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인디 음악은? 배순탁 음악평론가,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인디 음악에 관심이 없어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은 노래를 설문조사한다면 어떤 곡이 1위를 차지할까? 글쎄, 사람마다 대답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록 인디는 잘 모르더라도) 사실 당신은 정상에 쓰여 있을 그 이름을 알고 있다. 그렇다. 한 번쯤은 들어봤거나 불러봤을 그 곡, 크라잉넛(Crying Nut)의 ‘말 달리자’다.
먼저 개념 정리부터 해본다. 여러분은 인디 음악이 어떤 음악이라고 생각하나. 메인 스트림에서 활동하지는 않는 음악? 그도 아니면 TV에 잘 안 나오는 음악? 헷갈릴 수 있을 것이다. 신문기사를 찾아봐도 인디 음악을 엉뚱하게 정리해 놓은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인디 음악을 마치 장르인 것처럼 정의해 놓은 글이 많은데 다 틀렸다고 보면 된다.
인디 음악의 인디는 ‘independent’의 준말이다. 즉, 독립적인 음악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질문이 들어가야 한다. 대체 ‘무엇으로부터’ 독립했는지다. 정답은 다음과 같다. 인디 음악은 주류인 거대 자본으로부터 독립했다는 뜻을 지닌다.
이제 두 번째 질문이 나올 차례다. “대체 ‘왜’ 독립해야 하는가?” 바로 이 질문이 인디 음악의 핵심을 형성한다. 그들이 독립적인 태도를 지향하는 이유. 바로 거대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원하는 음악을 마음껏 펼쳐내고 싶어서다. 그러니까, 인디 음악은 록이 될 수도 있고, 팝이 될 수도 있다. 알앤비나 힙합이 될 수도 있다. 정리한다. 인디 음악은 장르가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음악을 대하는 어떤 태도라고 볼 수 있다.
크라잉넛의 역사가 이를 잘 증명한다. 1990년대 중반이 조금 넘어 등장한 그들은 존재 자체로 인디였다. 홍대 앞 작은 클럽에서 활동하면서 자기들이 하고 싶었던 음악을 그 어떤 간섭 없이 추구했다. 처음엔 서툴고, 어설펐다. 당연하다. 애초에 그들은 악기를 잡아본 적도 없었던 완전 초보였으니까 말이다.
나는 1996년부터 홍대 앞 클럽을 쏘다녔다. 서서히 문화 중심지가 돼가고 있던 그곳에서 수많은 공연을 봤다. 당시 크라잉넛의 공연은, 솔직히 말해 엉망진창이었다. 악기의 합은 거의 맞질 않았고, 사운드 역시 들쭉날쭉했다. 그럼에도 거기에는 어떤 거대한 에너지 같은 게 있었다. 관객의 심장을 단번에 꿰뚫어버리는 저돌맹진의 기운이 있었다. 나는 지금도 ‘말 달리자’를 라이브로 처음 경험했을 때를 기억한다. 심지어 음반으로 출시되지도 않았던 때다. 그때 이미 확신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되든 이 곡은 뜬다.”
내가 틀렸다. 이 곡은 그냥 뜬 게 아니었다. 만약 인디 음악에도 ‘국민’이라는 수식을 붙일 수 있다면 그 수식은 오직 ‘말 달리자’만을 위해 써져야 한다고 확언할 수 있을 정도로 떠버렸다. 물론 당시 아이스크림 광고 음악으로 사용된 게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가 되긴 했다. 그러나 곡 자체의 매력이 없었다면 광고에 쓰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후 크라잉넛은 ‘말 달리자’로 대표되는 강렬한 펑크 이미지에서 벗어나 한층 다채로운 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말 달리자’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두 곡, ‘밤이 깊었네’와 ‘룩셈부르크’가 그들의 확장된 세계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곡들이다. 비단 이 두 곡만은 아니다. 그들의 작곡력이 절정에 달했음을 알 수 있는 ‘순이 우주로’, 거장 심수봉과 함께 작업한 ‘물밑의 속삭임’ 같은 노래도 찾아서 꼭 감상해 보기를 권한다. 그들이 ‘말 달리자’ 시절과는 다른 차원의 밴드가 됐음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아, 하나 더 있다. 그들의 라이브 실력이다. 추측하건대 크라잉넛은 라이브 횟수에서 대한민국 톱 수준의 밴드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을 단련해 준 ‘빨간펜 선생님’은 결국 무대였다.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쑥쑥 늘었다. 배철수 DJ는 말한다. “크라잉넛은 어느새 연주도 잘하는 밴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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