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욱의 막걸리 칼럼
오키나와 전통술 아와모리 소주[1]
일본에는 한국의 제주도와 닮은 섬이 있다. 일본 본토와 타이완의 사이에 있으며, 약 160개의 섬으로 구성된 오키나와 제도이다. 이 오키나와가 한국의 제주도와 닮은 점은 아름다운 자연은 물론, 언어와 문화가 일본 본토와는 다른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키나와는 17세기 초까지는 유구왕국(琉球王国)이란 이름으로 거의 완전한 독립국 형태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17세기 초반,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란 인물이 토요토미가(豊臣家)를 누르고 일본을 재통일한 이후, 당시 해상왕국인 유구왕국을 점령, 왕국의 형태만 남겨놓은 채 일본의 복속 국가로 만들어 놓았다. 알고 보면 일본과는 전혀 다른 나라가 오키나와였던 것이다. 상황은 다를 수 있지만, 제주도 역시 탐라국이란 이름으로 고려시대에는 고려의 번국(藩國)이었고 조선초기까지도 제주도만의 성주와 왕자 그리고 귀족이 별도로 있는 등 한반도와는 다른 역사와 문화를 써 나갔다. 덕분에 제주도도 오키나와도 본토와는 다른 별도의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고, 그 독특한 문화를 이제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오키나와에서는 음식문화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전통 술이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 이러한 것을 알아보기 위해 오키나와의 전통술 ‘아와모리’(泡盛) 양조장 3곳을 직접 방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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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나와 소주 아와모리를 숙성시키는 소주 항아리. 유약을 바르지 않아 거친 면 그대로 있는 것이 특징이다 (츄코쿠라양조장/양조장의 2대, 3대 대표가 술 숙성용기 장인으로 변모한 츄코쿠라 양조장의 모습
오키나와 왕정의 관리를 받던 오키나와 소주 ‘아와모리’. 맛이 없으면 처벌받기도
오키나와 전통술인 아와모리는 이른바 증류주, 즉 소주다. 그것도 40도가 넘는 고도주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증류주란 와인이나 막걸리와 같은 발효주를 끓여서 물과 알코올의 끓는점의 차이를 이용해 알코올을 발효주보다 더 많이 뽑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증류기술은 8세기경 이슬람의 연금술사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인데, 한국은 13~14세기 몽골, 오키나와는 14~15세기경 타이를 통해 전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며, 한국이나 오키나와나 모두 그 기술을 받아 들여 각각의 방식으로 발전시켜왔다.
세조실록에 보면 당시 오키나와의 유구왕국에서 소주를 조선으로 조공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고,세조 역시 한국의 소주를 답례품으로 줬다는 기록이 있다. 발효주를 빚고 또 그것을 증류한 소주는 양국에 있어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귀한 특산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아와모리 소주는 유구왕국의 특별 관리를 받았다. 오직 40개의 양조장에서만 이러한 아와모리 소주를 만들 수 있었으며, 그 술은 모두 왕국의 귀족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 서민들은 입으로 씹어서 빚은 술 정로도 밖에 접근하지 못했으며, 양조장은 술이 맛없게 나오면 국가로부터 처벌을 받는 등 권한과 책임이 같이 따랐다. 양조장이 왕국의 전유물이었던 것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사라지게 되는데, 당시 명목상이나마 유지했던 오키나와 유구왕국자체가 일본의 개화기를 거치면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서 누구나 술을 빚을 수 있는 경쟁체계로 돌입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왕국이 직접 운영한 양조장의 흔적은 남아있어, 지금도 오키나와 나하시의 유구왕국 궁전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수리성(首里城) 주변에는 작고 아담한 아와모리 양조장이 여러 곳 남아있다.
타이쌀로 만드는 오키나와 아와모리. 그 역사적 배경
원래 아와모리는 좁쌀이나 쌀로 빚던 술이었다. 하지만 제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영토 내 유일한 지상전이 있었던 오키나와 전투에서 당시에 숙성시키던 아와모리 소주나 또는 양조장이 모두 파괴되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술 빚은 원료는커녕, 식량으로 쓸 농산물도 부족했다. 그래서 양조장은 사탕수수를 이용한 당밀을 쓰기도 하고 설탕이나 주정에 물을 타서 만드는 등 관리가 엉망이 되어 버렸다. 이에 오키나와주조연합회에서는 국가에 술 원료를 조달해 달라 요청하였지만, 넉넉지 않은 당시의 식량 사정과 증류기술이 타이에서 온 만큼 타이 쌀로 아와모리 소주를 제작, 어느덧 아와모리 소주의 상징적인 원료는 타이 쌀이 된 것이다. 아와모리 소주 관계자는 이렇게 타이 쌀로 계속해서 아와모리 소주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점성이 없는 타이쌀이야말로 아와모리 용 누룩 만들기에 좋다는 전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점성이 있는 일본 청주 양조용 쌀을 사용하기도 하는 등 다양화적인 측면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 전통 술은 쌀과 물과 누룩, 아와모리 소주는 오직 물과 누룩만
아와모리의 가장 큰 특징은 물과 누룩밖에 안 넣고 술을 발효시킨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술이 쌀과 물과 누룩이 들어가는 것이 비해, 아와모리 소주는 이른바 덧술에서 쌀을 아예 빼버린다. 물론 누룩에 쌀이 들어가 있기에 얼마든지 발효는 되지만, 담백한 맛보다는 누룩에서 오는 진한 새콤한 맛이 코를 찌른다. 이것을 상압증류라는 방식을 통해 1차 증류하면 아와모리 소주가 나오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일본과 한국과는 사뭇 다르지만, 중국의 고량주인 백주 등은 유사한 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결국 발효 및 증류방식은 한중일 3국을 비교해 본다면 중국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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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와모리 양조장은 검은색을 띈 경우가 많다. 바로 검은색 균인 흑국균을 누룩균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헤리오스주조)/숙성도자기. 가장 왼쪽은 이제 막 빚은 도자기. 가운데는 한달 건조. 가장 왼쪽은 구워낸 것. 모두 같은 크기였지만 수분이 빠져나감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 최대한 수분을 빼는 것이 아와모리 소주 숙성용기의 핵심이라고 전한다
오키나와 태생의 흑국균. 색만 다를 뿐 한국의 막걸리 균과 비슷한 성격
아와모리 소주의 가장 큰 특징은 누룩을 배양할 때 검은 균, 즉 흑국균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흑국균은 구연산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잘 산패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운 여름에도 잘 견디는 데, 이 흑국균이 발견 된 곳이 오키나와 아와모리 소주이며, 또 이 아와모리 소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꼭 흑국균을 써야 한다. 일본의 남쪽 규슈지방에서는 이 흑국균이 변이 된 백국균을 사용한다. 백국균을 사용하면 양조장 주변이 모두 검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 보다 위생적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 막걸리에 들어가는 누룩균은 대부분이 백국균이다. 막걸리의 산뜻한 신맛은 구연산을 포함하고 있는 백국균의 영향이라 일본 학자들은 말한다.
숙성을 중요시하는 술, 문헌에는 술 맛의 기준이 남아있어
아와모리 소주는 증류주 특유의 숙성을 중요시 한다. 이유는 누룩으로만 발효한 증류주는 맛이 너무 강했기에, 그러한 맛을 강하고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는 숙성이라는 세월을 더해야 한다고 관계자는 설명한다. 그래서 어느 한 양조장에서는 아예 2대, 3대가 숙성용기를 토기로 직접 만들기도 한다. 오키나와 최후의 유구왕족인 쇼쥰왕자의 유고에 따르면 최고의 아와모리 소주는 채유(菜油)와 목랍(木蠟)으로 만든 머릿기름의 향으로, 달콤하며 귀품 있는 향이 날 것이며 잘 익은 꽈리에서 나는 향 그리고 수컷 염소의 몸에서 나는 향이 중요하다 기록하였다. 현대에서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빚는 이 마다 다르겠지만 아와모리 소주는 전통을 지켜나가겠다는 의미로 100년 숙성의 계획을 가지고 양조장에서 다양한 숙성을 시도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서양처럼 오크통에 무작정 놔두기보다는 1년마다 새 술을 넣는 다는 것. 일본어로 시쯔기(仕次ぎ)라 부르는 이 방식은 매해 새 술을 넣음으로 인해 숙성을 촉진하고, 좋은 향을 나오게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만 이 방식은 무조건 옛 술로만 숙성년도의 기준을 잡는 서양의 위스키와는 다른데, 최근에는 다양성을 꾀하고 국제 기준을 맞추기 위해 위스키 등의 숙성 방식도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3년 이상 숙성을 시키면 크스(古酒)라는 아와모리 소주 특유의 명칭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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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와모리 소주를 이용한 카스테라 케익/아와모리 소주를 이용한 조미료. 소주속에 고추가 들어있어 매운 술 맛이 난다. 주로 오키나와소바 및 생선회 등에 찍어 먹거나 살짝 부어 먹는다/오키나와 전통 국수 및 톳 튀김. 이 국수안에 아와모리 소주 양념을 해서 먹는다
오키나와 어디를 가도 보이는 아와모리 소주, 한편으로는 부러운 생각도
오키나와 소주를 보기 위해 직접 다녀오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전통을 지켜가는 양조장의 모습외에도 어디를 가나 오키나와 소주를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시내의 주점부터 TV CM, 편의점 심지어 국수집에서는 아와모리 소주에 고추를 넣어 양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결국 생활 속의 전통주가 되어 있는 것이고,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오키나와 주민은 아와모리 소주를 그들만의 문화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전통주가 있지만 이렇게 생활 속에 들어가 있지는 못하다. 제주도의 오메기술, 고소리술, 전주의 모주, 이강주, 안동의 안동소주, 서천의 소곡주가 지역 술로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언젠가는 대한민국에도 꼭 아와모리 소주처럼은 아니더라도 해당 지역을 방문해서 그 지역의 음식을 즐길 때 그 지역 술이 같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음식은 지역 것인데 술은 아무 곳이나 다 있는 것을 마시기에는 그 곳까지 간 것이 너무 아깝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