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1-16
포도원을 지킨 나봇 / 손상률 목사
이스라엘의 7대왕 아합은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폭군입니다. 그의 아내 이세벨은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로서 아합의 왕비가 된 다음 이스라엘에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숭배하게 하였습니다. 그 당시 선지자 엘리야는 아합 왕의 폭정을 비판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기도 하였습니다(왕상 17:1-2).
본문 말씀에는 아합 왕과 이세벨이 합작하여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합 왕은 나봇을 불러 놓고 그 밭을 자기에게 팔든지 다른 밭과 바꾸든지 하라고 하였습니다. 나봇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포도원을 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이세벨은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누명을 씌워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리고 포도원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나봇은 포도원을 지키려고 목숨을 버렸습니다.
1. 포도원의 영적 의미
옛날부터 성지 팔레스타인에는 포도농사가 주요 산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과 밀접한 포도원을 비유로 여러 가지 교훈을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포도나 포도원에 대한 의미가 다양하게 적용되었습니다.
1) 부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맨 처음 포도와 관련된 사건은 노아의 이야기에서 나옵니다. 홍수의 심판에서 살아남은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면서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벌거벗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둘째아들 함이 다른 형제들에게 소문을 내었다가 저주를 받았습니다(창 9:18-27). 성경에는 사람이 포도주나 독주에 취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잠 23:31, 엡 5:18). 거룩하게 살아야 될 하나님의 백성이 포도주를 먹거나 술에 취하게 되면 자신을 가누지 못하고 추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제사장이나 나실인은 절대로 포도주를 가까이 할 수 없도록 율법에 명시하였습니다(민 6:3). 레갑 자손들은 조상의 유지를 받들어 포도농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렘 35:14).
2) 긍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포도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상징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9:13에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28:3에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모습과 또 하나님께 많은 복을 받은 가정의 모습을 포도나무로 비유한 것입니다.
이사야 5:1에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고 하였습니다. 7절에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3) 신약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 가운데 포도원에 관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마 20:1-16, 21:33-41, 눅 13:6-9).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를 통하여 예수님 자신과 성도들의 관계로 설명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받게 되는 축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곧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면 말라버리게 되지만 나무에 붙어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요 15:1-8).
개혁교회가 성찬식에 포도주를 사용하는데 이는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신학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잔을 들고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였습니다(마 26:28). 이와 같은 정황으로 보아 포도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신앙의 정절과 희생과 서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 포도원을 빼앗으려는 자
솔로몬왕은 술람미와 함께 즐기는 자기의 포도동산을 지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아가 2:15에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때나 주님의 포도동산은 해치려는 세력이 노리고 있습니다.
1) 음부의 권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 세워지는 자기 교회를 향하여 음부의 권세가 그침 없이 도전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마 16:18). 여기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으려는 아합 왕은 주님의 교회를 해치는 마귀의 화신입니다. 역사적으로 아합 왕과 같은 폭군들은 자기의 권력을 앞세워 무고한 백성을 짓밟으며 가진 횡포를 부리곤 하였습니다. 성경적으로는 세상의 권력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에 집권자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백성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 주어야 합니다(롬 13:1-7).
그렇지만 대부분의 무신론적 권력자들은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백성을 희생시킵니다. 예레미야 17:5에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 육신의 정욕입니다.
이는 세상과 타협하는 세력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 편에 선 사람들 중에도 진리를 세속적인 것과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합 왕이 나봇에게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2절).
나봇이 아합 왕의 제의를 받아들였더라면 그는 왕으로부터 총애를 받고 상당한 지위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육체적인 소욕과 세상적인 명예를 탐하게 되면 신앙의 지조를 저버리게 됩니다. 교회가 외부세력으로부터 박해를 받게 될 때 변절하는 사람이 생겨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3) 비진리와 세속주의 사상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말씀 위에 굳게 서지 못하게 되면 세상의 유혹과 시험에 흔들리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자라지 못하고 어린아이의 상태로 머물게 되면 세상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엡 4:14).
오늘날 교회를 흔드는 세력이나 성도를 바른 믿음에서 넘어뜨리려는 거짓무리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14에 사탄도 자기를 광명한 천사처럼 가장한다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6:11에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우리의 주적을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라고 하였습니다(엡 6:12).
3. 포도원을 지키려는 나봇
나봇은 포도원을 돈을 받고 팔든지, 더 좋은 것으로 바꾸든지 하라는 아합 왕의 제의를 거절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누명을 쓰고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가 목숨을 내놓으면서 포도원을 지키려 한 이유가 있습니다.
1) 조상의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3절에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고 하였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조상들의 유산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것이 정신적인 유산이든지, 생활습관의 전통이든지 조상들의 유지를 계승하는 것이 자손들의 의무였습니다. 족장들의 경우 아브라함의 신앙과 생활을 이삭이 계승하였고 이삭은 자기 아들 야곱에게 그대로 전승하였습니다(창 28:1-4).
야곱은 애굽에서 열두 아들을 불러놓고 축복의 유언을 한 다음 자기의 시체를 조상이 묻혀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창 49:1-33).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조상 때부터 지켜오는 신앙과 경건생활의 유산을 뜻합니다. 시대와 환경이 변하더라도 신앙적 유산은 지켜져야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나봇은 자기가 왕의 요구를 거절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신 일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레위기 25:23에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율법은 가난한 자를 보호하는 것도 되지만 하나님께 받은 기업을 돈이나 권력에 의해서 임의대로 빼앗지 못하게 하는 뜻도 있습니다. 혹시 가난하여 토지를 팔게 되면 희년에 돌려받거나 가까운 친척이 물어주게 하였습니다. 나봇은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합 왕이 그에게 많은 돈을 주겠다하고 또 그가 원한다면 훨씬 더 좋은 밭을 바꿔 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율법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3) 값비싼 대가를 치렀습니다.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 조상의 유산을 지키려던 나봇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간악한 이세벨이 폭력배를 데리고 가서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거짓 증언을 하게하고 그것을 빌미로 성 밖에 끌고 가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 나봇이 죽게 되자 포도원은 아합 왕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나봇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포도원도 지키지 못하면서 자기의 목숨만 잃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장면을 사진찍어 두셨습니다. 엘리야를 보내서 아합에게 경고하기를 “네가 죽이고 빼앗았느냐?” 하시고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고 하였습니다(왕상 21:19).
나봇이 비록 포도원은 지키지 못했지만 목숨을 바쳐서 조상의 유지와 하나님의 법은 지켰습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적 유산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