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큰 바리메, 족은 바리메)
가을이 왔다고 바람이 말했어요. 오늘은 큰 바리메가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족은 바리메! 너는 오름 아카데미라고 들어 봤어?”
“아니.”
“오늘 오름 아카데미 회원들이 날 보러 온대.”
“그래서, 형은 아침부터 단장을 하고 있구나?”
“혹시 몰라 너도 찾을지.”
큰 바리메와 족은 바리메는 서로 바라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요. 육지에서 보는 가을과는 완연하게 달랐지만 제법 가을의 흉내를 내고 있었어요. 주차장에 모인 오름 아카데미에서 온 손님 중에 얼굴이 남자답게 생긴 분이 말했어요.
“큰 바리메는 가을에 좋고, 족은 바리메는 들꽃이 많아 봄에 가는 게 더 좋아요.”
큰 바리메는 걱정이 됐어요. 사람들은 제주하면 가을 억새라고 말들 하지만 건너편에 있는 새별만큼 억새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하여 육지처럼 울긋불긋한 연지곤지 찍은 얼굴도 아니니 왔다가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그러나
큰 바리메에 있는 단풍나무는 빨갛게 홍조를 띄고 있었어요. 밤새 연애를 한 듯 했고, 고로쇠나무와 얼굴은 비슷한 듯 했지만 고로쇠나무의 얼굴이 더 컸어요. 큰 바리메는 키가 큰 편이라 회원들이 오르다가 힘들다고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어 노심초사 했어요. 걱정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이고, 힘들어요. 계단이 많고, 계속해서 오르막이니, 난 너무 저질체력이야.” 하며
가을만큼이나 등산복이 화려하고, 예쁘게 생긴 여자 회원이 말하는 걸 들으니 미안한 맘이 들었어요. ‘난 너무 키가 큰 것이 문제야’ 큰 바리메는 스스로를 원망하기 시작하면서 속상해했어요. 그렇지만 ‘조금만 힘을 내세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왜냐고요? 내 머리에 올라가면 내 친구들이 다 보이거든요.’ 힘들게 정상에 오니, 그들의 입은 닫힐 줄 모르고 연신 이산화탄소를 뿜어냈어요. 내 안에 있는 친구들은 이산화탄소라는 간식을 즐기는데 여러 명이 한 바가지를 뿜어내니 얼마나 배가 불러요. 참으로 행복했어요.
“새별오름이 저렇게 생겼네요?” 오름을 좀 다녔던 분인지, 우리의 생긴 모양을 말해 주고 있었어요. 저 쪽에 있는 건 말발굽, 내 이웃인 당오름은 원형, 제법 하는 것 같았어요.
회원 중에 ‘문회장’ 이라고 같이 온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어요. 문회장은
“오름에 다니다 보니 제주를 잘 보존해야겠어요.” 큰 바리메는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만 갔지 어느 한 사람도 보존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내 안에 친구들이 예쁘다고 꺾어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가지고 온 것들을 펼쳐놓고 먹으면서 남은 것을 몰래 버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래도 그건 괜찮아요. 물병을 버리거나, 손 닦은 물티슈를 버리고 갈 땐 너무 속상했어요. 거름이 되지도 못하는 것들 때문에 나는 아무리 단장을 해도 냄새가 났고, 몸이 많이 아팠어요. 치료를 받고 싶으면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와야 하는데…. 매일매일 기다리고 있었어요. 때마침 그런 분들이 오셨네요. 모여서 하는 대화를 들어보니 ‘오름 매니저’ 라고 하던데, 잘 모르지만 나를 사랑하고, 아껴 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희망을 가져 보려고요. 어찌나 다들 건강한지 한달음에 내려 가 버렸어요. 조금 서운한 맘이 들었어요. 더 머물다 가면 좋으련만. 그런데 제 동생 족은 바리메한테 간다고 하니 괜찮아요.
“얘 족은 바리메! 여기 오신 손님들이 너를 보러간대. 어서 서둘러.”
“응 형 빨리 준비할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벌써 입구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동생이니 형보다는 작아요. 그러나
올라오는 길이 만만치 않아요. 큰 바리메에 갔을 때 힘들어 했던 차총무가 그만 중간에 돌아가고 말았어요. 많이 서운했어요. 형보다는 내가 더 가을을 많이 보여 줄 수 있었는데 참, 아쉬웠어요. 내가 보아하니 제일 연세가 많으 신 분 같은데, 제일 건강해 보였어요.
“연실씨, 많이 건강해 졌어요.” 뒤 따라 오면서 흐믓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요. 아마, 연실이란 사람은 건강하지 않았나 봐요. 내 머리(정상)에는 쉴 곳이 있어요. 아주 아늑하고 서로를 마주할 수 있어요. 그 곳에 앉으면 이상한 마력이 생겨요.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힘을 나눠 같게 되지요. 서로 나눠 앉더니, 주섬주섬 가방에서 조그만 피리를 꺼냈어요. 오카리나라고 말했어요. 일제히
“교수님 박수!” 구슬픈 리듬의 곡이 끝나고, “신청곡, 받아요.”외쳤어요.
나이가 지긋한 여성분께서 “모란 동백” 했어요. 내가 듣기에도 참 좋았어요. 아늑한 정상에 오순도순 모여서 서로들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조용했어요. 나도 내 친구들도 귀를 기울였지요. 난 모란도 동백도 많이 보여주지 못하지만 그 친구들의 성격을 조금은 알고 있지요.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지요. 기다림의 대상은 다 다르겠지만, 족은 바리메는 나를 아껴주고, 귀하게 여겨주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말해주고 싶었어요. 돌아가는 길목에 선남선녀가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어요.
“최선생 여기 서 봐요.”
“여기요.”
“아, 단풍이 있어 노니 참 사진이 잘 나오네요.” 남자 분은 센스라곤 없는 것 같았어요. 이왕지사 립 서비스하려면
“단풍과 미인, 금상첨화” 나는 이렇게 할 것 같아요.
알록달록한 가을, 울긋불긋한 가을 , 사랑을 나누는 가을의 모습은 많이 보여주진 못했지만 난 오늘 최선을 다 했어요. 가을이 오면 기다려 질 것 같아요. 오름 2기 아카데미 친구들이요.
첫댓글 옴모나~~
글 읽는 내내 색감좋은 애니매이션 한편을 본듯 맑은 기분이 듭니다!!잘 읽었습니다~
동화책 하나 만들어야겠어요^^
술술 재밋게 잘 읽었어요 ㅎㅎㅎㅎ
이렇게 동화처럼 후기도 쓸수잇네요. 새롭고 재미잇어요!!
창의력을 활용한 실제상황~~~
아~너무 너무 좋네요, 최작가님~~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거 완전 부러울 따름입니당~~^^
역시 최작가님 !!
탁월한 글솜씨
더자주뽐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