이었다. 예배드릴 곳을 생각하다가 딸이 다닌 적이 있는 양재온누리교회에 갔다. 11시 30분 3부 예배에 참석했다. 하용조 목사가 설교했다.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기며 지금도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 분의 설교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히브리서 11:7을 본문으로 “노아의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요약해보면, 믿음에는 3단계가 있다고 한다. 1).아벨의 믿음(히 11:4):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는 믿음, 피의 제사는 죄사함 받음을 의미. 2)에녹의 믿음(히11:5);하나님과 한순간도 막힘이 없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서의 믿음. 3)노아의 믿음 : 믿음으로 지구의 종말을 인식, 불가능한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창6:8,9), 세상에서 예외 된 인물, 의로운 사람, 완전한 사람,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 불가능한 것을 믿을 때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데 우리는 도망하기 때문에 기적을 볼 수 없다는 것. 노아는 동력도 키도 없는 배를 산 위에다 지으라는 전혀 불가능한 일을 믿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배를 만든 것. 노아는 1) 하나님의 경고로 전혀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을 믿고 현재를 중시했다. 2)자기 집을 구원했다. 구원에는 개인, 가족, 사회, 인류구원이 있으나 중심은 가족구원임. 3)경외함-경건한 두려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음 4)방주를 지음-믿음으로만 가능한 일, 끝까지 순종한 것이 노아의 믿음이었다.
예배가 끝난 후 지하철을 탓고 경복궁역에서 내려, 5분 거리에 있는 유명하다는 토속촌삼계탕집에 갔다. 2시경이었는데도 문 앞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도 맨 뒤에 섰다가 차례가 되어 삼계탕을 먹었다. 유명하다는 의식 때문인지 맛이 있었다.
점심식사 후에 억새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하늘공원에 갔다. 지하철 올림픽역에서 내려 상암올림픽 축구경기장이 있는 곳으로 가니, 사람과 자동차가 많았다. 경기장에서는 축구경기가 열리고 있는지 응원함성이 들렸고, 올림픽공원을 지나 하늘공원으로 가는 길은 설악산에서 보다도 더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멀리 하늘공원에서 갈지자 모양으로 나무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멋있어 보였다. 오르는 길은 2차선 포장도로로 산을 빙 돌아서 올라갔다. 하늘공원 정상부근에 오르니 코스모스 밭과 억새가 장관이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발디딜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국화도 많이 있었다. 사람과 꽃과 억새, 모두를 풍성히 구경할 수 있었다. 하늘공원에서 내려와 바로 아래에 펼쳐진 올림픽공원을 산책했다. 인공호수인 듯한 곳에서는 분수가 여러 모양을 지으며 솟았고, 물에는 잉어가 놀고 있었다. 어린꼬마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많은 듯 아이들도 많았다. 아이를 적게 낳는다고 하던데 그게 아닌 듯 아이들이 많았다. 돌아오려고 버스를 타려하니 복잡했다. 어떻게 버스에 일단 올라서 어디로 갈 가를 정해야 했다.
수원에 갈 방법을 생각하다가, 서울역에 가서 기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서울역에 오니 8시 30분 대전행 무궁화열차에 수원까지 가는 표와 좌석이 있었다. 표를 구입한 후, 역 4층에 있는 식당에서 냉면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기차에 오르니 복잡했다. 입석이 많았다. 통로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20일에는 인천에 갔다. 먼저 월미도에 갔다. 늦게 출발했기에 점심시간이 되어 먼저 식당에 들어가 회초밥과 회덮밥을 시켜먹었다. 점심 후에 안개가 많아서 유람선 타는 것을 많이 주저하다가 탔다. 타기를 잘했다. 유람선 안에는 쇼를 하는 무대가 있어서 러시아 무용수들의 무용과 중국 써거스 같은 것을 보여 주었고, 관광객들이 어울려 춤을 추며 놀 수 있게도 했다. 유람선을 따라다니며 먹이를 받아먹는 갈매기 떼가 장관이었다. 건설 중인 영종대교가 있는 곳까지 왕복하는데 1시간 반 정도 걸렸다.
다음에 인천시내에 있는 차이나타운에 갔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차이나타운이라 했다. 100년 된 공화춘이라는 음식점에 가면 100년 전의 자장면 맛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찾아가 자장면과 만두를 시켜 먹었다. 이른 저녁식사를 한 것이다. 그런데 맛이 아주 좋았다. 100년 전의 것이 아닌 현대화 된 것이었다. 중국인 거리의 특색이라 할 수 있는 모습들이 약간 있기에 사진에 담아 보았다.
계단을 높이 오르면 좋은 공원도 있기에 올라가 보기도 했다.
우리는 수원에 도착하여 일단 방에 가서 목욕준비를 하고 다시 나와서 집근처에 있는 목욕탕에 가서 그 동안의 피로를 풀었다
21일은 집에서 아침식사를 간단히 한 후, 수원 딸의 집 가까운 곳 갈비 집에 가서 갈비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늦게 가면 차지가 안 되는, 한정 된 숫자만 받는 집이라 해서 일찍 가서이른 점심을 먹었다. 딸이 부모를 위해 특별휴가를 신청하여 함께 여행을 했기에, 흐뭇하고 고마운 마음이 더욱 여행을 만족하게 한 것 같다. 2시 35분 출발하는 무궁화열차편으로 딸의 배웅을 받으며 수원을 떠나 무사히 광주로 돌아 왔다.
★칠순여행 2 2008. 11. 13(목)-15(토)
칠순생일을 맞으면서 또 여행을 했다. 생일에 집에 있기도 뭐하고 잔치를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기에 좋아하는 여행을 하기로 한 것이다. 아내와 둘이서 2박 3일의 여행을 했다.
첫날인 13일, 11시 10분에 광주역을 출발하는 무궁화열차로 서대전에 갔다. 2시경 서대전역에 내려 역 앞에 있는 해장국전문 식당에 들어가 순두부해장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깨끗하고 우리지역과 같은 순두부찌개가 좋았다.
날씨가 청명한 가을 날씨다.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치루는 날인데 날씨가 따뜻하고 좋아서 수험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고, 여행길에 나선 우리에게도 쾌적한 기분을 선물해주는 날씨였다. 서대전에서 동부터미널까지 택시를 타고가면서 기사와함께 수험생들이 아주 시험을 잘 보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웃기도 했다.
대전에서 3시 30분에 출발하는 문경(점촌)행 버스에 올랐다. 옥천을 지나면서 대청댐 물길을 따라 상당거리를 가는 버스의 차창 밖 경치가 아름다웠다. 물과 주변 가을 산의 색이 예쁘게 보였다. 속리산이 있는 보은을 지나면서 옛 이야기를 아내와 나누었다. 1978년이었던 것 같다. 여수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2월 학년말방학기간인 2월 28일에 다섯 살인 아들을 데리고 속리산을 가기위해 여수에서 기차를 타고 서대전에 갔었다. 서대전역에 내리니 눈이 많이 오고 있었다. 속리산행 버스를 알아보았더니 눈 때문에 교통이 두절되어 갈 수가 없다고 했다. 할 수없이 다시 열차를 이용해 여수로 되돌아갔다. 대전까지 갔으니 유성온천도 있고 한곳에서 하룻밤 잠이라도 자고 갔으면 좋았을텐데 곧 바로 되돌아선 것이 바보 같았다고 아내와 이야기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그 때 못간 길을 오늘에야 간다고 했다.
점촌에 도착하니 오후 6시가지나 어두웠다. 문경온천이 있다는 문경읍으로 가는 버스로 바꾸어 타고 문경읍에 가서, 온천지역에 갔다. 종합온천탕과 기능성온천탕이 있었다. 숙박시설은 없고 목욕만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그것도 오후 8시에 마감한다고 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거의 8시가 가까워서였다. 온천욕을 할 수가 없었다. 근처 모텔에 숙소를 정하고 밖으로 나와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다음날인 14일 8시경 아침식사를 근처식당에서 간단히 하고 콜택시를 불러 문경새재공원에 갔다. 문경새재 길을 걷기 위해서였다. 한비야씨의 “바람의 딸, 우리 땅에서다”라는 책을 얼마 전에 읽었기에, 한비야가 걸었던 길을 우리도 걸어보자고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걸었다. 6.7km의 숲길이 돌이라고는 하나도 안 보이는 마사토로 된 부드러운 길이어서 걷기에 좋고, 날씨도 청명한 가을 날씨이고, 옆 계곡에서는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어 기분을 매우 상쾌하게 해주는 길이었다. 한비야씨는 신을 벗고 맨발로 걸었다고 했다. 우리는 차마 신을 벗지는 안했다.
공원입구에 선비 탑이 있고, 넓은광장에는 사과축제를 한 흔적이 그대로 있었다. 한 곳에 사과가 아직 주렁주렁 열려있는 사과나무 몇 구루가 있었다. 사과나무 아래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토끼 두 마리가 있고, 또 닭들이 많이 있었다. 줄로 울타리를 해 놓았지만 사과가 모두 손이 닿는 곳에 열려 있어서 곧 사과에 손이 가려는 유혹이 있었다. 우리는 유혹받기 전에 얼른 가자고 하면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먼저 현판 앞면에 주흘관, 뒷면에 영남제1관문이라고 한자로 크게 써 부쳐진 문을 지났다. 문 좌우로는 돌담이 길게 막아져 있었다. 곧이어 KBS사극촬영장에 갔다. 왕건, 대조영, 세종대왕 등의 드라마촬영장이다. 큰 동네를 연상케 하는 많은 옛집들이 있고 깨끗하게 관리가 잘 되고 있었다. 옛 관리숙소였다는 조령쉼터라는 초가집, 주막집, 실 폭포라 할 수 있는 조곡폭포, 조곡약수를 지나 제2관문인 조곡관에 도착했다. 다리를 지나 문이 있었다. 지금까지 함께 온 계곡이 끝나는 지점이다. 계곡을 계속 따라 5km를 오르면 주흘산정상으로 간다는 안내표시가 있었다.
평지와 다름없을 정도로 오르던 길이 2관문을 지나면서부터는 제법 경사가지는 오르막길임을 알게 했다. 옛 과거길이라는 표시가 있는 산길이 중간 중간에 있었지만 우리는 마사토로 된 큰길로만 걸었다. 옛 과거 길에 장원급제의 원인이 되었다고 알려진 책 바위가 있다. 책 바위에 정성을 드리면 소원성취를 한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써 부친 리봉들이 가득 붙어 있었다.
문경새재의 정상인 조령에는 조령관이라는 현판이 붙은 제 3관문이 있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백두대간봉사대라는 띠를 가슴에 두른 사람들이 봉지를 들고 청소봉사를 하고 있었다. 반대쪽에서 올라온 등산객들도 많았다. 반대쪽이 궁금했다. 어디로 내려가는 곳인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대중교통이 연결되는가 물었다. 시원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다. 모두 자기승용차나 버스를 가지고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아내와 나는 되돌아갈 계획이었지만 계획을 변경하여 반대쪽으로 갔다. 조령관문을 통과하니 백두대간조령탑이라 쓴 하얀 돌탑이 우뚝 서 있었다. 반대쪽은 충북 괴산 땅이었다. 경북 문경에서 괴산으로 넘어간 것이다. 문경 쪽과는 대조적으로 다소 경사가 급한 돌 모양으로 만든 시멘트로 도로가 포장되었고 자동차 출입이 자유로운 듯 승용차들이 조령 정상까지 올라와 있었다. 500m쯤 내려오니 제법 큰 식당도 있고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자동차로 편리하게 올라온 사람들 같았다. 40분정도 내려오니 고사리라는 동네가 나왔다. 가게 아주머니에게 안동에 가기위해 대중교통편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자기가 택시를 불러 줄테니 7,000원 주고 연풍정류소까지 가면, 거기서 점촌행 버스를 탈 수 있고, 점촌에 가면 안동행 버스가 많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농산물을 진열해 놓고 장사도 하기에 사과를 샀더니 커다란 사과 여섯 개에 천원을 달라고 한다. 의외였다. 왜 그렇게 싸게 주느냐고 했더니 자기가 먹으려고 놔둔 거라며 가져가란다. 조금 오래된 것 같기는 했지만 맛도 괜찮고 아무렇지도 않은 사과를 놀랄 정도로 싸게 사 먹기도 했다. 점촌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주변식당이 마땅치 않아 마침 눈에 띄는 홈풀러스가 있어 들어가 보니 푸드코너에 맛있는 음식이 있었다. 메뉴에 가족 철판모듬이라고 쓰인 것을 주문했더니 고기와 야채가 풍성히 곁들인 것으로 둘이서 충분히 맛있게 먹을 수 있고 값도 11,000원으로 저렴했다. 앞으로 홈풀러스 식당을 많이 이용하자고 이야기하며 즐겁게 먹었다. 점촌에서 안동은 가까웠다. 버스요금이 6,400원이고 1시간 정도 걸렸다.
안동에 오후 4시경 도착해서 숙소를 정하기 위해 미리서 조사한 학가산온천과 도산온천에 대해서 알아보았더니 모두 숙박시설이 없다고 한다. 안동시내에서 거리도 먼 곳에 있었다. 묻는 사람마다 시내에 온천이 있다고 하면서 숙소로 안동역 앞에 있는 溫&淸 spaland (온 앤드 청 온천)에 가면 찜질방이 있어 좋다고 권한다. 거기로 갔다.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곳으로 400m 지하에서 끌어 올린 온천수라고 했다. 처음으로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지내보았다. 24시간 체류요금이 1인단 6,500원이다. 저녁과 다음날 아침식사도 그 안에서 해결했다. 4,000원짜리 식사였다. 아침저녁으로 사우나를 자유로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래서인지 찜질방 가득 사람들이 숙소로 활용하고 있음을 알았다. 찜질방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현장이었다. 모두 같은 옷을 입고 남녀노소 구별이 없으며 아무런 예의가 필요 없는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아무데서나 누워도 되고, 먹어도 되고, 구애 받는 일 없이 화투나 트럼프놀이를 해도 되었다. 상당히 밤이 깊도록 사람소리, TV소리, 기계소리로 시끌벅적했다. 피난민수용소 같은 곳 분위기가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둥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워있으니 피곤한 탓인지 잠이 들었다. 자다가 깨어보니 소등이 되어 있고 사람소리는 거의 없는데 기계소리는 계속 시끄러웠다.
15일 아침 8시경 찜질방을 나와 거리 구경을 하다가 8시 40분 하회마을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시내버스는 하회마을 입구 매표소가 있는 곳에서 멈추더니 입장권을 구입한 후 셔틀버스를 이용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버스는 마을 안으로 떠나버렸다. 버스가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입장권 구입 때문에 입구에서 내리게 한 것이다. 시내버스를 타고 간 사람은 셔틀버스가 무료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1,000원씩 버스요금을 받고 있었다. 셔틀버스의 구간은 걸어가도 될 정도의 가까운 거리였다. 실제로 걸어 다니는 사람도 많이 보였다.
하회마을 입구에 영국여왕이 방문한 기념관이 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이 방문한 후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 된 것도 사실이다. 마을은 민속촌이다. 낙안민속촌과 비교가 되었다. 성벽은 없고 초가집과 기와집이 반반 이었다. 마을의 중심지에는 기와집이 많고, 마을주변은 초가집들이 많았다. 낙안에는 기와집이 거의 없는데 이곳에는 이름 있는 집들은 전부 기와집이었다. 하동고택, 북촌댁, 남촌댁, 작천고택 등 전부 덩실한 기와집이다. 류성룡의 종택이라고 한 충효당에는 영모각이라는 류성룡 기념관건물도 있다. 정원에는 영 여왕이 기념식수한 나무도 있다. 휴식처가 되는 빈연정사, 원지정사란 이름이 붙은 정자도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실제 거주하는 집들로 집집마다 번호가 붙은 민박집 간판이 있고, 집 앞에 승용차가 주차된 집도 상당수 있으며, 들에서는 어느 농촌과 같이 농사일들을 하고 있었다. 낙동강이 마을 옆으로 흐르고 있고 둑길이 빨갛게 물든 가로수와 함께 아름다웠으며, 만송정 숲의 소나무들이 보기에 좋았다. 강에는 나룻배도 있어서 강 건너편에 갈 수도 있는 것 같았다. 강 건너편은 부용대라는 이름이 붙은 적벽이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고도 있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둑길을 걸었는데도 다음 시내버스 출발시간까지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하회동탈박물관에 들어가 보았다. 각가지 모양의 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외국의 탈도 일부 소개하고 있었다. 오전 9시 반경에 도착했는데 11시 50분에 출발하는 버스로 다시 안동시내로 나왔다. 안동에는 간고등어가 특산물이고 간고등어정식이 특별한 음식인 듯 간판이 많이 눈에 보이기에 점심은 간고등어 정식을 먹었다. 그런데 특별할 것이 없었다. 어디나 마찬가지인 짠맛만 있을 뿐이었다. 안동에서 2시 26분에 출발하는 버스로 동대구로 갔고, 동대구에서 16시 40분에 출발하는 버스로 광주에 오니, 저녁 8시가 약간 지나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문경에서 아침식사를 하면서 여행 중인 것으로 보이는 옆자리 사람들과 잠시 대화를 하던 중 나이를 묻기에 70쯤 된다고 했더니 놀라는 표정으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젊다는 것이다. 모습은 어떤지 모르지만 마음만은 분명히 젊다. 얼마든지 더 돌아다닐 수 있고, 자꾸 여행을 하고 싶다. 이번에도 떠날 때에는 좀 더 다니고 오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내와 합의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16일 추수감사주일 예배 참석도 생각하고, 무리한 여행이 될 가봐, 다음을 기대하면서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3일 동안 날씨가 전형적인 가을 날씨로 참 좋았다. 좋은 날씨에 건강한 모습으로 여행을 마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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