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다지파로 오신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때에, 레위지파가 아닌 유다지파로 오신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왜 레아의 넷째 아들 유다이어야 했을까요?!
먼저 유다의 이름에 뜻을 보면 “찬양(감사, 신앙)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뜻과 함께 합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생명체를 창조하신 참 부모로서, 또한 모든 만물,
곧 모든 피조물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하여 주시는 분으로서, 자녀들이
자유의지로 순종하며, 마음에서 울어나서, 진심으로 영광을 올려 드리기를
소망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죄와 함께 하실 수 없으신 분으로서, 함께 사시기
위하여 일방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신
것이며,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신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서 구원을 이루시면서
성삼위일체가 되는 삶을 살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다음에 살펴볼 유다의 자녀들에 대한 말씀과 자녀들의 이름에 뜻을 함께
살펴보고, 야곱 곧 이스라엘, 즉 유다의 아버지의 형제들의 이름에 뜻과
그들의 삶을 함께 살펴보면, 왜 유다지파이어야 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는 모든 생명의 시작과 끝이 항상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유다의 첫째 아들 에르 : 파수꾼,
둘째 아들 오난 : 강건한, 정력적
셋째 아들 셀라 : 찬양하다, 들어 올리다, 목소리를 높이다.
며느리 다말 : 종려나무
유다가 막내 셀라를 낳은 곳 - 거십 : 속이는, 실망시키는
유다가 며느리 다말과 동침하게 된 곳 - 에나임 : 두 개의 샘
다말을 통하여 얻은 두 아들 - 베레스 : 터짐, 깨뜨리다, 밀치고 나옴
- 세라 : 솟아오름, 듣는 자, 해명하는 자
히라 : 고상하다
아둘람 : 은신처, 피난처
-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숨었던 동굴이 있는 곳
딤나 : 분배, 억제, 속박
1 그 무렵에 유다는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나가,
히라라고 하는 아둘람 사람이 사는 곳으로 가서, 그와 함께 살았다.
2 유다는 거기에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고 하는 사람의 딸을 만나서
결혼하고, 아내와 동침하였다.
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유다가 그 아들 이름을 에르라고 하였다.
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번에는 아이의 어머니가 그 아들 이름을 오난이라고 하였다.
5 그가 또다시 아들을 낳고, 이름을 셀라라고 하였다.
그가 셀라를 낳은 곳은 거십이다.
6 유다가 자기 맏아들 에르를 결혼시켰는데, 그 아내의 이름은 다말이다.
7 유다의 맏아들 에르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하므로,
주님께서 그를 죽게 하셨다.
8 유다가 오난에게 말하였다. "너는 형수와 결혼해서, 시동생으로서의
책임을 다해라. 너는 네 형의 이름을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
9 그러나 오난은 아들을 낳아도 그가 자기 아들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형수와 동침할 때마다, 형의 이름을 이을 아들을 낳지
않으려고, 정액을 땅바닥에 쏟아 버리곤 하였다.
10 그가 이렇게 한 것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하였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난도 죽게 하셨다.
11 유다는 자기의 며느리 다말에게 말하였다.
"나의 아들 셀라가 다 클 때까지, 너는 네 친정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서,
과부로 살고 있거라." 유다는 셀라를 다말에게 주었다가는,
셀라도 제 형들처럼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12 그 뒤에 오랜 세월이 지나서, 수아의 딸 유다의 아내가 죽었다.
곡을 하는 기간이 끝났을 때에, 유다는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자기 양들의 털을 깎으러 딤나로 올라갔다.
13 다말은 "너의 시아버지가 양털을 깎으러
딤나로 올라간다" 하는 말을 전해 듣고서,
14 과부의 옷을 벗고, 너울을 써서 얼굴을 가리고,
딤나로 가는 길에 있는 에나임 어귀에 앉았다.
그것은 막내아들 셀라가 이미 다 컸는데도,
유다가 자기와 셀라를 짝지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길을 가던 유다가 그를 보았지만,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므로,
유다는 그가 창녀인 줄 알았다.
16 그래서 유다는 그가 자기 며느리인 줄도 모르고, 길가에 서 있는
그에게로 가서 말하였다. "너에게 잠시 들렀다 가마. 자, 들어가자."
그 때에 그가 물었다.
"저에게 들어오시는 값으로, 저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17 유다가 말하였다. "나의 가축 떼에서 새끼 염소 한 마리를 보내마."
그가 물었다.
"그것을 보내실 때까지, 어떤 물건이든지 담보물을 주시겠습니까?"
18 유다가 물었다. "내가 너에게 어떤 담보물을 주랴?" 그가 대답하였다.
"가지고 계신 도장과 허리끈과 가지고 다니시는 지팡이면 됩니다."
그래서 유다는 그것들을 그에게 맡기고서 그에게 들어갔는데,
다말이 유다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19 다말은 집으로 돌아와서, 너울을 벗고, 도로 과부의 옷을 입었다.
20 한편 유다는 자기 친구 아둘람 사람 편에 새끼 염소 한 마리를 보내고,
그 여인에게서 담보물을 찾아오게 하였으나,
그 친구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하였다.
21 그 친구는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에나임으로 가는
길 가에 서 있던 창녀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거기에는 창녀는 없다고 하였다.
22 그는 유다에게 돌아가서 말하였다.
"그 여인을 찾지 못하였네. 그보다도,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그러는데,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고 하네."
23 유다가 말하였다. "가질 테면 가지라지. 잘못하다가는 창피만 당하겠네.
어찌하였든지, 나는 새끼 염소 한 마리를 보냈는데, 다만 자네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 것뿐일세."
24 석 달쯤 지난 다음에, 유다는 자기의 며느리 다말이 창녀 짓을 하여
임신까지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유다가 명하였다.
"그를 끌어내서 화형에 처 하여라!"
25 그는 끌려 나오면서, 시아버지에게 전갈을 보냈다.
"저는 이 물건 임자의 아이를 배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다말은 또 말을 계속하였다. "잘 살펴보십시오.
이 도장과 이 허리끈과 이 지팡이가 누구의 것입니까!"
26 유다는 그 물건들을 알아보았다.
"그 아이가 나보다 옳다!
나의 아들 셀라를 그 아이와 결혼시켰어야 했는데" 하고 말하였다.
유다는 그 뒤로 다시는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27 다말이 몸을 풀 때가 되었는데, 태 안에는 쌍둥이가 들어 있었다.
28 아기를 막 낳으려고 하는데, 한 아기가 손을 내밀었다.
산파가 진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아이의 손목에 감고서 말하였다.
"이 아이가 먼저 나온 녀석이다."
29 그러나 그 아이는 손을 안으로 다시 끌어들였다.
그런 다음에 그의 아우가 먼저 나왔다.
산파가 "어찌하여 네가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이 아이 이름을 베레스라고 하고,
30 그의 형, 곧 진홍색 실로 손목이 묶인 아이가 뒤에 나오니,
아이 이름을 세라라고 하였다.
창세기 38 : 1 ~ 30절 - 새번역성경
유다와 그의 아들들과 며느리 다말과 이들이 거하던 땅의 이름과 함께
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마치 이스라엘 나라가 출애굽 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죄를 드러내는 율법을 받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하나님의 파수꾼으로서,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알리는 사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도 순종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모든 민족들에게 본을 보이지 않았고, 끝까지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전할
사명조차 망각하여, 경고하심과 같이, 겪은 고난과 환난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을 다니다가 숨었던 동굴이 있었던 곳을
배경으로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유다의 후손으로 이름을 잇는 자녀들이
태어나게 되는 곳이 됩니다.
유다가 아버지, 이스라엘의 앞을 떠난 때는 배다른 동생 요셉(여호와의 돕는 자
여호와께서 더하실 것이다.)을 미워하여, 이스마엘의 상인들에게 팔아넘기고,
아버지 야곱, 곧 이스라엘에게 거짓말로 짐승에게 죽었다. 라고 거짓말을
하여,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생각하면서 죽기를 작정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떠나서 도착한 곳이 히라(고상하다)라고 하는 아둘람(피난처,
은신처)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내를 맞이하여
아들들을 낳았고, 결혼을 시키면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며느리의 이름이 다말(종려나무)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
즉 수르 광야를 삼일 동안 지나면서 이미 목이 말랐고, 마라에 도착하였을 때
마라의 뜻이 “쓴 것, 괴로움, 고통” 이라는 뜻과 같이, 물이 써서 먹을 수
없었고, 이를 인하여,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모세(물에서 건진 사람 : 세례를 의미)를 통하여 해결하여 주셨고,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살 수 있는 법도와 율례를 주셨던
곳이며, 이곳을 떠나서 도착한 곳이 바로 엘림(종려나무들, 큰 나무)이었습니다.
종려나무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을 의미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말씀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세워질 성전을 설명하시는 에스겔 40장에
기록하여 말씀하시고 계시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 사역을 눈앞에 두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에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바닥에 깔며,
호산나(오셔서 구원하소서)라고 외쳤을 때에 사용된 나무입니다.
22 모세는 이스라엘을 홍해에서 인도하여 내어, 수르 광야로 들어갔다.
그들은 사흘 동안 걸어서 광야로 들어갔으나, 물을 찾지 못하였다.
23 마침내 그들이 마라에 이르렀는데, 그 곳의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었으므로, 그 곳의 이름을 마라라고 하였다.
24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우리가 무엇을 마신단 말입니까?" 하고 불평하였다.
25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그에게 나무 한 그루를 보여 주셨다.
그가 그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 그 물이 단물로 변하였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법도와 율례를 정하여 주시고,
그들을 시험하신 곳이 바로 이 곳이다.
2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인 나의 말을 잘 듣고,
내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하며, 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의 규례를 모두 지키면,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내린
어떤 질병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주 곧 너희를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샘이 열두 곳이나 있고,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나 있었다. 그들은 그 곳 물가에 진을 쳤다.
출애굽기 15 : 22 ~ 27절 - 새번역성경
26절에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시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사역을 통하여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살고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말씀이기도 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부터 일어날 일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27절에서 하시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 일어날 일들로
샘이 열두 곳은 일 년 내내, 생명의 샘물이 그치지 않고, 모든 생명체가
형통한 삶을 살게 될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라는 뜻은 하나님의 공의회를 상징하는 숫자로서,
모세 때에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공의회로 세워진 산헤드린 공의회로 70명에
장로와 지도자로 세워져서, 출애굽 시에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한 공의회를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면 첫째 아들 르우벤(보라 아들이다)은 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중에서
제외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즉 자신의 작은 어머니
라헬의 몸종 빌하를 범하는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시므온과 레위는 레아의 딸 디나와 관련하여, 히위족속 중, 하몰의
아들 세겜이 디나를 범한 일로, 속여서 할례를 받게 한 후에 하몰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죽인 일로서, 악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모든 민족의 아버지, 믿음의
조상)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윗의 이름에 뜻이 “사랑받은 자”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듯이, 다윗에서 매듭을 짓고, 다시금 불순종한 죄의 대가로서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할 때를 그 기준으로 하시고 계시며, 이후로 다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실 때를 기준으로 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 이후로 모든 영혼들의 믿음을 시험하시려고
사탄에게 마흔 두 달 동안 세상을 다스리게 하시겠다는 기간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까지, 마흔 두 세대와 같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완전히 순종할 때까지 걸린 기간으로 이해됩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은 다윗의 이름에
뜻과 같이, 다윗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자가 되었기 때문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다윗도 모든 형편이 좋아졌을 때에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는
죽음에 이르는 죄를 지었던 것과 같이, 사람으로서는 하나님과 같이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독생자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자가
되셔야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십자가상에 사역으로 완성되어진 구원의
은혜를 믿는 사람에게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성삼위일체로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은혜를 받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죄 가운데 살게 되면
그러한 사람의 제사는 더 이상 없게 될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히브리서 10장에 기록하여 경고하시고 계십니다.
유다지파로 오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은 죄를 지어서 갖게 된 선과 악을 아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 양심을 깨우셔서, 선한 양심으로 사랑하는
삶, 곧 성령의 열매를 맺어서 성삼위일체가 되게 하시려는 사실을 절대로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존귀한 아버지)을 택하셔서, 아브라함(믿음이 조상)이 되게
하셨으며, 다윗(사랑받은 자)을 택하셔서, 성령으로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번제와 화목제를 통하여 성결하게 하신 후,
믿음의 사람들에게 성령께서 함께 사시는 성전이 되게 하시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