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물이 흘러가는 달이 솟아나는 평범한 대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어리석을 만치 소박하게 성취한 우리들의 혁명을 배암에게 쐐기에게 쥐에게 살쾡이에게 진드기에게 악어에게 표범에게 승냥이에게 늑대에게 고슴도치에게 여우에게 수리에게 빈대에게 다치지 않고 깎이지 않고 물리지 않고 더럽히지 않게 그러나 정글보다도 더 험하고 소용돌이보다도 더 어지럽고 해저보다도 더 깊게 아직까지도 부패와 부정과 살인자와 강도가 남아 있는 사회 이 심연이나 사막이나 산악보다도 더 어려운 사회를 넘어서 이번에는 우리가 배암이 되고 쐐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쥐가 되고 살쾡이가 되고 진드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악어가 되고 표범이 되고 승냥이가 되고 늑대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고슴도치가 되고 여우가 되고 수리가 되고 빈대가 되더라도 아아 슬프게도 슬프게도 이번에는 우리가 혁명이 성취되는 마지막 날에는 그러나 사나운 추잡한 놈이 되고 말더라도 나의 죄 있는 몸의 억천만 개 털구멍에 죄라는 죄가 가시같이 박히어도 그야 솜털만치도 아프지는 않으리니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자는 아이의 고운 숨소리를 듣는 마음으로 죽은 옛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은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는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 ----------------------------------------------------------
저는 김수영이 쓴 <기도>를 택했습니다,. <기도>는4.19 혁명이 일어난 후 김수영 시인이 쓴 시입니다. 50년이 더 지난 2017년 12월에 읽어도 이 시는 조금도 손색이 없고 예언자적인, 시대정신을 잘 반영한 시로 다가옵니다. 1960년 4월에 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정부 민주주의 혁명. 이승만 정권의 부정 선거에 항의하며 민주적 절차에 의한 정권 교체를 요구했던 4.19혁명이 그다음 해에 일어난 군사 쿠데타로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습니다. 1987년 6. 10항쟁! 넥타이부대로 일컬어지는 화이트 컬러까지 거리로 끌어내는 시민혁명으로 이어져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내었지만 민주세력의 분열로 역시 미완의 항쟁으로 마감했습니다. 올해 일어난 촛불집회! 초는 자신의 몸을 태워 밝은 빛을 내어 어둠을 밝힙니다. 남녀노소, 어린 학생 가족까지 참여한 촛불집회가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궁금합니다. 이번에는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수영 시인의 시를 골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