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윗의 동역자들
(역대상 27장 32-34절)
------------------------------------------------출처/김민호목사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룬 왕이라면 외치분야로는 광개토대왕, 내치분야로는 세종대왕을 꼽습니다. 두 분 다 ‘대왕’이라는 칭호가 붙었습니다. 특히 세종대왕은 ‘성군(聖君)’이라는 칭호로 전 국민이 인정하는 왕 중의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종대왕의 업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한글창제’ 이외에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사실 세종대왕은 이룬 업적도 훌륭하지만 인재관리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장영실 이라는 천민 출신을 등용시켜 실용적인 기구(측우기, 자격루, 혼천의)들을 만들도록 하였습니다. 신분을 중요시한 정책이 아니라, 능력(실력)을 보고 발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재 발탁 시 왕의 일방적인 생각으로 하지 않고, 신하들과 토론을 거쳐 숨은 인재들을 발굴하여 등용시켰습니다. 세종대왕은 기본적으로 덕을 지닌 왕이었지만, 그의 성공적인 후세의 평가 이면에는 열린 인재관리와 공평한 기회의 제공에 따른 관리들의 잠재능력 극대화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다윗 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했던 측근 중의 측근, 이른바 정권의 핵심인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공한 왕이 되었지만, 다윗 왕 곁에도 세종대왕을 돕는 신하들처럼 많은 인재들이 있었다는 것도 성공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 말씀 세 구절에 총 7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들 중 요압을 제외한 인물들은 문신(文臣)들입니다. 이들은 왕의 곁에서 각종 국사들을 살피면서 왕에게 조언을 하거나 정책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다윗 왕이 올바른 정책결정을 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왕의 주변 인물들이 공식적인 절차에 의해 임명 된 것이 아니라 권력이 강화되어 가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그룹이었다는 점은 의아합니다. 요즘 같으면 숨겨 놓은 비선실세(秘線實勢,shadowy power)집단이라고 불릴만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숨어서 음모를 꾸미는 집단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왕에게 자문을 구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왕권확립과 국가 통치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였습니다. 소개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들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일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다윗 왕의 숙부인 ‘요나단’입니다. 요나단은 지혜가 있어서 다윗 왕의 모사(謀士-, schemer)였다고 합니다. 모사는 왕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으로 군주를 보좌하며 정치 행정에 관한 여러 조언을 해주는 자리입니다. 전쟁 중에는 일선의 군사령관 역할(軍師將軍)을 겸하였습니다. 중국에서 대표적인 모사요 군사는 제갈공명이 있고, 손무(손자), 강태공이나 장량(한 고조 유방의 모사)등의 인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삼국통일의 한 축을 담당했던 김춘추, 조선 건국의 기초를 놓는데 공을 세운 정도전이나, 반역으로 왕위를 찬탈했던 세조임금 곁에는 한명회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왕이 세워지고, 그 왕위를 태평성대로 계속 이어 나가고, 후대에도 좋은 평가를 이루려면 유능한 정치력과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전략전술에 능한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윗 왕에게는 아마도 숙부인 요나단이 그런 중책을 맡은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다윗의 숙부 요나단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로 조력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그가 숙부였다는 것과 지혜를 가진 모사였다는 것을 언급하는데, 추가적으로 서기관(書記官, secretary)의 역할도 겸직했다고 합니다. 서기관들은 본래 레위지파 출신이 맡았으며 율법을 필사하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전문적인 학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하지만 다윗 시대와 같이 왕정시대에는 국가의 중요 문서를 기록하고 보관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이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왕의 의전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왕의 비서실장은 누구보다도 왕의 의중을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고, 충직함으로 고언(苦言)도 서슴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허수아비와 같은 ‘예스 맨 실장’은 왕을 돕는 것이 아니라,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합니다. 거기에다 비서실장이 왕의 권세를 이용해서 각종 이권과 인사에 개입하다 보면, 그 나라는 근본부터 썩어 들어가서 결국 무너지고야 맙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측근 중의 측근인 왕의 비서가 저지른 악행들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다윗에게 있어 숙부 요나단은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아마도 숙부 요나단이 혜안을 지닌 지혜의 사람으로, 자신의 맡은 바 일을 충실히 감당했기에 다윗 왕의 명성이 빛을 발할 수 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모사라는 직책을 영어로는 ‘카운셀러(상담자, counsellor)’라고 합니다. 다윗 왕은 요나단과 하나의 비밀도 없이 모든 문제와 고민들을 다 털어놓고 상담을 요청하고 자문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어떤 일에 대해서는 헛똑똑이가 될 수 있고, 아무리 강직한 사람도 어떤 일에는 한 없이 나약해 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해 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릅니다. 신앙생활 하는 것, 교회 직분 감당해 나가는 것은 모두 다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행동입니다.
여러분 곁에는 어떤 지혜로운 동역자가 있습니까? 요나단 같이 늘 곁에서 힘과 용기와 위로를 주는 중요한 사람이 있습니까? 만약 그런 분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런 분을 얼마나 신뢰하시고 의지하십니까? 그 사람이 영원토록 여러분 곁을 떠나지 않고, 배신하지 않고 늘 함께 해 주실 분이라고 믿고 계십니까? 사람은 다 변합니다. 비록 부부 지간이라 할지라도 눈앞의 이익과 안위 앞에서는 사람은 언제든지 등 돌리고 떠날 수 있습니다.
이사야 2장 22절에,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그래서 성경은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늘 우리의 지혜가 되어 주시고, 우리 곁을 지켜 주시는 영원한 상담자인 성령님이 계십니다. 나의 모사요, 서기관이 곧 성령님 이십니다.
다윗이 숙부인 요나단을 끝까지 신뢰하고 곁에 두었던 이유는 그가 지혜로운 사람, 곧 지혜의 근원되시는 삼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곁에 성령하나님과 동행하는 단 한사람의 지혜자가 동역자로 세워진다면, 우리의 인생은 시온의 대로를 걷는 평탄의 길이 될 것입니다. 저는 여기 함께 예배드리고 계신 분들이 저의 동역자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들이 저에게는 요나단 같은 분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다윗 왕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단지 하나님 앞에 범인(凡人)일 뿐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위로를 주고, 용기와 격려로 지지해주는 아름다운 동역자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 등장하는 인물은 학모니의 아들 ‘여히엘’입니다. 이 인물도 요나단과 같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설명은 없습니다. 여히엘이 왕자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인물이었다는 점을 보아, 전통적으로 명문가의 혈통을 지니고 있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첫 번째를 꼽으라면 아마도 조선 왕조 시대의 세자교육이었을 겁니다. 세자들의 사부(師傅, 스승이며 후견인)는 삼정승(영,좌,우의정)이 번갈아 가며 지도했으며, 10명 정도의 전문 관료가 세자들의 교육을 전담했습니다. 왕자들이 군주의 면모를 잘 갖추도록 지식과 예절, 국가 통치 경영의 철학들을 지니도록 교육했습니다. 왕은 문무를 겸비해야 했기 때문에 강도 높은 사교육을 시켰습니다. 특히 주변국가와의 외교를 위해 국제적 감각을 키우는 역할도 중요시 했습니다.
아무리 폐쇄적인 국가라도(북한의 통치자 자녀들도) 자녀들이 글로벌한 마인드를 지니도록 언어와 외국문화를 조기에 습득하도록 지도하는 것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도 이 여히엘 사부 아래에서 지도를 받았을 것입니다.
교육의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야구선수로 부산출신의 이대호 선수가 있습니다. 흔히 그를 ‘조선의 4번 타자’라고 별명을 지어 부르곤 합니다. 이대호 선수는 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어머니가 재혼하자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할머니는 어시장에서 좌판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이대호 선수가 야구 글러브를 살 돈이 없을 때는 아껴둔 금가락지를 팔아서 야구용품을 사 주었습니다. 이대호 선수는 성공하여 돈 많이 벌어서 할머니를 모시겠다는 마음으로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운동을 했습니다. 그가 비로소 프로야구 계약을 하기 전 날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숨졌습니다, 이대호 선수의 등 번호는 25번입니다. 25번의 의미는 할머니의 이름이 ‘오분이’였는데, 내심으로는 52번을 등번호로 하고 싶었지만, 이미 다른 선수가 사용하고 있어서, 이(2)와 오(5)를 따와서 25번을 고집한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희생적인 수고와 헌신이 시대의 걸출한 인물을 배출해 냅니다. 다윗왕조는 하나님이 약속하셔서 영원토록 왕위(位)가 계속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아들들은 언약백성의 왕가의 후손으로 교육을 받는 것이기에 여히엘의 임무는 막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들과 교회에서도 여히엘과 같은 교육전담자가 필요합니다. 그냥 자리만 맡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학식과 인품,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실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머리가 좋고,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하고, 학계, 정계, 재계, 언론계에서 두각을 나타나는 것은 어려서부터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그에 앞서 신앙교육은 천년, 만년지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내가 여히엘이 되고, 여러분이 여히엘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우리 자녀들이, 우리 후손들이 하나님 앞에 다윗 왕가의 왕자들처럼 영원한 왕위 오를 왕위 품격을 갖추며 성장해 나가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사명을 지녔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자녀교육과 교회 교육에 기도하시며 동참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거명되는 인물은 ‘아히도벨’과 ‘후새’입니다. 둘 다 다윗 왕의 충신이었는데, 아히도벨은 반역자로 변절하였고, 후새는 끝까지 다윗에게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 왕의 30인의 용사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어떤 사람은 그가 밧세바의 조부라고 하기도 하지만,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아히도벨의 계략은 뛰어나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무엘하 16장 23절입니다.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여겨졌더라” 이렇게 대단한 지략가 였던 아히도벨은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압살롬 편에 섰다가 몰락의 길을 갑니다. 이러한 반역자의 길을 걸었던 배신자를 다윗 왕의 측근 참모들과 같이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가 한참 지혜로울 때는 이러했다는 기록을 남김과 동시에, 그와는 다르게 끝까지 충성을 다한 후새라는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함입니다.
후새는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아히도벨의 계략을 알아채고 혼란 전술을 펴서 다윗 왕의 목숨을 구해줍니다. 후새는 반역이 진압 된 후에 다윗 왕의 곁에 있으면서 벗으로(친구) 지냈습니다. 사람은 평소보다도 자신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준 사람을 평생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간신과 충신은 종이 한 장 차이이며, 혼란과 격변이 몰아쳐 올 때 진정한 충신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다 하나님이 부르셨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죽음과도 같은 큰 시험이 닥치면 변절자와 배교자들이 속출합니다. 이 시대에도 아히도벨과 같이 사람들의 눈에 뛰는 전략가들은 많지만, 후새와 같이 은둔의 신실한 일꾼들은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점점 마지막 때가 다가옵니다. 우리 모두가 아히도벨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기도와 말씀으로, 그리고 거룩함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후새와 같이 마지막 때에 승리하셔서 우리 주님과 친구가 되어 영원토록 함께하는 시간을 맞이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거명되는 인물은 브나야의 아들 ‘여호야다’, 대 제사장인 ‘아비아달’,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윗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이스라엘 군대의 총사령관이자 군대장관인 ‘요압’장군입니다. 세 명중에 브나야는 다윗 때에도 충성한 장군이었고, 솔로몬 때에는 군대장관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반면에 아비아달 제사장과 요압장군은 다윗 왕이 죽자 솔로몬편이 아닌 ‘아도니아’왕자 편에 섰던 인물들입니다. 결국 아비아달 대 제사장은 다윗 사후에 솔로몬에게 반역하다가 제사장 직에서 파면당하여 집으로 추방당합니다. 요압 장군은 브나야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여기 세 명의 인물들은 다윗 시대에는 함께한 동역자였지만, 솔로몬 시대에는 운명이 판이하게 갈리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권력을 말할 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이라고 합니다. 다윗과 같은 위대한 왕도 자신의 죽음 이후에, 자신의 평생토록 함께 했던 아바아달과 요압이 배신을 하여 죽임을 당하리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별이 요압장군은 다윗과 한 몸으로 일생을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충신 중의 충신이었습니다. 다윗의 군대장관으로서 다윗의 일생동안 함께 하면서 혁혁한 무공을 세운 장군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무력과 지위를 이용해서 다윗에게 늘 대항하였던 눈에 가시와도 같은 존재 였습니다. 정권유지를 위해 필요한 인물이었으나, 개국공신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서 왕의 자리도 우습게 여겼습니다. 요압은 다윗 정권 초기에 다윗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사울의 군대장관 이었던 아브넬 장군을 살해 하였고, 다윗 왕이 죽이지 말라고 했는데도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반역자라고 해서 살해 했고, 다윗이 평화정책의 일환으로 압살롬의 사촌 아마사를 군대장관으로 기용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자 그를 죽이고 자신이 군대장관을 차지했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말년에 이런 저런 연유로 압박을 가하더니 끝내 다윗 사후에 솔로몬을 왕으로 모시라는 다윗의 유지를 따르지 않습니다. 다윗은 죽으면서 솔로몬에게 유언하기를 “요압을 조심하라, 요압의 불의를 그냥 두지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브나야와 그의 아들 여호야다는 대를 이어 충성한 가문이 되었지만, 아비아달과 요압은 한때는 충신이었으나 종말은 반역자의 가문으로 남는 결말을 맞이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시대에 따라, 권력의 이동에 따라 변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실 때 지조 있고 변함없는 믿음의 소유자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체가 신실하시기 때문에 신실한 사람을 쓰시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잠시 반짝하는 인기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비록 지금은 무명일지라도, 오래 가고, 종착점에서 만날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믿음의 결국은 마지막에 실체가 판명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통과되는 사람과 탈락하는 사람으로 나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반짝하고 마는 일꾼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끝까지 쓰시기에 합당한 인물로 평가 받으며, 영원토록 하나님의 자녀요 일꾼으로 선택 받아 충성과 헌신을 다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왕의 측근들, 다윗 왕의 가장 가까운 동역자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상담자요 위로자가 있었고, 자녀들을 가르치는 교육 담담자도 있었고, 평생 말벗이 되어준 친구도 있었고, 어려울 때 배신한자와 충절을 지킨 자도 있었고, 대를 이어 충성한 가문과 몰락한 종교, 정치 지도자도 있었습니다. 가정이나 교회에서도 여기 나온 인물과 같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냐의 기준은 제각각 일 수 있겠으나, 하나님의 기준은 단 하나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어떤 상황이 온다 하여도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떠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위대한 왕의 곁에는 충성스러운 신하가 있었습니다.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 곁에는 죽기까지 충성한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평가 하실 지를 늘 고민하면서 지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소중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 감당하라고 능력도, 지혜도, 건강도, 물질도 주셨습니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상황에 따라 변심하지 말고, 강직하고 신실하게 오직 믿음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다윗 왕과 같이,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사람으로 거듭나서,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사명들을 초과 달성하는 충성된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동역자로 삼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변함없는 신실한 믿음과 충성된 마음으로, 맡겨진 모든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주님 오실 그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동역자의 자리를 지켜 낼 수 있도록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위로자요, 친구요, 영원한 동역자가 되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