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실의 하권 제 6편(3-4)
* 6-3:중국 선비가 말한다:
노자와 장자의 무리는 단지 그들이 (타고난) 자연의 생명(天年)을 온전히 누리려고 할 뿐이기 때문에, 의지를 물리치고 선과 악을 버림으로써 마음의 얽매임을 끊어 버리려는 것입니다.
요堯임금, 순舜임금, 우禹왕, 탕湯왕, 문文왕, 주공周公과 공자孔子는 모두 고심하고 힘을 다하여, 자신의 덕을 닦음으로써 백성에게 베풀어 미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지극한 선善에 이르지 않으면 감히 쉬지 못했습니다.
(이들 중에), 몸만을 온전히 하고, 의지를 없애고, 노니는데 힘써서 백 살이라는 나이를 채운 자가 누가 있었습니까?
설령 100세의 수를 채웠을지라도, (천년을 산다는) 하나의 거북이나 하나의 썩은 나무(고목古木)의 수명에는 미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헛되이 30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이 속세의 더러운 육신에서 더 보탠다 한들, 마침내 무엇을 건져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두 사람 (즉 노자老子와 장자壯者)은 비판할 만한 가치조차 없습니다.
(다만 선생께서) 덕德과 부덕不德, 선과 모두가 (사람의) 의지로부터 연유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점을) 상세하게 말씀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무릇 도리에 순응하는 것이 바로 선이요 그것을 덕행이라 말하고 도리를 어기는 것이 바로 악이 되니 못난이라고 불린다”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선행과 악행의 판결이란 그 사람이 행하는 일이 어떠한가를 되돌아보는 일이지, (인간의) 의지와는 아무도 별 상관이 없는 듯해 보입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이런) 도리는 쉽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무릇 세상의 사물이 일단 자기의 의지를 가지고 있고, 또한 그 의지를 따를 수도 그만둘 수도 (곧 자유 의지가) 있어야 그 다음에 (비로소) 덕도 부덕도 선도 악도 있게 됩니다.
의지는 마음에서 발동하는 것입니다. 쇠나 돌이나 천국들은 마음이 없으니 의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막야(중국 고대 명검名劍)가 사람을 헤쳤어도, 복수하려는 사람은 마야를 부러뜨리지 않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기와가 사람의 머리를 다치게 했다 해도, 원통한 사람은 날아온 기와에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막야가 자르고 절단을 (잘)한다고 해서 그것에 공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붕 위의) 기와가 비바람을 막아 주어도 사람들은 그것에 보답하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한 일이 마음에서도 의지에서도 (우러나온) 바가 없기 때문에, 덕도 부덕도 없고 선도 악도 없어서 이들을 상 줄 수도 벌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짐승이라면 짐승의 마음과 의지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옳은지 그런지를 변별할 수 있는 이성(영심靈心, intellect)가 없으니 느낌 바에 따라서 멋대로 즉시 반응하는 것이며, 이치를 따져서 자기가 할 바를 절제하지 못합니다.
자기들이 한 짓이 ‘옳은 예(시례是禮)’이든, ‘옳은 예가 아니든(비례非禮)’ 어찌할 수 없어서 할뿐만 아니라, 또한 역시 스스로 (자기 행동에 옳고 그름을) 알 턱이 없습니다.
어떤 것이 선인지 악인지를 따지는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기 때문에 세상이 여러 나라에서 제정한 법률에는 짐승의 부덕함에 벌을 주거나, 짐승의 덕행에 상을 주는 일은 없습니다.
오직 사람만은 그와 같지 않아서 밖으로 일을 거행하고 안으로는 마음을 다스려서, (하는 일이) ‘옳은지(시是)’, ‘그른(비非), ’합당한지(당當)‘, ‘합당하지 않은(不當)’를 지각할 수 있고 그에 따라서 그 일을 할 수도 그만둘 수도 있습니다.
비록 ‘짐승의 마음(수심獸心)’이 있다 해도 이치로 마음을 주재하면,’ 짐승의 마음’이 어찌 ‘우리들이 주도하는 마음( 즉 이성)의 명령을 어길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가 도리에 따라서 의지를 발동하면 고통을 행하는 군자가 되는 것이니, 천주께서는 그런 사람을 도우십니다.
우리의 의지가 ‘짐승의 마음’에 빠져들어 바로 죄짓는 소인이 되면 천주께서는 또한 이들을 내쳐 버리십니다.
어린 아기가 어머니를 때려도 이를 나무랄 수 없는 것은 그 아이가 아직 자기의 의지를 살펴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장성하여서 (하는 일의) ‘옳고 그름(가부)’의 인식할 수 있을 때 이르면, 어찌 그 (아이가 사람을) 때리는 것을 기다리겠습니까? 조금만 자기 부모를 거스려도 곧 부류의 죄가 부과될 것입니다.
옛날에 활쏘는 사람 둘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산과 들로 갔는데 관목 아래 엎드린 사람을 호랑이로 (잘못) 생각하여, (그 호랑이가) 장차 사람을 해칠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활로 쏘았는데 (도리어) 우연하게 사람을 맞추는 잘못을 헸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나무 숲에 올라가서 얼핏 곁을 보니, 마치 사람처럼 움직이는 것이 있어서 역시 그것을 활로 쓰고 칼로 찔렀는데 실제로는 사슴이었습니다.
그 먼저 사람은 결과적으로 사람을 죽였으나, 의지는 호랑이를 쏘는데 있었으니 판결은 마땅히 포상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 사람은 비록 야생 사슴을 죽였으나 그 의지는 사람을 찌르는데 있었으니 판결은 마땅히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의지의 아름답고 추함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렇다면 의지가 선과 악의 근원임을 명백히 드러낸 셈입니다.
* 6-4:중국선비가 말한다:
자식이 부모를 공양하기 위하여 도둑질을 한다면 그 의지는 좋은 것이지만, 그런데도 법의 처벌을 면하지 못하니 어찌 된 것입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우리 서양 나라의 (도덕) 공리 公理에 “선은 모든 것이 완전함에서 이루어지고, (악은 아주 작은 잘못) 하나만으로도 이루어진다” 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말해 보겠습니다.
사람이 일단 도둑질을 했으면, 비록 그 나머지 행실이 모두 의롭다고 해도 다만 나쁜 짓을 했다고 하지, 착한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서시(BC 5세기 고대 중국 미녀)”라고 해도 불결한 것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코를 막고 지나갑니다.
(또) 비유하자면 굴뚝의 둘레 모두가 두껍고 단단해도, 오직 바닥에 틈새 하나라도 있으면 물이 그곳으로부터 샐 것입니다. 이런 항아리는 빠개져서 쓸모없는 조그만 질그릇이 될 것입니다.
악이란 사실 (매우) 지독한 것입니다.
(누가) 자기의 재물을 희사하여 (다른 사람들의) 가난과 궁핍을 널리 구제하였고 그럼으로써 좋은 명성을 훔쳐내어, (평소) 가질 수 없는 지위를 얻었다면, 비록 행동한 것이 마땅하다고 해도 그 의지(의 지향)은 실로 비뚤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행한 일들은 (모두) 다 곧지 못한 것입니다. 대개 추한 의지는 그 사람의 선행까지도 더럽히는 법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위하여 남의 재물을 훔친다면, 그것 자체가 이미 나쁜 것인데, 어찌 좋은 의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바른 의지(正意)’란 선행을 실천하는 근본이니, 오직 우리들의 ‘올바름(정正)’만을 실천하고 우리들의 ‘그릇됨(사邪)’은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둑질은 진실로 그릇된 것입니다. 비록 ‘의로운(의義)’ 뜻을 ‘우연하게 취할’ 수는 있다 해도, (결코) ‘올바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실낱처럼 (아주) 적은 불선不善을 하여 온 세상에 만민을 (다) 구제해 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우리는) 또한 그렇게 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하물며 (도둑질하여) 두세 식구를 먹여 살리는 일 때문이겠습니까? 선을 행하는 ‘바른 의지(정의正意)’란 (바로) 마땅히 실천해야 할 일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려는) 의지가 더욱더 고상해지면 선善 (또한) 더욱더 (정일精一)해집니다. 만약 하려는 의지가 더욱더 비루卑陋해지면, 선善 또한 더욱더 조잡해집니다.
그렇 때문에 의지는 마땅히 (잘) 길러져야만 하고 마땅히 성실해져야 합니다. 그것을 없애야 할 무슨 이유가 있단 말입니까?
입력:최 마리 에스텔 수녀/20260705/PM:15:35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