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2편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이 시편은 성전 예찬시입니다. 그래서 이런 시를 시온 시라고 분류합니다. 시온 시는 거룩한 성도 예루살렘과 그 가운데 있는 성전을 사모하며 찬양하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이 시의 저자에 대하여 어떤 학자들은 이 시편이 바벨론 포로 이후 돌아온 귀환자들 중 한 사람이 저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한 때 무너졌다가 다시 회복된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바라볼 때 남다른 감격이 있기에 이 시편을 노래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편의 제목 부분에서 나온 대로 다윗이 쓴 시로 본다 하여도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이 시편의 내용이 성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성전을 그리워하고 회상하면서 다윗이 썼다고 한다면, 그가 압살롬의 난 때 피난 생활하던 요단강 동쪽 땅 마하나임에 머물면서 이 시를 썼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편의 주된 내용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인하여 찬양하며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이 다윗의 노래 속에 담긴 그의 성전 사랑의 정신은 우리들도 동일하게 가져야 할 복된 신앙 자세인 줄 믿습니다. 이제 이 시편 한 절씩 살펴가면서 영적인 교훈들을 배워가도록 합시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다윗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라고 말할 때 기뻤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기뻐하는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진진한 잔칫집에 함께 가자고 했을 때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명승지 구경하자고 했을 때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약체 부족을 침략해서 영토도 넓히고 많은 노략물을 얻으러 가자고 했을 때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지인이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했을 때 기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자고 할 때 기뻐하는 사람이 참된 신앙인입니다. 성전에 가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더 설레고 기쁘고 감격스러운 자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는 주의 백성된 우리의 가정이요 학교요 안식처요 병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하여 누군가가 교회 가자 할 때 심령이 기쁘고 설레고 행복한 자가 됨이 마땅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우리가 함께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예배하러, 기도하러, 봉사하러 올라가자”라고 즐거움으로 권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절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이제 다윗은 멀리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먼 길을 기쁨으로 걸어왔다가 마침내 그 발이 성문을 거쳐 그 안에 섰을 때 이 시인은 마음이 감격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마침내 이 거룩한 성 안에 발을 딛고 있구나 하는 행복과 만족이 심령에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주 앞에서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아가다가 마침내 신앙의 여정을 마치고 저 천성의 진주문을 지나 천사에 이끌려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발을 내디디게 될 때 말로 다 할 수 없는 행복과 기쁨으로 충만하여 어쩔 줄 몰라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우리도 이 시인처럼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라고 고백하며 행복한 중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3절과 4절을 읽겠습니다.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이 시인은 눈을 들어 예루살렘의 성읍 전체를 조망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성읍에 있는 집들은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어 있는 것입니다. 잘 짜여진 성읍이란 연이어 연결된 집이라는 뜻입니다. 집과 집이 조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빈틈없이 집 너머 집이 연결된 이 집은 무너지고 황폐하여 주인 없는 황무지 같은 모습이 아니라, 잘 통치되고 안정된 아름다운 성읍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옛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열두 지파가 질서 있게 에워싸여 장막을 쳤던 것처럼, 예루살렘 성읍들도 성전을 중심으로 잘 연결되어 연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번성한 예루살렘 성에 12지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가 되어 예루살렘의 많은 문들을 통과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이 시인은 감격과 행복이 충만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좋은 곳, 유명한 곳, 아름다운 곳이 있지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곳은 바로 성전입니다. 시편 87편의 저자 고라 자손도 노래하기를,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셀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수많은 거처가 있지만 그 중에서 특별히 시온 문, 곧 성전 문과 하나님의 성 곧 성전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시온의 문으로, 교회로 예배차 즐거이 올라오고 올라오시기를 축원합니다.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이 시인은 특별히 이 예루살렘 성에 있는 하나님의 집 외에 한 가지 더 예루살렘의 특별한 처소를 언급합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의 집 왕궁입니다. 그 왕궁에는 심판의 보좌가 놓여져 있는데, 재판장인 왕이 그 보좌에 앉아서 백성들을 심판합니다. 다윗과 그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성전을 지어드리고 싶다고 소원을 말씀드렸을 때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와 그 후손들이 영원히 왕위에 앉으리라고 약속하신 언약으로 인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그 다윗 왕가의 보좌의 통치권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보장해주신 것이 되었기에, 다윗은 이 시편에서 시온의 보좌인 하나님의 보좌 성전을 노래할 뿐 아니라 다윗 집의 보좌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약속대로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다윗의 혈통을 타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세대 가운데 영원한 주의 주, 왕중 왕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결코 주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다윗의 심판 자리에 앉아서 모든 악한 자들을 벌하고 그를 힘입은 의인들은 영원한 상급으로 갚아주십니다. 장차 우리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와 그 오른쪽에 있는 보좌에 어린양이신 우리 구주 예수님이 영광의 왕이 되사 영원히 우리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성전도 있으며, 언약을 따라 세워진 심판의 보좌 곧 다윗 집의 보좌도 있는 이 예루살렘을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평안을 구하라고 담대히 외칩니다. 경배하러 올라온 순례자들에게 담대히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고 부탁합니다. 그와 같이 평안을 간구하는 자만이 예루살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누가 교회를 사랑합니까?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자가 교회를 참으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교회 안에 내적 평안과 외적 평안이 충만하도록 늘 기도합시다.
그렇게 교회를 위하여 늘 평안을 구하는 자에게 어떤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까?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평안을 늘 간구하고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시는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집을 사랑하여 힘써 받드십시오. 하나님의 집이 평안하고 형통하기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집과 가문을 평안하게 해주실 것이요 형통하고 번성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7,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이제 시인은 교회 뿐 아니라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평안이 있기를 즐거움으로 선포합니다. 그들의 안녕과 번영을 빌어줍니다. 그들이 더 잘되고 복되기를 빕니다. 그런데 이 시인은 마지막 절에서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라고 하는데, 그 이유와 목적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우리의 형통과 평안과 복이 궁극적으로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건강과 풍요로움과 평안과 여유로운 환경 등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집을 위한 것이라고 다윗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축복받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을 위한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 구절을 주석하면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과 관계된 동안에만 귀하고 복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아름답고 빛나는 것도 빛이 바래지고 낡아지고 쇠해집니다. 늦가을 화사한 아침 햇살에도 불구하고 나뭇잎은 후두둑 차가운 대지로 떨어져 내립니다. 그렇듯 인간의 권력도 몇 년 못 가고 스러지고 아무리 많은 재물도 다 쓰지 못한 채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은 영원히 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모두 영원한 하나님과 그의 집을 위하여 일합시다. 우리가 복을 많이 받고 평안하고 형통할지라도 그것들이 나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님과 그의 아름다운 집 교회를 위한 것들이 되도록 합시다. 그의 영광과 그의 집의 평안과 형통을 힘써 도모합시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성도의 집과 자손들을 형통하게 해주실 것이요 그 상급이 영원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