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설교와 기도를 예수님이 오신 후 영안과 대언을 통한 인도, 천국과 지옥방문과 따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말합니다.
설교와 기도와 예수님의 실제적인 인도에서 나오는 기록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 한 성질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나 설교가 삶과 따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인도하심과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나 설교를 하게 하심은 순종을 위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베푸시는 은혜는 순종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순종이 아니고 자기만족이나 사람을 기쁘게 하며 현실문제해결을 통한 세상의 복을 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기복신앙이며 자신의 성공을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이며 이방인들의 삶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단지 즐거운 하나님의 가족 기록에 있는 기도나 설교가 현재 자신이 직면한 문제(대표기도 등)를 위한 손쉬운 해결방법이나 사람들을 기쁘게 하며 자신이 인정받기 위해서 행해진다면 고상한 마귀에게 잡힐 것이며 더 악한 상태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중심의 기도나 십자가 중심의 설교를 하게 하심으로 예수님이 직접통치하실 기반을 조성하시고 초원교회에 임하셨고 그 중심을 통해 즐거운 하나님의 가족을 인도하시는 가운데 천국과 지옥의 체험, 매일의 동행이 이루어지기에 기도와 말씀과 신비체험이 따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기도와 말씀을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기도와 말씀은 예언의 적용이며 예언을 뛰어넘어 현재는 영안과 대언을 통해 인도하시기에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예수님 안에서 전혀 다른 성질이 아닌 여전히 예수님의 인도 속에 하나를 이루고 있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 단계에 따라 처음엔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게 하셨고 이제는 그 말씀과 기도를 마음에 새기고 예수님의 얼굴을 대면하고 그 음성에 귀 기울여 삶의 전반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말씀을 먼저 발하시고 직접 그 모습을 드러내심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기에 이제 이전의 말씀과 기도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말씀과 기도의 주체가 내가 아닌 예수님이 주체가 되셔서 적용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짐이 가벼워졌고 늘 기쁨과 감사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강림과 동행은 극단적 신비주의로 치부하여 버리고 말씀과 기도만을 안전하게 여기고 이용하는 자들은 자신이 취사선택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진정 예수님이 중심이라면 말씀과 기도는 구별된 삶과 예수님의 통치와 분리하지 않습니다.
말씀과 기도를 이용하다보면 자신과 사람들의 방향이 예수님께로 향하며 구별된 삶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초원교회를 사모하며 예수님께 사람들을 붙이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나 그러나 사람들을 예수님께 붙이고자 아니하고 자신의 이름을 위해 사는 자가 그런 설교와 기도를 하게 되면 더 악해지고 위선적이 될 것입니다. 거룩한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자신을 드러내는 방편으로 삼기에 고상한 마귀에게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이용하면서 초원교회에 계신 예수님을 따르지 않으며 말씀과 기도만을 좋아하는 자들은 고상의 마귀의 종노릇 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룩한 중심, 구별된 삶을 모방하고 가르칠 수 있습니다. 마귀도 하나님으로 가장하거나 천사를 가장하여 자신을 높이며 자신을 자랑합니다. 예수님께서 초원교회를 통해 거룩한 말씀, 구별된 삶을 흘러 내보내심은 사람들을 초원교회로 이끌고자 함입니다. 초원교회는 하나님이 직접통치하시는 교회로 하나님께서 행하심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초원교회를 통한 예수님의 인도와 분리되어 독자적인 길을 가며 말씀과 기도를 이용하되 구별된 삶과 영안과 대언을 통한 인도를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고 버린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교만을 따라 행하는 사람입니다. 거룩한 지식과 교만이 결합하여 자기 길을 가면 고상한 마귀가 잡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말씀과 기도, 영안과 대언을 통한 예수님의 인도가 따로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로 엮여있고 하나로 가고 있습니다.
따로 분리하면 죽은 믿음이며 예수님과 상관없는 인간의 의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