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 여래찬탄품如來讚歎品 - 4
여래께서 지장보살을 찬탄하시는 품.
어제의 시간에서 이어 나가겠습니다.
어제까지는
〈여래찬탄품如來讚歎品〉의 전반부를 공부하셨습니다.
오늘부터는 이어서 공부할 후반부는
지장보살의 위신력과 자비심이 얼마나 위대한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목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지장보살의 위신력이
얼마나 큰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물론 시간관계상 경문 중에서
핵심적인 부분만 간추리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보광보살普光菩薩이 부처님에게
‘지장보살이 인간과 천상을 이익되게 하는
인과에 관한 일을 설 해 달라’고 하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부처님께서 보광보살에게 이르시기를
“미래세에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지장보살마하살의 이름을 듣고 혹 합장하는 자,
찬탄하는 자, 예배하는 자,
흠모하는 자는 삼십겁의 죄를 벗어나리라.”]
우리는 자신이 지은 업은
남이 대신 받을 수 없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지장보살마하살의 이름을 듣는 자,
찬탄하고 예배하는 자는 물론이고,
생각하고 사모하는 자도,
30겁의 죄업을 뛰어넘는다고 설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전에 배웠던 것은 잘못인가,
아니면 지금 부처님 말씀이 맞지 않은가
의심이 생길 것입니다.
이에 대한 좋은 답이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에 있습니다.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은
《밀린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이라고도 합니다.
‘밀린다왕이 질문한 것을 내용으로 한 경’으로
그리스 왕 메난드로스가
인도의 나가세나(한자로 음사한 것이 나선那先)비구에게 질문을 하고
나가세나가 비구가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메난드로스 왕이 이렇게 질문 합니다.
“나가세나 존자여,
그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백 년 동안 악행을 했더라도
죽을 때 한 번만 부처님을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천상에 태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나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또 그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 번만 살생을 했더라도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나는 그런 것을 믿지 않습니다.
메난드로시 왕의 의문은
지금 우리가 품는 것과 똑같습니다.
‘한 번만 살생해도 지옥에 태어날 것이라고 하면서
백 년 동안 악행을 저질러도 죽는 순간에
부처님을 생각하면 천상에 태어난다고 하니
앞뒤가 맞지 않다.’
그러니 어느 것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에 대해 나가세나 존자는 어떻게 대답을 하는가?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조그만 돌이라도 배에 싣지 않고
물 위에 뜰 수 있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백 대의 수레에 실어야 할 정도로 무거운 바위라도
큰 배에 싣는다면 물 위에 뜰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물 위에 뜰 수 있습니다.”
“대왕이시여,
선업善業은 마치 그 배와 같은 것입니다.”
지장보살의 본원력本願力.
위신력, 자비심은 바로 큰 배와 같습니다.
바윗덩어리도
그 배에 싣는다면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습니다.
배가 그 무게를 감당하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배가 없다면
무게가 얼마 되지 않는 돌이라도
물속에 가라앉게 됩니다.
우리가 지은 악업은
지은 악업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과보를 낳습니다.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지장보살의 본원력, 위신력을
아무리 지중한 업장이라도 녹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장보살의 이름을 듣는 자,
혹은 찬탄하는 자는
30겁의 죄업을 뛰어넘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장보살의 위신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경문을 보겠습니다.
[“보광이시여,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혹 지장보살의 형상을 그리거나
혹은 흙 돌 아교 칠 금 은 동 철 등으로
이 보살의 상을 조성하여 한 번이라도 예배하는 자는
백번을 삼십삼천에 태어나고
길이 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며...........중략......
만약 어떤 여인이 여자의 몸을 싫어한다면 정성을 다하여
지장보살상의 공양하면
이와 같이 날마다 퇴전치 아니하고
항상 꽃이나 향 음식 의복 비단 당번 돈 보배 같은 물건으로 공양하면
이 선여인은 한번 받은 여자 몸이 다하면
백천만겁 다시는 여인 있는 세계에 나지 않을 것이어든
하물며 다시 여자 몸을 받겠는가?
오직 자비 원력으로 여인 몸을 받아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을 제외하고는
이 지장보살을 공양한 힘과 지장보살의 공덕을 입었기에
백 천만 겁 도록 다시는 여자의 몸을 받지 아니한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아, 지장보살의 공덕이 크고도 커서 좋기는 한데
사실일까 하는 회의가 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중생의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볼 수만 있다면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얼마나 많은 것을 우리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행하는 일 중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우리가 직접 확인해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많은 경우 별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별로 크거나
중대하지 않은 시안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별 손해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지장보살의 위신력,
본원력 앞에서 의심을 일으키는 것은
그 공덕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너무 어마어마해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또 얘기가 길어졌군요.
오늘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날에는 지장보살의 위신력과 자비심,
그리고 원력을 찬탄하는 내용을 더 펼쳐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서 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의 따끈따끈한 글은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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