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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수중앙교회' 제공 |
동행한 교인들은 구제용품을 방 한켠에 쌓기 시작한다. 세숫비누 15개, 화장지 8통, 탄산음료 24캔, 참외 10개, 락스 1통. 탄산음료는 건강에 도움이 되진 않지만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이들에겐 이따금 마시고 싶은 청량제. 호 목사는 일행과 함께 L씨를 위해 기도를 드린 뒤 다음 행선으로 향한다.
두 번 째 방문지는 금호동 3가 행운세탁소 옆 일반주택. 단칸방에서 70대 어르신이 일행을 반갑게 맞는다. 일행은 역시 구제용품을 방안에 들여 놓느라 분주하다. 탄산음료 24캔은 굉장히 무겁다.
가톨릭 신자인 이 어르신은 지난 3일 부인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어르신은 얘기가 고픈가보다. 지난 5년 동안 아내를 간병한 얘기, 소천 당일의 상황, 요즘 당신이 하는 일 등을 시시콜콜 일행에게 고(告)한다. 어르신은 식물인간이 된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주위의 권유에도 아랑곳 않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열부(烈夫)로 주위의 칭송이 자자하단다.
“목사님 이렇게 찾아 주시는 거 생각하면 교회를 나가야 마땅하지만, 제 어머니 유지(遺志)가 천주교를 믿으라는 거였기에 교회로 가지 못합니다.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성당에도 하나님은 계시니까.”
세 번 째 방문지는 독서당길 대로변 단독주택. 빈 공간에 라면 박스 등 폐지가 잔뜩 쌓여 있다. 팔순 할아버지 J옹이 주어다 놓은 생활 밑천. 그런데 100㎏ 해봐야 6천 원 받는단다. 어르신은 남의 집 옥탑방에서 운신 못하는 70대 할머니를 보살피며 사신다. 할아버지는 호 목사 일행을 보자 피우고 있던 담배를 뒤로 감춘 뒤 살짝 끈다.
일행이 여쭙는다.
“자제 분은 안계시나요?”
“큰아들은 부도를 내서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작은아들은 용산전자에서 월 80만원 받는 수리기사예요. 그러니 기초생활 수급자 신청도 못 해요.”
“어르신, 그래도 힘내세요!”
호 목사는 권사 두 분과 쪽방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가 할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내려온다.
J옹은 2주에 한 번씩 선물세트를 한 아름 안고 찾아오는 호 목사 일행의 섬김에 감동해 얼마 전부터 옥수중앙교회 주일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다고 권사 한 분이 귀띔한다.
이번엔 금옥초등학교 앞에 있는 2층 단독주택.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문을 열어준다. 1층 안방에 들어가니 인물이 훤한 40대 남성이 침대에 누워 있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하반신마비로 거동이 불가능하다. 성모마리아 상(像)과 예수 십자고상(十字苦像), 그리고 굵은 초가 나란히 시렁에 놓인 방에 들어간 호 목사가 남성과 얘기 나누는 사이, 권사 한 분이 여인과 얘기를 나눈다.
“남편 때문에 심려가 크겠어요.”
“남편이 아니라 친구예요. 부인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버렸어요. 저이가 홀로 된 이후 친구로 지내다가 여기까지 왔어요.”
“천사예요.”
▲ ⓒ '옥수중앙교회' 제공 |
집은 위층에 사는 의붓어머니 소유란다.
그런데 옆에 있던 남자 집사가 물품을 마루에 놓고 나더니 눈을 훔친다. 이 집사는 아까부터 호 목사가 기도할 때마다 훌쩍이던 ‘울보’다. 이공계를 나온 전문직이라는데 눈물이 많은 가보다.
11시 20분. 금호동의 임대아파트 두 곳을 연이어 방문하면서 독거인 및 장애우, 기초생활수급자를 위한 오전 심방은 막바지를 향한다.
두 번 째(통산 6번 째) 방문한 임대아파트 7층. 호 목사가 현관문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응답이 없다. 그래도 호 목사는 계속해서 초인종을 누른다.
한참 후 문이 빠꼼히 열린다. 호 목사는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어렵사리 문을 연 이는 거동을 거의 할 수 없는 10대 소녀. 한눈에 봐도 지체부자유에 발달장애까지 가진 10대 소녀.
호 목사는 이 소녀와 거의 외계인 수준의 대화를 시도한다. 어렵사리 풀어낸 소녀의 말.
“(신부전증 환자인 아빠를) 엄마가 모시고 병원에 신장투석 하러 갔어요.”
호 목사는 여 집사 두 명에게 소녀를 거실로 옮겨달라고 요청했으나 힘 부족. 할 수 없이 남 집사 두 사람이 소녀를 안아 옮긴다.
▲ ⓒ '옥수중앙교회' 제공 |
오전 사역 마지막 방문지는 교회 인근 중앙병원 앞 연립주택 1층. 호 목사가 현관문 자물쇠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다. 몸이 퉁퉁 부은 50대 여인이 침대에 누워 있다. 여인은 사고로 척추와 다리 관절에 쇠막대를 두개나 박았는데도 결국 불구가 됐을 뿐 아니라, 당뇨에 고혈압까지 겹쳐 삼중고를 겪고 있단다. 아들 하나 데리고 사는데 생활은 근근이 꾸려간다고 한다.
그런데 호 목사 일행을 좀 체로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같다. 옛이야기로부터 요즘 얘기까지 연신 이어간다. 여인 역시 말이 고픈 것같다.
호 목사, 여인의 말을 저지(沮止) 않고 인내 있게 들어준다.
‘城東의 프란치스코’
며칠 있으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다. 그는 검박하고 겸손한 행보로 지구촌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의 등장으로 가톨릭은 오랜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마모니즘(mammonism)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한국 개신교계가 긴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럼 한국엔 ‘프란치스코’가 없을까? 필자는 감히 옥수중앙교회 호용한 목사를 ‘성동(城東)의 프란치스코’로 부르겠다.
신학 內攻 깊은 목사
그렇다고 그가 빈민 구제에만 ‘올인’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는 기독교 교리에 정통한 목회자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나와 독일 뮌헨대에서 상담학을 공부했다. 그의 목회 철학은 ‘말씀과 나눔’(사도행전 6장)에 있다. 말씀이 먼저고 나눔이 다음이다.
그의 내공은 이력에서도 알 수 있다. 1985~89년 그는 두란노서원 산하 ‘생명의 삶’ 편집장이었다. 작년엔 11~12월 기독신문(예장 합동 매체)에 빌립보서 강해를 12회 연재하기도 했다. 오는 11일엔 모교 목회대학원 계절학기에서 ‘지역섬김과 현대목회’를 주제로 특강할 예정이다.
강해 위주의 그의 설교는 별로 재미가 없다. 하지만 ‘먹물’들에겐 비수처럼 꼽히는 강호 고수의 공격처럼 비치기도 한다. 다행인 건 그의 언변이 구수하다는 점이다.
그는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완고한 선지자적 견지다.
“주님께서 초대교회를 향해 질타한 것은 교회의 크고 작음에 있지 않았다.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 ‘따뜻하냐, 미지근하냐!’, ‘정통이냐, 이단이냐!’, ‘성스러우냐, 세속적이냐!’였다. 요즘 일부 대형교회를 상대로 펼쳐지는 개혁 운동은 한국판 종교개혁의 시발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잇는다.
“일부 대형교회 목사가 교회 키우기에 몰두하면 당장은 효과를 볼 것이다. 그러나 그게 후일 그 큰 교회의 문을 닫는 단초가 된다면?”
“대형교회 목사의 逸脫, 교회 문 닫게 해”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덧씌워진 별호(別號)는 ‘프란치스코’다. 그의 프란치스코적 행적을 재 추적하자!
지난 2월 10일 서울 건국대 새천년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장에선 조촐한 기부금 전달식이 열렸다. 세바시 강연자들의 명언을 담은 ‘2014년 세바시 좋은글 달력’의 판매 수익금 전액(1,400만원)을 <365 우유안부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호 목사에게 전달한 것.
<365 우유안부캠페인>은 독거노인들의 고독사가 늘어나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작은 운동으로, 매일 아침 우유를 배달하며 독거노인들에게 안부를 묻고 건강을 챙기는 착한 캠페인이다.
▲ <지난 2월 10일 오후 서울 화양동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표 강연 프로그램 CBS ‘세바시’ 강연에서 변상욱 콘텐츠 본부장(왼쪽부터)과 김봉진 (주)우아한 형제들 대표가 호용한 목사에게 ‘2014 세바시 좋은 글 달력’ 판매 수익금 전액(1.400만원)을 전달하고 있다.=기독공보 제공> |
호 목사는 2000년대 중반 독거노인 한 분의 독거사를 발견해 장례를 치러드린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교회가 적어도 혼자 사는 분들에게 든든하고 따뜻한 이웃이 되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사랑 바이러스’를 퍼트리기도 했다. 2009년 말 할머니 한 분이 털실로 짠 방울모자를 잔뜩 들고 옥수중앙교회를 찾았다. 교역자들은 할머니가 누군지 금방 알아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지난 5년 우유를 줘서 고마워 방울모자를 하나 만들어 왔다”고 했다. 뜻밖의 선물에 교역자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는 금언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안심 우유’ 받은 할머니, 털모자 들고 찾아와
옥수중앙교회는 서울 금호동 옥수동길 언덕 중턱에 서 있다. 1970년 교회가 세워질 때 이 동네는 몹시 가난했다. 재개발이 끝난 지금도 이곳저곳에 빈곤층이 적지 않다. 2001년 2대 담임으로 부임한 호 목사는 ‘지역을 살리는 교회’를 목회 방침의 우선으로 삼았다.
부임 초기 나이 많은 한 성도가 정착금으로 쓰라고 준 2천만 원을 종자돈(seed money)으로 장학복지사업을 시작했다. 많은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동참했다. 자식들에게 용돈을 타 쓰는 노인 성도들도 매달 1만 원, 2만 원씩 보탰다.
장학복지사업 역시 사랑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시작했다. 장학복지사업 계좌엔 매년 1억여 원 정도가 들어온다. 교인이 내는 장학복지헌금은 매월 4백만 원 정도.
그렇다면 나머지 6천만 원은 어디서 들어올까? 외부다. 국내는 물론, 미국, 캐나다 등 지구촌 전역으로부터다. 이번 주에도 미국으로부터 3천 달러가 입금됐다.
옥수중앙교회는 이 기금을 12월 말까지 전액 소진한다. “다음해 예산은 하나님께 맡긴다”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기대에서다. 하지만 신기하게 다음해에도 예외없이 1억 원은 채워진다.
옥수중앙교회는 ‘3무(無) 시책’을 고수하고 있다. 사택이 없고, 사찰집사가 없으며, 사무원이 없다. 그 사명을 감당하는 이는 담임목사를 비롯한 부교역자들이다. 당연히 그들에겐 업무 부하가 쎄게 걸린다.
“교회 노조라도 만들어야겠다”는 필자의 견해에 호 목사는 이렇게 답했다.
“청빙할 때, 반드시 확인한다. 감당하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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