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중도사상]
제 4장 중도사상의 독창성
3. 대승의 중도
4) 맺음말
쌍차쌍조하고 차조동시하는 중도는 어느 종교나 어느 철학에서도 볼 수 없는 불교의
새로운 입장인데 선과 교를 일관해서 조금도 다른 길이 없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또
양변이라고 하면 고苦와 낙樂, 유有와 무無, 등이 있는데 양변을 떠난 것이
중도이므로 남전南傳과 북전北傳 모두 불교의 근본 정맥은 중도에 있습니다. 연기
緣起니 법계法界니 진여眞如니 법성法性이니 제일교第一敎니 구경실상究竟實相이니
하는 것도 모두 여기에서 성립되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깨친 정등각이고, 부처님과
조사의 이심전심이며, 또 팔만대장경에서 부처님이 종횡무진으로 설하신 내용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이 말씀한 근본불교는 유有와 무無, 단斷과 상常을 떠난 중도일승中道一昇
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계속 중도를 말했다고 해서 말만 따라가면 실제 중도는 모르고 맙니다. 밥
이야기를 천년만년 해 봤자 배가 부르지 않듯이 아무리 중도를 이야기해도 입만 아프고
귀만 아프지 중도는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부처님은 "중도를 정등각했다."고 하셨습니다. 중도를
정등각했다는 이 구절은 절대로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중도를 방법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그것은 부처님이 중도를 정등각 했다는
말의 뜻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팔리어 경전에서도 분명히 부처님이 중도를 정등각했다고
여러 번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도를 알려면 반드시 깨쳐야 합니다. 깨치기 전에는
정등각한 중도를 모릅니다. 앞에서 예로 든 현수스님 말씀에도, "입으로는 말하나 마음에
깨침이 없는 사람은 곧 미친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입으로는 중도를 말하면서 마음
속에 중도를 깨치지 못했다면 이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음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며 부처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고?"하는 화두를 늘 들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중도 이야기만 듣다가는 개가 신주를 물어 가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