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 - 아비지(阿非知)가 만든 세상
1. 아비(阿非)*는 두 손 모아 기도했네 불보살이시여, 원수의 나라에서 이 몸을 일러 탑을 세워 달라 청하옵건만 어찌하오리까 아홉 나라의 적을 물리쳐달라는 원력(願力)으로 쌓아 올리려는 것임을 모르지 않으며 그중 한 나라가 백제라 하니 아아, 원수의 나라에서 어찌 탑을 조각하오리이까.
2. 염주 감고 기도하던 아비(阿非)*는 꿈속에서 무독귀왕* 만났네 귀왕이시여 제가 지옥에 떨어졌나이까 무독귀왕이 이르시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분별심(分別心)을 일으켜 너와 나를 가르고 이 나라 저 나라를 구별하는가 태어날 적에 그 손으로 불국토(佛國土)를 이루라 명하였거늘 아아, 불국이 이 삼라만상임을 깨달을 때야 비로소 이승으로 돌려보내리라.
3. 풍경(風磬)소리 산허리 감싸는 새벽녘, 잠에서 깨어난 아비는 자장율사* 뵈옵기 청하였다네 대사시여, 간밤 꿈속에 무독귀왕 만나 무간지옥*에 떨어졌는가 했는데 이 몸 살아있으니 무슨 연유 옵니까 자장율사 깊이 합장하여 이르기를 존자(尊者)의 선근(善根)이 하늘에 닿아 다시 생(生)하였으니 아아, 무분별심(無分別心)으로써 부디 서라벌에 불국의 탑을 세워 주사이다
4. 서라벌에 도착한 날 다시 꿈속에서 무독귀왕 만났다네 아비지여, 그대는 이제부터 모든 세계의 지옥과 삼악도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맹세코 제도할지니라 부처님 위엄(威嚴) 깃들인 탑으로 삼라만상을 불국토(佛國土)로 만들지어다 아아, 귀왕이시여 불보살의 뜻을 아로새긴 성탑(聖塔)을 쌓아 올리겠나이다
5. 아비지(阿鼻旨)*는 공사 앞두고 기도했네 불보살이시여, 이 한 몸 육신 얻어 손끝 머무는 재주로 아홉 외적 물리칠 공력 모두어서 한탑 쌓아 올릴지니 바라옵건대 한층 씩 탑이 오를 때마다 서라벌에 법보(法寶)의 휘장 드리워 주사이다 아아, 이후에 이 가련한 몸이 반드시 정각(正覺)을 이루게 해 주사이다
6. 심초석* 박고 찰주* 세운 날 백제 장인(匠人)은 다시 꿈꾸었다네 백마강이 큰 바위를 때리니 흙더미 물속으로 잠겨 사라져 버리니 꿈에서 깨어나 탄식하며 울적에 어드메에서 자장율사 화신이 다가와 금당 기둥을 친히 박으며 말씀하셨네 ‘무분별심(無分別心)으로써! 무분별심으로써!’ 아아, 그리하여 웅장하고 아름다운 황룡사에 아비지가 만든 세상은 그처럼 아름다웠다네.
---------------------------------------------------------------------------------------------- *아비(阿非) : 백제식 이름, 백제시대의 건축 전문기술자 *아비지(阿鼻知) : 아비의 신라식 이름 *무독귀왕(無毒鬼王) : 지장보살을 가운데 모시고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좌우에 배치된다. 사람들의 악한 마음을 없애준다고 한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불교에서 말하는 팔열지옥(八熱地獄)의 하나로, 사바세계(娑婆世界) 아래, 2만 유순(由旬)되는 곳에 있고 몹시 괴롭다는 지옥. *심초석(心礎石) :목탑의 심주를 받치는 기둥 받침돌로 일반적으로 사리가 봉안되는 장소 *찰주(刹柱) : 상륜을 세우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대부분 쇠로 주조된 원뿔형 구조물에 하나하나의 부재들을 끼우게 되어 있다. *자장율사(慈藏律師) : 신라 시대의 고승(高僧), 선덕 여왕 때 자장율사의 건의로 황룡사9층목 탑이 세워졌다고 하며, 몽골의 침입 때 불타 사라지고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황룡사 9층 목탑 :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황룡사지에 서 있던 목탑. 층마다 자신들을 괴롭히고 무시하던 주변국들의 이름을 새겼다. 1층부터 차례로 일본, 당, 오월, 탐라, 백제, 말갈, 거란, 여진, 고구려를 새겨 넣었는데 이들을 모두 멸하리라는 뜻이 담겨있다. |
첫댓글 김둘 시인님의 특품 수상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